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자주국방의 과제와 전망 - 강정구
자주국방의 과제와 전망
강정구
I. 머리말
노무현 대통령은 첫 8.15경축사에서 자주국방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10년 안에 이를 구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말하는 자주국방은 대미 군사자주권 확보인지(이 의미의 자주국방을 ‘자주형’으로 개념 규정한다), 대북한 전쟁억제력 초 과잉화인지(이는 대북한 흡수통일 지향적이기에 ‘흡수형’) , 아니면 미국의 신군사전략 편입화를 통한 예속국방의 고착화인지가(‘예속형’) 분명치 않다.
한편 아래의 연설문 내용만을 보면 금기 사항에 가까운 대미 군사자주권으로서의 자주국방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쟁점화 시키고 정책과제로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또 획기적인 사건으로서 노무현 정신이 사라졌다는 참여정부에 후보 노무현의 패기와 신선함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의 안보를 언제까지나 주한미군에 의존하려는 생각도 옳지 않습니다. 자주독립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대책 없이 미군철수 반대만 외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그래서 다시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디에 기댈 것인가를 놓고 편을 갈라 싸우다 치욕을 당하는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한편 아래의 내용만을 보면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통합-편입을 자주국방이란 외피를 쓰고 철저히 정당화하는 의혹을 가지게 한다. 곧, 전 세계적 수준에서 기동력과 선제타격능력의 향상, MD체제, 중국에 대한 포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패권, 대량살상무기 反확산전쟁까지 불사하는 대북한압살정책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미국의 신군사주의전략의 하위체계로 남한이 편입-통합되는 것 등을 꾀하는 예속국방의 고착화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무현 정신이 사라져 철저하게 미국에 예속된 참여정부의 연장선상의 모습에 불과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정보와 작전기획 능력을 보강하고, 군비와 국방체계도 그에 맞게 재편해 나갈 것입니다...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호 보완의 관계입니다...동북아시아의 질서가 평화와 번영의 질서로 발전하게 되더라도 한편으로는 대립과 갈등의 잠재적 가능성이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그 동안 한미동맹 관계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 한편 아래의 내용만 보면 북한에 대한 전쟁억제력과 나아가 동북아주변국을 겨냥한 전쟁억제력의 과잉 확충이야말로 자주국방인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 왜냐면 지금 현재만 하드라도 남한의 군사비는 올해 150 억 달러와 내년에 200억 달러로 북한의 15억 달러 수준에 열 배를 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저는 저의 임기동안,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 군이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정보와 작전기획 능력을 보강하고, 군비와 국방체계도 그에 맞게 재편해 나갈 것입니다....정부가 수립된 지 55년이 되었습니다. 세계 12위의 경제력도 갖추었습니다. 이제 스스로의 책임으로 나라를 지킬 때가 되었습니다.
비록 문제제기 그 자체만으로도 획기적이긴 하지만 참여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자주국방으로 나아갈 의도가 있는 것인지, 또 이 의지를 실현시킬 역량이 있는지, 아니면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통합-편입하기 위해 자주국방이란 외피를 쓰고 정당화하려는 전략인지, 아니면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초 과잉화 하면서 실질적으로 미국의 대북한 고사작전에 동참하려는 것인지 등에 대한 논쟁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연설문 자체가 이를 명확히 하지 않았고 아마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자주국방에 대한 전망 또한 여러 갈래일 수밖에 없다.
어떤 정책이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행위주체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하고, 정책구현에 대한 구조적 제약을 극복하고 구조적 추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지도력과 역량이 있어야 한다.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은 의지와 구조적 제약과 구조적 추동력 세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분석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자주국방 구현의, 곧 군사자주권 확보의 가능성을 전망해 보도록 하겠다.
대통령 경축사나 여타 국방부의 관련 보고서 및 글들은 자주국방을 대북억제력 확보, 전력증강, 군사비 증액, 한미군사동맹의 강화, 독자적 작전수행 능력 확보 등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상정하여 자주국방의 핵심을 혼돈 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자주국방의 기본 핵심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대미 군사적 예속성의 극복, 독자적 작전 수행능력이 담보되는 군사자주권이 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 진정한 자주국방의 기본개념은 군사자주권으로 한정시킨 ‘자주형’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경축사에 나온 다른 유형인 논의의 필요상 ‘예속형’과 ‘흡수형’도 자주국방의 범주에 포함을 시킨다.
이 글의 논의에서 필자는 자주국방과 관련된 기존의 안보제일주의, 냉전성역주의, 군사기술신비주의, 군사관료주의 등을 철저히 배제하고 이 분야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모색하겠다. 패러다임은 과학공동체에 주제선정, 모델, 방법론, 해답 등에 기본 구도를 제공하는 과학공동체가 인정하고 공유하는 믿음, 가치, 기법, 시각을 포괄한 것으로 문제해결의 보편적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쿤(Thomas Kuhn)이 과학혁명에서 이야기하듯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와 같은 개종을 의미한다.
분단냉전체제에서 평화통일시대로의 전환이라는 민족사적 지각변동은 마치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근본적 패러다임변화와 같다. 이러한 민족사의 흐름에 순응하여 우리의 자주국방, 안보-국방 및 평화보장체제 등도 이 같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군사자주권, 전쟁획책과 평화교란 요소, 독자적 작전능력과 작전권 행사, 평화통일의 긍정 및 부정 요소, 남북관계, 북한군사력, 주한미군, 미국의 지배체제, 대미군사종속체제 등에 대한 성역 없는 평가와 분석 및 대안, 곧 냉전성역허물기가 요구된다. 이에 대한 필요성을 2장에서 논의하겠다. 곧 냉전성역에 속박되지 않은 논의가 없이는 자주국방의 본질 논의가 될 수 없음을 먼저 강조하겠다.
또한 자주국방을 대북한 억제력 확충을 목적으로 하고 이를 위해 국방비 증액과 전력증강을 정당화시키는 흡수형 자주국방은 남한군의 대북 과잉억제력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설득력이 없다. 마찬가지로 주한미군이 대북억제력을 위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전제를 하면서 자주국방을 논하고 있는 게 참여정부와 군부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런 주한미군 불가피론은 필자의 견해로는 전혀 근거가 없다. 또 현존 남한의 안보체제는 더 이상 주적이 될 수 없는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고, 한반도 평화를 교란시키고 한반도 전쟁위기를 거의 상시적으로 주도하는 미국과 주한미군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자주국방을 당연시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군사자주권을 확보하여 나라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평화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그 하위협정들을 근간으로 하는 현존 안보체제와 주한미군은 평화보장 보다는 전쟁위기를 더욱 조성한다. 이러한 평화 위협적이고 전쟁 유발적인 요소를 본질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한미동맹의 공고화와 대북억제력 확충의 전제 하에서 자주국방을 논의하는 것은 자주국방의 핵심인 군사자주권 확보의 자주형이 아니라 흡수형과 예속형을 겉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한 성역 없는 분석과 주한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현존안보체제의 문제점을 근거로 흡수형이나 예속형의 자주국방이 아니라 자주형의 자주국방이어야 함을 각기 3장에서 강조하겠다.
