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날에...축배를...!
만유가 환호하며
축복이 흰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그날
나는 저렇게 흩날리는 꽃 처럼
자유롭게 순결하게 아름답게
경쾌한 천국의 새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싶다.
축배의 노래를
승리의
노래를
영광의 노래를
사랑의 노래를 들으며...
새예루살렘 가득히 울려퍼지는
새날의 종소리를 들으며...
어린양의 결혼식에서
모든 것 잊고...
어린아이 처럼 웃으며
영원한 청년으로 노래하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어린양의 결혼식장에서...
왕답게...
만유를
상속할 아버지의 황태자답게...
축배를 들며
새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고 싶다.
아버지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축배를 높이 들며
멋진 춤을 추고싶다.
왕자답게...
황태자답게...
영원한 첫사랑을 알리는
축배의 노래를 부르리라.
새몸 입고
새옷 입고
새예루살렘성에서...
생명강가에서...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19:6-9)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사61: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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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에 예수를 믿다가 잡히면 이런 고통을 받았다.
처음에 그들은 매를 맞았다.
그런데 이 매가 보통 매가 아니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그리스도의 살점을 뜯어냈던
바로 그 채찍으로 뼈와 장기가 드러날 때까지 얻어맞았다.
이 광경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했던지 때리는 사람조차도 몸서리를 치면서
채찍을 휘둘렀다고한다
그 다음에 그들은 닿기만 해도 살갗이 찢어지는 면도날 같은
조개껍질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거나
창날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방으로 끌려갔다.
그 방에서 그들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굴러야 했다.
형벌에 관한 자세한 역사 기록은 여기까지만 되어 있다.
그런데 역사는 거기에 덧붙여 이렇게 쓰고 있다.
여기까지의 고통은 단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진정한 고통은 그 다음부터였다고.
그렇게 고문 받다가 만신창이가 되면 로마 군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끌어다가
사자 밥으로 던져 주었다. 여기서 역사는 또 이렇게 쓰고 있다.
“사자 밥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감방 옆에는
황금으로 만든 거대한 마차가 서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한 마디만 하면 황금마차의 주인이 되어
콜로세움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더 이상 예수를 믿지 않겠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의 박해는 이백 여년 이상 계속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수백 만 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콜로세움에 잡혀왔다.
그러나 황금마차를 타고 떠난 그리스도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할렐루야.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 - 26).
나는 십여년전 해미읍성에 가본 적이 있다.
거기에 큰 느티나무가 한그루있다.
그 굵은 곁가지엔 철사줄로 동여매어졌든 자리가 표시가 나있다.
그건 천주교박해 때에 잡혀온 자들의 상투를 철사로 죽을 때 까지 매어 달았든 자국이라한다.
한마디만 하면 내려지고 사면될수 있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돌아오는 내내 놀라움과 깊은 감동과 묵상에 젖어들었다.
성 저쪽구석에 사람이 누울 만한 긴 돌절구도 있다.
거기에 뉘어 매어놓고 돌공이로 찧어죽였다한다.
그런데 누구하나 그 고문을 견디다 못해 배교했다는 기록은 없었다.
빈약한 말씀과 신앙환경...끝까지 견디게한 그 힘을 어디로부터 온것 인가..!
돌에 맞아 죽든 스데반은의 빛나든 모습을 생각해본다.
순교의 현장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그들은 그 현장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주님능력으로 도움을 받은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