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좋고 대지에 생기 솟는 삼월 삼짇날쯤 담아
식생활 기본 부식… 온갖 정성으로 곰삭은 맛 내
아주 오랜 옛날 신라 때의 일이었습니다.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은 전쟁으로 오랫동안 집에 가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장군은 우연히 자기 집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를 이끌고 전쟁을 하던 중이라 혼자만 집에 들릴 수는 없었습니다. 장군은 부하를 시켜 자기 집의 간장을 가져오게 하여 그 맛을 보았습니다.
“음, 장맛이 여전하군!”
장군은 장맛이 지난날 그대로임을 확인한 뒤 안심하여 다시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이것은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명장 김유신 장군의 일화입니다.
장맛이 그대로인 것을 확인하고 아무 걱정 없이 전쟁터로 나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보듯이 예로부터 장맛은 한 집안의 형편을 판단하는 잣대 구실을 하였습니다. 또한 신라 신문왕 때에는 새로 맞이하는 왕비가 가지고 오는 선물로 간장과 된장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렇듯 지난날 장이 매우 소중한 것이었으며, 한 집안의 ‘가풍’까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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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의 정여창 고택에 있는 전통 장독대. |
장은 식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부식으로, 또한 다른 음식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조미료로 아직까지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음식 맛은 장맛이라 하여 장 담그는 일을 집안의 큰 연중 행사로 여긴 우리 어머니ㆍ할머니들은 지금도 부정이 없는 좋은 날을 골라 장을 담근답니다. 조상들은 장을 담그는 날 중에서도 볕이 좋고 대지의 생기가 솟아오르는 음력 3월 첫 번째 말날(오일ㆍ午日)을 제일 좋은 날로 생각했는데, 절기상으로는 대개 삼월 삼짇날경이 된답니다.
또한 우리 속담에 ‘흥하는 집안의 장맛은 달고 망하는 집안의 장맛은 구린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장맛이 달다는 것은 설탕과 같이 인공적인 단맛과는 전혀 다른 맛을 말합니다. 곰삭은 콩 냄새와 짠 소금 냄새가 어우러져 구수한 맛을 내되, 구린 냄새가 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장맛이 변해 구린내가 난다는 것은 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이는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장차 그 집에 닥칠 불행의 예고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간장을 비롯한 된장과 고추장 등 장류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이며, 이런 장을 담그는 과정은 문화의 한 면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옛 생활서인 ‘산림경제’에는 ‘장(醬ㆍ간장)은 장(將ㆍ장군)이다. 모든 맛의 으뜸이요,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가장은 모름지기 장 담기에 뜻을 두어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어야 한다.’고 실려 있습니다.
어느 집안이든 장맛이 좋아야 음식 맛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장을 담글 때에도 온갖 정성을 기울입니다. 가을 농사가 끝나고 날을 가려 콩으로 메주를 쑨 다음, 천장에 매달아 우리 몸에 좋은 곰팡이들이 자라도록 겨우 내내 띄웁니다. 이 메주를 봄에 깨끗이 씻어 말리고 나서, 큰 독에 소금물과 함께 담아 한 달 정도 볕에 두고 우려 냅니다.
이 때 고추와 숯을 함께 넣어 두는데, 모두 부정함을 막기 위한 방어책이랍니다. 숯에는 정화력과 함께 나쁜 귀신이 숯 구멍으로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고추는 붉은 색깔과 매운 성질 때문에 나쁜 귀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담근 장은 정성껏 장독대에 보관하였습니다. 해가 뜨면 뚜껑을 열어놓고 해가 지면 덮어 우리에게 좋은 곰팡이가 만들어지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이 밖에도 장맛이 나빠지는 것은 귀신이 장을 먼저 먹는 탓이라 생각하여 이를 막기 위해 장독에 금줄을 치거나 버선을 거꾸로 매달아 놓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모두는 장맛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서 나온 생활 모습입니다.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진 요즘, 손으로 직접 만들며 온갖 정성을 다했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무작정 구식이라고 멀리하기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먹고 사는 일의 바탕인 음식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우리 조상들의 장맛에 대한 교훈은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이관호(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http://kids.hankooki.com/lpage/study/200504/kd20050424160038280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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