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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종교, 사상

[스크랩] 2001년 세계 지식인 지도 1 - 중앙일보

 

[2001년 새해 특집]

세계 지식인 지도 -『중앙일보』연재

 

 

▶ 게 재 일 : 2001년 01월 01일 10面(10版)
▶ 글 쓴 이 : 정재왈

 

 

지금 인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혼돈 속에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이럴 때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류가 역사적으로 전진할 때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시대가 흐름을 틀 때는 방향을 잡아줘온 지식계. 세계 지식계는 지금 어떤 판도를 짜고 있나, 또 어떤 변화를 몰고 오나. 중앙일보는 재작년 국내 ‘지식인지도’를 내보낸데 이어 올 한 해 주간 연재로 ‘세계 지식인지도’를 그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10월부터 국내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에서 맹활약을 보이는 소장학자 6명을 기획위원으로 위촉, 주제와 인물 선정 등 집중적인 ‘지도제작’ 작업을 펴왔다.

오늘 이들로부터 시리즈의 설계과 의미를 짚고 연재 제1회를 내보낸다.

 

▶이동철=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엄밀한 의미에서 21세기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런 전환기를 맞아 중앙일보가 ‘세계 지식인 지도’를 기획했습니다. 시리즈의 문을 열면서 우선 지식인으로서의 소감이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김성기=글쎄요. 저는 ‘지식인의 책무’ 문제를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노엄 촘스키의 표현인데, 이것이 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저 자신이 갈수록 기성 질서의 일부로 편입되거나 그 틀에 순치되고 있다는 자각 내지 반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에둘러 애매모호한 발언을 일삼으며 지식인 행세를 하기보다 좀더 분명한 태도를 취하려고 합니다.

 

▶정과리=그 의연한 각오가 제게도 용기를 줍니다. ‘지식인의 책무’에 동감하면서 저는 지식인의 변모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세기의 막바지에는 세계화, 상업화와 더불어 지식인의 전반적인 퇴조가 두드러졌습니다.
  러셀 자코비가 ‘공적 지식인’의 소멸을 이야기했듯, 세상에 대한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사유인으로서의 지식인은 주변으로 밀려났고, 그 자리를 상품화한 기능적 지식인이 차지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지식인의 프롤레타리아화 현상과 맞물려 더욱 심각한 현상을 초래했습니다.

 

▶이동철=비록 용어는 다르지만 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金주간의 ‘지식인의 책무’ 와 鄭교수의 ‘공적 지식인’은 닮은꼴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지식인의 위상을 전제로 잠시 지난 세기를 정리해 볼까요.

 

▶임지현=20세기는 자유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의 해방을 약속하고 지향했던 근대의 계몽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기획들이 그 한계를 드러낸 채 사상적으로 파산한 세기가 아니었나 합니다. 두 차례에 걸친 참혹한 세계대전과 잔인한 식민통치,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파시즘의 만행, 지구 생태계의 위기 등은 근대적 해방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정과리=저도 지난 세기가 돌이킬 수 없는 ‘인간 위기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의 몰락으로 인한 패권의 집중이 두드러졌던 세기입니다. 패권의 집중이란 서양의 지배가 미․소의 지배로 압축됐고, 결국 미국의 승리로 귀결된 것을 뜻합니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단지 정치경제학만이 아니라 문화 일반, 더 나아가 일상적 삶의 전부로까지 확대됐습니다. 그것은 결국 물신의 지배를 낳았고, 모든 것이 상품가치라는 유일의 척도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김상환=사상사적으로 볼 때 20세기는 서양의 문명과 그것을 떠받치는 서양적 사유가 전 지구적으로 지배력을 획득한 시대였습니다. 이를테면 서양문명이라는 유기적 생명체가 그 성장의 잠재력을 극단적으로 실현한 세기였던 셈이지요. 그 동력은 자본과 첨단기술이었습니다.

