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아주까리 잎을 따서 나물을 만들었습니다
공전과 자전
2006. 1. 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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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마자로 불리는 아주까리 |
ⓒ2005 이형덕 |
씨가 여물 때까지 기다리다 누렇게 줄기 아래 잎들이 시드는 걸 보고, 날 잡아 잎을 땄습니다. 금세 수북하게 모입니다. 마당에서 일일이 잎줄기를 떼어내고 물에 한 차례 씻어낸 뒤, 부엌으로 가져가 물에 데치기 시작합니다.
적당히 삶아야 질기지도, 무르지도 않습니다. 약간 색이 누르스름해질 때까지 데칩니다. 건져내어 찬물로 헹구어야 합니다. 더운 기가 남으면 요새 날씨에도 쉬어 버리기 쉽습니다. 헹군 뒤에는 둥글게 뭉쳐서 있는 힘을 다해 물기를 짜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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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보따리 따 낸 아주까리 잎 |
ⓒ2005 이형덕 |
한보따리 되던 아주까리잎은 끓는 물에 데쳐지며 훌쩍 양이 줄어듭니다. 그것을 다시 물기를 짜내면 또 줄어듭니다. 바삭바삭 말려내면 또 줄어들 겁니다. 한보따리 잎을 말려도, 막상 말린 나물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여태껏 말린 나물을 장에서 사다 먹을 때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고, 많은 양을 말린 것인지 알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먹기만 했습니다.
아주까리 나물을 데치느라 서툰 부엌일을 하며 여러 가지 공부를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어른들 말을 듣고 자란 세대인지라 누가 밥상을 차려다 주지 않으면 온종일 굶고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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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끓는 물에 데쳐내기 |
ⓒ2005 이형덕 |
부엌일을 하면서, 여자들의 고달픔을 몸소 겪게 되며, 내 앞에 놓이는 밥상 하나가 차려지는 수고로움과 힘겨운 과정을 공감하게 되니, 그를 차린 아내나, 차려진 밥상이나 고마움과 소중함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설거지를 해 본 뒤라면, 생각없이 여기저기 그릇을 휘적거리지 않게 됩니다. 음식을 남기거나, 과다하게 먹지 않게 됩니다. 거기에 덧붙인다면 아주까리 잎이든, 고구마 줄기든 자신이 기른 작물을 거두어 상에 올리는 일도 해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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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물로 헹구어 물기 짜내기 |
ⓒ2005 이형덕 |
여태껏 보름날, 밥상에 올라오는 아주까리 묵나물을 건성으로 바라보며 아무 생각없이 먹기만 하던 때와 다른 맛을 느끼게 됩니다. 장터 한구석에 주먹만한 묵나물을 내어놓고 팔던 나물장사 아줌마에게 너무 비싸다고 몇 백 원 깎던 것도 가슴에 남게 됩니다. 이제 대보름날 별로 맛은 없지만 여러 나물들 틈에 끼어 밥상에 올려지던 아주까리 나물을 귀히 여기는 마음과, 그것을 길러 다듬어 밥상에 올린 수고로움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귀로만 들어서 알게 되는 일이 아니요, 말로만 한다고 알게 된다고 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쌀 미(米)자를 파자하면, 여든여덟 번의 손이 간다는 지식은 있지만 정말 여든여덟 번, 논에 나가 허리를 굽히고 손을 쓴 이가 느끼는 쌀 한 톨의 경험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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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물 말리기에 좋은 가을입니다 |
ⓒ2005 이형덕 |
아직 안방에 앉아, 밥상 오기만 기다리는 남자분들에게 고하노니, 부엌에 들어가 자신이 길러낸 작물들을 손수 다듬어 가족들의 밥상에 올려 보십시오. 오늘 제가 얻은 어설픈 아주까리 명상보다 훨씬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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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주까리 잎을 따서 나물을 만들었습니다
글쓴이 : e-이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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