다음 4장에서는 국방부나 대통령경축사에서 혼란스럽게 쓰고 있는 자주국방의 개념을 보다 체계적으로 유형 분류하여 진정한 자주국방인 자주형을 도출하겠다. 흡수형이나 예속형, 또한 이들의 조합형태인 예속적 흡수형이나 예속적 자주형 등은 오히려 자주국방의 본질을 희석하는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유형분류를 통해 들추어내고자 한다.
5장에서는 군사자주권 중심의 자주형 자주국방이 구현되려면 정책의지의 강고함과 구조적 제약을 극복하고 추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춰져야 한다. 일부 구조는 자주국방의 제약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고, 다른 구조는 자주국방의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양자간의 힘 관계가 총화 되어 군사자주권 구현에 대한 구조적 제약 또는 구조적 추동력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참여정부가 내건 자주국방이 이 세 가지 요소들의 강도나 결합 양태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결정되기 마련이다. 이 세 요소의 현황을 분석하여 긍극적으로 참여정부의 자주국방이 무엇으로 귀결될지를 전망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전망 하에서 시민․민중사회가 해야할 역사적 과제가 무엇인지 논의하겠다.
II. 냉전성역 허물기와 자주국방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냉전 분단체제 아래 남북이 서로를 원천적으로 적대 및 부정(否定)하여 상대방에 극단적인 덫 칠을 가하여 악마화 하고 자기 것은 절대적인 선으로 미화하거나 신성시 해왔다. 그래서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는 성역, 곧 금기영역이 존재해 왔다. 이 금기영역인 냉전성역(cold war sanctuary)을 잘못 이야기하거나 학문주제로 삼았다가는 옥살이나 죽음을 강요당할 정도였다. 비록 이러한 극단적 상황은 개선되긴 했지만 성역은 아직도 엄연하게 존속하고 있어 자주국방, 주한미군철수, 대북 과잉억제력, 대미 군사예속 등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가로막히고 있다.
냉전성역의 문제점은 그 기반이 구체적인 경험적 사실에 의해 검증이라는 절차를 밟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과 같은 맹목적 냉전이념인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점이다. 반(反)과학적이기 때문에 반(反)합리적이고, 맹목적이기 때문에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며, 이분법에 의해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삼고 있다. 냉전성역에서는 공식적인 단일 표준정답과 해석만 허용되는 파시즘이 지배한다. 이 결과 통일시대에 접어들었으면서도 남북 간의 진정한 화해, 협력, 평화와 통일이 원천적으로 가로막히게 되고, 학문사상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이 침해받게 된다. 특히 서해교전과 같은 무력충돌이 일어나거나 주한미군이나 미국과 결부된 경우 이러한 맹목적 냉전성역화는 더욱 강화되고 재생산되어 민족의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작용한다. 냉전성역은 한국전쟁, 친일파청산, 정통성, 항일무장 투쟁, 민간인학살, 주한미군, 연방제 통일방안, 주체사상, 민간인 학살, 평화협정, 김일성, 김정일, 민족자주, 서해교전이나 북방한계선 등과 같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포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냉전성역은 무엇보다 과학적 검증을 받게 되면 곧바로 그 허구성이 드러나게 된다. 한국전쟁을 보기로 들어보자. 우리 사회에서는 전쟁이 끝난지도 반세기가 넘는 지금까지도 한국전쟁은 금기의 영역 또는 성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록 그것이 순수한 학문적 접근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타의적 또는 자의적 장막이 쳐 있다. 냉전성역에는 언제나 공식적인 ‘표준정답’이 있어 이에 조금이라도 이탈되는 평가나 분석을 하게 되면 중세 암흑기의 마녀사냥과 색깔론이 춤을 춘다. 그런데 이 표준정답에는 무조건 ‘북한=악(惡)의 화신, 남한과 미국 = 선(善)의 화신‘이라는 절대적인 양분법으로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왜곡이 자리잡고 있다.
이 광기 어린 마녀사냥과 색깔논쟁에는 대통령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001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6.25는 무력 통일시도라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언명이 한나라당으로부터 대통령직 하야 요구까지 받았고 주류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은 탈냉전시대와 통일시대를 맞아 민족의 숙원인 민족화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일구어 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할 연구주제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성역 없이 역사의 진실과 실재(實在)가 밝혀지고,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고, 냉전논리에 의해 왜곡된 것이 시정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이러한 역사의 진실이라는 바탕 위에서만 진정한 남북의 화해․협력 및 평화․통일의 행로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은 통일시대와 평화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이 통일시대는 위와 같은 금기 주제에 대한 ‘성역 허물기’를 더욱 더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왜냐면 일방적으로 왜곡된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로는 남북 간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지기 힘들고, 이러한 화해와 협력 없이 평화와 통일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일본교과서의 왜곡이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어렵게 만들 듯이 남과 북이 이제까지 서로를 일방적으로 매도 해 온 것들을, 역사의 진실과 올바른 평가로 대체하지 않고는 진정한 화해나 협력 및 평화와 통일은 불가능하다.
통일시대의 중요한 과제인 평화문제를 보기로 들어보자.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의 핵심 구성분야인 한반도전쟁위기의 주범에 대한 성역 없는 규명, 주한미군철군, 남북군사력 비교와 군축, 평화협정, 한미연합방위체제와 전시작전권 환수,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한반도 전쟁위기사 등의 주제가 수박 겉 핥기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또 포괄적으로 연구되어야만 한다. 곧, 미국의 전쟁주범 규정, 주한미군의 철군, 전시작전권 환수, 자주국방, 군사비 50% 감축 등의 논의까지도 제약 없이 허용되고 장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냉전성역 허물기’는 민족사, 특히 6․15공동선언 이후의 통일시대의 요구이고 동시에 민족학문과 비판학문의 정체성이 요구하는 논리적 귀결이다.
이번 8.15경축사에서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노무현대통령이 자주국방을 역설한 것 그 자체가, 그 진의가 무엇이든지 간에, 민족사의 요구이고 냉전성역 허물기에 부응하는 것이다. 자주국방은 냉전성역의 하나로서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의가 기피되어 왔고 또 대통령이나 권력자의 위치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는 바로 주한미군 및 한미관계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주류에게는 더욱 더 냉전성역일 수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한나라당은 자주국방 논의 그 자체를 금기시하는 듯한 공세를 펼쳤다. 홍사덕 총무는 “경축사의 여타 부분에 대한 언급은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안보체계를 바꾸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면서 "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란 대통령의 말은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박진 대변인은 ”주한미군에게 ‘갈 테면 가라’식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질타했다.
