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와 마음: 무엇이 문제인가?
이정모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인지과학협동과정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특성 중의 하나는 인간은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그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하여 물음을 던지고, 탐색하여 경험하고, 그러한 경험에 의하여 얻은 내용을 지식으로 축적하여 후손들에게 전수하여 왔다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그 물음은 인간 자신으로부터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와 달 그리고 다른 별들과 같은 천체에 대한 물음으로 전개되었지만,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그 물음은 점차 인간에게 가까운 대상, 그리고는 인간 자신에게로 향하여졌고, 마침내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요소인 인간의 마음과 그러한 마음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 기관으로서의 뇌에 대한 물음으로 바뀌게 되었다.
1. 마음과 뇌: 하나인가 둘인가?: 심신론의 문제
마음과 몸의 관계는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던져 온 물음이다. 이 문제가 희랍시대를 중심으로 심신 이원론과 일원론으로 체계화되고, 17세기 이후에 다시 마음과 두뇌와의 관계의 문제로 구체화되고, 20세기에 이르러, 뇌가 마음의 작용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심신 일원론과 이원론>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인류의 생각은 크게 심신 이원론과 일원론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마음과 몸을 별개의 실체로 생각하는 관점인 심신이원론적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심신이원론에서는 일반적으로 몸은 물질이며 물리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마음은 물질을 넘어서는 실체로써 어떤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았으며,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마음의 다른 한 실체인 영혼이 몸을 떠나서 우주에 별개의 실체로 남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관점과는 반대로 마음과 몸을 하나의 통합된 실체로 보는 일원론적 관점이 있다. 일원론에서는 마음은 몸의 생물적 기관의 작용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심신 이원론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믿고 있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비물질적인 마음이 물질인 몸에 영향을 주고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하기에 직관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경험과학적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관점으로 과학계에서 인식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심리학, 인지과학에서는 대체로 심신일원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2. 마음의 자리는 어디인가?: 마음과 뇌의 연결성에 대한 생각의 변화 역사
심신이원론을 지지하건 심신일원론을 지지하건 간에 우리가 밝혀야 할 것은 마음의 자리가(심신일원론), 또는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 자리가(심신이원론) 몸의 어디인가, 그리고 마음과 몸은 어떤 관계가 있는 가이다. 마음의 자리가 몸의 어디인가에 대하여 희랍시대에서 중세까지는 주로 심장을 마음의 자리로 생각하였다. 우리말의 상식적 표현에서 ‘머리로 말하지 말고 가슴으로 말하라’는 식의 표현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즉 심장을 마음의 자리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대 희랍 사람들의 생각이나 중세 서구 기독교 사회의 생각이나 그 후 18세기까지의 서구의 일반인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의 자리가 몸에서 어디인가에 대하여 심장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뇌가 마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을 인식한 선구자들도 있었다. 선사이전에도 이미 생존을 위해 뇌를 중요히 여겼던 증거가 있으며, 이집트의 의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이 많은 뇌 질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프랑스나 페루 등의 유적에서 선사시대 생존하였던 인간 두개골이 외부에서 안으로 구멍을 뚫은 흔적이 보이며, 그렇게 구멍을 뚫린 채로 그 사람들이 일정한 기간동안 살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은 두개골에 구멍을 뚫은 것이 치료 목적으로 이루어졌었음을 시사한다. 선사시대에도 인간의 행동 또는 심리적 특성과 연관된 무엇이 두뇌에 있음을 짐작하고 두개골을 뚫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아프리카나 태평양의 부족 중에는 20세기까지도(물론 서구 일부에서도 18세기까지도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간질, 두통,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두개골을 뚫는 관습을 지속하여 왔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추론은 간접적으로 지지된다.
비록 희랍시대에도 히포크라테스 같은 학자는 이미 뇌를 마음의 자리라고 생각하였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희랍시대에서 17세기에 이르는 긴 기간동안 일반적으로 인간의 뇌는 소홀히 취급되었다. 희랍 이후의 학문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심장을 마음의 자리라고 보았고, 뇌는 흥분한 심장에서 데워진 피나 체액을 식히는 냉각장치, 축적기로 보았다. 이후 이러한 관점이 17세기까지 지속되었다.
17세기에 들어 각종 기계의 발달은 뇌가 기계와 같은 작용을 한다는 생각이 형성되게 하였다. 이러한 생각이 데카르트에 의해 기계로서의 몸과, 이와는 독립적인 마음에 대한 이분법적 실체의 관점으로 재구성되었다. 데카르트는 뇌가 마음의 기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마음이 뇌의 좌-우반구에 자리잡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뇌의 송과선이라는 작은 부위를 통해 마음과 몸이 상호 작용한다고 보았다.
데카르트 이후에 뇌는 연구자들의 주의를 더 받게 되었다. 17, 18세기를 거치면서 뇌 연구자들은 전통적인 송과선과 뇌실에 초점을 맞춘 관점에서 벗어나서 뇌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시각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세기까지는 뇌는 보편적 과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전환시킨 것이 골상학 연구이다.
3. 뇌의 부위별로 다른 심리적 기능이 특수화되어 있는가?: 골상학과 뇌기능 전문화의 문제
18세기 후반의 독일의 의사 골(Gall)은 여러 유형의 사람들 사이의 뇌의 유사성, 차이를 연구하였다(그림 1-1 참조). 그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그는 27개 이상의 심리적 기능을 각각 담당하는 뇌의 각 부위 지도를 임의적으로 작성하여 제시하기도 하였다: 연애감정 담당 부위, 자존심 담당 부위, 희망 담당 부위 ... 등. 그는 또한 두개골의 모양이나 크기와 같은 물리적 차원을 측정하여 마음의 여러 기능과 연결시키려 하는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고, 뇌가 마음 기능의 핵심적 자리임과, 뇌의 기능이 분화되어 국재화되어(localized) 있다는 관점을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하였다.

그러나 골의 접근은 불충분한 관찰 증거로부터 과다하게 일반화한 것이어서 경험적 검증을 할 수 없는 잘못된 접근이었다. 그의 뇌의 지도는 논리적으로 문제점이 있었다. 그 까닭은 뇌의 각 부위가 담당하는 심리적 기능을 할당하기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 서로 다른 심리적 기능을 서로 다른 범주로 분류하는 분류체계의 논리적 타당성이다. 골상학에서는 이러한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골의 골상학이 과학자들에 의해 비판받고, 뇌의 부위별로 기능이 분화되어 있다는 견해는 도전을 받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뇌의 부위별 기능, 특히 인지적 기능이 분화되어 있다는 증거가 뇌의 언어 기능 연구를 중심으로 제시되었다. 19세기의 프랑스의 학자들에 의하여 뇌의 앞부분과 옆부분에서 언어 기능에 관련하는 부위가 발견되었다. 특히 브로카(P. Broca)는 뇌손상 환자 연구를 통해 뇌 좌측앞쪽 부분이 실어증 관련 부위임을 발견하였다. 이 부분이 현재 브로카 영역이라고 불리는 언어관련 영역이다. 이후 1870년대에 이르러 독일의 베르니케(C. Wernicke)는 언어의 이해를 담당하는 영역인 베르니케 영역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브로카, 베르니케 등의 연구 결과들이 축적됨에 따라 뇌의 부위별 담당 기능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촉진되었고, 나아가서 뇌의 좌-우반구가 서로 다른 기능을 한다는 ‘뇌 좌우반구 특수화’라는 현상도 연구되게 되었다.
그러나 뇌의 부위별 기능에 대한 관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전반에는 뇌의 심리적 기능, 특히 언어 기능에 대한 연구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이 없었다. 더구나 심리학자 라슐리(K. S. Lashley) 등은 뇌기능이 편재화, 국재화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뇌가 전체적으로 반응하며 등가적 기능을 한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라슐리는 미로 학습을 한 쥐들의 뇌를 절제한 결과, 뇌부위에 따른 학습 수행 능력의 손상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 뇌 손상 양에 비례하여 학습 수행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하여, 뇌가 부위별로 다른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뇌기능이 뇌의 전역에 균등 분산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이론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라술리의 이러한 입장은 현시점에서 본다면 잘못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2차 세계대전 시의 부상당한 사람들과 일상생활에서 사고를 당한 뇌손상 환자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뇌손상자의 심리적 이상 특성에 대한 여러 가지 현상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뇌의 기능에 대한 활발한 탐구가 일어나게 된 것은 뇌손상자의 시각, 언어, 기억의 이상 증상에 대한 계속된 신경심리적 연구 성과와 1960년대 이후의 Sperry 등의 분할뇌(split brain) 연구, 그리고 1980년대에 급격히 세련화된 뇌영상기법 등의 발전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4. 뇌와 마음이 과연 관련이 있을까?: 대표적 사례
뇌와 마음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만약 뇌의 어떤 부분이 손상되면 손상된 부위에 따라서 마음이 작동하는 과정에 어떠한 다른 영향을 미칠까? 또 우리의 머리에서 두개골을 벗겨내고, 속 뇌를 드러낸 후에 뇌의 이곳 저곳을 자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마음의 작용이 일어날 때에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뇌와 마음의 관계에 대한 이런 물음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물음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이전에는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과학적으로 경험적으로 체계적으로 탐구하지 못하였다.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신경과학자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구체적 답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사고나 전쟁 부상으로 인한 뇌손상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적, 심리적 변화를 관찰하거나, 간질 환자의 발작이 확산되는 것을 막거나 완화하기 위한 뇌수술을 하면서 뇌의 부분들을 전기적으로 자극하여 그 효과를 관찰하여 뇌와 마음의 관계를 조직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몇 개의 예를 중심으로 마음과 뇌의 관계를 탐색한 대표적 연구들을 살펴보자.
