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새로운 해석학의 탄생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새로운 해석학의 탄생
김상환 서울대교수 철학과
20세기 후반기의 문화적 현실과 그 배후의 사상사적 변동은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 탈근대적 인문학, 근대인이 이해하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인문학을 말할 수 있는가? 권리상 그런 가능성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원에서 이미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문학은 인간 개념과 상호 규정적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인간관은 시대마다 차이가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인문학이 논리적 연역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문헌 해석의 기술과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해석의 개념 또한 역사적으로 변해 왔다.(이점은 아래의 논의에서 다시 강조될 것이다.) 따라서 계몽기의 인문학이 새로운 패러다임 교체와 더불어 과거화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런 권리적 차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사실적 차원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과연 탈근대적 인문학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가? 만일 존재한다면 그것은 언제,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사상사의 흐름을 생각할 때, 아마 니체, 프로이트, 맑스가 그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가? 그들 이후 인문학은, 특히 철학은 실제로 어떤 변화를 겪는가? 이 글은 이런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를 지나면서 근대적 인문학의 기초가 붕괴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인식론적 전제가 자리잡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내용이다.
사상사에는 어떤 근본적 변화, 전회가 일어나는 지점이 있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데카르트 등이 그런 지점에 해당한다. 플라톤은 개념적 실재성의 발견과 이론적 사유의 등장을 표시한다. 논증하는 사유, 계산하는 사유는 플라톤 이후의 서양 사상사를 주도해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식에 대한 신앙의 우위를 대변한다. 이론적 논증을 초과하는 무한자에 대한 체험은 중세 사상의 건축에서 첨탑을 이룬다. 데카르트는 근대적 주체, 자율적 내면성의 등장을 가리킨다. 지식 체계 전체의 토대를 자아의 내부에서 발견한다는 근대적 관념론의 기획은 데카르트 이후 헤겔에 이르러 완성된다.
철학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헤겔 이후의 사상사적 지형도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이다. 20세기의 유럽 사상사는 이들이 일으킨 지각 변동, 그 융기 지반의 경사면에서 펼쳐졌다. 현대의 인문적 전통을 이루는 다양한 사조들, 주류, 지류, 하천들은 많은 경우 그 세 봉우리의 계곡으로부터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 봉우리가 현대 사상사에 대한 지형학적 탐구에서 일차적 측량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측량은 아직 불완전하게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이 봉우리들이 사화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산들은 아직 활동을 멈추지 않은 활화산이다. 거기서는 아직도 단층 운동이 계속되고 있고, 이미 몇 겹으로 굳어진 용암 위로 무엇인가가 계속 분출되고 있다. 그 활화산 근처의 지각 충돌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현대 사상사의 지형을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사상사적 동요에 대하여, 그 동요의 진원지에 대하여,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에 있는 이 동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과 같다. 최근에 이런 동요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표출된 바 있다. 이 사조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서 시작된 지각 변동이 아직도 안정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에서부터 무엇을 관찰하고 탐색해야 하는가? 선택을 하여야 한다면, 여기서는 해석의 개념을 위주로 하겠다. 해석의 개념은 인간의 개념과 더불어 인문적 사유의 본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탈근대적 인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 그것은 탈근대적 인간관의 가능성 여부 못지 않게 탈근대적 해석학의 가능성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탈근대적 인문학의 인식론적 기초를 묻는 우리의 물음은 이렇게 정식화될 수 있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해석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1. 신낭만주의 시대?
탈근대적 시각에서 모더니즘의 인식론적 토대는 종종 로고스중심주의, 이론중심주의로서 약칭된다. 이 이론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모든 형태의 중심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이론적 사유의 본성이 중심을 설정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중심, 토대, 기원, 이념 등 닫혀진 체계를 낳거나 목적론적 시간관을 부추기는 모든 원리는 이론중심주의적 진리다. 이 진리는 체계 구성의 의도와 분리할 수 없으며, 따라서 범위에 대한 투쟁을 함축한다. 모든 건축에의 의지에 수반되는 규모의 욕구에서부터 생각할 때, 이론중심주의란 이론적 진리의 관점에서 예술적 가치와 실천적 가치를 해석하는 일반적 경향을 말한다. 전통적 의미의 예술 철학, 실천 철학은 이런 이론중심주의가 표현되는 중요한 사례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론적 개념과 논증을 통하여 예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을 정의하고 평가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진리의 보편적 지배력을 과시해왔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전후에 목격되는 이론중심주의의 동요는 두 가지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중심 일반의 인식론적 가능성이 부정되는 과정인 동시에 비인식론적 가치에 대한 인식론적 가치의 우월성이 박탈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론적 가치로서의 진(眞), 실천적 가치로서의 선(善), 예술적 가치로서의 미(美) 사이에 잠재하던 갈등적 관계가 표면화되고 있다. 그동안 3자간에 유지되어 왔던 통합적 질서가 깨지면서 그것들 사이에 헤게모니 투쟁이 재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치들 간의 전쟁은 철학의 변형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철학적 탐구의 전략과 목표는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말해주는 사례는 많다. 가령 우리는 아도르노나 리오따르 등에게서 예술적 합리성의 환원 불가능한 특질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이론적 합리성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합리성을 모색하는 예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예에서 볼 때, 이론적인 것은 예술적인 것을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적인 것이 이론적인 것을 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전은 레비나스나 푸꼬에게서 다른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들은 권력 관계와 실천적 정의의 관점에서 이론중심주의적 사상사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그 법정은 이론적 사유에 대한 실천적 사유의 우위를 천명하는 장소가 된다. 이 시대의 사상사적 동요, 그리고 그것이 유도하는 철학의 변형은 이론·실천·예술 사이의 갈등, 혹은 그것들이 각기 추구하는 진·선·미 사이의 불화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이 시대의 동요를 진·선·미 사이의 불화에서부터 파악하자면, 우리는 일차적으로 헤겔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선·미의 근대적 일치를 상징하는 헤겔은 이 불일치의 시대를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확고부동한 준거점이기 때문이다. 그 준거점으로서의 자격은 철학사와 역사적 현실 전체를 목적론적 회상의 형식 속에 회집하는 백과사전적 종합의 능력에서부터 온다. 그 회상 안에서 철학의 안과 밖, 이론과 비이론, 진리와 오류, 심층과 표면 사이의 경계는 소멸한다. 바깥, 표면, 비진리, 반정립, 회의, 모순과 대립은 이론적 진리의 자기 동일성을 구체화하는 계기, 그 자기 동일성을 확대 재생산하는 매개의 계기로서 내면화된다.
그러므로 헤겔 이후에도 새로운 철학은 가능한가? 이것은 원래 맑스를 포함한 청년 헤겔주의자들의 물음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맑스의 사상은 이 물음 속에서 발아했다. 그러나 맑스뿐 아니라 니체, 프로이트의 현대성 또한 이 물음 속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의 역사적 의미는 헤겔적 사유의 지반에 맞서는 새로운 융기 지각을 형성한다는 데 있다. 사상사적 의미의 현대성이 이 융기의 역동성 안에서 펼쳐져 왔다면, 청년 헤겔주의자들이 던진 물음은 아직도 유효하다. 어쩌면 이 시대에 철학을 한다는 것은 헤겔주의자가 되거나 반헤겔주의자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지 모른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의 사상사적 중요성은 우리를 그런 선택의 기로, 모험, 도박에 빠뜨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0세기말 서양의 지적 상황은 헤겔 전후의 시대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헤겔 전후의 시대는 낭만주의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고유한 역동성은 낭만주의의 도전에서부터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 이래의 여러 예술 사조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계몽주의적 문화 전략 일반에 대한 전복의 계획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철학을 비롯한 모든 이론적 학문의 권위에 대한 혁명적 봉기였다는 점에서 낭만주의는 다른 예술 사조와 분명하게 구분된다. 낭만주의는 다른 종류의 가치에 대한 예술적 가치의 지고성을 선언하였다. 이 선언이 갖는 의미는 그 내용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이 제기하는 물음에 있을 것이다. 그 물음은 이렇게 정식화해 볼 수 있다. 역사적 현실 전체에 규칙을 제공하는 최고의 입법적 권위는 누구에게, 어떤 가치에 귀속되어야 하는가? 역사적 현실의 문화적 통합은 무엇을 구심점으로 해야 하는가?
낭만주의는 그것을 예술적 가치에서 찾았다. 예술적 가치의 섭정 아래서 이론적 사유와 실천적 사유가 변형되기를 요구하였고, 그것을 중심으로 진·선·미 사이의 새로운 통합을 구상하였다. 낭만주의가 다른 예술 사조에 대해서 갖는 특권적 지위는 여기에 있다. 낭만주의는 예술이 역사를 조형하는 최고의 전략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표현한다. 낭만주의를 통하여 예술은 자신이 대결해야 할 적대자가 이론중심적 사유로서의 철학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런 낭만주의적 인식은 물론 예술적 가치의 환원 불가능한 고유성, 통약 불가능한 특질의 발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 진리의 정치성에 대한 깨달음을 전제로 한다. 낭만주의적 물음 속에서 예감된 최후의 사태는 진리, 가치의 정치성이다. 그 물음은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진·선·미 사이의 원초적 갈등, 그 정치적 투쟁 관계가 대대적으로 표출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낭만주의적 물음은 일차적으로 17세기 이래 서양 사상사를 지배해 온 과학적 합리성의 주도적 권위에 대한 반동에서 시작한다. 이 반동은 계몽의 계획과 대비되는 또 다른 문화, 또 다른 교양, 또 다른 역사의 계획을 수반하고 있다. 20세기 후반기가 헤겔의 전후, 낭만주의 시기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상황임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두 시기는 이론적 합리성의 역사적 주도권이 위기에 봉착한 혼돈기, 반정립의 시대, 질풍노도의 시대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우리는 낭만주의 시대처럼 진리들 간의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 가치들 간의 새로운 종합과 일치를 기다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세기 후반기에 낭만주의적 물음을 다시 제기하는 사조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 사조는 이론중심주의적 사상사의 전통에 재도전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적 반동을 반복하고 있다. 이 새로운 반동은 여전히 철학의 변형과 극복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의 철학은 무엇보다 헤겔적 형태의 철학이다. 무한자의 역사를 통하여 낭만주의적 반동을 철학의 체계 안으로 편입시켰던 헤겔이 극복되는 한에서 낭만주의적 물음이 재개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기초가 구조주의 전후의 프랑스 철학이라면, 실제로 우리는 구조주의 이후의 주요 철학자들이 반헤겔주의를 표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들뢰즈가 가장 두드러진 사례가 되겠지만, 알뛰세르·데리다·푸꼬·리오따르 등에게서도 반헤겔주의적 경향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낭만주의적 동요를 잠재웠던 헤겔, 진리들 간의 전쟁을 다시 이론적 이성의 섭정 아래 평정했던 헤겔이 이 프랑스 저자들이 의도적으로 끌어들인 준거점이다. 그들에게 헤겔은 극복의 과제를 표시하는 가장 중요한 눈금이다. 그 과제는 청년 헤겔주의자들의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다. 헤겔 이후에 새로운 철학은 가능한가?