자주적인 군사주권의 확보라는 자주국방의 기본은 시비를 초월해서 당연히 추구되어야할 핵심지향임에도 불구하고 냉전성역이 아직 판치고 있는 현실은 기본을 기본으로 규정짓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정책구현에도 심대한 장애를 일으킨다. 바로 대통령의 연설문 자체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자주국방과 한미 동맹관계는 모순되지 않고 상호 보완관계이며, 자주국방을 이룬다하더라도 한미동맹관계는 공고히 지속되는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역점이다. 또 자주국방의 핵심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대미 군사종속체제 극복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애둘러 암시만 할 뿐이다. 특히 미국이 요구하는 군사비 증액과 전력증강을 수용하면서 이를 방편으로 자주국방을 추구한다는 내용 등은 자주국방에 연관된 냉전성역을 제대로 허물지 못한 결과물이다. 이래서는 진정한 자주국방을 성취할 수 없다.
군사자주권의 확보라는 진정한 자주국방, 곧 자주형 자주국방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자주국방에 관련된 일체의 성역을 뛰어 넘어 본질적인 문제점을 파헤치고 쟁점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한반도 전쟁획책과 평화교란, 독자적 작전능력과 작전권 행사의 저해 요소인 한미연합방위체제, 평화통일 가로막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남북관계, 대북한 억제군사력의 과잉, 주한미군 철수, 대미 군사예속체제 등에 대한 성역 없는 평가와 분석이 요구된다. 다음 장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거나 필자의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자주국방의 핵심 과제를 논하겠다.
III. 새로운 패러다임의 안보체제 모색과 자주국방의 과제
우리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었지만 탈냉전인 1989년 이후 한반도에는 무려 7번의 전쟁위기가 발생했다. 현재의 2003년 한반도 전쟁위기는 이들 전쟁위기의 연속선상에서 발생했다. 이라크전쟁이후 한반도 전쟁위기가 전 세계적 우려 사항으로 떠오른 가운데 럼스펠드 미국방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핵문제에 대한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는 수준을 넘어 선호하는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또 4월 22일 자 <더 오스트레일리안>신문은 북한폭격 정밀계획에는 휴전선 일대의 북한진지까지 폭격하는 전면전을 상정하고 있음을 폭로했고, 호주 외무장관이 이를 확인했다. 페리 전 국방장관은 올해 전쟁발발을 경고(<워싱턴 포스트> 03.7.15)하면서 “우리(미국)는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부시 행정부와 남한 그리고 중국의 고위관리들과 최근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시간이 다 돼가고 있고 달이 갈수록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어서 이제 이렇게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연구원은 "부시대통령이 군사적 선택을 숙고한다"(Far Eastern Economic Review 7월17일 기고)라는 글에서 북한정권교체는 부시정부의 정책목표이며 “미국의 군사계획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국지적 공격에서부터 다수의 공격목표에 대한 광범위한 타격계획으로 확대되고 있다...이에 따라 7-10월는 한반도 내부의 주변에서 위험한 시기로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전쟁위기는 서서히 차곡차곡 진행되어 어느 날 갑자기 돌이킬 수 없는 전쟁상황으로 내몰릴 것으로 예견된다. 무엇보다 미국은 미 2사단의 평택이남 이전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그 이전시기도 올해 안으로 제시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미루기로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이전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이전 미 지상군의 남쪽 이동은 주한미군의 인질화 우려를 불식시켜 미국의 북한 무력공격에 용이한 조건 만들기라는 것을 미국고위관리들은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또 지난 2월 이후 한반도주변에는 B24 전폭기 24대가 증편되었고, 3월에는 통합훈련에 동원된 가공스런 F-117 스텔스폭격기, F-15E 비행대대 등이 군사훈련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도 철수하지 않고 실전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베이징 3자회담 등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대화는 하지만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식의 고압적 자세를 보이더니 6자회담에서도 회담의 핵심인 핵문제 외에 마약, 위조화폐, 심지어는 인권문제까지 제기하여 단지 무력공격을 위한 시간 벌기, 명분 쌓기, 압력수단의 형식으로만 활용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남한은 이제까지 한미군사동맹과 주한미군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해 왔고 심지어 통일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해서 동북아세력균형의 역할을 해야만 통일한국의 안보도 보장된다고 이 땅의 주류들은 역설해 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탈냉전을, 민족사적으로는 통일시대를, 미국의 패권주의는 전쟁 지향적인 신패권주의로 변화한 이 시점에서까지 이러한 기존의 일방적 대미의존 안보패러다임은 전혀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및 통일을 가져 올 수 없다.
오히려 주한미군에 의존하는 현존 안보체제는 안보보다는 한반도전쟁위기만 조장해 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리 개개인과 민족전체의 생명권을 위협할 것이다(이철기, 2003). 따라서 우리들 기본권의 기본권인 생명권과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현존의 대미 의존적인 안보체제의 폐기와 새로운 대안적 패러다임의 한반도평화보장체제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는 곧 현존의 한미군사동맹을 폐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미관계를 모색해야 함을 의미한다.
본격적인 안보체제의 문제점을 논의하기 이전에 필자의 기존연구물을 바탕으로 탈냉전기 한반도 전쟁위기의 보편적 속성을 도출하고 이에 대비한 자주국방의 과제를 먼저 제시하겠다.
1. 탈냉전기 한반도 전쟁위기 속성과 자주국방의 과제
진정한 자주국방의 목적은 주권국가로서 군사적 자주권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에 상존하는 전쟁위기 구조를 해체하여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이룩하는데 외세가 개입하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최소한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목적에 걸 맞는 자주국방 구상은 현존 한반도 전쟁위기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바탕 위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이 절은 탈냉전기 한반도 전쟁위기의 속성을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주국방의 과제를 도출한다. 필자의 기존 연구물인 "미국의 신패권주의와 한반도 전쟁위기 및 새로운 안보패러다임"({민주사회와 정책연구』2003년 제3권 제1호, 2003.6.30 13-47쪽)을 바탕으로 탈냉전기 한반도 전쟁위기의 일반적 속성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냉전시대보다 탈냉전시대에 전쟁위기의 빈도와 위험강도가 더 높다. 이는 소련의 몰락으로 대미 견제력이 상실되어 전쟁억제력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다음절에서 논의되겠지만 탈냉전시대 한반도전쟁위기는 북한이 주도한다는 북한전쟁위협론에서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한다는 미국전쟁위협론에서 비롯된다. 곧, 한반도 전쟁주도 세력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
셋째, 94년 6월 전쟁위기와 같이 전쟁국면에 진입하면 한국의 대통령도 전쟁을 막지 못하게 된다.