<사고로 인한 뇌손상 환자의 사례>
뇌가 마음의 작용의 바탕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은 뇌 손상 환자들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뇌손상 환자의 예의 가장 유명한 예는 다음과 같은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라는 사람의 사례이다 (그림 1-2 참조).
1848년에 미국버몬트 주에서 철도공사 감독으로 일하던 25세의 Gage라는 사람이 폭약이 들은 쇠파이프를 실수로 바위에 떨어뜨렸는데, 이 폭약이 폭발하여 그 쇠파이프(직경 1인치, 길이 90센티)가 게이지의 좌측 볼에서 전두엽 부분의 뇌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는 죽지는 않았고, 사고 후에 의식이 있었고, 부축하여 걸을 수 있었으며, 의사에게 데려갔더니 의사에게 농담도 하였다. 약 2주 동안의 의식이 몽롱한 상태를 거쳐 그는 점진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런데 그 후 그는 아주 다른 성격의 사람이 되었다. 사건 이후에 그는 화를 잘 내고, 무례해지고, 상스러운 욕하기를 즐겨하였고, 자기 생각과 어긋나면 다른 사람의 충고나 만류를 참지 못하였고, 마치 아이처럼 굴었으며, 동물적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청년처럼 행동하였다. 이후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칠레에 가서 마차를 운전하고 말을 돌보는 일을 하였는데, 사고 발생 후 12년째 해에 간질이 발작되었고 그 후 곧 사망하였다. 이 사례는 뇌가 인간의 성격, 정서 등의 심리적 특성을 좌우함을, 뇌가 손상되면 이러한 심리적 특성이 변화함을 뚜렷이 보여주는 예이다.
<뇌자극 실험>
캐나다의 몬트리얼 신경학연구소에서 연구하던 펜필드 박사는 간질환자의 뇌의 표면을 아주 작은 전극으로 자극하는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어떤 부분을 자극하면 환자의 특정 근육이 움직이고, 다른 부분을 자극하면 이상한 피부감각을 느끼고, 뇌의 뒤쪽을 자극하면 색깔이 보인다든지 빛이 번쩍이는 것으로 보인다든지 하였다. 그런데 특히 뇌 옆쪽을 자극하였을 때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 자극을 받으면 환자는 옛날 자기가 살던 집의 부엌에 자신이 있는데 밖의 마당의 어디에선가 아이 목소리가 들리며,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나 다른 소리도 들린다’고 보고하였다. 다른 환자는 뇌의 옆 부분을 자극하면 그 때마다 특정한 노래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보고하였고, 또 다른 환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뇌의 옆 부분을 자극하면 갑자기 어떤 야구 경기장에서의 사건 모습이 보인다고 보고하였다. 또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내가 이곳에 없는 것처럼. 나의 반은 여기에 있고, 반은 여기에 없는 것으로 느껴져요.’라는 식의 보고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의 생일파티와 같은 어떤 시점의 어떤 장소에서 경험하였던 것을 기억하는 듯한 보고를 환자들도 있었다.
최근에 간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뇌 전기자극 연구에 의하여 새로운 현상이 드러났다. 43세의 여성 간질환자를 병원 침대에 상체만 45도 각도로 누워 있게 하고 하체는 그냥 발을 뻗은 상태에서 뇌의 옆-위쪽 접점에 약한 전기자극을 주었다. 그 결과, 이 환자는 자기가 마치 자신의 몸을 벗어나서 공중에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하강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보고하였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공중에서 볼 수 있는데 하반신만 보여요.” 보통 사람이 꿈속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것을 깨어있는 상황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자극을 계속하였더니, 환자는 자신의 몸이 가볍게 떠서 천장에 가깝게 올라가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자기 다리를 보라고 하였더니 다리가 짧아지고 자기 얼굴로 다가오며 올라온다고 하였다. 팔을 보라고 하면 팔이 짧아지면서 떠 올라오는 느낌을 보고하였다.
환자들의 이러한 체험적 보고는 뇌를 자극함에 의해 자기 몸을 비롯한 대상 인식의 과정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뇌의 작용과 마음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음을 내기와 뇌의 활동>
벤자민 리벳이라는 신경과학자는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흐르고, 뇌의 활동이 어떻게 의식과 연결되는가를 알기 위하여 흥미 있는 실험을 하였다. 그는 피험자의 뇌의 두피에 여러 개의 전극을 부착하고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변화를 탐지하였다.
첫 실험에서 그는 피험자들에게, 무심하게 앉아 있다가 마음이 동할 때마다 한 번씩 손목을 까딱 움직이도록 지시하였다. 그 결과, 실제 손목이 까딱 움직이기 800msec 내지 1000msec 전에 뇌에서는 준비전위라고 하는,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전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며, 그 후 손목이 움직이기 50msec 전에는 뇌의 운동피질에서 팔 근육에 전달되게 될 운동신경의 활동이 일어남을 관찰하였다. 이 실험 사례는 마음이 작동하기 위하여 뇌의 어떤 신경생리적 활동이 선행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마음의 작용에 뇌의 전기신경적 과정이 관련이 있음올 드러내주는 것이다.
5. 뇌와 마음의 관계는 어떻게 연구하는가?: 신경심리 방법론의 문제
이전의 신경학자들의 일반적 연구기법은 섬유 절단, 전기적 탐색, EEG 기록, 사체검사 등이었다. 1980년대이래 뇌의 구조 및 기제와 심리적 과정의 관계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발전된 여러 신경심리 방법들이 있으며, 이러한 방법들은 이전의 심리학자들의 전통적 방법만으로는 밝힐 수 없던 현상들을 밝혀주거나, 심리학자들이 상정했던 개념이나 이론들의 경험적 타당성을 제공해주어서, 신경심리학의 발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신경심리방법들에는 뇌 영상화 기법, 뇌 전기 생리학적 측정기법 등이 있다. CAT, PET, fMRI, ERP, TMS, MEG 등의 이 기법들의 세부 내용과 신경심리학 연구 방법의 본질적 특성은 강은주 박사의 발표에서 다루어지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6. 왜 심리학 연구가 없이는 뇌의 연구가 성공할 수 없는가?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뇌 연구는 생물학이나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만 연구하면 되지 심리학자가 왜 필요할까 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현상의 본질과 심리학에 대한 오해, 부분적으로는 무지에서 기인한다.
세포, 특히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는 신경생물학자들에 의해서 만으로는 각종 뇌의 중요한 기능을 밝혀낼 수 없다. 뇌와 심리적 기능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신경세포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준을 높여서 신경 시스템 수준에서 신경과학적 연구를 한다고 하여도 신경과학만으로는 뇌의 심리적 기능과 관련된 신경구조, 기제를 제대로 연구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뇌가 감각, 지각, 주의, 기억, 언어, 의식, 사고, 정서 등의 심리적 기능을 어떻게 이루어내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심리적 활동 자체가 무엇이며, 각 기능의 하위 범주를 어떻게 나누며, 그 기능범주의 범위는 어떻게 되며, 기능간 서로 어떤 의미적, 논리적 관계를 지니는가를 규정하는 이론과 개념적 틀이 있어야 한다. 즉 심리현상의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 있어야 한다. 이는 학문의 본질상 신경과학에서 제공되기 곤란하다. 보다 상위 추상수준의 학문인 심리학에서 주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기억을 생각하여 보자. 기억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예: 작업기억, 일화기억, 의미기억, 자유회상, 단서회상, 재인 등), 어떤 기준에 의하여 기억을 분류하며, 각각의 범위가 무엇이며, 기억 정보처리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예: 부호화, 부호해독, 저장, 억제, 간섭, 자료주도적 처리, 지식주도적 처리, 계열적 처리, 병렬적 처리, 맥락처리, 단서의존적 처리, 신호탐지적 계산 등), 자극의 유형에 따라, 그리고 기억을 테스트하는 방법에 따라, 배경 맥락이나 다른 자극의 간섭에 따라 어떻게 현상이 달라지는가 하는 개념적, 이론적 측면을 이해해야 기억에 대한 신경과학적 실험을 할 수 있다.