물론 구조주의 이후의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그것은 가능하다. 그들에게 이런 낙관적 신념을 가져다 준 것은 다름 아닌 니체, 프로이트, 맑스의 재발견이다. 이 재발견은 구조주의 시대인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50년대의 프랑스 실존주의 운동이 헤겔·후설·하이데거라는 소위 3H를 대부로 하고 있다면, 구조주의 시대는 새로운 3인방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이 니체, 프로이트, 맑스이다. 가령 라깡은 프로이트로, 알뛰세르는 맑스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우리는 푸꼬, 들뢰즈, 데리다에게서 니체로의 복귀가 선언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60년대 이후의 프랑스 철학을 신니체주의, 신프로이트주의, 신맑스주의 등으로 분류한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 복귀는 단순한 회귀나 복구가 아니다. 그것은 보충하고 변형하는 반복이다. 그리고 이 보충과 변형은 구조주의의 토대인 소쉬르의 기호학 없이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소쉬르의 기호학은 60년대의 인문학에 대하여 방법론적 모델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다. 이 새로운 언어관의 혁신성은 기표와 기의가 어떤 재현·지시 관계에 있다는 통념을 깨뜨렸다는 점에 있다. 소쉬르에 따르면, 기의는 기표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는다. 기표는 기의를 대신하는 도구적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기의는 기표들 간의 역동적 차이 관계에서 비롯되는 침전물이다. 1960년대의 프랑스 철학은 많은 경우 이 새로운 언어관에 담긴 인식론적 함축을 과격화하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소위 '초월적 기의'의 종언은 그런 과격화의 귀결이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로의 복귀는 기호학의 전제에 대한 이런 과격화와 궤를 같이 한다. 이런 과격화의 끝은 무엇인가? 데리다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기원과 중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이 인식에 담긴 내용은 종종 투박하게 '중심의 몰락'으로 번역되었다. 이 중심의 몰락은 인류학을 통하여 가장 명시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유럽인의 백인 중심적 문화 이해, 서양 중심적 문화 이해를 비판하여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 인류학 차원의 탈서양중심주의는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상사적 변동의 한 징후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것이 데리다의 주장이다. 철학, 과학, 정치, 경제, 테크놀러지 등의 분야에서 이미 '탈중심화'(d?centrement)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레비스트로스에 의해서 표명된 자민족중심주의의 폐기는 이런 일반적 규모의 탈중심화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중심화, 특히 이론적 차원의 탈중심화란 무엇인가? 데리다에 따르면, 이는 "중심은 현전적 존재자의 형식 안에서 생각될 수 없다는 것, 중심은 자연적 장소를 갖지 않으리라는 것, 중심은 어떤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어떤 기능이라는 것, 그 안에서는 무한한 대체의 유희가 일어나는 일종의 비장소라는 것"에서부터 설명되어야 한다. 탈중심화는 중심의 단순한 소멸이나 파괴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중심 혹은 기원이 동일률 같은 논리학의 기본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나아가서 현전의 형식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중심은 존재하되 모순률을 모른다. 기원은 있되 현전성을 이루지 않는다. 역설적인 방식으로,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중심은 실체가 아니며 고정된 장소가 없다.
따라서 그것은 분석이나 해석이 멈출 수 있는 정지와 휴식의 지점이 아니다. 다만 자기 안에 무한한 대체의 유희를 유발하는 기능, 사건일 뿐이다. 이것은 중심이 전미래(미래 완료)의 시제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기원은 과거 완료, 단순 과거의 시제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중심의 시간성은 현재형의 시제도 미래형의 시제도 아니다. 그것은 지연되고 결핍을 겪는 시제, 현전과 부재가 공존하는 시제이다. 기원으로서 표상되고 고정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른 것의 대체이자 효과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미 기원이되 아직 기원이 아니다. 기원은 이 '이미'와 '아직' 사이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데리다는 이런 탈중심적 사유가 시작되는 지점으로서 현전적 존재 이해에 대한 니체와 하이데거의 비판, 자기 의식적 주체의 현전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비판을 꼽는다. 25년 후에 데리다는 이 탈현전적 사태를 유령성(spectralit?)의 사태, 유령 출몰(hantise)의 사태로서 서술한다. 해체론적 존재 이해, 그것은 이제 유령학(spectrologie)으로 표현되고, 이 유령학의 출발점은 맑스이다. 따라서 3인방의 이름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는 '맑스, 프로이트, 하이데거'로 바뀐다. "이 유령 출몰이라는 커다란 문제군은 우리의 문제군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확실한 테두리를 지니지 않지만 맑스, 프로이트, 하이데거, 즉 맑스를 오해한 프로이트, 프로이트를 오해한 하이데거라는 고유 명사들 아래 눈을 깜박거리면서 반짝이고 있다."
탈중심화는 중심 속에서 일어나는 대체의 유희, 현전과 부재 사이의 유희, 따라서 탈현전적이고 탈모순률적 사태를 말한다. 그것이 유령적 사태로서 지칭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유령적 사태로서의 이 탈중심화는 어떤 한계적 사태이다. 여기서 모든 논리적, 체계적, 구조적, 현전적 질서를 기초짓는 이항 대립과 그것에 기초한 변증법적 매개가 불가능해진다. "만일 유령성과 같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현전적 존재자를 보장하는 이 질서를 의심할 근거가 생기며, 특히 현전성, 현전적 존재자의 현실적 혹은 현재적 실재성과 그것에 대립시킬 수 있는 모든 것, 즉 부재·비현전·비사실성·비현실성·잠재성 혹은 시뮬라크르 일반 등 사이의 경계를 의심할 근거가 생긴다. 무엇보다 현재의 자기 동일성, 동시적 자기 현재성(contemporan?it? ? soi du pr?sent)을 의심해야만 하는 것이다. (…) '유령성의 효과'가 현실적 현전성과 그것의 타자 사이의 이 대립을, 다시 말해서 이 변증법을 좌절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닌지 물어야 할 것이다."
중심, 기원 속에서 일어나는 탈중심화와 유령적 효과는 헤겔적 변증법을 무력하게 만든다. 헤겔 이후에도 새로운 철학은 가능한가? 이제 이 물음은 과거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물음이 의도하는 헤겔의 극복은 탈현전적이고 탈모순률적 중심, 유령적 성격의 기원에 대한 발견에 힘입고 있다. 이 시대의 최고의 철학적 과제는 이 난해한 중심과 기원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 해석은 기존의 철학의 개념, 해석의 개념 자체에 대하여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것이 데리다가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의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러한 데리다의 시각은 현대 프랑스 사상사의 중요한 일면인 반헤겔주의를 구체적으로 대변하는 한 가지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헤겔의 극복이 중심과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기초한다면, 이것은 동시에 낭만주의적 향수, 낭만주의적 동경, 과거 완료 시제의 기원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가 낭만주의적 물음이 반복되는 시대, 신낭만주의 시대라는 정식은 조심스럽게 수용되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이 거셌던 이 시대가 낭만주의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예술지상주의가 낭만주의 이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과거, 실낙원 이전의 유토피아, 문명화 이전의 순수에 대한 동경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은 낭만주의적 물음 속에 예감되고 있던 사태, 즉 진·선·미 사이의 원초적 투쟁 관계가 표면화되는 사건이다. 가치들 사이의 이 선험적 갈등, 그리고 낭만주의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표출되었던 그 갈등은 이후 헤겔의 극복을 조건으로 현대적 형태의 갈등으로 역사화할 수 있었다. 헤겔이 건축했던 피라미드, 낭만주의를 묻어버린 그 거대한 무덤 속에서 박제화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진·선·미 사이의 역동적 투쟁 관계이다. 이 시대는 이 세 가치들 사이에 재개된 헤게모니 투쟁 속에서 철학의 변형이 예감되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적이다.
2. 기호의 해석에서 해석의 해석으로
니체, 프로이트, 맑스를 한데 묶어 거론한 것은 리꾀르가 처음일 것이다. 그는 이들을 '의심의 세 대가'로 불렀고, 이들의 회의주의를 데카르트적 회의에 비교하였다. 데카르트적 회의 안에서 의심되는 것은 의식에 대한 사물의 존재 여부이다. 사물은 의식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 의식 바깥에 존재하는 것일까? 의심은 그렇게 요약된다. 그러나 그 물음은 의식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의 존재와 그 내용은 그 물음 안에서 회의할 수 없는 것으로 천명된다. 하지만 의식은 의식에 나타나는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의심, 자기 의식의 불확실성과 기만성을 묻는 이 물음에서 니체, 프로이트, 맑스가 함께 모인다. 이들과 더불어 철학은 의식 외적 사물에 대한 회의에서부터 의식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행할 수 있었다.
이 이행은 탈근대적 코기토, 탈근대적 인간학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의 회의 속에서 의식은 허위 의식, 가짜의 코기토로 전락한다. 의식은 이제부터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코기토, 자기 안에 균열을 겪고 있는 코기토이다. 따라서 의식과 의미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의식에 직접적으로 현전하는 것은 아직 참된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는 의식에 대하여 왜곡되어 있거나 은폐되어 있다. 의식은 구조적으로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따라서 의미에 대한 분석은 이 오해의 구조를 해부하는 것에서부터, 그리고 그 오해의 구조 안에서 의미가 왜곡되는 과정을 시야에 둘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이런 논평에 이어서 리꾀르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를 해석학의 역사 안에서 평가하고자 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이들에게서 의미는 의식에 직접적으로 현전하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변조된 형태로만 출현한다. 따라서 해석학적 의미의 해석이 의미 파악의 방식 자체일 수밖에 없다. 둘째, 이 세 대가에게서 해석 그 자체가 위기에 빠진다. 리꾀르에 따르면, 해석학은 원래 다의적 의미를 존중하고 보존한다는 점에서 수사학과 가까운 반면, 일의적 의미만을 인정하는 논리학과 대척 관계에 있다. 그런데 해석학은 논리학이라는 외부의 적에 의해서라기보다 내적 분열과 갈등을 통해서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 위기를 초래한 것이 의심의 세 대가들이다.