넷째, 한국이 모르는 사이 미국은 전쟁비밀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신속한 선제 공격을 강조한 부시독트린에 따른 2002년 판 작전계획 5027-02이 한국과 상의하지 않고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것에서도 재확인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쟁통제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다섯째, 주류정치세력과 주류언론 등 주류는 전쟁위기에 직면하여 한미동맹에 기반해 무조건 미국에 동조하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전쟁막기보다 전쟁부추기에 경도되어 있다.
여섯째, 국민일반들은 대부분 전쟁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한반도 전쟁위기 속성을 기초로 추론하면 현존 대미의존 안보체제는 전쟁을 억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전쟁 유발속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자주국방이 진정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구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존 대미의존 안보체제를 전력 및 군사비 증강, 한미군사동맹의 강화, 주한미군의 전력 증강 등으로 강화할 것이 아니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곧 자주국방은 흡수형이나 예속형이 될 것이 아니라 자주형이 되어야 한다.
8.15경축사야말로 수구기득권 세력에게는 군비와 전력증강을 통해 대북억제력 확충이라는 얼굴을 가진 흡수형으로, 평화통일 진영에게는 군사자주권의 얼굴을 가진 자주형으로, 미국에게는 한미동맹 강화와 전력증강 및 미국산 무기구입이라는 얼굴의 에속형으로, 또 북한에게는 공동선언 및 협력사업 이행이라는 카드 등으로 각각의 입막음을 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위의 전쟁분석을 통해 귀결되는 결론은 자주국방이 한미군사동맹의 강화, 주한미군의 전력증강,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한국군의 하위군사체계로의 편입과 통합, 미국산무기의 구입을 통한 한국군의 전력증강이라는 얼굴을 가진 예속형-흡수형, 또는 이들의 조합에 의한 복합형인 자주국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는 한반도 전쟁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 귀결은 전쟁유발적인 주한미군과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서 독립된 군사자주권의 확보라는 자주형이야말로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하는 진정한 자주국방이라는 점이다.
2. 북한전쟁위협론의 허구성
한국의 현존 안보체제는 북한전쟁위협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허구에 불과하다. 이를 구체적인 경험적 사실에 입각한 과학적 지식에 의해 밝혀 보겠다. 왜냐면 북한전쟁위협론은 구체적 사실에 입각한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허구적인 맹목적 냉전신념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첫째, 탈냉전과 평화의 시대라는 90년 대 이후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보자. 1991-92년 120일 전투시나리오와 이종구 국방장관의 ‘엔테베작전’ 언급 등 ‘제2의 한국전쟁위기’, 1994년 6월 한 두 시간만 늦었더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던 영변핵위기, 엉터리 미국의 인공위성 사진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단정짓고 모의 핵푹탄 BDU-38로 핵전쟁 실전연습까지 벌렸던 98-99년 금창리핵위기, 98년 여름 대포동 미사일(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발발한 미사일위기, 휴전이후 최초의 정규군에 의한 무력충돌이라는 99년의 1차 서해교전, 2002년 부시의 ‘악의 축’전쟁위협(임동원, 2002), 2002년 2차 서해교전(강정구, 2002b), 또 2003년 현금의 한반도전쟁위기 등 무려 여덟 번이다.
이 가운데 미국이 전쟁을 주도한 것은 서해교전을 제외한 여섯 번으로 미국 주도의 한반도 전쟁위기 주도 확률은 6/8이다. 그러나 남과 북의 전쟁위기 주도 확률은 각기 1/8로서 북한이 전쟁위기를 주도한다는 북한전쟁위협론은 바로 허위임이 드러난다.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면 더욱 명확해 진다. 두 번에 걸친 서해교전은 우발적 충돌에 의해 전쟁위기로 치달았던 사건으로 의도했거나 계획적인 전쟁위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더 진전되고, 군사자주권 중심의 자주국방이 진행되면 이러한 전쟁위기는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그러나 나머지 전쟁위기는 모두 계획적이었고 의도적인 것으로 그 전쟁위기 횟수는 여섯 번이었다. 그러므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전쟁주도율은 미국이 100%를 차지한다.
둘째, 이같이 북한전쟁위협론의 허구성은 평화협정이나 불가침조약에 대한 북미간의 공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북한은 지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촉구해 왔다. 그렇지만 미국은 전쟁을 제도적으로 막는 장치인 평화협정을 계속 거절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의 요구인 불가침조약마저도 계속 거절하고 있으며 핵태세보고서(NPR), '악의 축', 부시독트린, 작전계획 5027-02 등에서 대북 핵선제공격을 명시하고 있다.
셋째, 평화를 말로만 주장하면서 오히려 한미․미일간의 군사훈련을 더 강화시키고 있다. 지난 3월 19일부터 대북한침공 실전연습훈련인 '연합전시증원연습'과 '독수리연습`의 통합훈련((RSOI+Foal Eagle)을 실시하고 최근에는 스트라이커부대의 첫 해외원정 실전훈련연습도 경기도 북부에서 시행되었고 현재는 을지 포커스훈련 중이다.
넷째, 다음에 확인하겠지만 이미 북한군사력은 남한의 군사력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이 없는 남한만의 군사력으로도 북한에 대한 전쟁억제력은 과잉수준이다(문화방송, 2003).
다섯째, 이미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고조되어 남북 간의 군사긴장은 저하되어 북한의 도발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최근 한반도 전쟁위협은 북한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이는 과학적 진실일 뿐 아니라 사실 국민일반의 여론조사에서도 반영된 사실이다. 지난 7월 24일 KBS 여론조사는 61%의 응답자들이 한반도의 전쟁 요인으로 미국의 선제공격을 택했다. 이런데도 우리는 ‘북한겨냥 미국의존 안보체제’에 매몰되어 연속적인 전쟁위기에 허우적거리고 있다(이철기, 2003).
이렇다면 한미군사동맹체제를 폐기시키고 우리와 민족의 생명권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서도 역시 우리가 추구하는 자주국방은 미국과 함께 하는 자주국방이 아니라 미국과 독립하는, 곧 군사자주권의 확보로서의 자주국방이 되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MD체제 참여, 주한미군 장기주둔, 주한미군의 동북아지역군 전환 지원, 남한군 전력증강, 국방비 증액, 미군기지 이전 비용 부담 등으로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편입 및 통합되는 정책을 추진하여 대미 예속국방 고착화로 나아가면서 이를 자주국방을 표방하고 있다.
