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다름의 보물창고

공전과 자전 2007. 9. 29. 00:23
링컨은 언젠가 동료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던 어느 젊은 장교를 몹시 꾸짖은 적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은 사사로운 논쟁 따위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걸세.

그런 사람은 자기 성격을 망치거나 자제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네.

자기에게 약간의 정당성밖에 없을 때는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상대방에게 양보해야 하네.

정당성이 있는 경우라도 작은 일에는 양보하게.

개와 싸움을 하다가 개에게 물리는 것보다는 개에게 길을 비켜주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설령 그 개를 죽인다 해도 물린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일세.”

-카네기 인간관계론 중-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동문서답하는 경우, 참 잦게 만날 수 있지요?

나의 본래의 뜻을 왜곡하여 해석하고 또 그 해석한 의미를 언어를 통해 뱉어낼 때도 왜곡이 일어나지요.

이리하여 두 번의 필터링을 거치면서 의미는 점점 다른 양상으로 번져갑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왜 상대는 나의 본심을 알 수 없을까요? 나는 또 왜 상대방의 언어를 재해석하게 되는 걸까요?

그 모든 것의 해답은 서로가 여태껏 살아온 과정 속에 형성된 본인들만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살면서 느꼈던 감수성들, 보았던 시각적인 충족들, 들었던 내용들은 모두 자신만의 것이기에 그러한 카

테고리 속에서 활동하고, 생활하여 짜여진 사고의 공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의 공식에 어긋난

것에는 눈 돌리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어쩌면 정상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기에 잦은 말다툼이나 논쟁에 휘말려 왔음

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논쟁을 함이 오히려 무의미할 수도 있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나도 다르고, 너도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내 말이 옳다, 네 말이 틀리다’라는 것을 따지기 보다는 상대방의 시선으로 상대방의 귀

로 상대방의 경험으로 그들 차원의 지식을 공유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출처 : 다름의 보물창고
글쓴이 : 캐서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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