리꾀르는 위기에 처한 해석학의 내적 갈등을 '성스러운 것'을 중심으로 접근한다. 왜 성스러운 것인가? 이는 그것이 해석학의 기원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해석학은 성서의 해석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거기서 해석의 궁극적 대상은 성스러움이다. 이 성스러움은 논리적으로 파악될 수 없는 상징적 의미, 다의적 의미에 대한 탁월한 사례이다. 이 점을 생각할 때, 해석학은 신성(神性)의 해석에서 시작하고 신성의 복원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반면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게서 해석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탈신성화와 탈신비화로 향하는 것이다. "결국 니체적 의미의 도덕 계보학, 맑스적 의미의 이데올로기론, 프로이트적 의미의 이상과 환영에 대한 이론은 탈신비화로 수렴되는 세 가지 절차를 대변한다."
사실 우리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게서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성이 문화의 탈주술화 혹은 세속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이들은 그 탈주술화의 마지막 국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그들은 근대성의 완성자이다. 그러나 이들은 근대성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완성자, 서양의 역사를 신적 무한자(정신)의 역사로 서술하는 헤겔과 맞서 있다. 헤겔에게서 신적인 것의 부정은 신적인 것의 역사적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잠정적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리꾀르 또한 이런 헤겔적 영감에서 해석학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성스러운 것을 복구하는 해석학과 그것을 파괴하는 해석학 사이의 갈등을 보다 포괄적인 형태의 해석학이 탄생하기 위한 조건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리꾀르가 예감하는 그 탄생의 과정은 여전히 변증법적이고 목적론적이다. 변증법적 반성 안에서 매개되고 지양될 수 있는 한에서 두 가지 해석학 사이의 갈등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아닌가? 양자가 동전의 양면처럼 단일한 전체를 구성하는 계기로서 통합되는 기회, 위기를 통해서 완성되는 기회, 궁극의 것에 이르는 기회아닌가? 이것이 리꾀르의 생각이다.
리꾀르의 이런 목적론적 해석학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헤겔 혹은 변증법에 관한 것이다. 리꾀르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가 철학사 안에서 일으키는 단절을 인정하지만 헤겔적 사유에 대한 그 단절을 다시 헤겔적 반성의 형식 안에서 지양한다. 우리는 여기서 헤겔을 극복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변증법은 과연 극복 가능한가? 변증법적 매개의 바깥을 설정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변증법은 모든 부정을 긍정으로, 파괴를 구성으로, 소비를 생산으로, 단절을 연속성으로, 바깥을 안으로 변형시키는 노동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60년대의 프랑스 철학은 이 불멸의 사유 형식처럼 보이는 변증법적 매개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 도전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첫째, 동일자 안으로 재편입되지 않는 차이, 긍정으로 전환되지 않는 부정성을 발견할 것. 둘째, 헤겔적 지양을 정립적 내용을 갖지 않는 지점, 비정립적 정립으로 향하도록 할 것. 독일에서는 아도르노가 이런 두 가지 방향에서 변증법적 총체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프랑스에서는 레비나스, 푸꼬, 알뛰세르, 들뢰즈, 데리다, 리요따르 등이 있다. 특히 데리다와 들뢰즈는 매개 불가능한 차이, 비지양적 지양, 혹은 비정립적 정립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 내용, 그리고 그에 고유한 논리를 밝히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 프랑스 철학자들은 이런 철학적 주제를 구성하기 위해서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 다시 주석을 붙였다. 이 세 사상가가 일으킨 동요를 변증법적 반성 속에 다시 잠재우려는 리꾀르와 달리, 그들은 이 동요를 변증법적 사유 자체를 뒤엎는 지각 변동으로 서술한다. 이런 시각은 [니체, 프로이트, 맑스]라는 푸꼬의 짧은 글을 통해서 압축적으로 표현된 바 있다.
이 글은 리꾀르가 니체, 프로이트, 맑스를 함께 거론한 뒤 2년 후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겹친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주제의 일치이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를 동시에 다루는 글에서 리꾀르와 마찬가지로 푸꼬도 그 세 대가의 사상사적 위치를 해석(학)의 역사 안에서 풀이한다. 그러나 푸꼬가 생각하는 해석의 역사는 리꾀르가 생각하는 해석학, 즉 성서 해석의 전통을 계승하는 독일의 해석학, 슐라이어마하와 딜타이가 대변하는 철학적 해석학의 역사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젠가 완성될 해석의 역사, 즉 그리스 문법학자들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해석의 기술을 담는 백과사전적 역사를 말한다. 이 때 해석의 기술이란 언어에 대한 기술, 언어를 의심하는 방법이다. 왜 언어를 의심하는가?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언어는 알레고리아(allegoria), 즉 다른 의미를 지시하는 알레고리일 수 있다. 언어는 그 스스로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을 말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의 언어는 상징적 기호(sema?non)의 일부일 수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이외에도 동물의 울음 소리나 냇물 소리 등 여러 가지 상징 체계가 있을 수 있다.
푸꼬에 따르면, 역사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문화 형태는 저마다 서로 다른 해석의 체계와 기술을 거느린다. 알레고리와 상징적 기호를 해석하는 서로 다른 방법이 한 역사적 시기의 문화적 특징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니체, 프로이트, 맑스는 이 해석의 역사에서 어떤 혁명적인 단절의 지점을 지시한다. 그들은 현대적 해석의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권위이고, 그런 의미에서 현대 문화의 대부이다. 이는 그들이 새로운 기호를 양산해냈기 때문도, 무의미하던 사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실제로 기호의 본성을 바꾸었고, 기호 일반이 해석될 수 있는 방식을 수정했다"는 데 있다. 변화는 해석의 근본적 전제들에 대해서 일어났다. 푸꼬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 관점에서 서술한다.
1) 니체, 프로이트, 맑스는 기호가 기호로서 태어나는 공간, 기호가 성립하고 분배되는 공간 자체를 대대적으로 변화시켰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것은 심층의 표면화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심층이 표면의 유희, 주름, 효과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전통적 의미의 해석이란 표면의 심층화이다. 표면적인 것을 결과로 낳는 배후의 인과적 연쇄를 발견하는 것, 개별적인 것을 필연적으로 산출하는 의미 연관을 발굴하는 것, 직접적 사태가 감추고 있는 깊이에 이르는 것, 그것이 해석이었다. 그러나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게서 해석의 방향은 역전된다. 정신적인 것, 이상적인 것, 심층적인 것, 신비한 것은 물질적인 것, 유치한 것, 표면적인 것, 진부한 것으로 환원된다. 해소되는 것이다.
2)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해석은 무한한 과제, 구조적으로 완성 불가능한 과제가 된다. 해석의 노동에 대하여 목적지, 종말의 휴식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서 푸꼬의 시각은 리꾀르의 시각과 첨예하게 대립한다. 리꾀르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의 파괴적 해석학이 일으킨 동요를 이상적 해석학이 태어날 지점으로 가는 목적론적 여정 안으로 편입시킨다. 반면 푸꼬는 그 동요를 탈목적론적 성격의 해석학, 현대적 형태의 해석학이 출현하는 사건으로 본다. 이 새로운 해석학에서 해석은 멈추지 않는 운동, 끝없이 이어지는 그물망 속에 놓인다. 이것은 해석되어야 할 대상이 무한히 증가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양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데 있다. 해석은 구조적으로 닫혀질 수 없다. 열려져 있고 벌어져 있다. 어디서 벌어지는가? 그것은 종래에 기원, 중심, 목적이라 불리던 그 지점에서다. 그러므로 해석은 의미의 기원, 체계의 중심, 해석의 목적지에 접근할수록 난파될 위기에 빠진다. 해석 자체의 가능성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모든 규칙, 논리, 계산이 혼돈으로 치닫는 이 중심, 중심 아닌 이 중심의 발견이 현대 해석학의 중요한 특징이 된다. 푸꼬는 이 발견을 "광기의 경험"으로 간주한다. 즉 현대적 의미의 해석은 이성적 언어 안에 잠재하는 그 바깥, 광기의 주변을 맴돈다.
3)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게서 기호는 이미 다른 기호에 대한 해석이다. 따라서 한 기호의 해석은 해석의 해석이다. 이것은 중립적 기호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기호는 수동적으로 해석되고 해명되는 것이 아니다. 기호는 이미 어떤 해석의 산물로서 그 해석을 강요하고 정당화하는 능동적 주체이다. 따라서 하나의 기호를 해석한다는 것은 그 기호를 지배하는 해석, 그 해석 속에서 자기를 방어하고 확장하는 힘에 대한 투쟁이자 전복이다. 기호는 이미 다른 기호를 산출하고 조직하는 신체, 말하는 신체이기 때문이다. 기호는 기호라기보다 기호를 회집하고 분배하는 해석의 활동이다. 기호는 반대의 해석에 대하여 감시하고 저항하며 비판하고 있다. 악의에 찬 기호, 왜냐하면 특정한 해석을 강요하거나 왜곡하기 때문이다. 반동적인 기호, 왜냐하면 다른 해석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현대적 의미의 해석은 해석의 해석, 반동적 저항의 형태를 띤 해석에 대한 해석, 폭력적 분쇄이다. 푸꼬는 이런 현상을 "기호에 대한 해석의 우위"라는 말로 요약하고, 이 점을 "현대 해석학에서 가장 결정적인 측면"으로 간주한다.
4) 기호의 해석이 해석의 해석이고 이 해석이 닫혀지지 않는 구조 혹은 무한히 이어지는 회로를 이룰 때, 해석의 유일한 원리는 해석자이다. 해석을 통해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누가 해석하는가', '누가 해석을 제기하는가'이다. 따라서 해석은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회귀한다. 해석의 의미는 이 자기 회귀적 해석에 의해서 결정된다. 기호의 시간, 변증법적 시간은 회기가 미리 정해져 있는 목적론적 시간이며 선형적 형태의 시간이다. 반면 해석의 시간은 이미 해석된 것을 다시 지나고 변형하는 반복의 시간, 총체화된 것을 다시 열어 놓는 순환적 시간이다. 해석이 이러한 순환적 시간성 속에 놓이는 것은 그것이 다시 자신의 한계를 향하기 때문이다. 해석은 마지막에 가서 언어의 안과 밖 사이의 경계, "광기와 순수한 언어 사이의 접경 지대"를 지난다.
3. 해석의 무한성
이성과 광기, 논리와 그 바깥이 접촉하는 지대, 그 접경의 사태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왜냐하면 의미의 확장, 질서의 재편, 체계의 역사적 변형은 그 접경의 사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모순에 찬 사건을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가? 아마 이 물음이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해석학에 대하여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물음일 것이다. 이 물음을 위해서 일단 니체, 프로이트, 맑스에게로 돌아가서 새로운 해석학에 대한 푸코의 논점을 재점검해보자.