3. 남북한 군사력의 실재
현존 대미의존 안보체제는 남한군이 북한군에 비해 열세이기 때문에 대북한 전쟁억제력을 위해서 주한미군이 필요하고 이들에 안보를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이 남한군열세론과 달리, 전쟁억제력은 남한군사력만으로도 충분하고 오히려 남한군사력이 북한군사력을 압도하는 과잉억제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몇 가지 논거로 밝히겠다.
한국은행 추계에 의하면, 97년 북한의 국민총생산(GNP)은 177억 달러이고 같은 해 남한의 군사비는 170억 달러였다. 또 99년의 북한총예산은 94억 달러에 불과하고 GNP 또한 겨우 160억 달러이다. 예산의 30%를 군사비로 쓴다 하더라도 북한군사비는 28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외국의 전문기관 등은 대략 13억~20억 달러로 보고 있으며, 2000년 국방백서요약은 북한이 자국의 군사비를 13.6억 달러로 밝히고 있다고 쓰고 있다. 이 백서는 “북한의 2000년도 군사비규모는 국가 총예산(95억 달러)의 14.5% 수준인 13.6억 달러로 발표하였으나, 실제 군사비는 총예산의 30%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되며, 실질구매력을 우리 군과 비교 시 무기체계와 운영유지비가 저렴하여 동일 규모의 군사비로 3배 이상의 전력 증강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부의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북한군사비는 28.5억 달러이고 무기체계와 운영비가 저렴하다는 것은 구식무기가 대부분이어서 북한이 현대전의 공대지 군사전략에 취약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스톡홀름의 평화연구소는 남한의 군사비를 151억 달러로 추정하고, 1995~99년 외국무기 구입비가 남한은 60억 달러인 데 비해 북한은 1.9억 달러에 불과하고, 2000년에는 남한은 북한 총군사비보다 많은 23억 달러를 외국무기 구입에 투입해 세계 3위의 무기수입국을 기록했다( pp. 414~15). 이같은 군사비 격차는 한두 해가 아니라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군사력의 열세는 쉽게 확인된다.
북한군사력 열세는 남한군부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 99년 육군본부가 만든 ‘정훈교재’에서는 “북한군이 국군을 두려워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동아일보} 1999. 4. 25). 첫째와 셋째만 들면, 북한군은 만성적 영양실조상태이며 체격도 매우 작다는 것이다. “국군은 평균신장 171㎝에 체중 66㎏, 북한군은 162㎝에 47~49㎏ 수준으로 이는 복싱 웰터급과 플라이급 선수의 차이에 해당한다.” 셋째, “북한군의 무기와 장비는 양적으로 국군보다 1.6배 많지만 육군무기의 40%, 해군함정의 70%, 공군전투기의 65%가 폐기처분 직전의 노후장비”라는 것이다.
또한 럼스펠드 미국방장관은 03년 3월 6일 국방부에서 군부 인사들과의 정례 회동에서 '우리는 여전히 많은 병력을 매우 앞쪽에 배치해두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규모는 북한의 25~35배에 이른다. 필요한 만큼의 억지력을 부담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갖고 있다'(<한겨레> 03.3.16)고 밝혔다. 또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Larry Liksch)는 지난 2000년 1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가진 대담에서, “지난 5년 간 북한은 재래식 전력이 상당히 약화되었으며, 남침할 수 있는 공격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상의 남한 육군의 분석에 의하더라도, 대북한 전쟁억제력은 주한미군이 없이 남한군사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북한은 오히려 남한의 군사력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실제 남한의 흡수통일기도를 두려워하면서 끊임없는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김영삼 정권 때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은 주한미군을 남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방패막이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Harrison, 2003, 28-31). 1996년 봄 당시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이종혁은, 북한은 평화유지에 대한 미국의 역할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일이 있으며, 또 조선민족문제연구회 회장인 박성덕 교수는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유지자로서 직접적이고 강력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종혁 부위원장의 말을 재확인했다.
이 분석에서 우리는 국방비 증액과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내용으로 하는 흡수형 자주국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비통제나 군축의 방향에서 자주형 자주국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는다. 국방비의 대폭증액과 한국군 전력증강은 오히려 북한과 동북아주변국에 군비경쟁을 야기하고 긴장을 조성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된다. 이 같은 동북아긴장조성은 참여정부의 최우선 국정좌표인 동북아중심국의 장기적 비전의 씨앗부터 잘라버리는 것임을 참여정부는 제대로 인식하고 자주국방이란 명분아래 국방비 증액을 기도하는 정책을 멈춰야 할 것이다. 곧, 흡수형과 예속형의 자주국방 추진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4. 주한미군과 한반도의 대리전쟁터 되기
앞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북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뿐 아니라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전쟁을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자기들의 전쟁에 한반도가 휘말려 그들의 대리전쟁터가 될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당시의 와인버거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이 북한보다는 소련을 겨냥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만약 중동에서 소련과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일본군․미군․한국군이 합동으로 북한을 침공하고, 이곳 한반도에서 소련에 대해 핵공격까지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이익을 위하여 한반도가 그들의 대리 핵전쟁터가 되어 민족이 공멸하게 될 이 무시무시한 발표에 대하여 반대시위 하나 제대로 못했던 게 지난날 우리의 현주소였다. 바로 주한미군 문제는 냉전성역으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그들의 전쟁에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주한미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리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기막힌 현실, 곧 미국의 대리전쟁터로서 우리의 생명권이 위협받는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주한미군의 존재와 한미연합사에 소속된 우리 국군의 군사편제 및 작전권의 미군장악에 의해 우리는 중국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끔찍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의 ‘비전 2020’ 보고서 등이 예측한 대로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게 되면 중국은 이제까지 공공연히 주장해 온 것처럼 통일을 위해 대만을 침공할 것이고 이 경우 미국과 일본이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이때 주한미군은 자동적으로 중국과의 전쟁에 돌입하고 한미연합사의 지휘를 받는 한국군 또한 저절로 중국과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한반도는 바로 미국의 최전방이 되어 중국공격의 최 전진 기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중국은 당연히 워싱턴이나 뉴욕을 공격하기 이전에 서울을 먼저 공격하는 대응을 할 것이다. 이 결과한반도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미전쟁의 불바다 한복판에 놓이게 될 것이다. 곧 한반도는 또 다시 제2의 청일전쟁과 같이 미국 때문에 한반도가 그들의 대리전쟁터가 되어 민족생명권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미 국방부가 2002년 초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 재검토(NPR) 비밀보고서”는 선제 핵 공격 대상국에 중국을 포함시키고, 핵 선제공격의 구체적 사례로 ‘북한의 남한공격’ ‘중국의 대만공격’을 상정하고 있다. 미국의 최우선 핵공격대상이 바로 한반도와 중국인바, 어느 경우든 한반도는 전쟁에 휘말리게 되어 있는 셈이다. 남과 북이 주한미군 때문에 자동적으로 미국 그들의 전쟁에 휘말리는 끔직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의 자주국방은 주한미군의 철수와 대미 군사예속에서 벗어나는 군사자주권 확보의 자주형 자주국방이 되어야 함은 너무나 명백하다.