 

▶임경순=金교수의 지적에 동감합니다. 20세기를 거치면서 과학기술은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그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했습니다. 우선 20세기 초반에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등 물리학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중반 이후에는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으로 대변되는 생명과학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김성기=한국의 상황에 국한해서 본다면, 지난 세기에 우리는 식민지적 질서의 질곡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자주 독립과 근대화를 향해 줄곧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야말로 21세기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문화와 학문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동철=이제 우리는 21세기에 들어섰습니다. 金주간이 지적한 것처럼 탈식민주의는 새 세기 우리의 좌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여러 고민과 관련해 ‘세계 지식인 지도’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참고로 중앙일보는 재작년에 한국의 ‘지식인 지도’를 연재하면서 ‘집단 분류’라는 특이한 방식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연장선 위에서 ‘세계 지식인 지도’를 어떻게 방향지을 것이냐가 시리즈 기획위원들의 논의 과제였습니다. 지난 10월부터 석 달간 기획위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학계의 도움을 받아가며 주제와 인물 선정에 골몰했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희가 계획한 주제들을 소개하면, 첫째 주제인 ‘20세기에 대한 거역’ 외에 ‘세계화의 도전과 응전-자본주의의 미래’, ‘근대성의 해체’, ‘생태주의와 자연의 새 이해’, ‘21세기의 억압과 해방’, ‘디지털 시대의 전개-네트워크 소사이어티’, ‘새로운 문화와 예술’, ‘두 얼굴의 과학기술’, ‘새 정신의 전개’, ‘아시아의 도전’ 등입니다.

 

▶김상환=애당초 저는 20세기에 누적된 지적 성과도 정리하기 벅찬 실정에 21세기의 지적 흐름을 예견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재작년에 중앙일보가 게재한 국내 ‘지식인 지도’를 예비적 모델로 해서 세계적 차원의 지식인 지도를 그려 본다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결론내렸습니다.
  20세기의 석학이나 대가들 이후 새로운 물꼬를 열어가는 지식인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이들이 터놓은 물꼬가 어떤 거대한 물줄기를 이룬다거나 새로운 저수지의 역할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일단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는 지형의 변화를 점검하고 기록하는 것은 의미 있을 것입니다.

 

▶김성기=저는 이 기획이 ‘지금, 여기 우리의 눈으로 본’ 현대 지식인 지도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말을 줄곧 외쳐댔지만, 실은 여전히 변방으로 남아 있지요. 지식인 문화의 경우에 특히 심했다고 봅니다.
  이번 기획이 이같은 서구 종속적인 학문 질서를 극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그런 소망은 우리가 주제를 선정해온 과정에 잘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미래는 있는가’, ‘디지털 정보화 시대의 삶과 문화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진지한 물음 말입니다.

 

▶이동철=金주간께서 자연스럽게 ‘세계 지식인 지도’가 앞으로 그려나갈 지형도를 잠깐 언급했습니다. 각자의 전공 분야에 맞춰 무엇을 담게 될 것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임경순〓과학 분야로 국한한다면 20세기까지 지배해 온 전통적 과학관에 대한 거부의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특히 첫 주제인 ‘20세기에 대한 거역’에서 이를 조명할 참입니다. 예를 들면 과학의 상대주의적 측면을 부각한 토머스 쿤이라든가, 이를 더욱 극대화한 데이비드 블루어, 비결정론적이고 유기체적인 과학관의 기치를 내건 일리야 프리고진 등의 학문 세계가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임지현=21세기 학문의 초점은 해방의 외연(外延)을 넓히는 데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양과 동양이 비판과 연대로 엮이는 과정을 주목합니다. 역사학으로 좁혀 본다면 여성사․환경사․서벌턴(subaltern)의 역사․일상사 등이 이런 목표에 부합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탈(脫)오리엔탈리즘이나 페미니즘 등은 ‘세계 지식인 지도’의 중요한 주제로 다룰 것입니다.

 

▶정과리=저는 근대성(모더니티)의 문턱을 넘어가는 세상의 변화 모습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근대성의 해체’는 섣불리 간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특히 한국은 모더니티의 완성(통일국가의 형성)을 미완된 숙제로 남겨두고 있으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더니티 속에 휩쓸려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지구적 환경 속에서 이 문제를 숙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세계화 또한 거역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 ‘세계화=미국화’란 등식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중압감과 그 해결 방안도 한번 진지하게 논의해 볼 만합니다.