1) 푸코의 첫 번째 논점은 심층의 표면화로 요약된다. 이때 심층이란 여러 가지 것을 의미한다. 니체에게 그것은 초감성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것(신, 정신, 본질, 이상) 등을 말한다. 맑스에게서 그것은 이데올로기와 상부구조가 된다. 프로이트에게서도 그것은 의식뿐만 아니라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 영역, 가령 신화·종교·철학·예술·도덕 일반을 말한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는 이 다양한 의미의 심층에 대하여 의문을 던진다. 그 심층은 가상이 아닌가? 자율성, 실재성, 기원, 토대의 외양을 위장한 허구 아닌가?
이런 회의는 니체에게서 계보학이란 이름을 얻는다. 계보학이 비판하는 것은 어떤 전도 현상이다. 원인과 결과, 기원과 파생적 효과, 이전과 이후, 심층과 표면 사이의 원근법적 전도가 생겨난 이유와 절차에 대한 물음이 계보학이다. 플라톤 이래의 서양 형이상학에서 초감성적인 것은 감성적인 것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월하고, 이 존재론적 우월성의 순서는 동시에 인과의 순서이자 파생의 순서였다. 니체의 계보학은 서양 형이상학에서 초감성적인 것이 누려 오던 원인이나 기원의 자격이 사실은 어떤 결과이자 효과임을 강조한다. 초감성적 실재, 도덕적 이상은 어떤 특정한 해석의 의지가 권력화되고 고착화되는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는 묻는다. "땅 위에서 이상적인 것이 날조되는 방식"은 무엇인가? "이상적인 것이 제조되는 공장"은 어디에 있는가?
맑스는 이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이 고안되는 장소를 이데올로기라 불렀다. 이데올로기, 그것은 "카메라의 어둠 상자"와 같다. 그 안에서는 결과가 원인으로, 표면이 심층으로 전도되어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Umkehrung)는 이데올로기적 관점(ideologische Anschauung)을 구성한다." 그러나 특정한 관점, 장소로서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가 상상적 허구이다. 맑스는 그것을 "인간 뇌 속의 환영"이라 했다. 그러나 이 환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도덕, 종교, 형이상학 등의 형태를 띠면서 인간을 억누르는 무거운 실체로 변모한다. 상상적 허구가 인간 위에 군림하는 무게, 권위가 되는 것이다. 맑스의 '과학'은 니체의 계보학과 마찬가지로 이 전도된 본말을 바꾸어 놓고자 한다.
이 재전도의 작업은 가상의 생성 경위와 절차를 설명하여야 한다. 의식을 지배하는 허위 관념, 그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것은 여전히 프로이트의 물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정신분석적 의미의 의식 내용은 무의식적 충동의 파생적 표상이고, 이 표상은 억압된 표상(본능의 대표자)이 왜곡되고 전도되어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가령 꿈이 무의식적 소망이 충족되는 현상이라면, "꿈 재료와 꿈 사이에는 모든 심리적 가치의 완전한 가치 전도(v?llige Umwertung aller psychologischen Werte)가 이루어진다." 프로이트적 의미의 분석은 이 전도에 대한 탐구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신분석은 의식적 표상이 성립하는 과정을 무의식을 지배하는 법칙에서부터 설명한다. 쾌락 원칙, 그것에서 비롯되는 억압, 그리고 오이디프스 콤플렉스 등이 무의식의 영역을 조건짓는 배후의 구조를 이룬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문화 전체는 이 토대 구조 위에 기생한다. 가령 신화·종교·학문·형이상학·도덕·예술 등은 쾌락 원칙과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의 극복 과정(승화)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심오하고 고귀한 것은 유치하고 저열한 것에서 생겼다. 정신적인 것은 본능적 충동에 대한 방어 기제로서 처음 발생하였다. 자아, 자기 의식, 나아가서 문화 일반은 육체적 표면의 정신적 투사라는 의미에서 "어떤 표면적 존재자(Oberfl?chenwesen)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표면의 투영(Projektion einer Oberfl?che)이다."
2) 프로이트는 이 본능적 충동의 영역을 후에 '이드'라 부른다. 이 이드는 비합리적 영역이다. 여기서는 "논리적 사고 법칙은 통용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모순률이 지켜지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과 문화적 행위의 원천에 있는 본능적 충동은 "어둡고 도달할 수 없는 부분," "카오스," "들끓는 흥분으로 가득 찬 주전자"이다. 따라서 그것은 오직 부정적이고 간접적으로, 그것이 산출하는 결과를 통하여 우회적으로만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이 프로이트적 분석이 스스로에게 설정한 한계이다. 즉 애매성, 역설과 모순은 본능적 충동에 대하여 해소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해석은 무의식의 중심으로 직접 침투해 들어갈 수 없다. 이 근원적 침투 불가능성 때문에 본능적 충동에 다가설수록 정신분석은 이론적 엄밀성을 주장할 권리를 잃어버린다. "충동 이론은 말하자면 우리의 신화(Mythologie)이다. 충동은 신화적 존재이며, 그것의 무규정성이 화려한 인상을 주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결코 확신할 수 없다." 이런 문장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처럼, 해석은 사태의 기원, 중심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거기서 맴도는 역설의 회오리 속에서 침몰할 위험에 처한다. 허구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푸코의 두 번째 논점과 만난다. 그것은 해석의 무한화로서 요약될 수 있다. 이 무한화는 해석이 의미의 기원, 체계의 중심, 해석의 목적지에 접근할수록 빠져드는 자기 상실의 위기 속에서 발생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사고와 문화가 비롯되는 기원으로 다가설수록 모순과 무의미, 역설과 불합리, 애매성과 신비에 봉착한다. 해석 자체가 신화화되는 상황에 빠지고, 따라서 해석은 그 난파의 상황 속에서 무한화된다.
니체는 이 해석학적 무한성을 기존의 형이상학적 무한자를 대신하는 "우리들의 무한자," 현대인의 무한자로 파악하였다. "우리에게 세계는 다시 무한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세계에 대하여 무한한 해석을 제공할 가능성을 거부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이다." 왜 거부할 수 없는가? 그것은 해석이 존재자를 구성하는 일차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자는 능동적으로 해석에 참여하고" 또한 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의 관점을 지닌다. 존재자는 이 관점 안에서 해석의 활동으로서 존재하며 해석을 통하여 타자와 관계한다. 즉 해석은 인식의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니체적 의미의 해석학적 무한성은 존재론적 무한성에 가깝고, 그런 자격에서 기존의 형이상학적 무한자를 대신한다.
이것은 해석이 사실적 차원에서는 물론 '권리상' 종결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해석은 이미 구조적으로 무한하다. 그러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해석은 권리상 종결될 수 있지만 사실적으로 종결될 수 없다. 가령 엥엘스는 이렇게 말한다. "헤겔 이후 체계의 불가능성. 세계가 하나의 단일한 체계, 즉 하나의 수미 일관한 전체를 나타낸다는 것, 이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체계에 대한 인식은 자연 '전체', 역사 '전체'에 대한 인식을 전제한다. 이는 인간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체계를 만드는 사람은 따라서 그 무수한 허점을 자신의 고유한 창작물로 메워야 한다. 다시 말해서 '비합리적' 상상에 몸을 맡겨야 하고,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계의 구성 가능성, 해석의 종결 가능성을 방해하는 것은 세계의 경험적 무한성이다. 이 경험적 무한성 때문에 권리적 차원의 종결 가능성이 끝없이 지연된다. 최종적 의미는 도래하고 있을 뿐 현전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이 지연된 현전, 현전 속의 차연을 메우는 보충물이다. 반면 니체와 프로이트에게서 최종적 의미의 현전은 사실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권리적 차원에서도 불가능하다. 해석은 구조적으로 닫혀질 수 없고 종결될 수 없다. 현전을 방해하는 지연과 차이는 최종적 의미, 기원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그 안에 내재한다. 선험적 차원에서 구조는 이미 열려 있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세계는 단일하고 수미 일관한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비밀에 찬, 아직 해석되지 않은 텍스트"로 남는다.
3) 최종적 진리의 현전을 보류시키는 지연, 그 차이가 사실적 경험의 사태라기보다 논리적이고 구조적인 사태라는 것은 다시 푸코의 세 번째 논점 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 논점은 기호에 대한 해석의 우위성을 말하고 있다. 푸코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기호가 어떤 활동적 해석으로서 인식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한 인식을 따를 때, 기호의 해석은 해석의 해석이 된다.
기호가 이미 어떤 활동적 해석이라는 인식은 맑스적 이데올로기 개념의 근간을 이룬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적 사유의 과정이되 "허위 의식"이다. 이는 "그 과정을 움직이는 진정한 동력이 사유자에 대하여 무지의 상태로 남아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다시 말해서 이데올로기적 사유는 자신 스스로에 대하여 "거짓된 혹은 가상의 동력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허위 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두 개의 해석학적 동력, 두 가지 해석학적 관점이 관계하는 과정, 다시 말해서 가짜의 해석에 의해서 참된 해석이 은폐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은폐는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허위의 관점은 참된 관점을 은폐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은폐한다. 이데올로기는 이 이중적 은폐 작용을 통하여 허위 의식의 허위성, 작위성, 추상성을 진리성, 자연성, 구체성으로 둔갑시킨다. 이데올로기는 그런 의미에서 마술적이다.
이 마술적 해석은 경제적 생산 관계 속에 내재하는 계급간 대립과 모순을 제거하고 "조화로운 법률 체계를 확립"한다는 목적 속에서 움직인다.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는 유령이며, 계급간 갈등적 지배 구조를 문제삼는 적대적 해석에 대하여 감시의 역할을 맡는 수호천사이다. {자본}의 맑스는 그와 비슷한 종류의 유령이 상품 속에 숨어 있음을 강조한다. 맑스의 눈에 상품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신비한 힘으로 가득찬 "사회적 상형 문자"이다. 그 상형 문자의 배후에는 노동의 사회적 성격(교환 가치, 생산 관계)에 불과한 것, 다시 말해서 "사물들 간의 환상적 관계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사물인 양 나타나게 하는 활동적 가상이 숨어 있다. 그 가상이 맑스가 말하는 물신 숭배이다. 이 물신 숭배 속에서 상품의 사용 가치가 교환 가치에 의하여 참칭되고, 그 결과 망각된다.
교환 가치로서의 상품은 감각적인 동시에 초감각적이다. 가령 목재가 가공되어 책상이 되자마자 이 상품은 물리적 법칙으로 환원되지 않는 초감각적 성격의 물건이 되어버린다. "책상은 자신의 다리로 마루 위에 서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자면 다른 상품에 마주하여 물구나무서기도 하며, 설령 자발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해도 그보다 훨씬 더 기묘하게 그 목재 대가리로부터 변덕을 부려대기에 이른다." 이 변덕은 하나의 임의적 상품(금)이 화폐의 형태를 띨 때 극치에 이른다. 그 때 물건은 그것의 생산에 요구되었던 노동의 양은 물론 그것의 사용 가치와 무관하게 전적으로 화폐적 등가 교환의 문맥에서만 이해된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요술을 부리는 이 등가적 교환의 질서는 어떤 안개 현상이다. 즉 "사적 노동의 사회적 성격, 따라서 개별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물건들 사이의 관계로 나타냄으로써 은폐하는 것이다."