즉 뇌에 의해 발생되는 심리적, 행동적 기능의 본질과 이를 기술하는 개념들의 의미와 그 범주적 범위 등에 대한 규정이, 그리고 심리적 현상의 <무엇>을 탐색할 것인가의 틀이 신경과학이 아닌 심리학이나 인지과학과 같은 다른 상위 추상수준의 접근을 하는 학문에서 주어져야 한다. 신경과학적 연구들은 뇌가 신경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기본적 이론과 자료를 제공해주지만, 과연 뇌 기능의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구분하여 어디까지 연구할 것인가, 어떻게 연결지어야 할 것인가 하는 관찰하려는 현상의 규정, 범위, 분석 수준, 이론적 틀 등에 대하여는 신경과학 독자적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것은 심리학에서, 그리고 인지과학의 하위 분야들인 언어학 등에서 주어져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뇌의 연구는 신경과학적 접근과 심리학적(행동적) 접근이 통합된 형태로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며, 신경심리학, 인지신경과학 등이 뇌 연구에서 필요불가결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최근의 해외의 유수한 대학에서 신경심리학, 인지심리학, 신경과학이 합쳐져서 하나의 새로운 학과를 형성하고 있는 경향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뇌의 기능의 연구! 심리학 연구의 참여 없이는 발전이나 성공이 불가능하다.
7. 뇌의 각 부분들은 어떠한 상이한 심리적 기능을 담당하는가?
언어, 사고 등의 인간의 인지적 능력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고도로 발달된 구조와 기능을 지닌 뇌에 의해서 가능하다. 회백색의 커다란 해면과 비슷한, 별로 크지도 않고 울퉁불퉁하게 생긴 인간의 뇌가 뇌세포들 간의 정교한 생화학적, 전기적 과정에 의해, 최첨단의 컴퓨터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고도의 지적 과제를 수행해 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뇌는 신체 체중의 1/40을 차지하지만 신체의 피와, 포도당과 산소의 1/5을 사용한다.
중추신경계의 하나인 뇌는 전뇌, 중뇌, 후뇌로 구성되는데, 후뇌는 뇌의 뒤쪽 부분에 위치하며 척수와 연결되어 있는 부분으로 소뇌, 교, 연수로 구성되어 있고, 중뇌는 후뇌와 전뇌 사이의 부분으로 시개와 피개로 구성되어 있다. 전뇌는 위쪽에서부터 보아서 대뇌피질, 시상, 시상 좌우의 기저핵, 시상하부, 편도체, 해마로 나눠진다(그림 1-3). 각 부위별 기능은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기에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간략히 핵심적 기능만 기술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1. 후뇌
ㄱ. 연수: 척수와 연결되는 뇌의 가장 아래 부분으로 호흡, 심장박동 등 생명에 필수적인 기능을 관장한다.
ㄴ. 소뇌: 연수 위쪽의 막대모양의 부분이다. 이 영역은 복잡한 조절기능과 피드백 기능을 수행한다. 신체균형을 유지하고 근육의 강도와 긴장도를 조절 및 협조작용을 하며 공간감각과도 관련이 있다.
ㄷ. 교: 연수의 바로 앞부분으로 양쪽 소뇌를 연결해주는 제4뇌실에 걸려 있는 다리로서 신경정보 전달과 의식을 담당한다.
2. 중뇌
ㄱ. 시개: 지붕이라는 의미의 시개는 중뇌의 배측 부분으로서 상구와 하구로 나뉘어진다. 상구는 움직이는 시각자극에 대한 반응 등과 주로 관련되어 있고, 하구는 청각정보의 중계 센터의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ㄴ. 피개: 시개의 아래 부분으로 싸움, 교미 등의 행동이나 기타 운동행동 조절에 관여한다.
3. 전뇌
ㄱ. 대뇌피질: 뇌를 덮고있는 2-3mm두께의 막을 신피질이라 부른다. 진화적으로 가장 최근의 것이며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침해받기 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신피질은 4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그 기준은 중심열과 실비우스열이다. 중심열 앞이 전두엽, 두정후두열 앞쪽이 두정엽, 뒤가 후두엽, 실비우스열 아래뒤쪽이 측두엽이다. 뇌의 좌측 반구와 우측 반구를 연결하는 신경 다발을 뇌량이라고 한다.
뇌의 대뇌피질은 감각정보를 수용하고 처리하며, 사고, 언어, 기타 인지적 정보처리, 운동 계획 등의 일을 담당한다. 뇌의 앞쪽의 전두엽은 고차 정신과정, 운동 통제 등을 담당하고, 위쪽의 두정엽은 몸 감각 등을, 옆 쪽의 측두엽은 청각 등을, 뒤 쪽의 후두엽은 시각 등을 담당한다. 이들 부분을 제외한 대뇌피질 영역은 연합영역으로 대뇌피질의 75%를 차지하는데 전두엽의 연합영역은 문제해결, 계획, 판단 등을, 측두엽의 연합영역은 언어 등을 담당한다.
ㄴ. 시상: 시상은 중계자로써의 역할과 조정중추로써 작용하여 거의 모든 입력 감각 정보를 대뇌피질의 각 부분에 전달, 연결한다(후각정보만이 예외로 시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대뇌에 전달된다). 시상은 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ㄷ. 기저핵: 대뇌피질 전체에서 입력을 받아서 뇌간의 운동센터에 연결을 하는 기관이다. 움직임을 계획하고 산출하는 역할을 한다. 비언어적 행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데도 관여한다.
ㄹ. 시상하부: 시상하부는 뇌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입력을 받아 거의 모든 부분에 연결하는 기관으로, 모든 자율신경계의 중추로 신체의 모든 자율기능을 통제하고 체온, 수분대사, 열 대사, 혈압, 혈당수준을 관리한다. 또 호르몬 분비와 관련된 명령 체계를 가진다. 기능 면에서 남녀의 차이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부위이다.
ㅁ. 편도체: 해마의 바로 앞 부분에 있는 편도체는 각종 경험과 정서적 반응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공포, 분노, 공격 등의 정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얼굴 표정 인식에도 관여한다.
ㅂ. 해마: 새로운 정보의 저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 경험마다 대뇌피질과의 연결을 형성하여 정보를 저장한다고 볼 수 있다.
8. 인간 뇌의 좌우반구는 어떤 다른 기능을 하는 것일까?: 분할뇌 문제
인간의 대뇌 신피질은 언뜻 보기에 좌우의 두 반구는 비슷한 크기와 모양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상인이나 뇌손상 환자를 관찰하여 보면 일반적으로 좌측 반구가 우측 반구보다 더 크며, 두 반구의 기능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좌반구 및 우반구 각각에 들어온 정보는 뇌량을 통하여 서로 교환된다(그림 1-4 참조). 1960년대부터 이 좌우 뇌반구의 기능이 서로 다를 가능성에 대하여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심한 간질 발작을 보이는 환자의 뇌에서 뇌량을 통한 좌우뇌 연결을 끊으면 한쪽 반구에서 일어난 발작이 다른 쪽 반구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1960년대에 로져 스페리 교수를 비롯한 신경심리학자들은 간질병 환자에게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섬유 다발인 뇌량을 절단하는 수술을 하였다. 이렇게 하면 두 반구는 기능상 고립되어 각기 독립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직접적 연결은 차단되지만 대뇌 아래쪽의 뇌간을 통한 간접적 연결은 남는다. 이렇게 좌-우 두 개의 뇌 반구 사이가 차단되어 기능적으로 연결이 끊어진 뇌를 분할뇌(split-brain)라고 한다.
이러한 수술 결과, 예기치 않은 증상들이 나타났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좀더 면밀히 관찰한 결과, 대상의 인식이나 언어 이해, 및 다른 행동에서 정상이 아닌 징후가 나타났다. 스페리 교수들은 그림과 같은 실험상황을 구성하여 분할뇌 환자들의 반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그림 1-5 참조). 이 실험에서는 뇌량이 절단된 환자를 스크린 앞에 앉힌 후에, 왼손을 스크린 밑으로 내밀게 하고, 스크린 중앙에 있는 한 점만을 고정하여 응시하도록 한다. 뇌량이 절단된 환자에게 화면의 중심을 응시하라고 하고, 하나의 그림이나 단어를 제시하면, 오른쪽 시야에 제시된 자극은 왼쪽 뇌반구로, 왼쪽 시야에 제시된 자극은 오른쪽 뇌반구로 간다. 이 때 스크린의 왼쪽 편에 예를 들어 ‘열쇠’라는 단어나 그림을 1/10초 정도 제시한다. 그리고 나서 지금 본 자극의 이름을 말하라고 하거나 스크린 뒤쪽에 있는 물건들 가운데에서 골라내게 한다.