 

▶김상환=문화적 현실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큽니다. 그러나 그동안 문화인류학과 비교종교학.포스트모더니즘 등에 힘입어 종교에 대한 이해가 크게 변했습니다. ‘새 정신의 전개’에서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겁니다. 나아가 인간의 정신과 사유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인공지능과 인지 심리학, 환상문학이나 SF문학도 ‘세계 지식인 지도’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주제들입니다.


▶이동철=목표가 거창하면 실망도 크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세계 지식인 지도’에 적용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번 기획이 좋은 열매를 맺게끔 노력하는 것도 기획위원들과 필자들이 맡아야 할 ‘지식인의 책무’일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기획이 한국 지식사회에 자극제가 되는 동시에 자생적 담론의 형성에 촉매로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기획위원=김상환, 김성기, 이동철, 임경순, 임지현, 정과리 (가나다 순)

 

정리=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20세기에 대한 거역 - 1. 촘스키의 야만사회 비판

 

 

▶ 게 재 일 : 2001년 01월 01일 11面(10版)
▶ 글 쓴 이 : 장영준

 

 

지난 20세기 역시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는 역사법칙을 고수했다. 빛의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파괴 기술은 그것을 앞질렀다. 자유와 인권의 신장을 비웃듯 인권 유린이 자행됐고 탐욕을 위한 체제공학과 전쟁이 문명사를 그늘지게 했다. 사람과 물자를 위한 교통․통신의 발달은 투기 자금을 실어 나르는 비트의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그뿐인가. 수많은 불치병이 정복됐지만 동시에 언제라도 죽은 히틀러가 복제인간으로󰡐제작󰡑될 수 있는 야누스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세기 문명사회에 대한 투쟁의 한가운데에 아브람 노엄 촘스키(72)가 있다. 그는 말한다.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한국 국민이 아니라 국제 투자가들이다. 한국 국민들은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고통을 받았고,은행가.투자가의 이익을 보장하는 사회적 비용을 국민이 떠안은 셈이다.󰡓

 

일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피에르 부르디외도󰡐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지식인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지만,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일관되게 그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이 바로 미국의 사회비평가이자 언어학자인 촘스키(MIT 교수)다. 아담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에서는 정의 사회를 위한 ‘결과의 공정 분배’가 핵이었으나 신자유주의는 가난한 자로부터 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촘스키의 분석이다.

 

  노동의 이동을 막고 자본의 이동은 허용한 결과 해지 펀드의 농락으로 세계적 경제 혼란이 초래되었다고 경고하고, 초국적 기업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자간 투자협정과 같은 음모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므로 끊임없이 경계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촘스키는 주장한다.

  사기업은 왜 문제인가? 촘스키의 말을 들어보자.

 

“전체주의․군국주의․제도의 폭력 등도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지만, 사기업이 더 위험한 이유는 돈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비자는 거부되어도 송금은 거부되지 않는다. 사기업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지만, 여기에 인권이나 정의, 부의 공정 분배 같은 단어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좋은 사회’를 위한 촘스키의 주장은 언론 문제에서도 독특하다. 그는 사유 언론이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광고주는 언론 소유주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폐쇄된 이익의 고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사례를 보자.1975년 인도네시아 군은 포드 정권의 암묵적 동의 아래 동티모르를 점령하여 무자비한 인종 청소를 자행했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바로 그 언론은 월맹군의 캄보디아 학살이나 십여 년 후에 일어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서 엄청난 물량의 보도를 해댔다. 미국 석유회사의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다큐멘터리 ‘대중매체와 여론조작’에서 촘스키는 영국의 더 타임스와 미국의 뉴욕 타임스의 보도 태도를 비교하면서 미국 주류 언론의 이중성을 폭로하여 전세계인의 감명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말대로 거대한 권력기관인 언론이 ‘좋은 사회’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세계 지식인 사회와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들이 침묵으로 일관할 때, 촘스키는 동티모르의 인권과 독립을 위해 일관되게 투쟁했고, 그 연장선에서 미국의 약소국에 대한 개입 정책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레이건 정부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구실로 인구 10만도 안되는 그레나다를 침공했을 때, 미국 언론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허울로 도처에서 경찰 역할을 자임했지만, 미국은 실은 미국 국민이 아니라 일부 군수 업체의 이익을 위해 참견꾼 역할을 해왔을 뿐이라고 그는 본다.