맑스에게 상품이 상형 문자라면, 프로이트에게는 꿈이 상형 문자이다. 게다가 그것은 몇 번이고 중복되어 사용된 양피지 위에 쓰인 상형 문자이고, 따라서 해석 없이 읽을 수 없는 암호이다. 그런데 맑스는 그 암호의 해독을 낙관한다. 이데올로기적 허위 의식과 물신 숭배는 과학적으로 해석되고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맑스는 "상품 세계의 모든 신비, 그 모든 마술과 악귀는 우리가 다른 생산 형태로 이행하자마자 곧 소멸한다"고 적기까지 한다. 그러나 니체와 프로이트에게 기호 배후의 활동적 해석은 구조적으로 해소 불가능하다. 다만 하나의 해석은 다른 해석에 의하여 대치될 수 있을 뿐이다. 니체의 말을 옮기자면, "우리들의 가치는 사물 속으로 도입된 해석이다. 즉자적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필연적인 의미마저 하나의 관계적 의미(Beziehung-Sinn), 하나의 관점 아닐까? 모든 의미는 권력에의 의지다." 니체가 말하는 권력에의 의지는 해석의 의지다. 모든 사태는 권력에의 의지가 드러나는 현상이고, 이 현상은 해석의 의지가 실행되는 모습이다. 모든 의미 또한 권력에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것은 의미가 해석의 산물이고 이 해석은 다시 권력에의 의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 의지의 형식으로서의 해석 자체, 그것이 정념으로서의 현존인 것이다." 이것은 해석이 사태 자체, 현상 자체의 기본적 구성 요소임을 말한다. "모든 사태의 해석적 성격. 사건 자체란 없다. 사태로서 성립하는 것은 어떤 해석자에 의하여 선별되고 조합된 일군의 현상이다." 따라서 존재한다는 것은 해석한다는 것, 해석을 의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니체가 그리는 세계는 서로 갈등하고 지배권을 다투는 권력에의 의지, 해석의 의지들 사이의 역동적 관계이다. 기호, 사물, 현상은 다른 해석의 관점을 제압한 어떤 하나의 관점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징후로서의 기호, 왜냐하면 그 이면에는 서로 다른 해석의 관점들 사이의 지배와 억압, 감시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분석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무의식을 위상학적 관점이나 경제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학적 관점에서 기술할 때, 프로이트는 기호 배후에서 서로 간섭하고 있는 해석의 의지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프로이트는 꿈을 "억압된 소원의 위장된 성취"로서, 그리고 이 위장된 성취는 "서로 싸우는 두 편의 정신적 지향 사이의 화해"에서 오는 결과로서 간주한다. 게다가 이 화해는 무의식적 내용의 왜곡,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훼손을 조건으로 한다. 그런 조건에서만 무의식의 내용은 검열과 방어 기제를 통과하여 (전)의식에 떠오를 수 있다. 이런 갈등과 타협은 본능적 충동에서부터 발생하는 심리적 자극과 그 에너지가 복수의 정신적 지향(무의식, 전의식, 의식 혹은 이드, 자아, 초자아)에 대하여 서로 다르게 해석된다는 사실에 그 마지막 이유를 두고 있다. 한쪽 편에서 쾌락으로 해석되는 자극이 다른 쪽에서 불쾌로 수용된다는 것, 이 해석의 갈등이 억압을 낳고 거기서 왜곡과 타협이 시작되는 것이다.
무의식적 충동을 발산하는 감정(Affekt)을 예로 하자면, "정상적인 삶 안에서마저 감정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의식 조직과 무의식 조직 사이에 계속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영향권을 다투는 특정한 영역들이 서로 경계를 이루며 맞닿아 있고, 여러 가지로 작용하는 힘들이 한데 모여 증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표상도 서로 다른 해석들 간의 충돌·흡입·방어·억압이 빚어내는, 그러나 "그 내막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는 교묘한 균형 작용"이 일단락 되는 지점일 뿐이다. 요컨대 표상, 기호는 언제나 중층적 결정(?berdeterminierung)과 중층적 해석(?berdeutung) 속에 놓여 있다.
알뛰세르는 프로이트로부터 이 중층 결정의 개념을 차용하여 맑스의 유물 변증법의 고유한 특성, 특히 헤겔의 변증법과 대비되는 특성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해석학에 대하여 그 개념이 지니고 있는 급진적 함축이 명료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알뛰세르에 따르면, 헤겔의 변증법은 단순하고 단선적인 규정 운동에 불과하고, 따라서 헤겔적 총체성은 단일한 구심점을 가진 동심원에 지나지 않는다. "원환들의 원환으로서의 의식은 하나의 구심점만을 지니고, 오직 이 하나의 구심점이 의식을 규정한다. 의식이 그 중심에서 다른 원환들의 효력에 의하여 영향을 받으려면, 간단히 말해서 의식의 본질이 다른 원환들에 의하여 중층적으로 결정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중심을 지니는 원환들, 탈중심화된 원환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헤겔에게서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반면 맑스에게서 총체성은 서로 다른 구심점, 서로 다른 심급이 만드는 상이한 동심원들이 서로 겹치고 간섭하는 구조, 탈중심화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 탈중심화된 구조 안에서 의식은, 나아가서 모순 자체가 중층적으로 결정되거나 규정되어 있다. "모순은 사회적 구성체 전체의 구조 안에서 효력을 행사하면서 그 구조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 스스로 지배하고 있는 심급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모순은 그 심장부에서 그 심급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 자신이 활력을 주는 사회적 조직의 다양한 층위들과 다양한 심급들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모순이 그 원리에 있어 중층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알뛰세르가 볼 때, 맑스의 유물 변증법은 중층적 결정에서 출발하는 반면 헤겔의 철학은 단순 결정, 단순 규정의 사유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유물 변증법을 헤겔 변증법의 전도 혹은 뒤집기로 보는 것은 금물이다. 양자는 전도 관계가 아닌 전면적 단절, 대체, 부인의 관계에 있다. 유물 변증법은 헤겔에 대하여 무엇을 부정하는가? 알뛰세르에 따르면, 그것은 근원적 단순성 혹은 절대적 기원 혹은 원초적 중심이며, 그밖에 "기원의 철학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신화" 일반이다. 맑스주의가 헤겔의 철학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그것이 기원의 철학, 중심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맑스주의가 거부하는 것, 그것은 절대적 기원과 완전히 합일할 수 있다는 철학적(이데올로기적) 주장이다. 그 형식이야 어떠하든(가령 백지 상태, 한 과정의 제로 포인트, 자연 상태, … 헤겔이 말하는 시초의 개념, 헤겔에게서 모든 과정의 시작에 있으면서 끝에서 다시 회복되는 단순성 등등) 모든 기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맑스주의는 또한 원초적이고 단순한 통일성에 대한 헤겔 철학의 주장을 거부한다. 자율적 전개 과정을 통해서 모든 복잡성을 산출하되 그 과정에서 결코 스스로의 단순성과 통일성을 잃지 않는 그런 근원적 통일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알뛰세르가 헤겔과 대립시켜서 읽는 맑스에게서 하나의 중심은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중심에 의하여, 하나의 심급은 다른 심급에 의하여 끊임없이 교란되고 장소를 바꾼다. 총체성은 하나의 동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동심원들이 서로 간섭하여 탈중심화된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근원적이고 단순한 통일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잡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통일성을 '언제나 이미 주어져 있는 것'(le toujours-d?j?-donn?)로서 갖는다." 이는 해석이 이미 중충적으로 결정되고 규정되어 있는 사태, 따라서 근원적 단순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복잡성의 사태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원초적인 것, 그것은 이제 단순한 중심이 아니라 탈중심화된 중층성이다.
4) 알뛰세르의 맑스 해석을 통하여 그 해석학적 함축을 드러내는 이 프로이트의 중층적 결정의 개념에서 우리는 앞의 도입부(1절)에서 언급되었던 주제, 탈중심화의 주제와 다시 만난다. 탈중심화의 주제, 그것은 데리다적으로 말하자면 탈현전성의 주제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중층적 결정 혹은 중층적 해석의 개념이 갖는 해석학적 함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탈근대적 해석학에 대한 푸코의 마지막 논점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푸꼬의 논점은 해석의 의미를 결정하는 마지막 심급이 '누구'의 물음으로 귀착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기호가 중층적 결정과 중층적 해석의 효과일 때, 그 의미의 해석은 '어느 것'의 물음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어느 것을 지배하는가? 어느 것에 반발하고 저항하는가? 그 저항에 의하여 어떤 왜곡과 타협이 이루어지는가? 이것이 현대적 해석학의 질문 형식이다.
이것은 역사를 생산 관계의 변화 과정에서부터 설명하는 맑스적 물음의 형식이기도 하다. 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누가 경제적 잉여를 독점하는가? 생산 관계에 대한 이런 맑스의 물음은 사회 구조뿐만 아니라 관념의 위계, 역사의 단계적 특성을 결정하는 문제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관념적 진리는 생산 수단을 지배하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 진리는 그런 지배 관계의 산물이다. 진리에 대한 해석이 '누구'에 대한 질문으로 소급해야만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리는 누구의 진리인가? 누가 그 진리를 원하는가? 누가 그 진리의 피해자인가?
맑스의 관점에서 포이에르바하가 아직도 진정한 유물론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물음을 생략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현실에 대한 물음을 '주체적' 관점에서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포함하여)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오로지 객체 혹은 관조의 형식 아래에서만 파악되고 있지 감성적 인간의 활동이나 실천으로서 파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주체적으로 파악되 않는다는 데 있다." 맑스는 다시 덧붙인다. "낡은 유물론의 입지점(Standpunkt)은 시민 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지점은 인간적 사회 혹은 사회적 인류이다."
입지점에 대한 물음, 그것이 기호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물론 해석의 의미에 대한 해석, 해석의 해석을 결정한다. 이 입지점에 대한 물음은 단순히 위상학적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복수의 입지점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적 투쟁 관계, 즉 정치적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해석은 진리, 가치의 정치성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진리의 반대 말은 오류나 무지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것은 위험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그것을 중립화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수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진리가 정치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투쟁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는 다른 심급의 진리에 대하여 파괴적이고 위험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필연적으로 갈등적인 차원에서, 그것의 반대말은 오류나 무지라기보다 중립성, 객관성, 비당파성, 자율성 등일 것이다.