이러한 실험 결과, 분할뇌 환자들은 우측 시야에 들어온 자극(따라서 좌측 뇌반구에서 정보처리함)이 무엇인가는 쉽게 말하였지만, 좌측 시야(따라서 우측 뇌반구에서 정보처리함)에 들어온 자극에 대하여는 그 대상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손은 그 대상을 정확히 집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물으면 말로 대답을 못하였다. 여자 피험자에게 남자 누드 사진을 우측 시야에 제시하면(좌측뇌 담당) 웃고 나서 누드라고 답을 하지만, 좌측시야에 제시하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대답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왜 얼굴을 붉히냐고 물으면 엉뚱한 이유를 말하였다.
그림 1-6과 같이 두 개의 사람 얼굴 사진을 절반씩 잘라서 좌우 반쪽씩 조합하여 붙인 복합그림을 보여준 실험에서 분할 뇌 환자는, 무엇을 보았느냐는 질문에는 오른쪽 시야에 제시되었던 ‘남자’를 보았다고 대답하고 그 얼굴의 특징을 말로 묘사했지만, 여러 그림들 중에서 보았던 그림을 선택하라고 하면 좌측 시야에 제시되었던 여자 사진을 선택하였다. 즉, 말로 답하기를 요구하는 질문에는 언어중추가 있는 좌반구가 보았던 그림을 보았다고 답하는 반면, 그림을 보고 손가락으로 선택하여 가리키기를 요구하는 질문에는 공간지각 등을 담당하는 우반구가 보았던 그림이 선택되었다. 이 환자들은 반쪽 짜리 그림 두 개가 조합된 것을 보았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다.

좌우반구 기능의 이러한 차이는 정상인에게서도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함을 시사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신경심리학자들은 좌측 반구는 주로 수학, 언어, 논리분석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반면에 우측 반구는 음악, 정서 파악, 얼굴인식, 공간지각, 대상의 전반적 구조 지각 등의 기능을 담당하다는 것과, 좌반구가 우뇌보다 더 지배적이라는 가설을 제기하였다. 또한 좌반구는 대상을 그 기능 중심으로 처리하는데 반하여 우반구는 대상을 모양 중심으로 처리한다는 실험 결과도 보고되었다. 좌우뇌의 구조상에서 여자는 좌반구가, 남자는 우반구 피질이 더 두터운데, 이것이 남자의 시공간 지각 우월성과 여자의 언어 능력 우월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충분한 경험적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문화적 요인이나 다른 요인의 작용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브로카의 연구 이후 많은 연구에 의해 좌반구에 언어 중추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하여 언어 처리가 오로지 브로카영역, 베르니케영역에 의하여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좌반구의 다른 부분과 우반구에 상당한 언어 기능이 있음이 밝혀졌다.
뇌의 좌우반구 기능의 분화에 대한 연구 결과를 종합한다면, 좌반구는 생득적이고 고도로 특수한 언어기능(음운, 통사부호화와 분석), 논리기능을 소유한 반면, 우반구는 세상 지식의 활용에 더 초점이 주어진 처리를 하는 것이며 경험에 기초하여 보다 일반적인 목적(비언어적) 처리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시지각 연구 결과에 의하면 좌뇌는 시간적 관계성에 강조를 두며 단편적, 분석적으로 처리하며 세부 측면에 강조를 두어 처리하는 반면, 우반구는 공간적 관계에 특별한 강조가 주어지며 총체적으로 정보처리한다는 것이 부각되고 있다. 또 좌반구는 선형적으로 처리하나, 우반구는 전체모양 중심으로 처리한다던 지, 우반구는 새로운 것(novelty)의 정보처리에, 좌반구는 친숙한 정보처리에 더 잘 반응한다던 지, 우반구가 복잡한 정보를 더 잘 통합하며, 언어처리에 있어서 언어표현의 억양과 운율에 더 민감하고, 맥락적 처리를 더 담당한다는 등은 모두 ‘어떻게’ 처리 하느냐에서의 차이와, 하나의 심리적 과제 수행에서 좌우반구의 상호작용, 공조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좌우의 차이가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과제의 성질, 피험자들의 경험, 기존의 전략 등의 여러 변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도 보고되고 있다.
9. 뇌가 손상되면 심리적 기능에 어떤 이상이 나타나는가? : 뇌손상과 주의, 대상인식, 행동 이상현상
뇌손상에 따라 여러 가지 심리적, 행동적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하여 이 심포지움의 각 장에서 분야별로 다루어진다. 여기에서는 뇌손상에 의한 이상 현상 중에서 다른 장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주의, 대상인식, 행동 현상 중에서 현저한 현상 일부를 살펴보겠다.
9.1. 주의와 뇌무시:
환경에 있는 많은 자극 중에서 일부만을 인지하는 것을 주의라고 하는데, 마이클 포즈너 교수 등의 연구에 의하면 주의과정에는 뇌의 신경 활성화 측면이 개입되는 부분과 신경활동의 억제가 개입되는 양 측면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한 주의 전담 특정 뇌 부위가 별도로 따로 있어서 홀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여 뇌 전체가 모두 관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드러났다. 이러한 주의에 대한 인지신경과학적인 연구의 일환으로 뇌손상 환자의 주의 특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신기한 현상이 발견되었다. 바로 뇌(편측)무시(hemi-neglect) 현상이다. 이 현상은 손상된 두정엽의 반대 측 시야의 대상들에 대하여 환자들이 마치 그 시야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반응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우측뇌 두정엽 손상자들은 왼쪽 시야에 제시된 물체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각을 하지도 반응을 하지도 못하여, 무시하는(의도적이 아님) 경향이 있음이 발견되었다(그림 1-7). 환자들에게 왼쪽과 오른쪽 시야에 서로 다른 대상을 눈앞에 제시하여 보여주면 왼쪽 대상은 보지 못하였고, 간단한 물건을 주고 그것을 그리라고 하면 오른쪽만 그렸고, 거울을 보면서 얼굴의 오른쪽 면만 수염을 깎거나 화장을 하였다. 심지어는 식탁의 접시 위의 음식도 오른쪽 것만 먹기에, 그 환자는 접시 오른쪽 음식을 먹고 나서는 회전의자를 식탁 오른쪽으로 회전하여(왼쪽으로의 회전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반대편으로 옮겨서 안 먹은 왼쪽 음식을 (다시 오른쪽이 되었으니) 마저 먹는 ‘식사 전략’까지 개발하여야 했다.

이러한 뇌무시 현상은 좌반구 두정엽 손상시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하여 진화 초기에는 좌우뇌의 기능 분화가 일어나지 않아서 좌뇌도 우뇌도 좌우 시야 대상 모두를 공간 표상할 수 있었는데,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좌뇌가 언어 기능에 특수화되면서 좌뇌의 공간표상 기능은 우측 시야만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9.2. 실인증(失認症, Agnosia):
우리의 일상생활은 무수한 대상을 인식함으로써 가능하다. 흔히 우리는 이러한 대상 인식이 자동적으로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뇌의 여러 부분이 상당히 많은 복잡한 단계를 거쳐서 정보처리함으로써 비로소 대상을 인식할 수 있으면 뇌의 어느 부분이 손상되면 이러한 기능 수행에 문제가 생긴다. 뇌손상으로 인해 대상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하는 증상을 실인증이라고 한다. 실인증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통합실인증>
좌우 양측 후두엽이 손상되고 일부 측두엽이 손상된 환자는 대상 인식에서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이 환자에게 따로 한 장의 그림이나 물건을 제시하면 대상을 바로 알아 맞췄고, 그 대상을 복사하여 그리는 데에도 문제가 없었고, 두 개의 모양이 같은 대상을 찾아내는 것도 잘 하였다. 그런데, 대상을 두 개 이상(흔히 다른 종류의 대상을) 포개어 놓거나 하면 대상을 전혀 알아맞히지 못하였다. 포개어 제시된 대상을 그리라고 하면 두 대상 각각을 전체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부분 윤곽을 조각, 조각 씩 힘들게 그리는 것이었고, 그려 놓고도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맞히지 못하였다.
이 환자는 대상을 전체 모양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현저한 특성을 지닌 부분 중심으로 파악하고 후에 이를 통합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상이 두 개 이상이 포개어진 형태로 제시 될 때에는 그 부분들에서 의미있는 통합된 전체를 파악해내지 못한 것이다. 부분들을 한 의미 덩이로 묶기와 의미가 통하는 전체의 부분으로 할당하여 통합하는 기능이 손상된 것이다.