5. 대안적 패러다임의 민족 평화보장 체제
이상의 논의에서 우리는 탈냉전 이후 이제까지 허구적인 안보체제 속에 살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미국주도에 의해 무려 여섯 번이나 전쟁위협을 겪는 안보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우리 개인 및 민족의 생명권을 진정으로 보장받고,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북한겨냥 미국의존 안보패러다임에서 아래 표에서 제시된 대안적 패러다임의 안보체제를 모색해야함을 말한다.
이는 허구적인 북한전쟁위협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전쟁위협으로 그 표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안보체제에서 미국과의 쌍무협정에 의존하던 것을 남북의존 및 동북아주변국과의 협력안보체제로 바꾸는 혁명적 발상전환을 요구한다. 곧,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북한주적 폐기, 주한미군철수, 한미상호방위조약폐기, 한미공조폐기와 한미우호관계수립, MD체제 미편입, 한반도비핵지대화, 동북아경제협력체, 민족공조, 남북평화선언, 남북군축, 평화협정, 동북아협력안보, 연합성연방 등에 의한 부분통일의 조기 실현 등이 대안적 안보체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자주국방 기조 역시 이 같은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의 바탕 위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군사자주권을 의미하는 자주형 자주국방과 현존한미군사동맹관계는 필연적으로 상호모순 관계이다. 군사동맹관계를 비군사적인 우호협력관계로 근원적인 재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참여정부의 최우선 국정좌표인 동북아중심국 구상과도 상치되지 않는 자주국방일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민족평화보장체제<생략>
V. 자주국방의 유형분류
이제까지의 탈냉전성역적 논의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참여정부의 자주국방이 주권국가로서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평화를 보장받는 진정한 자주국방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얼굴을 가진 자주국방이어야 하는지를 탐색해 왔다. 앞에서도 논의한 바와 같이 세 가지 기본 유형이 있다. 첫째는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과 전력증강을 통해 한국군의 대북억제력 확충이라는 흡수(통일)형, 둘째는 대미 군사예속체제에서 벗어나 군사자주권을 확보하는 자주형, 셋째는 한미동맹 강화-주한미군 영구주둔-미국의 신군사전략 편입과 통합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예속형이다. 이 가운데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얼굴은 너무나도 상식적인 수준에서나 앞의 깊은 논의에서나 당연히 자주형으로 귀결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게 한다.
그 조합은 아래의 표와 같이 나올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자주형, 예속형, 흡수형의 단독의 세 가지 기본형과 또 상호조합의 복합형이 나타날 수 있다. 자주형은 일반적으로 외세배격 자주지향의 평화․통일세력으로 남북공조와 연방제 등으로 점진적 통일을 주장하는 지향을 가진 합리적 보수나 합리적 진보진영이라고 볼 수 있다. 흡수형은 무력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불사하는 극단적인 수구세력이 주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합리적 보수는 민족의 파멸을 가져올 무력에 의한 통일을 배격하고 과거의 독재정권보다는 김영삼 이후의 민주정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뿐 아니라 중국에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되찾겠다는 등 배타적 민족주의나 민족지상주의도 이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예속형은 우리 사회의 주류 정치세력, 언론, 군부, 기독교 등에 포진해 있는 맹목적 숭미주의자들이다. 특히 지난 3.1절과 8.15광복절에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시위를 한 집단은 대부분 김영삼 이후의 민주정권보다는 전두환-박정희 군부독재를 찬양하고, 평화적 통일보다는 전쟁으로 북한을 흡수통일 하려는 수구반동적 흡수형과 이 맹목적 숭미주의가 결합된 예속적 흡수형으로 사대주의적 수구반동 세력이하고 볼 수 있다.
복합형을 살펴보겠다. 자주형과 흡수형이 결합한 자주적 흡수형은 민족주의적이면서 무력에 의해 흡수통일을 기도하는 극우민족주의자들이라 볼 수 있다. 다음 자주형과 예속형이 결합한 복합형으로서 예속적 자주형이다. 이 자주와 예속은 상호 배타적 관계로서 형용모순을 일으켜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친미를 내세우면서 자주도 가능하다고 보는 친미자주노선은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맹목적 숭미를 하면서 자주를 지향한다는 숭미자주형은 성립될 수 없지만 친미자주형은 성립 가능하다. 물론 여기서 친미는 친일파 개념의 ‘친’이 가지는 예속주의와 사대주의의 의미를 가지지 않고 ‘우호적인’ 정도의 의미를 가진 것을 전제로 한다.
자주국방 유형표<생략>
다음은 예속형과 흡수형이 결합한 예속흡수형으로서 수구반동적이면서 동시에 숭미사대주의자 세력이 이 유형에 속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출발시점부터 각 분야의 권력을 장악한 주류로서 반공-반북-숭미-사대-극우-폭력 지향세력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의 전형적인 보기가 바로 3.1절과 8.15광복절에 미국의 성조기를 나부끼면서 김정일 타도와 인공기 소각을 벌린 집단가운데 일부이다. 이러한 극단 세력이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주류로서 군림해 왔다. 지금도 이들은 한나라당의 다수 국회의원, 퇴역장성집단, 주류신문 내부의 핵심, 기독교 근본주의자,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파탄을 낸 북한인권옹호운동단체 등의 형태로 우리 사회의 반역사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흔히들 민족주의 공포증에 걸린 지성계에서 이들을 극우민족주의로 분류하지만 이들은 결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전형적인 반민족 수구냉전세력이다. 이 밖에도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세 기본형이 함께 조합된 오가 잡탕의 혼합유형도 있을 수 있다. 이제 참여정부의 자주국방 정책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유형으로 귀결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다음 장에서 시도해 보겠다.