이런 진리, 가치의 정치성은 맑스뿐만 아니라 니체에게서도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다. 라이프니츠가 이 세계를 서로 다른 표상의 주체에 해당하는 모나드의 집합으로 묘사했다면, 니체에게 그 정신적 미립자에 해당하는 것은 서로 다른 양을 이루며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힘이다. 이 힘들은 양적 차이만이 아니라 질적 차이도 지닌다. 질적 차이를 기준으로 할 때, 하나의 힘은 다른 힘에 대하여 능동적(active)이거나 반동적(r?active) 혹은 방어적이다. 양적 차이를 기준으로 할 때, 한 힘은 지배적이거나 피지배적이다. 세계는 이렇게 질과 양에서 차이나는 무수한 힘들 사이의 관계이다. 이 관계의 출발은 힘을 규정하는 근본적 충동, 권력에의 의지이다. 권력에의 의지, 그것은 또한 해석의 의지이다. 복수적이고 다양한 힘의 이합집산으로서의 세계는 서로 다른 해석의 관점들이 투쟁하는 장소이다. 그 원근법적 다양성과 해석학적 갈등이 세계의 세계성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들뢰즈의 시각에서 니체의 해석학은 계보학인 동시에 징후학이며 또한 유형학이다. "징후학, 왜냐하면 현상을 해석하되 그 현상을 생산하는 힘들 안에서 그 의미를 찾고, 그래서 현상을 징후로서 취급하기 때문이다. 유형학, 왜냐하면 힘들 자체를 능동적이냐 반동적이냐 하는 질적 관점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계보학, 왜냐하면 힘의 기원을 고귀한가 비천한가 하는 관점에서 평가하기 때문이며, 힘들의 족보를 권력에의 의지와 이 의지의 질적 성격에서부터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해석은 기호, 현상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그것을 징후로서 낳는 배후의 힘에 대한 해석이다. 이 해석적 관점으로서의 힘에 대한 해석은 그 힘이 어떤 종류의 힘, 어떤 성질의 관점인지를 묻는다. 해석은 마지막에 가서 '누구'의 물음이 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 물음의 형식이 함축하는 역사적 의미를 플라톤적 사유 형식 전체를 상대화하는 어떤 전회로서 평가한다. 이 전회는 '무엇'으로 시작하는 물음의 형식이 '누가'로 시작하는 물음의 형식으로 바뀐다는 것을 말한다. 사물의 무엇됨에 대한 물음은 플라톤 이래 이론 중심적 사상사의 전통을 주도해온 탐구 형식이다. 이 탐구는 본질 혹은 보편적 진리에 대한 추구로서 실현되어 왔다. 반면 '누구'의 물음은 보편적 진리에 대한 탐구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진리, 단독적 진리에 대한 탐구이다. 이것이 들뢰즈가 니체의 해석학에서 끌어내는 전언이다. 즉 "'진리는 무엇인가'(qu'est-ce que le vrai)라는 추상적 물음을 제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누가 진리를 원하는가'(qui veut le vrai), '언제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원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진리 혹은 가치는 어떤 종류의 의지, 힘, 관점의 산물인가? 그 진리를 원한 것은 노예의 관점인가 주인의 관점인가? 가치는 능동적 해석의 효과인가 반동적 혹은 방어적 해석의 효과인가? 이것이 니체의 해석학이 유도하는 물음의 형식이다.
4. 해석의 시간성
다시 푸코의 마지막 논점으로 돌아가자면, 그는 이 '누구'의 물음에서 해석의 자기 지시성과 자기 회귀적 성격을 발견하였다. 해석은 '누가 진리를 원하는가'라는 물음의 형식 속에서 진행되는 것만이 아니다. 물음은 다시 '누가 해석을 원하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해석을 (원)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 자기 회귀적 물음은 어떤 심급을 구성한다기보다 파괴한다. 왜냐하면 해석이 해석자에게로, 해석 자체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해석의 한계로 향한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로의 회귀 속에서 해석은 이미 해석된 것을 다시 지나고 변형하는 순환적 시간성 속에 놓인다. 이 해석의 순환성은 동일자의 자기 회귀에 그치는 헤겔적 원환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총체화된 것을 일그러뜨리고 다시 열어놓는 자기 개방의 운동이다.
해석의 이런 자기 회귀적 운동 안에는 어떤 새로운 문제가 자라나고 있다. 해석의 시간성 혹은 해석학적 시간성이 그 하나이고, 거기에 덧붙이자면 해석의 책임이라는 문제를 지목할 수 있다. 해석의 책임이라는 문제, 왜냐하면 해석이 자신의 한계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자기 회귀적이라면, 이 자기 회귀는 자기 부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해석, 그런 해석을 믿어야 하는가?
이 책임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자기 회귀적 해석의 시간성을 검토하도록 하자. 아마 시간의 문제에 관한 한 프로이트가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는 심리적 사태에 고유한 시간성 및 인과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사후성(Nachtr?glichkeit)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은 심리적 경험과 인상,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의 흔적은 이후의 심리적 사건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조직되고 재기록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즉 하나의 심리적 사태는 그 자체로 어떤 완결된 의미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다른 사건과 짝을 맺는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나중에 오는 사건이 먼저 있던 사건에 사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 의미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특히 무의식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심리적 현상은 이런 사후적 인과성의 효과로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생각이다. 가령 생식 기관이 발달하지 않았고 따라서 아직 성적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유아 시절에는 성과 관련된 많은 사건이 무의미한 것으로 지각된다. 그러나 당시에 무의미했던 심리적 사건은 일정한 성적 발달 단계를 거친 사춘기 이후의 어른에게 정신적 외상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억압된 기억은 사후적으로만 외상의 충격을 발휘한다. 이는 기억에 남아 있는 흔적이 이후의 지각에 의해서 처음으로 의미 있는 문맥 속에 통합되거나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의미를 획득한다는 일반적 사실에 대한 사례이다.
이런 프로이트의 사후성 개념은 심리적 사태가 물리적 사태로 환원될 수 없는 나름의 고유한 질서를 이루고 있음을 가리킨다. 물리적 사태는 비가역적 시간, 비가역적 인과의 질서에 종속되어 있다. 반면 어떤 심리적 사태가 사후적 영향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은 심리적 과거가 미래에 나타나고 원인이 결과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 이후 심리적 사태의 이런 역설적 논리를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은 라깡이다. 정신분석이 심리적 증상의 원인을 주체의 개인적 역사에서 찾는다면, 라깡은 이 정신분석적 의미의 역사가 단순한 과거 혹은 과거의 사건이 아님을 강조한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 속에서 재구성된 과거이고, 이 현재적 재구성이 과거가 역사로서 출현하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생물학적 기억이나 그에 대한 [베르그송류의] 직관주의적 신비가 아니며 기억 착오 또한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추측이 미래의 약속을 동요하게 만드는 저울질로서의 재기억, 즉 역사가 문제이다. … 이 저울은 오로지 연대기적 확실성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받침대로 하고 있다. 단호하게 말하자면, 정신분석적 회상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적 현실(r?alit?)이 아니라 진리(v?rit?)다. 왜냐하면 과거의 우연한 사건에 대하여 앞으로 있어야 할 필연성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재조직하는 것은 언어(parole)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는 원초적 장면의 시기를 추정할 때는 전적으로 객관화된 증거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는 사건의 재주체화(resubjectivations)만을 가정할 뿐이다. 주체가 자신을 구성하는 각각의 전환점에서 사건의 효과를 설명하는 데 필수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 재주체화이고, 그것은 바로 '사후적으로'(nachtr?glich, apr?s coup) 성립하는 재구조화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라깡에 따르면, 과거의 심리적 사태의 의미, 그 진리는 사후적 재주체화를 통해서만 현상한다. 이 사후적 재주체화는 언어적 재구조화이다. 심리적 과거는 이 언어적 재구성의 사후적 효과로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약속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조직된다. 게다가 그 재조직 이전에 심리적 현실은 아무 것도 의미하지 못한다. 심리적 사태는 미래로부터 과거로 소급해가는 사후적 해석에 그 현상학적 가능 조건을 두고 있다.
라깡은 프로이트와 더불어 정신분석이 중시하는 인간의 성적 발달 단계도 이런 사후적 시간성 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본다. 가령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혹은 성기기 이전의 단계는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그 이후의 단계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이전 단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소급 작용(r?troaction) 속에서 순서가 정해진다." 선형적, 비가역적 시간성을 거부하는 이런 라깡의 관점은 그의 독특한 주체 이론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라깡의 주체는 상상계(거울 단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단계)에 있다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쳐 상징계(언어를 사용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적이고 연대기적 발전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상상계의 주체가 그 형성을 마친 후 그것을 기반으로 상징계의 주체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상계의 주체는 상징계의 주체에 의하여 사후적으로 해석됨으로써 탄생한다. "각 단계의 주체는 소급의 효과에 의하여 그것의 과거 모습(ce qu'il ?tait)이 되고 오로지 전미래(futur ant?rieur) 시제에서만 자신을 알린다 ― 그는 미래에 있었던(il aura ?t?) 것이 될 것이다." 즉 주체의 과거는 미래에 있을 것이고 미래에 완료될 것이다.
이런 주체의 역설적 존재 방식은 인간의 보다 일반적인 운명에서부터 비롯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라깡은 무의식적 욕망이 언어에 의하여 구조화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망, 나아가서 무의식은 언어보다 먼저 존재하다가 언어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체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의식적 욕망이 발생한다. 심리적 사태가 사후적 시간성 및 인과성 안에서 현상한다면, 이는 인간이 예속되어 있는 언어의 영향이다. 사후적인 것은 심리적 사태이기 앞서 먼저 언어적 사태이다. 그래서 "문장은 오로지 그것의 마지막 용어와 더불어 의미 작용을 완료한다. 이때 각각의 용어는 다른 용어의 구성 과정 속에서 예상되고 있으며, 거꾸로 이 용어들은 그 마지막 용어의 소급적 효과에 의하여 그 의미를 굳힌다."
이런 사후적 효과는 언어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차원에서도 성립한다. 라깡의 그 유명한 거울 단계에서 어린아이는 거울 속의 자아상에서 자신의 이상적 자아의 형태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 영상은 현실적 자아를 그대로 반영하거나 재현하는 모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 인식에 본질적인 오인"(un m?conna?tre essentiel au me conna?tre) 때문에 생기는 허상, 주관적 해석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의 허상이다. 아직 현실적으로 통합된 신체 조직을 갖추지 못한 상태의 어린아이가 거울에서 끄집어내는 통합된 자아상은 "그를 향해서 오고 있는 '때 이른' 영상, 시간을 앞질러 온(anticip?) 이미지다." 그 영상은 미래에 투사된 이미지, 그 투사막의 저편에서부터 달려오는, 그러나 너무 빨리 도착한 이미지다. 하지만 시간의 순서를 어기는 이 허상이 자아 인식의 모델이자 조건이다. 자아 인식은 거울 이미지의 사후적 효과이다.