<청각 실인증>
뇌손상을 당하고 난 후 어떤 의미 있는 소리를 구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소리의 높낮이, 동물의 울음, 사람의 말은 제대로 인식하는데도 불구하고, 멜로디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여 애국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초등학교 때 배운 동요나 자기가 좋아하던 팝송 곡조도 인식 못하며, 두 음이 같은 멜로디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청각기관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
<시각 실인증>
시각 기관과 시신경전도로가 정상인데도 불구하고 대상을 인식 못하는 증후인 시각실인증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시각적 실인증이 있는 사람은 예를 들어 강아지를, 약간 갈색이나 희고 아래쪽에는 네 개의 짧은 원통이 있고, 한 쪽에는 삼각형 모양과 같은 것이 달려 있고 다른 쪽에는 가는 뾰족한 원통이 수평으로 있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엇이라고 기술하지만 그것이 머리와 꼬리와 다리가 달린 강아지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림 1-8과 같은 그림을 제시하면 이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지각하지 못하고 약 30분이 걸려서야 겨우 그림의 부분을 이야기할 뿐이다. 보이는 대상을 그리라고 하면 그림 1-9처럼 부분 중심으로 그리고 전체적 통합성이 결여된 그림을 그리는데 그친다. 물론 이와는 달리 그림을 정상인과 같이 정확하게 그리지만 그려놓은 그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대상의 모양은 전체를 통합적으로 지각하지만 그 대상의 이름이나 의미를 생각해니지 못하는 증상도 있다


<범주특수적 시각실인증>
이러한 범주 특수적 시각실인증 사례는 대상인식을 하는 인간의 뇌가 대상의 범주 중심으로 전문화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무생물과 생물이 뇌에서 따로 따로 처리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하고 의문을 던지는 학자들은 단순히 무생물, 생물의 차이가 아니라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즉 생물보다 무생물을 손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많아서 무생물에 대해서는 조작 체험이 기억의 보조정보로 사용될 수 있기에 더 잘 인식한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생물보다 무생물이 더 단순하고 상호 유사성이 적기 때문에 인식이 쉽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얼굴실인증>
9.3. 실행증(失行症: 운동신경 장애증)
전두엽과 양측, 특히 좌측 두정엽의 손상으로 인하여 행동의 부분들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는 증후이다. 즉, 손이나 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운동에의 명령 신호와 부분 명령들을 조직화하는 신경중추에 이상이 생긴 때문이다. 이 환자들은 예를 들어 바지를 입을 때에 한 가랑이에 두 발을 계속 다 넣으려고 한다. 담배에 불을 붙일 때에 성냥이 불붙은 다음에도 계속 그어대거나 엉뚱한 곳으로 성냥불을 갖다 대는 행동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환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는 알지만 부분들의 행동을 계획하거나 연결하거나 통합하거나 의미있는 한 목표로 조직하는 체계가 뇌에서 손상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구들에 의하면 두정엽이 바로 이러한 행위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 행위로 계획하고 연결, 제어하는 센터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외에도 뇌의 좌측 반구의 손상으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거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글을 쓰지 못하는 이상 증상인 실어증(aphasia), 뇌의 좌측 반구의 일부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 읽기(소리내어 읽기, 읽으며 이해하기)와 쓰기가 모두 장애를 보이는 경우인 실독증(alexia; 失讀症), 뇌의 언어중추 이상으로 일어나는 독서장애인 난독증(dyslexia), 기억 관련 뇌 부분의 손상으로 인해 기억이 상실되는 경우인 기억상실증(amnesia) 등이 있다. 이러한 이상 현상들에 대하여는 다른 발표자들이 다룰 것이다.
이러한 모든 뇌손상 환자들의 행동적, 심리적 기능의 이상 증후는 우리의 일반적인 행동과 심리적 기능이 자동적으로,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의 담당 부분과 많은 다른 부분들의 적절한 그리고 밀접한 연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며, 각각의 과정에서의 관련 신경정보 처리 미케니즘들이 특수화 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뇌의 각부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대상에 대한 주의도, 대상의 인식도, 적절한 기억의 인출도, 그 상황에 대한 적절한 반응 행동도 이루어 낼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0. 뇌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유전, 환경, 발달, 가소성
뇌의 각 부위별로 기능이 전문화되어 있다면, 그러면 각 부위는 한 개인의 일평생동안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만 고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변화하는가?
한 개인의 성장, 발달 과정에서, 그리고 신체적 부상, 각종 경험 과정에서 뇌는 계속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 가능성을 가소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의 본질과 그 변화가 일어나는 규칙 특성을 밝히는 일이 신경과학의 한 주요 영역이다. 태어나자마자 완전한 개체로 활동하는 하등동물의 뇌와는 달라서 인간의 뇌는 태어난 후에도 계속 발달한다. 한 개인의 일생의 여러 시점에서 뇌가 발달하는 과정은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이며, 여러 시점에서 서로 다른 구조와 기능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성숙되고 발달한다. 새로운 신경연결들이 급격히 많이 형성되는가 하면 불필요한 연결의 솎아내기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면서 뇌의 신경연결구조의 계속된 구조 작업이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한 아이의 뇌의 발달은 임신 이전부터의 요인에 의하여 결정되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여러 주기를 거친다고 볼 수 있다. 뇌는 태아시절부터 끊임없이 세포가 증가하며 세포간의 연결이 증가하는 발달과정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불필요한 연결이나 뇌세포 가지들을 계속 솎아내고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쓰지 않는 세포연결, 불필요한 가지들은 계속 정리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뇌부위의 세포와 세포가지들은 일정한 기간(결정적 시기)이 지나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솎아냄이 이루어지기 전에 적절할 풍부한 자극환경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 그것은 뇌의 발달 수준에 맞는 자극이 적기에 주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활동을 하여 발달시키지 못하면 그 사람의 뇌는 영구히 회복 불가능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인간의 뇌는 한편에서는 불필요한 잔가지들, 연결들을 솎아내는 작업이 끊임없이 진행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뇌세포들이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 다른 세포들과의 연결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마치 밑둥에서는 잔가지가 다 솎아져 제거되지만 나무 줄기는 계속하여 위로 뻗어나가며 새 가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 같이 다른 세포들과 새로운 연결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단 그것은 풍부한 자극환경과, 개인의 능동적인 활동, 자발적인 동기 등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발달과정에서 유전자와 환경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뇌의 기능을 구성하여 나아가는가? 유전자와 환경은 우리의 뇌의 신경적 구조뿐만 아니라, 그를 통하여 심리적, 행동적 특성을 결정한다. 유전자와 환경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인간의 심리적, 행동적 특성을 결정하는가를 연구하는 분야가 행동유전학이다. 인간의 뇌가 심리적 특성을 발현하는 것은 마치 사진필름의 현상과 같다. 사진을 찍으면 필름에 기본 이미지는 이미 박혀 있게 된다(유전). 그러나 이 필름을 어떤 조명 수준에서 어떤 화학물질에 넣어서, 어떤 열을 가하여, 어떤 처리 절차를 거쳐서, 얼마나 오랜 시간에 현상하느냐에 따라(환경) 전혀 다른 색깔과 질감의 사진을 얻게된다. 인간의 뇌와 심리적 특성의 발현도 마찬가지이다. 뇌의 신경세포들의 기본 구조나 연결특성의 기본은 유전으로 결정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와 기능 특성의 뇌세포로 드러내어지는가는 환경의 영향에 의하여 최종 결정된다. 하나의 유전자가 표현되는 세포의 종국적 유형과, 어떤 유전자가 어느 정도 표현될 것인가는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 뇌의 발달은 유전자 부호에 따라서 일정한 단계를 거쳐서 발현된다. 예를 들어, 아기의 시각민감성이 발달된 후에야, 입체 시각이 가능하여지며, 전두엽은 사춘기나 성인 초기가 되어야 완전히 발달한다.
그렇다고 하여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화학물질을 내는 세포들과 연결할 것인가는 유전자 부호에 의하여 결정되지만, 그 연결 과정의 세부과정은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 예를 들어 뇌의 시각 담당 세포를 보면, 태어난 후 얼마 안 되는 고양이의 눈을 봉하고 몇 주일을 지나면, 그 고양이 새끼는 완전히 장님 고양이가 된다. 시각 기능을 담당하도록 유전적으로 준비되어 있던 시각뇌 세포들이 그들이 발달하기 위해 필요하였던 환경으로부터의 자극을 결정적 시기에 받지 못하였기에 발달이 중지된 것이다. 반면 이 결정적 시기가 지나면, 예를 들어 나이가 든 고양이는, 환경자극이 차단되어도 장님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환경 자극이 차단되거나 빈약한 상황과는 반대로 환경자극이 픙부할 때에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로젠즈바이그 박사의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장난감, 굴, 층계 등의 풍부한 자극이 주어지는 환경에서는 쥐의 대뇌피질의 두께가 2배 이상 증가된다. 물론 자극이 없는 빈약한 환경에서는 뇌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뇌피질의 부피가 반 이하까지도 얇아진다. 지루한 환경이 계속되면 나흘만에 대뇌피질의 두께가 얇아진다고 보고되었고, 풍부한 자극환경이 대뇌피질의 두께를 증가시키는 정도보다, 자극이 없는 지루한 환경이 대뇌피질의 두께를 얇게 하는 정도가 더 크다고 한다. 아마도 풍부한 자극 환경은 쥐가 진화과정에서 자라온 자연생태환경과 더 유사한 반면 자극이 빈약한 환경은 그런 생태적 환경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일 수 있다.
