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진화론-창조·지적설계론' 논란
공전과 자전
2006. 1. 1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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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모든 생물은 원시적 종류의 생물로부터 진화해왔다'는, 즉 인간 역시 좀더 열등한 생물체로부터 진화했다는 학설은 성서의 창조론을 철석같이 믿고 살던 서구의 기독교인들을 깊은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진화론은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현대 생물학에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21세기 초입에도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하며 100여 년 전과 비슷한 격론을 주도하는 사회가 있으니 바로 미국이다. 첨단산업을 이끄는 거대한 제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미국인 절반 이상 진화론 거부 올해 10월 실시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53%의 미국인이 '신이 성서에 나온 방법으로 인간을 지금 모습 그대로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 외에 31%에 달하는 미국인들은 인간이 '수백만 년에 걸쳐 다른 생물체로부터 진화해왔지만 그 과정은 신이 주관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인류 기원과 진화에 신의 개입을 인정하는 비율이 84%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오직 미국인의 12%만이 '인간이 다른 생명체로부터 진화했으며 그 과정에 신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는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은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다. 53%의 미국인이 믿는 말 그대로의 '창조론(Creationism)'도 있지만, 20여 년 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은 나름대로 세련된 이론으로 포장돼 있다.
지적설계론은 이 세상이 너무나 오묘하고 복잡해서 도저히 진화론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꼭 기독교 신이 아니더라도 절대자의 개입 없이는 이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기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진화는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뭔가 '지능이 있는 존재(intelligent agent/s)'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이론은 진화론이 아직 명쾌히 밝히지 못한 부분("gaps/problems" in the theory of evolution)이 있다고 지적하며 나름대로 과학적인 비판의 각을 세우기도 한다. 이 이론을 옹호하는 과학자 중 하나인 마이클 베히 교수는 이 이론을 '빅뱅'론에 비유한다. 둘 다 처음 제기됐을 때는 정설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결국 맞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지적설계론에 의해 생겨났다" 그러나 창조론은 물론이고 지적설계론조차 현재 과학계에서는 입지가 없다. 미국 국립과학원은 1999년 발간한 <과학과 창조론>을 통해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유는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종교적 믿음에 기반을 둔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고", "새로운 발견에 따라 고칠 수 있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적 검증과 관계없이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창조론 및 지적설계론을 지지하며 학교교육에 이를 반영하려고 노력해왔다.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진화론 외에 창조론과 지적설계론도 소개해야 한다는 것. 이 움직임은 창조론보다 과학에 일견 가까워 보이는 지적설계론이 본격 등장한 1980년대 말 이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창조론은 종교적 믿음이기 때문에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이미 1987년 내린 상태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퍼져 나오는 '지적설계론 공립학교 과학교육 반영 투쟁'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올 8월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서도 미국인 중 64%가 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미국에서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곳만도 자그마치 20개 주에 달한다. 이중 캔자스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는 올해 특히 미국 전역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창조론 교육의 선봉, 캔자스 주
1999년 캔자스 주 교육위원회는 주 전역의 공립학교 생물학 시간에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가르치는 안을 위원회 표결로 통과시켜 미국 전체를 경악케 한 바 있다. 그러나 2년 뒤 교육위원회 위원들이 반대의견을 가진 위원들로 교체됨으로써 교육커리큘럼은 다시 진화론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 다음 선거(2004년)에서 또다시 교육위원회가 물갈이됨으로써 창조론이 다시 기세를 올리는 형국이 되었다. 결국 과학 시간에 진화설 말고도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관해 설명하는 다른 이론이 있다는 설명을 할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과학 기준안이 올해 11월 8일 캔자스 교육위원회를 통과했다. 표결 결과는 6-4. 캔자스 교육위원회 10명 위원 중 6명이 새로운 과학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캐틀린 세벨리우스 주지사까지 나서서 "우리가 캔자스에 첨단산업을 계속 유치하고 우리 주를 발전시키려면 과학을 약화시킬 것이 아니라 강화해야 한다"며 "교육위원회가 힘을 쏟아야 할 진짜 업무는 캔자스 학교를 강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역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반대표를 던진 재닛 워는 표결에 들어가기 전에 결과를 예측하고는 침통해하며 "이제 우리는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표결 현장을 참관한 고등학생들의 반응도 공영 라디오를 타고 전 미국에 전달됐다. "저기 저 찬성표를 던진 아저씨들을 봐요. 중년 아저씨들이 우리가 뭘 배울지를 결정하다니. 그러면서 학생들이 이 결정을 좋아할 거라고 하는데 우리는 정말 창피해요." 해나 티터라는 학생은 <뉴욕타임스>에 "우리가 고등학교 졸업반이라 다행이에요, 우리보다 어린 애들은 이제 과학시간에 과학이 아닌 걸 배워야 하게 됐으니 정말 안 됐어요"라고 말했다. 표결결과에 만족을 표한 사람들은 창조론을 지원해온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존 웨스트 같은 사람들뿐이었다. 존 웨스트는 "이제 캔자스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과학 기준을 갖게 됐다"며 반색했다. 진화론 대 창조론 : 과학 논쟁이 아닌 이념 싸움 미국에서 벌어지는 진화론 거부 움직임은 점차 보수화하며 종교 색채가 짙어지는 현재의 미국 문화와 맞닿아 있다. 이번 캔자스 주의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여섯 명이 모두 공화당원인 것도 이런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이와 관련,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인 하워드 딘이 지난 8월 14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을 빗대어 한 말은 창조론-진화론 논쟁이 정치성향과 무관치 않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대통령은 오랫동안 과학에 적대적이었다. 이 정부는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정부들 중 가장 과학에 적대적이다.… 나는 부시의 말에 모욕감을 느낀다. 이건 미국에 해를 입힐 것이다. 과학은 과학으로 가르쳐야 한다. 종교를 가르치고 싶다면 그건 다른 논쟁이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으로 가르쳐야 한다." 또 캔자스 주와 함께 이목을 끌었던 펜실베이니아 주의 창조론 논란도 과학 논쟁이 아닌 정치적 색채를 띤다. 2004년 10월,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시 교육위원회는 지적설계론을 중학교 생물 시간에 진화론의 대안으로 소개할 것을 입안했다. 9학년 생물 첫 시간에 '진화론에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며 지적설계론이 그에 대한 한 대안이다, 그러니 더 알고 싶은 학생들은 학교 도서관에 있는 다른 교과서(Of Pandas and People)을 찾아 읽으라고 소개하라'는 것이 내용이다. 이에 대해 일단의 학부모들이 반발하면서 해당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들은 "지적설계론을 과학시간에 포함시키는 것은 곧 종교를 과학의 영역에 불러들이는 것이며, 이는 미국의 원칙인 종교와 국가의 분리를 해친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하며 올해 9월 26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어졌다. 법원 판결은 내년 1월경에 나올 예정이다. 이 와중에 11월 8일 미국에서 있은 크고 작은 지역 선거에서 이번 소송에 제소된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교육위원회 위원 8명 전원이 재선에 실패했다. 이들은 모두 공화당 소속이고 새로 당선된 이들은 민주당원들이었고 선거전의 쟁점은 당연히 과학교육에 지적설계론 도입이 타당한가였다. 과학에 발을 걸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개개인의 종교적 이념에 입각한 이 논쟁은 앞으로도 풍향계처럼 미국 사회의 종교화, 보수화의 흐름의 향방을 보여줄 것이다. |
출처 : '진화론-창조·지적설계론' 논란
글쓴이 : e-이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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