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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치매 10~20년 뒤 치료된다

공전과 자전 2006. 1. 11. 19:53

치매 10~20년 뒤 치료된다 - 치매정복연구단 서유헌 교수

 

 

두뇌 모형을 보여주며 뇌의 특징을 설영하는 서유헌 교수
지난해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여자주인공을 맡은 손예진은 이 영화에서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린다. 20대에 건망증도 아닌 치매라니? 정말 가능한 일일까.

‘치매정복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서유헌 서울대 의대 교수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서 교수에 따르면 20, 30대 젊은 사람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유전성 치매에 걸리는 경우다. 유전성 치매는 전체 치매의 10% 정도다.

그래도 치매라고 하면 역시 알츠하이머다. 전체 치매의 60%를 차지한다. 지난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이 병에 걸려 사망했다. 이밖에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 일어나는 혈관성 치매가 전체 치매의 약 20%를 차지한다.


암보다 무서운 치매

치매는 정상적인 뇌가 후천적인 외상이나 질병에 의해 손상되고 파괴돼 나타나는 질병이다. 지능, 학습, 언어 등 인지기능과 고등 정신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처음에는 주로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기지만 나중에는 신체 변화가 나타난다. 중증 치매 환자는 의자나 침대에서만 지내다가 근육이 경직돼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다.

연구단에서 사용하는 실험장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치매 때문에 고생할까. 2001년 미국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5%가 중증 치매이고 15%가 경증 치매에 시달린다. 한국도 65세 이상 노인의 약 10%, 75세 이상 노인의 20%가 치매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85세가 넘으면 절반 정도가 치매에 걸린다. 전문가들은 일생 동안 치매에 걸릴 확률을 12~17%로 보고 있다.

“치매 환자는 5년 뒤에 현재의 2배로 늘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에 치매로 등록된 환자가 30여만명입니다. 암 환자보다 많습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오래 사는 고령화 시대에 치매는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암보다 더 무서운 병입니다.”

과연 인류는 치매라는 생각지도 못한 병에 무릎을 꿇을까. 서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10년 뒤에는 치매를 치료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완전 정복이야 어려울지 몰라도 지금보다는 획기적인 치료책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연구를 하는 것 아닙니까.” 서 교수가 보여주는 자신감이다.

치매를 정복하려면 먼저 병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어떤 원인에서든 치매는 뇌세포가 대량으로 파괴돼 일어난다. 과연 뇌세포를 파괴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서유헌 교수가 뇌세포를 관찰하고 있다
“현재 가장 손꼽히는 물질이 ‘베타(β)-아밀로이드 단백질’이라는 독성 물질입니다. 치매 연구자의 90% 정도는 이 물질이 뇌에 쌓여 뇌세포가 파괴되고 치매가 생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결책도 이 단백질에 초점이 맞춰 있죠.”

그러나 ‘창의연구단’답게 서교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치매의 원인 물질은 맞지만 다른 치매 원인 물질이 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지목하는 것은 뇌 속에 있는 ‘C단 단백질’이다.

“C단 단백질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보다 독성이 10배나 더 강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양의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준 쥐는 열흘 만에 치매증세를 나타내지만 C단 단백질을 준 쥐는 하루만에 치매가 발생합니다. C단 단백질이 뇌에 쌓이면 뇌세포가 파괴돼 치매에 걸립니다.”

C단 단백질과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관계도 흥미롭다. ‘긴 C단 단백질’이 두 동강 나면 하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되고 다른 하나는 ‘짧은 C단 단백질’이 된다. 두 C단 단백질 모두 독성이 강해서 치매를 일으킬 수 있다.


C단 단백질 치매 원인 밝혀

서 교수는 C단 단백질의 독성이 10배 이상 높아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199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했다. 또 2003년에는 베타 단백질과 달리 C단 단백질이 신경 세포의 핵에 침투하는 과정과 세포핵 속으로 들어간 이 단백질이 독성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밝혀 과학학술지 ‘파세브’(FASEB)에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C단 단백질은 ‘Fe65’라는 단백질의 도움으로 신경세포의 핵 속에 침투한다. 핵 속에 들어간 C단 단백질은 다시 ‘CP2’라는 단백질과 결합해 독성 유전자(GSK3 β)를 활성화한다. 만일 C단 단백질이 Fe65 또는 CP2 단백질과 결합하는 것을 막는다면 치매를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단은 C단 단백질의 인산화가 핵 속으로 이동을 촉진하고 인산화를 막으면 핵 속으로 이동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최근 발견하고 저명 학술지에 투고 중이다. C단 단백질에 대한 여러 연구로 치매정복연구단은 치매에 대한 세계 주요 연구소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뇌세포 관찰에 사용되는 현미경
서 교수가 뇌질환과 관련해 새롭게 밝혀낸 것은 C단 단백질 뿐만이 아니다. 치매정복연구단은 2002년 ‘알파(α)-시누클레인’이라는 단백질이 뇌세포를 보호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단백질이 평소에는 뇌세포를 보호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아 이 단백질이 늘어나면 오히려 뇌세포를 파괴한다. 이 단백질은 파킨슨병의 원인 물질로 주목받고 있으며 알츠하이머성 치매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서 교수는 스트레스가 직접적으로 치매의 발병을 앞당기고 증세를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얻고 저명 학술지에 제출 중에 있다. 서 교수는 “뇌를 위해서라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라며 웃었다.