그러면 환경자극이 풍부하여 뇌 세포들이 발달한다는 것은 무엇이 발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현재로 대체로 지지되는 입장은,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이 뇌의 신경구조의 신경연결 구조나 배열을 전반적으로 재구성하게 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신경연결들의 강도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입장이다. 같은 시기에 가동되어 활성화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강화되어서 그 이후에 함께 흥분, 활성화되는 ‘함께 흥분하면, 함께 연결된다’라는 원칙에 의하여 연결이 강화되는 것이 환경에서의 경험을 통한 학습의 효과인 것 같다.
환경의 영향으로 새로운 세포들이 형성되고 새로운 신경연결 구조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뇌손상 후의 회복 단계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얼마 전까지도 학계에서는 어른이 된 이후에는 인간의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는 세포가 새로 생겨나도 뇌에서는 새 세포가 생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이 최근에 바뀌었다. 뇌에서도 새로운 세포가 생산된다. 예를 들어 기억의 초기 저장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에서는 새로운 세포들이 많이 생성되어 새 기억의 저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일어나는 뇌 발달의 다른 한 측면은 역할 대행이다.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인접 부위에서 그 부위의 기능을 떠맡아 대신 수행하는 경우가 흔하다. 단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정적 시기가 중요하다. 팔을 절단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얼굴의 볼을 자극하여도 절단된 손을 자극하는 감각을 느낀다. 손을 담당하는 뇌부위와 볼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인접하여 있었는데 손 감각 기능을 볼 담당 부위가 떠맡은 경우의 예이다. 이러한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팔은 절단되었더라도 팔을 담당하는 뇌부위는 살아 있기 때문에 이따금 없어진 팔에서 마치 자극이 오는 듯한 유령감각(Phantom Limbs)을 갖는 경우도 있다.
11. 무엇이 인간의 뇌를 특별하게 하는가?: 뇌의 심리적 기능의 진화
진화론에 따른다면 인간의 뇌가 하등동물의 뇌에서부터 오랜 세월을 거쳐 단계적으로 진화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여러 심리적 기능과 행동들을 살펴보면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과 달리 특수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등동물이나 고등동물에는 없는 언어나 사고 기능을 갖고 있고 고도의 문화를 창출하고 발전시키는 인간 능력의 기본이 인간 뇌의 특별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인간 뇌의 어떤 특성 때문에 그럴까? 진화 단계에서 어떠한 변이가 있었기에 이것이 가능하여졌을까?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론들이 제시되어 왔다. 인간 뇌의 특수함의 문제를 인간의 심리 기능의 가장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는 언어 기능이 어떻게 뇌의 발달에서 진화되게 되었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인간 뇌의 특수함에 대한 한 이론은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의 뇌에 비하여 크다는 이론이었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뇌가 발달하여 큰 뇌를 갖게 되고 그에 따라 지능도 크게 발달하여 그로 인한 우연적 부산물로 최근에 언어가 생겨났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전개하기에는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뇌의 크기로 따진다면 인간의 뇌는 동물 중에 가장 큰 뇌가 아니다. 신체 대 뇌의 비율로 따져도 인간의 뇌가 이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아니다. 다람쥐의 일종이 이 비율이 가장 높다. 따라서 뇌의 크기나 신체-뇌의 비율에 의해 자연적 부산물로 언어가, 인간 지능이 나타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 뇌의 특수함을 좌반구 특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의 좌우반구를 볼 때, 좌우반구 기능 차이만으로는 확실한 답을 얻기 힘들다. 비둘기나 닭의 경우 좌반구는 대상의 범주, 정체를 확인하는 기능이 높으며 우반구는 대상의 색깔, 크기, 모양, 위치 등을 탐지함에서 우수하다. 동물에게 이러한 좌우반구 기능 특수화가 있다는 것은, 인간의 뇌가 특별한 것이 좌반구의 기능 특수화 때문이라는 주장과는 잘 맞지 않는다. 닭과 같은 동물도 좌반구에서 범주적 표상 기능 특수화가 되어 있는데, 닭은 언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는 진화 역사상에서 다른 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해석은 손동작 관련 이론이다. 200만 년 전에 직립 인간이 출현하면서, 이전에는 몸의 지탱 등의 기능을 하던 손이 그러한 기능에서 해방되었고, 이를 통하여 손이 의사소통적 제스쳐와 도구 조작을 담당하는 기능을 갖게 되었고, 다시 이것이 진화하면서 말이 출현함을 통하여 손동작은 제스쳐의 기능을 함에서 해방되게 되었다고 본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이러한 손운동을 지배하는 단일 중추가 필요하였고, 이 중추가 좌반구에 자리잡게 되었으며, 좌반구는 오른손과 오른쪽 몸을 지배하면서 계열적인 몸동작을 제어하는 기능을 발달시켰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계열적 몸동작 제어가 입과, 발성기관에 까지 확산되었고, 그에 따라 좌반구의 언어 담당 기능이 특수화되었고, 인간의 뇌 같은 특수한 뇌가 발달하였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인간 뇌가 특수한 다른 한 이유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다른 수준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 지각, 주의, 정서 등의 측면에서 인간의 뇌의 작용은 다른 동물과 비슷하나, 언어와 의미 지식이 관련된 의식 측면에서는 다른 동물과 차별화 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침팬지 등을 연구한 결과, 동물들은 자신을 객관화하거나 자기의식을 지니는 능력이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다른 동물이 따라오지 못하는 측면인 이러한 의식에 관하여는 13, 14절에서 추가적으로 다루겠다.
인간의 뇌가 진화적으로 어떻게 다른 동물과는 다른 우월한 특성을 지니게 되었는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인지신경심리학, 문화인류학 등의 연구에 의하여 그 답이 계속 찾아져야 할 것이다.
12. 이성(인지)의 바탕이 감성(정서, 동기)임이 어떠한 뇌 기제에 의해 드러나는가?
그동안 심리학의 연구에서나 신경과학의 연구에서는 정서와 인지를 마치 완전히 독립적인 기제인 것처럼 다루어왔다. 그러나,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동기와 정서를 담당하는 부분의 뇌가 인지를 담당하는 뇌 부분보다 먼저 진화되었으며, 동기와 정서를 담당하는 뇌가 인지 일반을 담당하는 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견해가 점차 수용되고 있다.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는 이와 관련하여 정서가 이성적 처리인 의사결정 과정의 밑바탕에 있음을 주장하는 이론과 실험결과를 제시하였다. 그는 안와전두엽 피질이 손상된 환자와 정상인을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정서적으로 중립적인 평온한 농가 사진 등과 정서를 유발시키는 심하게 부상당한 사람, 나체, 심한 재난 등의 사진을 보여준 결과, 정상인은 중립적 사진과 정서적 사진에 상이하게 반응하였는데, 환자는 중립적 사진과 정서적 사진에 같은 정도의 정서적 흥분(피부전도 반응)을 보였다. 또 복권과 같은 카드 게임에서 모험상황(거액을 탈 가능성이 있지만 많은 돈을 투자해야하는 선택지)과 중립적 상황(적은 액수를 타지만 투자액수도 적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한 실험 결과, 정상인은 모험상황을 선택할 때 정서적 반응을 보였으나 안와전두엽 손상환자는 상황 간에 정서적 반응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 결과는 안와전두엽이 인지와 관련된 정서를 담당하고 있음과, 인지적 결정을 할 때에 그 근저에 정서가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함을 시사하는 결과이다.
다마지오 교수에 의하면 판단과 의사결정은 어떤 행위의 결과에 대한 정서적 평가에 의하여 인도된다. 즉 결정과 선택에는 대부분 정서가 개입되게 마련이고, 인간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합리적 결정을 하기보다는 제한된 시간에 빠르게 이득과 비용을 계산하여(대부분 무의식적으로) 과거에 효율적이었다는 행동을 선택하게 되는데, 과거에 효율적이었다는 것의 판단은 특정 선택 행위와 관련하여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는 지표(예: 긴장하여 땀나는가 아니면 몸이 이완되어 있는가 등)를 참고하여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의사결정과 선택이 이러한 신체적 지표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이성적 판단에 정서적 기억이 필수적이며 밑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13. 뇌의 어떤 기제에 의해 의식이 가능하여지는가?: 의식의 여러 측면
우리는 의식을 지니고 있고, 주관적 체험을 한다. 의식이라는 것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가장 큰 기준의 하나이며, 아마도 자연 현상 중에서 가장 복잡한 현상일 것이다. 의식도 인간의 뇌의 작용에 의하여 가능하여짐은 틀림없다. 그러나 뇌의 어떤 과정에 의하여 의식이 출현하고 가능하여지는가? 의식을 뇌의 과정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뇌의 손상에 의하여 의식에는 어떤 이상이 생길까?