VI. 자주국방의 전망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주국방의 전망은 주로 세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곧, 행위주체자의 의지수준, 구조적 제약, 구조적 추동이다. 이의 세 변인의 조합에 따라 앞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 유형가운데 어느 하나로 귀착될 것이다. 이 인과구조 연결고리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종속변수
: 자주국방의 일곱 유형=자주형, 흡수형, 예속형, 자주적 흡수형, 예속적 자주형, 예속적 흡수형, 잡탕형<표; 생략>
독립변수 1
: 행위주체자의 의지 유형 = 확고형, 기회주의형, 사이비형
독립변수2
: 구조적 제약(또는 추동) = 한미관계, 군부관료주의, 한국사회 주류, 미국의 동북아패권전략
독립변수 3
: 구조적 추동(또는 제약) = 평화통일지향의 민중사회, 남북관계, 동북아협력체
먼저 군사자주권 중심의 자주형 자주국방에 대한 행위주체의 의지를 살펴보자. 이 행위주체자의 의지는 구조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지도력을 감안한 의지가 될 것이다. 행위주체자의 핵심은 역시 대통령으로서 그의 의지를 가늠할 필요가 있다. 그의 의지는 가변적이긴 하지만 이제까지의 행위유형을 기반으로 추론할 수 있다.
후보 및 당선자 노무현은 군사자주권에 대한 의지가 매우 높아 당시로서는 ‘확고한 의지’였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당선자 자격으로 군부를 방문했을 때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비책이 무엇인지를 문의했던 사실에서도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의 자주권 의지는 한미정상회담에서 8.15경축사 이전 기간에 드러난 것과 같이 우리 사회의 주류처럼 ‘자발적 노예주의’ 상태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이 기간 대통령의 행위에 입각해서 추론한 의지는 ‘사이비 의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축사가 담고 있는 동북아시대 구상, 치욕의 역사 청산, 변방탈피, 평화체제 지향 등에 대한 애착으로 보아 종합적으로 추론해본다면 완전한 사이비도 또 확고함도 아닌 ‘기회주의적’ 의지일 것이라고 판단된다.
구조적 제약은 한미관계, 군부관료주의, 자발적 노예주의 지향의 한국사회 주류, 미국의 동북아패권전략 등에서 오는 것이다. 또 구조적 추동은 평화통일지향의 민중사회역량, 남북관계, 동북아협력체 등에서 온다. 최종 구조의 양태는 이들 여러 작은 구조에서 오는 군사자주권에 대한 제약이나 추동의 총합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구조적 제약과 추동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은 질적인 측정이 되겠지만 초강력, 약 강력, 보통, 미약(微弱), 초약(超弱) 등으로 분류하여 지표화 하면 대략의 윤곽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군사자주권에 대한 의지유형, 구조적 제약 요인, 구조적 추동 요인의 여러 갈래 조합의 형태에 따라 종속변수인 자주국방 유형 일곱 가지 가운데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이들 조합의 수는 너무 많아 일일이 제시하기 힘들다. 이보다는 종속변수의 특정유형이 구현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조합유형을 먼저 도출해 보고 참여정부의 현재 조건이 어느 조합의 유형에 가까운가를 검토 및 선택하여 전망을 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첫째, 진정한 자주국방이라 할 수 있는 자주형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확고한 의지-구조적 제약의 미약 또는 초약-구조적 추동력의 초강, 약강, 보통'이라는 조합에서 가능할 것이다.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 의지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기회주의형 의지이다. 그러므로 자주형 자주국방이 되기 위해서는 구조적 제약이 미약 또는 초약의 구도를 띠어야 하고 반면 구조적 추동력은 초 강력의 구도를 띠어야 할 것이다.
구조적 제약의 측면을 보자. 한미관계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자주성을 상실한 전형적인 종속관계이며 이것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이로부터 오는 구조적 제약은 초강력 유형을 띨 것이다. 한국군부는 한미연합방위체제 등으로 미국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가진 조직이기에 이 역시 자주형에 초강력의 구조적 제약을 나타낼 것이고, 한국사회의 주류 역시 자발적 노예주의에 빠져 있고, 미국의 동북아패권전략은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재구조화, 한국군의 역할분담에 의한 이 체제의 편입 등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총체적인 구조적 제약은 초강력형을 띨 것이다. 민중사회역량, 남북관계, 동북아협력체 등에서 오는 총체적인 구조적 추동력은 보통이나 약강 정도로 판단된다.
곧 ‘기회주의적 의지--구조적 제약의 초강력--구조적 추동의 약강’이라는 조합에서는 군사자주권을 핵으로 하는 자주국방의 자주유형은 구현되기 힘든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이상적이면서 진정한 자주국방인 자주형은 노무현 대통령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그 구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둘째, 대북억제력 확충 중심의 흡수형 자주국방이 되기 위해서는 ‘확고 또는 기회주의적 의지--구조적 제약의 약화--구조적 추동의 강력’이거나 이와 유사한 조합일 것이다. 대북억제력 확충 중심의 자주국방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형이다. 독자적인 작전수행능력을 위해서 국방비와 전력증강을 꾀하여 대북한억제력과 대 동북아주변국억제력(암시적) 제고를 후보 당시부터 주장해 왔다. 여기에다 한미관계, 군부, 한국사회 주류, 미국의 동북아패권전략 등은 흡수형에 대한 강력한 구조적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반면에 민중사회, 남북관계, 동북아협력체 등은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하나 그 강도는 보통이거나 미약한 정도이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자주국방은 흡수형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대미군사예속 지향의 예속형 자주국방이 되기 위해서는 ‘확고․기회주의․예속’ 의지 가운데 어느 것이든 가능하다. 왜냐면 예속형에 대한 구조적 추동은 한미관계, 군부관료주의, 자발적 노예주의 지향의 한국사회 주류, 미국의 동북아패권전략 등에서 초강력 형태로 나타날 것이고 평화통일지향의 민중사회역량, 남북관계, 동북아협력체 등에서 오는 구조적 제약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빈약한 지도력으로 예속적인 한미관계, 한미연합방위체제 등의 과정에서 심화된 대미 예속적인 군부관료주의, 자발적 노예주의 속성의 한국사회 주류 등에서 오는 예속형에 대한 구조적 추동을 대통령이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각 자주국방 유형의 구현 가능성에 대한 전망을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자주국방 유형은 흡수형이다. 흡수형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고 이에 대한 구조적 제약은 시민․민중사회의 평화세력, 남북관계, 동북아협력체 등에서 오겠지만 그 정도는 높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군부, 미국의 군산복합체, 미국의 신군사전략 등에서 오는 구조적 추동력은 강력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음으로 가능성이 높은 것은 예속형이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기회주의적이라 볼 수 있지만 한미관계 등에서 오는 구조적 추동력은 초강력 상태이고 구조적 제약은 보통의 상태이기 때문에 예속형 가능성은 매우 높다. 대조적으로 자주형은 전혀 기대하기 힘든다.