우리는 여기서 기호는 이미 해석이라는 푸코의 논점과 다시 만난다. 라깡이 말하는 거울상은 주관적 해석이 투사되어 산출되는 영상적 기호이다. 이런 영상적 기호 개념은 영상 시대라 불리는 이 시대의 기호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영상은 재현의 논리에 기초해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영상은 점점 더 원본에 대한 재현과 복제이기를 그치고 오히려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모델과 원형을 창조하는 데까지 나가고 있다. 라깡의 자아가 시간을 앞질러 도착한 허상 속에서 비로소 자신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듯이, 영상 시대에 인간은 영상적 구성물 속에서 현실에 대한 인식을 선취한다. 영상은 현실보다 앞서가고, 현실에 대한 인식은 그 앞서간 영상을 뒤따른다. 현실의 지각, 현실의 의미는 미래로부터 현재 속으로 튀어나오는 영상의 사후적 효과이다. 따라서 지각(知覺)은 지각(遲刻)이다.
이런 사후성의 논리는 라깡 이후 데리다에 의하여 존재 이해 차원의 원초적 사태로 승격된다. 다음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데리다의 주요 용어들, 가령 흔적·기록·차연·텍스트·결정 불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대리적 보충 등은 많은 부분 프로이트의 사후성 개념에 대한 주석에 그 의미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주석의 핵심은 사후성의 논리를 서양 형이상학의 현전적 존재 이해에 대한 전복의 논리로 부각시키는 데 있다.
[프로이트에게서] 텍스트는, 그것이 원초적 형식이든 변형된 형식이든, 어떠한 현전의 형식 속에서도 생각될 수 없다. 텍스트는 이미 순수한 흔적들로 엮여 있으며, 의미와 힘이 하나가 되는 차이들로 짜여 있다. 텍스트는 그 어디에도 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이미' 전사(轉寫)인 기록들(archives)로 구성되어 있다. (…) 모든 것은 재생산에 의하여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언제나 이미, 결코 현전적인 적이 없는 의미의 침전물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 의미에 대하여 지시된 현전(le pr?sent signifi?)은 언제나 뒤늦게(? retardement), 사후적으로(nachtr?glich, apr?s coup), 보충을 통하여(suppl?mentairement) 구성된다.
즉 '사후적'이라는 것은 또한 '대리적 보충'을 말한다. 대리적 보충에 대한 호소는 여기서 근원적이며, 우리가 현전적인 것으로서 뒤늦게 재구성하는 것을 움푹 패게 만들어놓는다. (…) 이 대리적 보충의 논리 안에서 사후성의 가능성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Nachtrag은 또한 (…) 부록, 유언 추가서, 후기(後記) 등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에 주목하자. 현전적이라 불리는 텍스트는 오로지 페이지 아래쪽에서, 각주나 후기 속에서만 해독될 수 있다. 이런 회귀(回歸) 이전에, 현전적인 것은 각주를 부르는 신호에 불과하다. 현전성 일반은 원초적인 것이 아니라 다만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점, 그것이 경험의 절대적 형식도 아니요 경험을 구성하는 충만하게 생생한 형식도 아니라는 점, 살아 있는 순수한 현전성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바로 그런 점들이 프로이트가 사태 자체에 부합될 수 없는 개념화 작업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해보도록 요청하고 있는 주제, 형이상학의 역사에 대하여 무시무시한 의미를 지니는 주제이다. 아마 이 주제에 대한 사유야말로 형이상학 혹은 과학 안에서 결코 다 길어낼 수 없는 유일한 사유인지 모른다.
이 인용문을 통해서 우리는 데리다에 대한 프로이트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해체론의 주요 용어는 물론 해체론적 해석의 전략(각주나 후기 혹은 주변부의 언급 속에서 텍스트의 의도와 반의도를 재구성하기)이 프로이트적 영감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프로이트를 탈현전적, 탈형이상학적 사유의 선구자로 부각시키고 있는 이 인용문에서 논의의 초점은 여전히 사후성에 맞추어지고 있다. 그러나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사후성을 단지 시간적으로 먼저 오는 것과 나중에 오는 것의 관계로서만 간주하지 않는다. 사후성은 여기서 논리적으로 먼저 오는 것과 나중에 오는 것, 지위에 있어서 선차적인 것과 후차적인 것, 발생적 기원과 파생자 사이의 관계에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
이런 의도를 집약하는 것이 '대리적 보충'이라는 데리다의 용어이다. 이 말은 안과 밖, 중심과 주변 등을 나누는 모든 이항 대립적 논리에서 생략되고 있는 흔적과 차연적 관계의 논리를 표시한다. 즉 "사후성의 가능성이 대리적 보충의 논리 안에서 생각되어야 한다"면, 이 대리적 보충은 차연 혹은 흔적의 다른 말이다. 차연은 대리적 보충이 암시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후성을 집약한다. 현전성을 구성하되 현전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지각(遲刻)의 사건, 그 환원 불가능한 지각의 사건이 차연의 운동이다. 흔적은 현전적 형식으로 파악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그 지각자의 차연적 효과, 그것의 소급적이고 회귀적인 영향을 표시한다. 현전성은 이 흔적에 의하여 구성되는 동시에 탈구된다.
따라서 데리다의 해체론에 이르러 해석의 자기 회귀 운동은 존재론적으로 일반화된다. 해석의 자기 회귀성이 말하는 것은 과거가 현재 혹은 미래의 해석을 통하여 보충되고, 그런 보충을 통한 재구성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과거는 언제나 전미래 시제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데리데 의하면, 이 전미래 시제는 모든 존재자의 존재론적 시간성이다. 즉 존재자의 존재 형식은 현전성이 아니다. 그것은 전미래 시제가 암시하는 불완전한 현전성, 보충되고 지연되는 현전성, 미래 혹은 바깥에 의하여 침범되어야 하는 현전성, 지각자(遲刻者)의 회귀 속에서 파괴되는 동시에 생성되는 현전성이다. 따라서 이 회귀적 시간성, 소급적 인과성 속에 놓인 현전적 존재자는 언제나 조산아다. 현전전 존재 이해는 조급증의 산물이다.
5. 해석의 책임
하물며 기호는, 나아가서 해석은 당연히 미숙아다. 따라서 기호는 이미 태어난 후에도 자신의 태생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하고, 이를 통해서 처음의 태생에서 겪은 불완전성 혹은 그 한계를 다시 메꾸어야 한다. 왜 해석은 기호의 해석인 것처럼 보일 때 해석의 해석인가? 왜 해석은 언제나 자신의 처음, 그 처음의 한계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가? 푸꼬로부터 제기되는 이 모든 물음, 그 물음이 던져지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여기서부터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즉 기호, 나아가서 모든 해석은 성급한 해석, 조급증이다. 해석은 조급증의 증상이거나 그 증상에 대한 치료, 그러나 여전히 미숙한 치료이다. 기호는, 그리고 해석은 광기를 포함한다. 해석은 최후에 낭만성이다.
해석의 조급증과 광기 혹은 낭만성, 이것은 그러나 해석의 상대성이나 무책임성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형식화 가능한 공리, 원리, 전제들이 전제해야 하는 조건, 형식화 불가능한 조건, 책임성의 조건이다. 낭만성은 무한한 책임에 대한 열정 아닌가? 낭만성은 모든 형식화가 의미 있게 되기 위해서 먼저 있어야 하는 비형식적 요소로서의 정념 아닌가? 해석의 시간성, 역사성은 이 정념 속에서 경험되거나 이 정념을 통하여 생성하는 것이 아닌가?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의 해석학, 현대적 의미의 해석학이 제기하는 마지막 물음, 이 책임의 문제를 간략히 다루기 위해서 일단 데리다의 텍스트 개념을 떠올려 보자.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푸코는 현대적 의미의 해석이 마지막에 가서 언어의 안과 밖 사이의 경계, "광기와 순수한 언어 사이의 접경 지대"를 지난다고 말했다. 데리다는 그런 해석의 개념을 텍스트라는 말속에 담고 있다. 해체론적 의미의 텍스트는 자기를 구성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계기를 지닌다는 의미에서 이중 회기의 시간 안에 놓여 있다. 이중 물림의 논리 안에 있는 텍스트, 왜냐하면 구축의 논리와 그 반대의 논리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해석은 텍스트에 내재하는 이 이중적 구조의 발견 혹은 생산이다. 두 가지 상이한 시간, 상호 모순적 구조가 교차하고 이어지는 지점, 그 광기의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 데리다적 의미의 해체이다.
전통적 의미의 해석은 기호의 의미론적 동요가 정지하게 될 텔로스를 전제한다. 이는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리꾀르의 해석학에서 분명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반면 구조주의 이후의 저자들, 가령 푸코나 데리다에게서 그 텔로스는 의미론적 동요가 소멸하는 지점이라기보다 다시 시작하는 지점이다. 아르케, 기원, 텔로스는 끊임없이 기존의 해석이 무효화되는 지점, 서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지점, 중층적 결정과 중층적 해석의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해석의 시간은 마무리되고 종결된다기보다 다시 시작될 처음의 상황에 이른다. 해체론적 의미의 텔로스, 그 해석의 영점(零點)은 아포리아다.
데리다는 이 아포리아를 "순수한 수행성"(un acte performatif pur)이 경험되는 지점으로 서술한다. 그것은 진위, 선악, 미추의 기준, 합리적 계산의 근거, 척도 등이 무효화되거나 상대화되는 지점이다. 거기서는 어떠한 규정적 판단도 불가능하다. 다만 창립적 판단, 기준을 설립하는 판단, 스스로 규범을 창조해야 하는 판단이 요구된다. 어떠한 적용 가능한 선행의 전제, 개념, 척도도 없는 곳에서 내려야 하는 결단과 결정의 순간이라는 의미에서 이 아포리아는 우리로 하여금 순수한 수행적 행위를 실행하도록 요구한다. 이 결단의 순간은 논리적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광기의 순간이다. 그러나 책임 있는 판단,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일수록 이 광기의 경험을 회피할 수 없다. 데리다는 재판관이 내리는 사법적 판단을 중심으로 이 회피 불가능성을 분석한다. 그 분석은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진행된다.