의식의 문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철학에서 다루어져 온 문제이다. 데카르트식의 심신이원론을 취한다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뇌 현상일 뿐, 그것이 의식 현상을 설명하여주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유물론적 심신일원론을 취한다면 뇌의 과정을 관찰하고 기술, 설명하면 의식현상이 설명되었다고 할 것이다. 어떤 이론을 취하건 간에, 주관적 내용으로써의 의식을 다루지 않고, 객관적 현상으로써의 의식을 과학적으로 경험적으로 연구한다면 일차적으로 관찰하고 설명할 것이 의식과 관련된 뇌의 과정이다. 의식을 뇌의 과정과 연결지어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의하여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의식의 정의가 학자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대상에 대한 인식, 주의, 정보에의 접근 가능성, 무의식적 처리와 의식적 처리의 차이 문제 중심으로 뇌가 의식에 어떻게 관여되는가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앞서 9.1 절, 9.2절에서 다룬 뇌(편측)무시 현상, 실인증들은 대상에 대한 주의와 인식이 뇌의 손상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의 문제를 다룬 예들이다. 뇌의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 등이 의식에서 자극에 대한 주의, 인식이라는 측면의 기능과 관련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지각적 의식의 기제를 밝히는 것과 관련해서는 TV 광고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법의 하나인 역하자극에 의한 무의식적 정보처리의 예를 생각하여 볼 수 있다. 광고주가 암묵적으로 전달하려는 자극 내용을 찰나적으로 제시하면 시청자는 그 자극이 제시되었다는 것을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뇌에서는 담당 부위에서 처리가 일어나서, 상품을 선택한다든지 하는 단계에서는 그 상품을 선택하거나 상품에 대하여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의식을 논함에 있어서 무의식에 대한 이론적 논의도 함께 하여야 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어떤 것을 학습하는 의식적 단계와 그것을 완전히 학습한 뒤에 무의식적으로, 기계적으로 처리할 단계에서(예: 운전의 경우) 각각 상이한 뇌부위가 가동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양장기를 처음 배울 때에는 주로 좌반구를, 고수가 되면 주로 우반구를 사용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처리의 본질과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처리의 본질의 차이는 앞으로 더 연구되고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4절에서 예로 든 리벳의 마음내기와 준비전위의 실험 예는 우리가 의식하기 이전에 이미 마음(의도)를 내기 위한 예비 과정이 뇌에서 이루어짐을 보여준 예이다. 이 경우 우리가 우리 자신의 그러한 의도를 의식하는 것은 실상은 실제 뇌의 과정보다 500msec 뒤늦게 거꾸로 참조하는(backward referral)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자각적 의식은 실제 사건이 일어난 후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사건이 우리가 의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의식의 다른 한 측면은 자기자신에 대한 자각이다. 자기와 관련된 정보에 대하여 자각하고 내성할 수 있는 기능의 측면이다. 뇌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자기관련 정보처리가 전두엽과 우측 뇌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의 경우, 직장 상급자의 입장에서 자기와 같은 사람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관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평가하고 이야기하라면 제대로 못한다. 즉, 자기 자신의 행동을 여러 시간에 걸쳐 모니터하고 통합하고, 또 오류를 수정하고 하는 것을 못한다. 간질 환자의 경우, 좌우 반구를 각각 번갈아 마취하면서 자신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얼굴이 복합된 그림을 제시하고 누구인지를 보고하라고 하면 우측반구는 정확히 하는데 좌측반구는 오류를 크게 범한다. 이는 우측 전두엽이 ‘자기’에 대한 의식을 관장함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14. 뇌의 각 부위의 기능이 분담되어 전문화되었는데 어떻게 하여 통일적인 의식 경험이 가능한가?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뇌 각 부위의 기능 전문화와 역할 분담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 경험이란 조각난 부분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의식의 주체로서의 경험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사건들은 흔히 원인과 결과의 틀이 적용된 이야기로서의 사건으로 경험된다. 서로 연결되지 않은 낱개 개별 사건으로서 의식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시점에서 뇌의 어디에서, 어떻게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의 인과적 관계성을 구성해내고 통일성, 통합성을 부여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것은 인간의 의식, 마음의 본질에 대한 어떠한 의의를 지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가자니가 교수와 르듀 교수는 좌반구에서 뇌해석기(brain interpreter)라는 시스템이 작용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이 시스템은 외적, 내적 사건에 대하여 적절한 행동을 산출하기 위한 인과적, 이야기적 설명을 도출하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좌반구에 내장되어 있고, 뇌의 여러 부위에서 일어나는 신경적 활동, 특히 의식의 범위 밖에서 이루어지는 신경적 활동에 대하여 그러한 활동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자니가와 르듀는 분활뇌 환자에게 그림 1-10과 같은 자극을 주었다. 이 경우 좌반구로는 닭발 그림이 표상되지만 우반구에는 눈내린 겨울 풍경이 표상된다. 그림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좌반구의 지배를 받는 오른 손은 닭머리를, 우반구의 지배를 받는 왼손은 눈치우는 삽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왜 삽을 선택하였냐고 물으면 ‘눈 내린 겨울의 눈을 치우기 위해서’ 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닭장을 청소하기 위하여 삽을 선택하였다’고 답을 한다. 우반구의 지배를 받는 왼손이 삽을 선택한 이유를 좌반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맥락정보인 닭과 연결시켜서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 즉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기능이 전문화된 뇌부위 시스템들이 각각 (의식되지 않는 수준에서) 모듈적으로 작동하여 집행한 결과들을 좌반구의 해석기 시스템이 받아서 이들에게 통합적인 의미를, 인과성을,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야기에는 자기 자신 관련성이 들어가며 이것이 자의식과 연결된다.
종합하여 이야기한다면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과 달리 특별한 이유,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좌반구에 내장된 해석기의 작용에 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동물도 대부분 지니고 있는 시각중추, 청각중추 등의 뇌부위의 자동적 모듈적 기능 전문화와 그것들의 신경적 활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각 부위들의 활동들의 결과를 연결하여 통합적 의미, 해석을 부여하는 해석기 신경회로가 바로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특징짓는 그러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해석기가 하는 일의 핵심이란 각 전문화된 뇌부위 모듈 시스템들의 능력, 활동에 대하여 해석을 부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식은 인간에게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Gazzaniga 등, 2002).
15. 뇌와 컴퓨터는 어떻게 다른가?
심리학의 한 분야인 인지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의 원리와 컴퓨터의 원리가 정보처리라는 점에서 같다고 보았다.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뇌도 컴퓨터와 같은 방식의 정보처리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뇌를 컴퓨터에 유추하여 생각하는 입장도 제기되었다. 뇌의 세포와 세포 사이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신경 흥분을 보내거나(on) 안 보내거나(off)하는 이분법적 관계라는 것은 컴퓨터에서 칩 사이의 신호전달 관계와 유사하다. 또한 뇌의 신경흥분이 격발되고 조합되고 해석되고 그에 대한 반응이 도출되는 과정들에 대하여 이를 컴퓨터의 정보처리적 계산과정으로 모델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에 대하여, 그리고 마음의 과정에 대하여 디지털 컴퓨터의 정보처리적 계산 과정 개념과 모델들이 심리학적 연구에, 특히 뇌 연구에 계속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이 지각 연구에서처럼 좋은 심리학적 이론과 경험적 결과를 가져온 경우도 있다.
그러나 뇌를 컴퓨터에 유추하는 것은 그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뇌는 컴퓨터와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로 뇌의 신경세포의 수와 이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 수는 현재의 디지털 컴퓨터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이다. 뇌에는 10의 12승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어느 한 순간에도 10여만 개의 세포들이 상호 연결되어 역동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고도로 연결된 신경망에 의하여 작동한다. 그러나 현재의 디지털 컴퓨터는 이러한 정도의 개수의 단위와 이러한 정도의 상호연결된 망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둘째로 뇌의 신호전달은 화학적 신경전달물질에 의하는 데, 컴퓨터의 신호 전달은 신경 칩 사이의 연결에서 전기적으로 이루어지며, 뇌의 신경세포의 신경정보는 신경흥분의 빈도에 의하여 주로 부호화가 되는데, 컴퓨터에서는 정보가 이진법체계인 0과 1로 부호화된다.