결론적으로 자주국방의 전망은 흡수형과 예속형이 결합되어 예속적 흡수형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예속적 흡수형은 미국이라는 외세와 야합하여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위한 통일전쟁 기도로 나타날 것이다. 이 결과 당면 핵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한반도에는 국방보좌관 김희상이 역설한 것처럼 통일전쟁으로 민족적 참화를 입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동시에 동북아군비경쟁을 촉발시키고 동북아신냉전을 촉진시켜 동북아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참여정부가 구상하는 동북아중심국정책은 아예 씨앗도 피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VI. 맺음말
8.15경축사에서 자주국방에 대한 노 대통령의 속뜻이나 의지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결과는 '예속적-흡수형 자주국방'으로 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바로 신라가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것과 같은 반평화-반민족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 예속적 흡수형 자주국방 이행은 남한 단독으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쟁의존 지배적 패권주의(domination oriented hegemony), 동북아신냉전전략, 이를 위한 신군사전략 등과 면밀히 결합되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결과 이 예속적-흡수형 자주국방 구도가 자리잡게 되면 남한 내부의 역량으로 쉽게 이 구도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단계에서 이 구도가 굳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민중시민운동 진영의 과제이다. 그래야만 탈냉전과 통일시대를 맞은 시대적-민족사적 변화에 부응하는 평화통일의 역사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당면과제 중의 하나는 국방비 증액을 막는 일일 것이다. 한국은 IMF 경제위기 당시와 못지 않게 불황에 허덕이고 있고, 이를 반영하듯 2004년의 국가예산을 초 긴축 예산으로 편성하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국방부는 무려 4조 9231억원(28.3%)이 늘어난 22조 3495억 원으로(GDP 대비 3.2%)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다. 이 뿐 아니라 이후 20년 사이 자주국방이란 빌미로 무려 209조원을 전력증강비로 계상하고 있다. 국방비의 30-35%정도가 전력증강비임을 감안하면 전체 국방비는 20년 사이 630조원 가량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국방부의 국방비 증액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는 통계를 철저하게 자의적으로 이용하여 너무나 터무니없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통계와 숫자를 자의적으로 이용하면 그것은 음폐나 왜곡과 거짓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국방부의 국방비 증액 요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이철기, 정욱식, 평통사 등 여러 곳에서 지적된 것이지만 경각심을 고취하는 의미에서 이를 부가하도록 하겠다.
국방부는 우리 국방비가 GDP 대비 2.7%에 불과해 3.5%인 세계평균과 6.3%인 분쟁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국방부 부담율은 세계 68위(2001년)라고 주장한다. 또 국민1인당 국방비 부담률은 252불로 세계30위라고 주장한다. 이 통계의 자의성 문제를 거론하겠다.
첫째, 국방비의 세계평균으로 3.5%을 인용하고 있지만, 이는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서 낸 수치에 불과하고 스웨덴의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5%를 평균으로 보고 있다. 후자의 평균에 비해 한국국방비가 높다는 사실은 음폐 된다.
둘째, 동국대학교 이철기 교수는 지난해 국방비 17조 4264억원(GDP의 2.7%)은 “국방부의 일반회계예산만이다. 여기에 특별회계예산과 전투․해양 경찰비, 병무행정비 등이 추가돼야 한다. 무기장비의 연구개발비도 상당 부분 누락돼 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식으로 계산할 경우 국방비는 훨씬 늘어난다. NATO 방식에 따른 국방비 산출에는 세관원을 포함해 전시에 무장해 군의 지휘 아래 작전이 가능한 모든 무장력에 소요되는 지출이 포함된다. NATO 방식으로 계산할 경우, 우리는 이미 GDP 대비 3%를 훨씬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실제 2002년 정부예산안의 방위비 항목에는 16조3640억원의 국방비 외에 7420억원이, 2003년에는 17조4264억원의 국방비 외에 7774억원이 기타 방위비로 잡혀 있다.
셋째, 북한의 군사비 절대액과 남한 군사비 절대액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2000년 국방백서요약은 북한 군사비를 13.6억 달러로 발표하나 “실제 군사비는 총예산의 30%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어 북한군사비를 28.5억 달러로 보고 있다. 이는 스톡홀름의 평화연구소 추계 99년의 남한 군사비 151억 달러가 북한 자체 발표 액 13.6억보다 무려 11배, 남한 국방부추계보다 약 5.2배 많아 남한 국방비의 대북억제력 과잉이 여실함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한국은행이 추계한 97년 북한의 국민총생산 177억 달러와 남한 군사비 170억 달러가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는 사실, 1995˜99년 외국무기 구입비--남한 60억 달러 대 북한 1.9억으로 무려 30배가 난다는 사실, 2000년 국민총소득(GNI)이 4,552억 달러 대 168 억 달러로 27: 1 의 남북격차를 보인 점 등 남한군 절대 우세론을 뒷받침할 자료는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넷째, 경제규모에 비해 우리의 국방비가 낮은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정욱식이 밝힌 것처럼 경제규모가 커지면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이 작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의 국방비가 GDP 대비 2.7%라고 낮다고 하지만 절대 액은 150억달러로 세계 10위권에 해당되며 한국 경제규모 12위를 능가하는 것으로 한국이 군사비 과잉 지출국임을 말한다.
다섯째, 주요 분쟁국의 GDP 대비 6.3%에 비해 한국의 2.7%는 낮은 수준이라지만, 분쟁국인 이스라엘, 대만, 파키스탄은 우리보다 훨씬 '국방의 자주성'이 높은 나라들이고 대치하고 있는 상대국가들이 한국의 대치상대인 북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하여 높은 비율이 요구되는 차이점을 무시한다. 또 절대액수를 보면 한국이 이스라엘과 대만보다 약 40억 달러, 파키스탄보다 약 100억 달러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되지 않는 대비이다.
이상 몇 가지에 국한하여 통계의 자의성을 지적했다. 이 밖에도 국방비 증액은 미국과 합작한 대북 고사작전의 일환으로 작동할 가능성, 남북 간의 군비경쟁과 긴장고조, 동북아 군비경쟁과 긴장고조, 국내의 사회보장제도 제약, 미국의 군산복합체 무더기 퍼주기, 군부의 비대화, 대미예속의 군사체제 심화, 미국의 MD체제 편입, 동북아협력체 추진의 장애, 공세적 민족주의 추동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자주국방이라는 대통령의 정책의지가 나온 절호의 기회를 악용해 조직이기주의를 도모하고 더 나아가 흡수통일까지 염두에 둔 장기 기획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아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자주국방을 쟁점화 해 국방부가 민족사의 흐름에 순응하고 진보적인 역사에 순응할 수 있도록 자기성찰을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할 필요가 있다. 응당 민중시민사회는 이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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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이다.
* 이 글은, {국회 21세기 동북아 평화포럼}이 9월 3일에 개최한 정책 세미나 ‘자주국방과 2004년도 국방예산’에서 필자가 발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