연구단이 치매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과 함께 중점을 두는 것은 치료 방법이다. 현재 치매 치료약은 기억력을 높이는 등 일시적인 증상을 개선하는 대증 요법에 그치고 있다. 뇌세포의 사멸을 막는 근본적인 문제를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구단은 10여년 전부터 천연물에서 디하이드로에보디아민이라는 물질을 추출해 현재 제일약품과 함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서 교수는 “이 물질은 베타 아밀로이드와 C단 단백질의 합성을 막고 이미 만들어진 독성 단백질의 독성을 낮춘다”며 “동물 시험에서 결과가 좋게 나와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연구단은 뇌세포의 사멸을 막고 치매 환자의 기억력을 올려주는 기능의 신약 3가지를 개발하고 있다. 서 교수는 “창의연구단 기간이 4, 5년 남았는데 그때까지는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실험에 쓰이는 약품들
치매 치료와 관련해 연구단이 주목하는 것은 신경 줄기세포다. 줄기세포로 신경세포를 만들어 뇌세포가 파괴된 부위에 넣어주고 이 세포가 자라나 파괴된 뇌세포를 대체하면 어느 정도 치매나 파킨스씨병 등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아직 세계적으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초기 연구만 되어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연구단에서도 줄기세포를 길러 신경세포로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래도 줄기세포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고 서 교수는 당부했다.

“요즘 일고 있는 줄기세포 열풍은 지나친 감이 있어요. 줄기세포로 신경세포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줄기세포로 만든 신경세포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실제로 얼마나 기능을 회복하느냐 입니다. 세포가 많이 파괴된 뇌에 줄기세포를 넣어주면 일시적으로 효과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러나 새 신경세포가 자라서 척수까지 내려오는 것은 현재로는 불가능합니다. 몇 주 이상 살지도 않아요. 중증 치매 환자는 아무리 줄기세포를 넣어도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나친 교육은 뇌를 파괴한다

뇌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니 서 교수는 요즘 교육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유아와 어린이 시절에 뇌의 발달 속도와 특징에 맞지 않는 교육을 너무 많이 시킨다는 것이었다. 연구실에는 교육학과를 나온 학생도 있었다.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연구원
“복제 인간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나친 교육으로 만들어진 인조 인간을 걱정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뇌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하면 회로가 망가집니다. 그런데 지금 교육이 그렇습니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을 고등학교에서 준비해야지 왜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준비합니까. 대학 입시 교육에 눌려 모든 교육이 파행을 맞이하는 것을 빨리 개선해 유아교육부터 대학 교육까지 정상화해야 합니다”

서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1년 안에 성인의 뇌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20여년의 세월을 투자해야 천천히 성인의 뇌로 성장한다. 더구나 뇌의 부위 별로 성장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 교육을 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유아 때는 뇌의 전두엽(이마 앞부분) 부위가 많이 발전하는데 이 부분은 창의력과 종합적 사고력, 인간성과 도덕성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 때는 창의성과 인성 교육을 시켜야지 단순 반복적인 지식을 외우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초등학교 가기 전에 한글 잘 읽고 구구단 외우고 영어 몇 마디 할 줄 아는 것을 좋아하면 안됩니다. 그런 교육은 초등학교 들어가서 해도 됩니다. 뇌의 회로에 과잉 전류가 흐르면 불이 납니다. 다 욕심 때문이죠. 학교 가기 전에는 인성 교육 잘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 서유헌 교수 약력

1973년 서울대 의대 학사
1981년 서울대 의대 대학원 신경약리학 박사
1984년 ~ 1988년 미국 코넬대 의대 교환교수
1980년 ~ 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
1996년 ~ 현재 국제치매학회 이사
2000년 ~ 현재 서울대 의대 신경과학연구소장
2002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
2004년 의당 학술상


치매정복창의연구단은?

2000년 10월 과학기술부가 창의연구단으로 지정한 치매정복연구단은 단장인 서유헌 교수를 필두로 김혜선 서브그룹리더, 박사후 연구원 3명, 박사과정대학원생 7명, 석사과정대학원생 9명, 연구원 4명 등의 총 25명의 연구인원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서울대 의대에 있는 유일한 창의연구단이다.

치매정복연구단은 신경세포 및 유전자변형쥐를 이용해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원인으로 꼽히는 C단 단백질과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병리생리적 역할을 규명하고 있다. 또 파킨슨병을 포함한 신경 퇴행성 질환의 원인물질로 알려져 있는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과 그 대사산물이 뇌질환을 일으키는 과정도 연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매년 연구결과를 파마콜로지칼 리뷰(Pharmacological Review), 파세브(FASEB), 뉴로사이언스 저널 등 저명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고 있으며 국내외 제약회사와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또 국내 학자들과 매년 3월 세계 뇌 주간을 개최하고 뇌 연구에 대한 각종 세미나와 행사를 함께 여는 등 치매정복연구단은 국내에서 뇌 연구의 중심기관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글/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2005년 02월 22일)
출처 : 치매 10~20년 뒤 치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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