셋째로 뇌에서는 각 신경세포 하나 하나가 강력한 처리기이며 신경흥분과 억압 신호를 조합하며 신호의 강도가 일정한 수준 값(문턱값)이 넘으면 자신의 신호를 생성하는데 반하여, 컴퓨터는 대개 단일한 중앙처리 단위가 있어서 이들에 의하여 처리가 제어된다.
넷째로 뇌는 대체로 어떤 처리과정에서건 세포들이 동시에 병렬적으로 작동하는데 작용하는데 반하여, 디지털 컴퓨터에서는 개별적 단위의 정보처리는 뇌보다는 빠르지만 각 정보처리 과정 사이의 연결은 계열적 처리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컴퓨터 실리콘 칩이 뉴런보다 상당히 빠르게 작동하지만, 대상 인식과 같은 통합적 실제 정보처리에서는 인간 뇌가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다. 뇌는 선형적 처리와 비선형적(동역학적) 처리가 공존하지만 컴퓨터는 그 정보처리가 선형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로 컴퓨터는 부분 단위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안 준 채로 분리가능하고 독립(모듈)적이고 쉽게 다른 것으로 대치 가능하지만, 뇌의 부분들은 서로 의존적이며, 독립적으로 분리, 제거하기 어렵고, 하나의 제거나 손상이 다른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며, 다른 것으로 대치하기 어렵다. 또한 뇌의 부분들은 변화가능성, 자연적 가소성(plasticity)이 있어서 손상 시에 기능 복구 및 대체 가능성이 있으나, 컴퓨터는 자연적 변화가능성, 복구가능성이 없다. 인간의 뇌는 생물적 실체이며, 자발적으로 가동되고, 탄생하고, 성장하고, 성숙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병이 날 수 있고 결국 사멸하지만 컴퓨터의 단위들은 인간 뇌가 명령한 것을 수행하며, 사멸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 뇌를 일종의 컴퓨터로 동일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까닭에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인지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에 유추하기보다는 뇌의 작동과정에 유추하여 이론화, 분석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접근이 신경망(neural network) 또는 연결주의(connectionism) 접근이다. 이러한 신경망적 모형은 마음을 디지털 컴퓨터에 유추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들이 있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마음을 컴퓨터에 유추하는 접근과 뇌 신경망의 작동 메커니즘에 유추하는 접근을 혼합한 모형이 더 적절한 접근이리라 본다.
16. 맺는 말; 뇌와 마음의 연결 논의에 대한 재고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외에도 뇌와 마음의 연결과 관련된 다른 주제들이 여럿 있다. 기억과 뇌, 미술과 뇌, 언어와 뇌, 교육과 뇌, 뇌의 탐구방법, 약물과 뇌, 뇌와 정서, 스트레스 및 명상과 뇌, 치매와 뇌, 여성과 남성의 뇌 특성 차이, 뇌의 응용과 기업경영, 한국인이 생각하는 뇌의 개념 등의 문제들이 있다. 이 주제의 세부 내용들은 이 심포지엄에서 다른 발표자들이 다룰 것이다.
마음과 몸의 연결성의 물음 자체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둘 사이의 밀접한 연결성의 인식의 재 부상은 지난 1세기 동안 급격히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 이루어진 인지신경심리학, 인지신경과학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지난 20 내지 30 년 사이의 많은 발견들은 신경심리학, 더 나아가 인지과학과 신경과학 사이의 관계가 상호영향적임을 보여주었다. 그 동안의 연구에 의하여, 주의, 지각, 학습, 기억과 같은 기초적 인지과정으로부터 언어와 사고와 같은 고차 인지과정까지, 인지과정과 신경적 활동 사이에 뚜렷한 대응이 있음이 발견되었다.
또한 신경과학에서 사용하는 방법, 개념, 이론 등이 심리학에 유입되고, 거꾸로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개념, 방법, 이론, 보는 틀이 신경과학의 내용들을 변화시켜왔다. 그 결과, 이제는 신경과학의 단독적 접근이나 심리학의 단독적 접근이 효율적인 연구 틀이 아님이 전반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있다. 둘이 독립적 틀로서 진행되어서는 마음과 뇌의 연결성을 찾는 작업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절박하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절박성, 필요성의 구체적 징후가, 외국의 심리학과에서, 특히 인지심리학 분야의 재구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트머스대학의 심리학과를 비롯하여 해외의 유수한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인지심리학자들, 신경심리학자들이, 신경과학과 공동으로 새로운 학과를 구성하고 있다. 이제 심리학은 더 이상 예전의 심리학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심리학이 신경과학으로 환원, 흡수되고, 모든 심리 현상을 신경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문제는 의미의 문제를 그 중심에 지니고 있으며, 이는 신경과학적 설명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설명을 요하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다원적 차원을 지닌 현상의 설명에는 다원적 접근, 다원적 기술과 설명이 필요한 것이며 그러한 한에 있어서 전통적 심리학적 설명이 요구되는 부분은 계속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심리 과정 중에서 신경과학적 접근과 인지심리학적 접근의 설명 비중이 서로 다를 수는 있다. 기초적 인지과정인 주의, 학습, 지각 등의 과정에서는 그 현상에 대한 설명이 다분히 신경적 구조와 기제에 바탕으로 한 개념과 이론이 주도하고, 심리학적 기술과 설명이 이를 보조하는 방향으로 앞으로의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보다 고차적 추상 수준의 언어 이해 및 산출, 문제해결, 추리, 의사결정 등의 인지과정의 설명에서는 심리학적 이론이 앞으로도 계속 주도하고 신경과학적 연구 결과가 이를 보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본다. 전통적 심리학의 영역은 계속 남으리라고 본다.
끝으로 뇌와 마음의 연결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서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하고 유념하여야 할 문제들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심리학에서 도츨된 기능적 구성요소와 신경과학의 구조분석에서 도출되는 구조요소 사이에 일대일의 대응이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단순하게 보여지는 한 심리적 기능요소가 다양한 신경적 구조요소로 대응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분법적 사고의 위험성을 들 수 있다. 좌뇌는 무엇 담당, 우뇌는 무엇 담당, 인지는 어떤 처리, 정서는 어떤 처리 식으로 어떤 심적 과정이나 인지신경기제의 범위나 특성을 단정적으로 이분법적으로 경계지어 이해하거나 접근하려는 태도는 피해야할, 경계하여야 할 비과학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문제 하나는 신경과학의 연구가 심리학에 시사하는 바가, 특정 뇌 상태와 특정 심리적 상태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상관적 관계가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유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관관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인과관계로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 다음은 6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심리적 기능과 상태에 관한 신경과학적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심적 상태, 과정의 범주적 개념의 규정, 그 범위의 규정 등의 작업이 먼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개념적 작업이 심리학에 의하여 선행되거나, 아니면 그보다는 심리학과 신경과학이 공동으로, 학제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동적, 학제적 연구가 앞으로 뇌와 마음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기본 태도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학재단의 2002년 연구에 의하면, 미래 과학기술은 융합과학기술이어야 하며, 이 융합과학기술은 나노과학(N), 생명과학(B), 정보과학(I), 그리고 인지과학(C)의 4개의 수렴되고 융합된 NBIC 융합과학이며, 이 미래 NBIC 융합과학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전세계 인간의 각종 수행(performance)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생명과학, 인지과학, 정보과학을 잇는 핵심에 ‘뇌’와 ‘마음’의 연구가 있으며, 인간 수행 수준의 향상이라는 목표는 인간의 마음과 뇌를 연결하는 연구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뇌와 마음의 연결 연구가 미래 과학기술 사회의 핵심적, 궁극적 주제가 되는 것이다. 유전자 지도인 Genome 연구를 넘어서서, 이제 뇌와 마음의 연결지도인 Cognome을 도출하는 연구가 미래의 가장 촉망되고 도전적인 연구로서 부상되고 있다. 인간 자신의 물질적, 심리적 속성의 이해! 이것이 과학기술의 최후의 개척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이고 촉망되는 지적, 과학적 탐구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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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에델만 (지음) 황희숙 (옮김) (1998).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범양사.
이정모 (지음. (2001). 인지심리학: 형성사, 개념적 기초, 조망. 아카넷. - 8장, “뇌와 마음의 연결: 인지신경심리학”에서 뇌와 마음의 관계에 대한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연구의 기본 특성 전체를 개괄하고 있다.
Michael S. Gazzaniga, Richard B. Ivry, & George R. Magnun (저) (2002). Cognitive Neuroscience: The biology of the Mind (2nd Ed.). W. W. Norton. - 인지과학적 입장에서 뇌 연구의 상세한 개괄을 한 책. 뇌와 관련하여 알고 싶었던 것의 대부분이 망라되어, 그러나 읽기 쉬운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Martha J. Farah & Todd E. Feinberg (저) (2000). Patient-based approaches to cognitive Neuroscience. MIT Press. - 뇌손상 환자 중심의 연구를 소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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