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장아치// (펌)
공전과 자전
2006. 1. 11. 19:04
장아찌가 시작된 유래는 김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각종 젓갈에 찹쌀죽 쒀 마늘 따위
양념을 찧어 고춧가루로 비비는 게 요즘 김치라면 조선 순조 때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물김치로 이해하면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그 이전에 고려시대로 가면 아무 양념이나 향을 더하지 않고 맨 소금물에 절여서 저장해둔 김치가 있다. 이 김치가 바로 요즘 단무지에 가까웠다. 때로 사극(史劇)을 찬찬히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도 붉은 김치가 나오는데 이는 명백히 소품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연출자의 잘못이다.
입맛이 없을 때나 반찬을 마련하기 힘들 때 장독대에서 꺼내 다소 짭짤한 맛에 몇 점 주워 먹으면 밥 한 그릇 뚝딱 비워내는 우리네 밥상에서 빠트릴 수 없는 귀한 존재다. 젓갈도 이와 유사하나 주로 생선이었던 반면 장아찌는 농산물, 산나물이었다는 점에서 김치 원조로서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저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따뜻한 남부지방이나 겨울이 1년 중 절반 이상인 북부 산악지대이나 짜면 짤수록 좋았다. 군내가 나지 않으면서 원형 그대로 맛을 유지하는 게 쉽겠는가마는 대체 수단이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금을 듬뿍 뿌려 땅에 묻어야만 했던 것이다.
말려두기도 하고, 얼려도 놓지만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눈밭 냉이와 봄동, 시금치를 먹기 시작한 게 엊그제인데 6월을 며칠 앞둔 이 시점에서 엄나무싹, 오가피싹, 옻순, 땅두릅, 두릅 철이 지나고 이제 막 죽순, 곰취, 참나물을 먹어보려는데 철이 지났다고 내 곁을 떠나가니 이 무성한 세상에서 이제 봄 향기를 맛볼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고통은 스트레스다. 현대의학에서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이 장수비결이라 했는데 마침 장수촌인 순창, 담양, 곡성, 구례와 남성장수촌인 인제군을 다녀보니 스트레스가 없는 오지인데다 웬만하면 장아찌로 먹는 습성이 있더라.
내 첫 번째 간택을 받은 나물은 두릅이다. 엄지손가락만할 때 먹는 게 부드러워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가 최고지만 향에서는 다소 핀 듯하고 가시가 곳곳에 붙어 따기조차 불편한 20cm에 육박하는 것이다. 그냥 생으로 넣기도 하고 데친 뒤 살짝 말려서 넣어뒀다. 시원하고 깔끔하면서 두릅보다 조금 더 쓴 맛이 나는 개두릅-엄나무싹도 넣었다. 오갈피와 가죽나물도 빠트리지 않았다. 옻순마저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더덕도 절간에서 하던 대로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장독에 빠트렸다. 당귀 잎도 들어갔다. 그 다음에 올 최고로 보배로운 두 친구가 있다. 다름 아닌 곰취와 참나물이다. 두 녀석을 만나러 두 번 다녀온 사이 집안 냉장고가 가득 차서 이 사람 저 사람 나눠주는 것도 일이었고 된장도 바닥을 드러냈다. 부랴부랴 장모님께 된장 한 통, 누나네에서 된장 한 통을 공수 받아 작업에 들어갔다.
첫째, 수확이 많지 않아 시장 형성이 쉽지 않다는 점이고 둘째는 채취 시기가 단 며칠로 짧은 게 흠이고 셋째는 보관이 용이치 않음이요, 넷째는 쌈으로 싸거나 삶아서 나물로 먹거나 어린 순을 생으로 무쳐 먹는 것 외엔 조리법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다. 곰취와 참나물을 아직 나눠 먹고 시험 재배하는 기간이므로 며칠간 방치하다 보면 애써 뜯어온 나물이 썩어가는 참담한 상황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다. 큰 김치 통으로 된장 2통, 고추장 1통과 소금물에 쓰린 마음을 달래며 넣어야 했다. 두고두고 먹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김치를 담가 먹는 것보다 수월하니 마음이 바빠지는 요즘 가장 간단한 방법 아니겠는가.
장아찌의 장점이 무언가. 바로 농사 소득을 높이는 한 방안이라는 점이다. 오래 변치 않아 유통에도 용이하니 뭘 더 바랄까. 거칠게 씹히는 자연의 선물이야말로 건강식이요, 참살이에 가장 가까운 음식이다. 진정한 웰빙은 주거환경과 음식, 의복에 노동 강도, 정신적 여유가 충만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쉽지 않은 삶이다.
내 손에선 된장 냄새와 나물 향기가 버무려져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지만 꺼내 먹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과연 장아찌는 몇 가지나 될까? 내 실험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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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장아치// (펌)
글쓴이 : e-이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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