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고구려 때도 ‘국제 격투기 경기’

공전과 자전 2008. 4. 25. 00:14


씨름 선수들의 이종(異種) 격투기 진출이 활발하다.
손과 발을 써서 상대를 제압하는 입식(入式) 타격대회인 K1에 가장 먼저 진출한 선수는
천하장사 최홍만이었다. 이어 이태현 김영현 등 천하장사 출신들이
잇따라 이종격투기에 뛰어들었다.
씨름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윤동식 김민수 추성훈(이상 유도 출신),
그리고 최용수 지인진(이상 복싱) 등이 K1은 물론, 프라이드 등 종합격투기
대회에 진출해 ‘제2의 격투 인생’을 시작했다.

격투기 진출이 활발한 것은 우리 민족의 피를 타고 면면이 이어진 전통인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열렸던 국제 스포츠 경기는 무엇이었을까?
유물로만 본다면 축구도 야구도 아닌, 오늘날 태껸(택견)이나 태권도로 이어졌을
수박희와 씨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서기 357년에 그렸다고 기록된 황해도 안악3호분의 앞방 왼쪽 벽에는
수박 경기를 벌이는 선수들 모습이 보인다. 이 중 오른쪽 선수는 눈초리나 평면적인 얼굴 등이
전형적인 우리네 얼굴, 고구려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왼쪽 선수는 부리부리한 눈매하며 높은 콧날 등에서 한눈에 외국인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몽골이나 중국, 동남아, 혹은 일본인 등 동아시아인이 아니라,
최소한 중동이나 인도지역에서 온 선수다. 5세기 중엽 무덤으로 추정되는
중국 지안(集安) 무용총에도 오뚝한 코의 외국인이 고구려인과 수박 실력을 겨루고 있다.

지금의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경기용 팬티만 입고 나오는 것처럼,
이들 역시 경기복인 팬티만 입고 격투를 벌였음을 벽화는 알려 준다.

반면 5세기 무덤으로 생각되는 각저총(중국 지안)에는 국제 씨름대회가 열렸음을 증명한다.
이 무덤의 이름이 각저총이 된 것은 씨름하는 모습을 무덤방 왼쪽에 그렸기 때문이다.
각저(角?·角抵)는 두 사람이 씨름하듯이 맞붙어 힘을 겨루는 경기를 말한다.
각저총 씨름도는 1600년 전 씨름이나 지금 씨름이 그리 달라진 바가 없음을 알려준다.

가장 오른쪽에는 지팡이를 든 심판 노인이 서 있다.
씨름 선수 중 오른쪽 사람은 얼굴 모습이 고구려인이지만, 왼쪽 선수는 외국인임을 알 수 있다.
서기 5세기 중반경 무덤으로 생각되는 중국 지안 장천1호분 앞방 오른쪽 벽에도
씨름도가 실려 있지만, 얼굴 모습이 확연하지 않아 선수들의 국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고분벽화는 이처럼 서기 4세기 이후부터 고구려에서 ‘국제 격투기 경기’가 활발하게 열렸음을 말해준다.
이 중 수박 경기는 중국 한나라 때의 고분벽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수인(垂仁)왕 7년(서기전 23년)
‘왕 앞에서 두 장사가 격투기(원문에는 ‘각력· 力’)를 하다가 한 사람이 죽었다’는 글이 나온다.
또한 아시아 내륙지역 사람들은 장례 때 씨름을 하는 풍속이 있었다는 연구도 있다.
고구려의 격투기 풍속은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의 전통과도 결부된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4월, 남북한이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제 스포츠 경기’를 기록한 안악3호분은 색칠한 곳이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




고구려 각저총과 안악3호분 고분 벽화에 그린 씨름도와 수박희 모습.
고구려인과 서역인의 한 판 승부가 펼쳐지는 모습이다
출처 : 고구려 때도 ‘국제 격투기 경기’
글쓴이 : 비오는날의수채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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