[스크랩] 파리 코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파리 코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안효상
몇 가지 사태가 겹치면서 135년 전에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나는 지난달에 감사원이 발표한 ‘지방 자체 단체 종합 감사 결과’이다. 사실 감사 결과가 없다 하더라도 현재의 지방 자치 단체가 풀뿌리 민주주의 기관이자 실천이기는 고사하고, 부정과 비리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비리와 부정을 늘어놓고 보니 충격이 적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익을 앞세운 도덕적 해이, 토착 세력 봐주기 부정, 무원칙한 인사를 통한 자기 사람 심기, 개발주의에 따른 무리한 사업 추진 등등, 신문 기사의 제목처럼 우리나라 지방 자치 단체의 ‘비리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오는 5월 31일에 실시될 동시 지방 선거이다. 1991년 시도 의회 선거로 부활된 지방 자치는 1995년 6월 4대 지방 선거가 실시되면서 제도로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가 주목받는 이유는 지방 단체장의 3선 제한 규정에 따라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지방 자치 의회 의원에 대한 보수 규정 때문이다. 충남 지사이자 국민중심당 공동 대표인 심대평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지방 자치는 말이 지방 자치이지 사실은 지역의 가상적 이해관계를 볼모로 한 토호 세력의 놀이터였다. 그런 점에서 3선 제한 규정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뻔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겠는가가 사람들의 기대라 할 수 있다. 또한 지방 의원에 대한 보수 규정에 대해서도 이러저러한 말이 많지만, 이로 인해 돈이 없는 참신한 정치인이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에 예비 후보 등록일(3월 19일)이 다가왔고, 그보다 하루 앞선 3월 18일이 파리 코뮌 봉기일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연동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이 권위와 힘을 잃은 오늘날, ‘최초의 노동자 정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한 형태’인 파리 코뮌에 대한 관심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의 힘을 통한 변화 이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고,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대중 하나 하나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수단이자 또한 목적이라 할 때, 그리고 현재의 지방 자치가 가지고 있는 제도적, 관습적 한계에도 그것이 우리가 통과해야 할 연옥이라면 파리 코뮌에 대한 또 다른 기억도 의미 있는 실천일 것이다.
1870년 9월 2일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게 항복하고, 이틀 뒤 파리에서 입법원 의원들이 ‘공화정’을 선포하면서 프랑스의 제정은 무너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3공화정은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다짐을 선포하였지만 그것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었고, 결국 다음해 1월 프로이센 측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프랑스는 항복했지만 혁명의 도시 파리는 그렇지 않았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파리 시민들은 도리어 국민 방위대를 재정비하고 조국과 파리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이런 양상을 잘 보여준 것이 2월 8일에 실시된 총선거였다. 프랑스 전체로 볼 때는 왕당파가 2/3가 넘었고 공화파는 1/4이 못되었지만, 파리에서는 코뮌파를 비롯한 급진 공화파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래서 온건 공화파인 티에르가 행정 수반의 자격으로 새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가운데 파리 코뮌의 ‘임시 중앙 위원회’는 파리의 무장 해제에 반대하고 전쟁을 계속할 것을 천명했다. 그러자 3월 18일 티에르 정부는 파리의 국민 방위대가 가지고 있던 대포를 탈취하기 위해 상비군을 보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실패했고, 도리어 파리는 독자적인 공화국, 즉 파리 코뮌을 선포하면서 베르사이유의 프랑스 정부와 맞섰다. 이 파리 코뮌은 이후 10주간 동안 지속되면서 전유럽의 지배 계급과 유산 계급에게는 공포를, 노동자 계급과 민중에게는 또 다른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런 파리 코뮌을 둘러싸고 구구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그것이 애국심의 발로인지 사회주의 운동의 결과인지, 코뮌 참가자들의 계급적 성격은 무엇인지, 코뮌이 취한 조치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등등. 