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스크랩] 고 전 최규하 대통령의 자택

崔圭夏 前 대통령의 서교동 자택

 

 

玄石 崔圭夏(현석 최규하) 前 대통령이 지난 10월22일 서거했다. 기자는 지난 12월7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崔 前 대통령의 자택을 찾았다. 유족인 차남 崔鍾晳(최종석·56) 하나금융지주 고문이 열쇠로 대문을 열어 주었다. 崔 前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가 이날 처음으로 月刊朝鮮에 문을 열어 준 것이다. 마당에는 목련·감나무, 덩쿨 장미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朴正熙 前 대통령 특보로 일하던 1973년, 종로구 명륜동에서 마포구 서교동으로 이사한 집에는 샘물이 있었다. 이곳에 물펌프를 박아 2004년 작고한 洪基(홍기) 여사가 직접 손빨래를 했다고 한다.



 



광부들과의 약속을 평생 지켜
 











崔 前 대통령은 1979년 제2차 오일파동 때 만난 장성탄광 광부들에게「나만이라도 끝까지 연탄을 쓰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洪여사는 崔 前 대통령이 장관 시절에나 국무총리 시절에나 가정부를 두지 않고 직접 빨래와 다림질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식탁을 차렸다고 한다. 총리 시절, 총무비서관이 『세탁기를 쓰시라』고 권하자 洪여사는 『손빨래도 못 믿는데, 어떻게 기계에 맡기냐』고 했다.
 
  서교동 집에서는 아직도 연탄을 때고 있다.
 
  『연탄을 구하기 어렵다』고 비서관들이 이야기하면 崔 前 대통령은 『연탄, 내가 구해 줄까?』라며 연탄보일러의 불이 꺼지지 않게 했다. 그것은 「광부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1979년 제2차 오일파동 당시 국무총리였던 崔 前 대통령은 강원도 장성탄광 시찰을 갔다. 막장까지 들어갔던 그는 광부들이 힘들게 연탄을 캐는 모습을 보고 『나만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연탄을 때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닳아빠진 흰고무신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 崔 前 대통령은 고무신을 즐겨 신었다. 바닥이 닳은 태화고무신과 소박한 슬리퍼가 집주인의 검소함을 말해 준다.

  출입문을 열자 흰고무신과 슬리퍼가 보였다. 崔 前 총리가 작고하시기 직전까지 시너셨던 신발 두켤레가  검소한 생활을 실천 하셨던 분이라는걸 직감케 했다

참으로 존경스럽고 한번 약속하신뜻은 끝까지 지키셨던

님의 철학이 너무 감동 스러워 꽃나라 한번 올려 보았습니다[펌글]

출처 : 시인과 비둘기
글쓴이 : 꽃나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