1) 모든 책임 있는 판단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합리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규칙에 부합해야 하고, 따라서 계산 가능해야 한다. 둘째, 자유롭게 내린 결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결단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단에 있어서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편견일 수 있는 기존의 규칙에 의하여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선행하는 모든 규칙, 현존하는 모든 전제를 판단 중지(에포케) 상태에 묶어 둘 수 있을 때, 극단적으로는 어떠한 규칙도 존재한 적이 없는 것처럼 가정할 수 있을 때 우리의 판단은 자유롭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선행 규칙의 구속력을 유보할수록 자유롭고 책임 있는 판단은 규칙 자체를 스스로 재창립하는 어떤 해석학적 행위로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 규칙 창조적 해석으로서의 판단은 그러므로 "규칙을 따르면서 따르지 않고, 법칙을 준수하는 동시에 파괴하거나 보류한다." 그런 의미에서 창립적 판단은 모순과 역설, 아포리아의 경험을 포함한다. 이 경험을 포함하지 않는 판단은 한낱 규칙 응용에 불과한 기계적 판단, 프로그램에 따르는 형식적 연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판단은 정확할 수 있지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판단,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일 수 없다. 정확성(justesse)은 정의로움(justice)을 함축하는 올바름, 공정성이 아니다. 정의를 구하는 결정은 법률이나 형식적 규칙 안에 안주할 수 없다. 오히려 형식적 규칙을 의심하고 그 기원으로 회귀하여야 한다. 정의는 본질상 형식화할 수 없는 것이고, 법률은 언제나 그에 대한 부분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를 구하는 판단이 자유를 전제한다면, 이 자유는 기존의 형식적 규칙에 대한 에포케를, 그리고 이 에포케는 규칙 발견적 해석을, 그리고 이 해석은 모순에 찬 아포리아의 경험을 함축한다.
2) 이 아포리아는 결정 불가능성(l'ind?cidable)의 시간이다. 이것과 저것 사이의 주저함, 어떤 선택도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의 번민을 겪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 결정 불가능성은 단순히 두 가지 의미 작용 혹은 두 가지 모순되고 제법 한정된 규칙, 그러나 동등하게 강제적이고 정언적(定言的)인 규칙 사이에서 동요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 결정 불가능성은 또한 단순히 두 가지 결정 사이의 동요나 긴장을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다. 결정 불가능성은 어떤 경험, 즉 계산 가능성이나 규칙의 질서에 이방적이고 이질적이기 때문에 법과 규칙에 의존해서는 끝내 불가능해지는 결단에 내맡겨야 하는 것에 대한 경험을 말한다." 그런 경험,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부딪히는 어떤 불가능자의 경험이 해체론적 의미의 경험, 아포리아의 경험이다.
이 아포리아의 경험에 도착해 있는 것, 그 결정 불가능자는 실증적으로 확인하거나 규정할 수 없고 어떤 규칙으로도 환원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현전의 형식 안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비현전성은 책임 있는 결단을 통해서 극복되거나 지양되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결단도 이 비현전성을, 따라서 결정 불가능자 자체를 제거할 수 없으며 거기에 일치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결단은 이미 규칙의 문맥, 계산 가능성의 문맥, 현전의 문맥으로 이동해 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결단은 비록 결정 불가능자에 의하여 각인되어 있고 그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결단은 현전적이고 현재적으로 그리고 충만하게 정의로울 수 없다." 결단이 내려지는 순간에 결정 불가능자는 이미 멀어져 있고, 그러므로 더욱 더 현전성을 상실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결정 불가능자는 모든 결단과 그 결단의 사건 속에 적어도 어떤 유령처럼, 그러나 본질적인 유령으로서 사로잡혀 있고 기숙하고 있다."
이 유령은 자유롭고 책임 있는 판단에 대하여 환원 불가능하고 해체 불가능한 이념, "무한한 정의의 이념"이다. 이 이념이 환원 불가능한 이유는 "모든 계약 이전의 타자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며, 타자가 이미 도래했기(venu) 때문이다. 정의는 언제나 이타적인 단독성으로서의 타자, 그 타자의 도래(la venue de l'autre comme singularit? toujours autre)이다." 타자, 그것이 요구하는 "정의는 앞으로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고(la justice reste ? venir), 도래해야만 하며(elle a ? venir), 스스로 도래자이고(elle est ?-venir), 필연적으로 도래할 사건의 차원 자체를 열어 놓는다." 아포리아가 결정불가능자가 경험되는 지점이라면, 이 경험은 이 다양한 의미의 도래, 도래자로서의 무한자, 즉 정의에 대한 경험이다.
3) 무한한 정의의 이념을 따르는 결단의 순간은 "위급을 다투는 조급한 순간, 유한한 순간(un moment fini d'urgence et de pr?cipitation)이다. 왜냐하면 정의를 구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이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결단은 여유 있는 숙고와 계산의 시간, 매개의 시간이 불시에 파탄에 빠지는 곳에서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결단의 순간은 반성과 연역의 시간에 나는 구멍이다. 회오리의 구멍, "왜냐하면 그런 결단은 과잉 활동적인(sur-active) 동시에 수동적인(subie)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판단 주체는 거기서 자신의 결정에 의하여, 마치 그 결정이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촉발되고 영향을 입는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어떤 통제불가능한 힘, 비반성적이고 무의식적인 능동성에 사로잡힌다.
급박성, 조급성, 무의식, 고뇌 등으로 가득 찬 이 순간은 어떠한 이론이나 지식으로도 완화되거나 조율될 수 없다. 그 "황급하고 조급한 결단은 무지(non-savoir)와 무규칙(non-r?gle)의 밤 속에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규칙과 지식의 부재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본질상 어떠한 지식이나 어떠한 보증에 의해서도 선행되지 않는 그런 규칙을 재창출하는 밤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모든 이론적 시야가 어두워지는 밤, 그러나 새 아침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밤, 황급히 불을 찾아야 하는 밤이다.
그런데 이 재촉하고 서두르는 조급성, 그 안달은 "언어적 행위 그리고 사법적이거나 법률적인 행위 같은 모든 행위의 수행적 구조(structure performative)"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즉 모든 언어적 및 비언어적 행위에는 수행적 구조가 내장되어 있고, 이 수행적 구조의 구성 요소 중의 하나가 조급성이다. 따라서 이론적 판단, 사실을 서술하거나 확인하는 언명은 이 조급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사실 확인적(constatif) 명제는 그 자체가 어떤 수행적 구조, 적어도 암묵적인 수행적 구조에 의존하고, … 따라서 이론적이고 사실 확인적인 명제가 지닌 올바름과 참됨의 차원은 언제나 수행적 명제가 서 있는 올바름의 차원을, 다시 말해서 수행적 명제에 본질적인 조급성을 전제한다."
이는 이론적 진리는 실천적 결단 안에, 그 결단의 진리로서의 정의 안에 존재하거나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론적으로 참된 판단은 먼저 수행적 차원의 공정한 결단을 선행 조건으로 (해야) 한다. 이 결단은 모든 이론적 시야가 맹목에 놓이는 곳, 나아가서 칸트적 의미의 이성이 제공하는 규제적 지평, 뿐만 아니라 메시아론적 기대 지평이 암흑에 빠지는 곳에서 요구되는 전(前)이론적 판단이다. 그 맹목과 암흑은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하거나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아포리아에서 유발되는 "그 수행성의 넘침 때문에, 언제나 과도한 해석의 돌출 때문에, 정의의 위급성과 그 구조적 조급성 때문에" 발생한다. 아포리아는 지식, 이론의 지평이 말소되는 장소이다.
이런 해체론적 아포리아의 개념에서부터 푸꼬의 마지막 논점이 제기하는 문제, 해석의 책임이라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푸꼬에 따르면,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해석은 자신의 한계로 회귀한다. 따라서 해석은 이미 해석된 것을 다시 반복하고 이미 총체화된 것을 다시 열어 놓는, 말하자면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지녔다. 이상에서 검토한 해체론적 아포리아의 개념은 이 해석의 자기 말소적 회귀를 어떤 필연적 귀결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암시하고 있다. 거기서 암시된 시각에 자리할 때, 그것은 이론적 가치와 실천적 가치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되는 일반적 지각 변동의 징후일 것이다.
앞(1절)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의 사상사적 동요는 이론적 가치(진), 실천적 가치(선), 예술적 가치(미) 사이에 상존하는 헤게모니 투쟁의 가능성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면, 현대적 해석의 자기 회귀적 성격도 마찬가지로 이론적 가치와 실천적 가치 사이의 역동적 갈등에서부터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해체론적 아포리아의 개념은 이론적 가치의 불충분성에 대한 극단적 체험을, 나아가서 이론에 대한 실천의 우위를 표명한다. 그것은 어떠한 이론도 실천적 사유에 대하여 구속력을 상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특정한 유형의 실천적 사유, 변형되었거나 은폐된 형태의 실천적 사유임을 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현대적 해석의 자기 말소적 회귀는 어떤 실천적 지향성을 그 동력으로서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석은 단순히 이론적 진리를 구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 바로 거기에서부터 그 자기 파괴적 회귀가 처음 비롯되는 것이다.
이는 해석이 협소한 인식론적 의미의 진리 이상의 것을 구한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해석은 한정된 이론의 테두리, 형식성의 한계 안에서 올바르게 되기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시야에서 올바르기를 바란다. 현대적 해석은 형식적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형식적 진리와 오류가 있기 위해서 먼저 있어야 했던 가치와 이념을 향한다. 이 새로운 해석학을 끌고 가는 것은 어떤 형식화 불가능한 진리, 형식화되자마자 그 형식화 작업을 상대화하는 이념, 정의와 그에 대한 책임으로 향한 열망이다. 해석이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로 회귀하고 이미 획득된 결과를 무효화한다면, 그것은 단지 이론적이고 형식적인 진리에 대한 책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론적 진리를 초과하는 가치, 형식화 불가능한 무한자에 대한 책임 때문일 것이다.
푸꼬가 말하는 광기, 순수한 언어의 바깥에 대한 접촉의 경험으로서의 광기는 이 책임의 시련, 그 책임에 대한 열망, 이론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장소에 대한 충동일 것이다. 이 열망과 충동은 진리와 정의 사이의 불균형 속에서 일어나는 정서, 어떤 낭만적 정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로서의 낭만주의적 충동과는 달리 본질상 아직 미래에 속하는 것, 역사적 미래를 개방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다. 이러 낭만적 열정 안에서 이해할 때, 해석은 단순히 이론적이거나 단순히 실천적인 행위가 아니다. 해석은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행위, 진리와 더불어 정의를 구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해석은 또한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가? 미적 가치를 구한다고 말할 수 없는가? 우리가 이렇게 덧붙일 수 있는 물음, 낭만주의적 낭만성을 생각하면서 던질 수 있는 이 물음은 결코 사족이 아닐 것이다. 그 물음이 유효하다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렇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의 사상사적 동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20세기 후반기에서 관찰되는 철학의 변형, 나아가서 인문적 사유의 형질 변화는 아직 예상할 수 없는 사건들을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