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뇌 속 아연 연구해 치매정복 앞당긴다

공전과 자전 2006. 1. 11. 19:39

노벨상 후보 데니스 최와의 만남

고재영 교수는 기초의학자일 뿐 아니라 임상의로서의 경력도 풍부하다. 신경질환자의 상태를 직접 진찰하고 기초연구도 동시에 수행하는 국내에서는 드문 과학자다.
“뇌 세포 안에는 극미량의 아연이 존재해요. 평소에는 다른 신경세포에 신호를 전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과도하게 분비되면 세포를 죽게 만들죠. 현대 난치병의 하나로 꼽히는 치매도 바로 아연의 과다한 분비가 한 가지 원인이에요.”

우리 몸에는 아연(Zn), 철분(Fe), 칼슘(Ca), 구리(Cu) 등 여러 가지 금속 원소들이 주요한 생리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금속의 양이 과도하게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많으면 질병이 발생한다. 고 교수는 이 가운데 ‘아연과 관련된 뇌질환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고 교수는 아연 연구에 20년 이상을 매달려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쏟아냈다. 1997년부터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창의연구단의 하나인 중추신경계시냅스아연연구단을 이끌기 시작한 것도 그의 남다른 연구업적이 인정받았기 때문.

고 교수는 1981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의 스승은 노벨상 수상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한국계 과학자 데니스 최(52). 데니스 최는 현재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MSD) 연구소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신경생리학자다(이 연구소의 연구개발부문 총괄 부사장은 역시 노벨상 후보의 한 명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한국계 과학자 피터 김이다).

흥미롭게도 데니스 최 박사는 조미료 성분의 일종인 ‘글루타메이트’ 전문가다. 뇌 신경세포에서 글루타메이트가 과도하게 분비되면 독성을 일으켜 뇌졸중 등 각종 질환을 낳는다. 스승과 제자 모두 얼핏 생각하면 뇌와는 직접 관련이 없어보이는 ‘엉뚱한’ 소재를 택한 셈이다.


‘사이언스’에 6편 게재

아연이 뇌에서 분비된다는 사실은 1950년대부터 알려져 있었다. 고 교수는 아연이 글루타메이트 못지 않은 독성 물질이라는 점을 규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학 첫 해부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했다. 최근까지 ‘사이언스’에만 발표한 논문 수는 6편. 한국 학계에서 드문 업적이다.

고 교수의 또 한 가지 ‘드문 면’은 환자를 직접 치료한 임상경험이 풍부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실험실에서만 머물지 않고 직접 신경계 질환자들을 진찰하고 있다. 이런 임상경험은 ‘본업’인 기초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2002년에는 생쥐실험을 통해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을 일으키는 독성 단백질(베타아밀로이드)이 아연 때문에 많이 축적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 치매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이 아연에 많이 노출되면 치매에 잘 걸리게 되는 것일까. 고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뇌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에 다른 부위에서 오는 물질로부터 잘 보호돼 있다. 행여 음식이나 호흡을 통해 인체에 들어온다고 해도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고 교수가 비유해 설명한 사례는 ‘중국레스토랑 신드럼.’ 중국 음식에는 조미료가 많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손님들이 조미료 성분인 글루타메이트를 많이 섭취하게 되는 꼴. 그래서 한 때 중국레스토랑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두통에 시달린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다.


‘네이처 리뷰’에 소개, ‘아연 학설’ 정립

지난 6월 1일 고 교수는 과학자로서 가장 가슴 뿌듯한 날을 맞았다.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자신의 이론을 이날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 리뷰 뉴로사이언스(Nature Reviews Neuroscience)’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리뷰’란 용어가 붙은 전문지는 단순히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수십년간 진행된 연구결과를 종합해 하나의 ‘학설’을 세워 소개한다.

“치매뿐 아니라 세포가 죽는 모든 과정에 아연이 관여한다고 생각해요. 또 분비되는 양이 지나치게 적어도 병이 생기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동양철학에서 얘기하는 음양의 조화 같은 개념이죠.”


● 고재영 교수 약력

1981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89년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1989년 - 1991년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박사후연구원
1991년 랜드 인테리어 어워드 수상
1991년 - 1992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의대 인턴과정
1992년 - 1995년 미국 워싱턴대 의대 레지던트과정
1995년 - 1996년 미국 워싱턴대 신경과 교수
1996년 - 현재 울산의대 신경과 교수
1997년 - 현재 창의연구단 중추신경계시냅스아연연구단장
2000년 화이자의학연구상 수상
2001년 과학기술부 생명공학우수과학자상 수상
2004년 - 현재 국제의학저널 ‘신경생물질환(Neurobiology Disease)’ 편집위원



중추신경계시냅스아연연구단은?

1997년 과학기술부가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선정된 연구단이다. 여러 신경계 질환 가운데 뇌 안에 존재하는 아연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밝히고 이에 근거한 질환 치료제 발견을 중심 목표로 삼고 출발했다. 최근까지 뇌경색이나 간질 등 급성 뇌 손상이 일어날 때 아연이 신경세포 안으로 유입되거나 내부에 축적돼 신경세포의 죽음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아연이 신경세포를 죽이는 여러 과정들을 차단함으로써 신경세포사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까지 항상 평균 10여명의 연구원이 실험에 매달려 왔다. 고 교수가 처음 연구단을 이끌던 시절에는 울산의대에 대학원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연구원을 뽑아 와야 했다. 연구실을 거쳐간 멤버들은 현재 울산의대를 포함해 서울대 세종대 등에서 교수로 임용돼 활약을 펼치고 있다.

현재 고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연구프로젝트를 신청하고 있다. 인체 내 포도당이 분해돼 만들어진 파이러베이트라는 물질이 아연에 의한 세포의 사망을 막는다는 연구결과를 임상적으로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교통사고로 뇌손상을 당한 환자가 대상이다. 자신의 ‘기초연구’ 성과가 환자에게 직접 적용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글/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2005년 08월 18일)
출처 : 뇌 속 아연 연구해 치매정복 앞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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