파리 코뮌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토픽을 가지고 다양한 주장이 있는 것은 이 사태가 그만큼 복합적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의 패배라는 정세를 맞아 대혁명 이래 혁명의 진원지인 파리는 애국심과 혁명의 전통으로 맞섰고, 여기에 19세기의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이라는 차원이 덧붙여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관심은 코뮌이 취한 조치, 실제로 움직인 방식이다. 파리 코뮌의 정신적 후원자였던 칼 맑스가 작성하고 제1인터내셔널이 발표한 「프랑스 내전」에 의거해 이를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낡은 정치 체제인 제정, 그리고 뒤이어 만들어진 베르사이유 정부와 맞선 코뮌의 존재 자체였다. 이를 위해 파리 코뮌은 우선 상비군을 무장한 인민으로 대체하였다. 그리고 파리의 각 구에서 보통 선거를 통해 선출된 시 의회 의원들로 코뮌을 구성하였는데, 이 의회는 그저 입법부에 머문 것이 아니라 행정과 입법의 업무를 겸한 행동하는 기구였다. 이 의원들은 선거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었다. 또한 경찰을 비롯한 모든 관리는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해임될 수 있었으며, 노동자의 임금 이상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국가 고위 관직의 기득권과 판공비는 이 고위 관리들 자체와 함께 사라졌다.
이런 코뮌의 구성 원리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우리는 4년마다 우리를 대변한다고 하는 (사실은 잘못 대변하는) 대표자들을 뽑아 통치권을 주고 실제로는 그 기간 동안 사회의 기생물인 국가를 통해 지배당하고 억압당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의제라는 형태를 취한다 하더라도, 주권은 양도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대의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회의 대표자들에 대한 나날의 견제와 감시, 필요한 경우의 소환은 너무나 당연한 주권자의 권리이다. 그리고 코뮌이 이러한 점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실천하였을 때 코뮌이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물론 파리 코뮌은 지방 자치의 한 형태는 아니었다. 비록 파리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성립한 정치 형태이긴 했지만 파리 코뮌은 프랑스의 재조직화의 모델로 스스로를 제시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파리 코뮌의 실천을 현대의 지방 자치에 곧바로 대입하는 것은 분명 부적절하다. 더구나 파리 코뮌의 성립이 앞에서 본 것처럼 전쟁 패배라는 정세 속에서 이루어진 혁명적 분출로 이루어진 것을 감안할 때 민주주의의 완전한 재생으로서의 코뮌의 부활을 오늘날 꿈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방 자치가 국가 권력에 대한 억제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지방 자치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는 코뮌의 구성 원칙을 끊임없이 떠올려야 할 것이다.
이런 코뮌의 원칙이 지방 자치를 구성하는 토대가 된다면, 파리 코뮌이 취했던 현실적인 조치들은 사실 오늘날의 우리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리 코뮌은 당시 노동자를 위해 제빵공 직인의 야간 작업 폐지, 노동자들에게 이러저러한 구실로 벌금을 부과하는 고용주에 대한 과태료 부과, 폐쇄된 작업장과 공장을 노동자 협동조합에 양도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외에도 공창제의 폐지, 교육의 세속화와 무상 교육, 임차인과 영세 상인을 위한 보호 조치 등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 가운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 조치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그러한 조치를 어떻게 시행할지를 생각해 내고 집행하는 것은 그러한 코뮌의 구성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선거에서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공약은 그 자체로서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공약들은 그 공약을 집행할 정치 형태의 대체적인 방향을 암시해 주긴 하지만, 그 정치 형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혹은 지방 선거를 둘러싸고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정치 형태가 보통 사람의 참여를 활성화할 것인가이다. 그럴 때 다시금 우리가 파리 코뮌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철저하게 확장적인 정치 형태였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당대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일의 해방을 꿈꾸는 행위일 것이다.
2006.03.17 13:30
안효상 프로메테우스 편집위원, 서양사, 사회비판 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