  1960년대에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을 때 촘스키는 직접 전장을 돌아 보고 민간인 마을에 대한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을 고발하기도 했다. 노근리 사건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촘스키는 반전의 표시로 납세를 거부하기도 했고, 징집거부 운동을 벌이던 청년들의 데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체포․구금되었던 저명한 소설가 노먼 메일러는 촘스키에 대해󰡒야위고 날카로운 얼굴에 수도사같은 인상을 지녔고,부드럽지만 완벽한 도덕성이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촘스키는 반미주의자인가? 인간의 존엄과 좋은 사회 건설을 위해서라면 그는 모든 비난을 감수한다. 유태 국가의 건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열등국민화함으로써 평화의 길이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그는 이스라엘 건국을 비판했다. 이 때문에 유태인인 그가 반유태주의자란 비난을 자초했지만, 그는 모든 ‘주의’와 이중 잣대를 거부한다.

  촘스키의 투쟁 전선은 넓기만 하고, 길은 아직 멀게만 보인다. 20세기를 점철했던 야만의 장면들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견 분산되고 외로운 울림 같아 보이는 촘스키의 투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좋은 사회의 건설’이다. 각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그가 지향하는 사회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에게 무정부주의자란 이름을 걸어 주었지만, 막상 자신은 이를 거부한다. 촘스키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건전한 양식’과 더불어 ‘이웃과의 연대’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NGO 회원들의 조직적 저지로 실패하고 만 것이 본보기다. 이런 맥락에서 전국 단위 선거보다 생활정치인 지방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그의 촉구는 지방자치 역사가 일천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세기 문명사회에 대한 촘스키의 투쟁은 그 사상적 토대를 멀리 플라톤-데카르트-훔볼트로 이어지는 이성주의와, 오웰의 무정부주의에 두고 있으며, 듀이와 로크의 자유주의에도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러셀을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비판자들은 촘스키의 투쟁이 개인주의적이고 고립되어 있는 고고한 울림에 불과하다며 한계점을 지적하지만, 정작 그는 ‘참여’와 ‘이웃과의 연대’를 강조한다.

장영준<중앙대 교수 ․영문학>

 

 

촘스키는 누구…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49년 펜실베이니아대 졸업
▶51~55년 하버드대 특별연구원
▶55년 MIT 전자공학연구소 연구원,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언어이론의 논리구조’로 박사학위 받음
▶57년~현재 MIT 교수

 

관련 저작들은…

 

<번역 저서>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한울, 1996)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이후, 2000)

<관련서>
▶『촘스키, 끝없는 도전』(그린비, 1999)
▶『촘스키』(시공사, 2000)


 

 

[세계 지식인 지도] 촘스키가 걸어온 길

 

 

▶ 게 재 일 : 2001년 01월 01일 11面(10版)
▶ 글 쓴 이 : 정재왈
 

촘스키는 자신의 천재성을 인류의 밝은 삶을 위한 투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행동파 지성이다. 우선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못해 눈부실 정도다. 29세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부교수, 32세에 정교수, 37세에 석좌교수, 47세에 아주 드문 경우지만 그 자신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기관과 상응하는 ‘인스티튜트 프로페서’ …. 그는 주전공인 언어학뿐만 아니라 정치학․철학․인지과학․심리학 등 다방면에서 70여권의 저서와 1천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정력적인 학자다.

 

  일찍이 미국의 유력지인 『시카고 트리뷴』은 촘스키를 인류 역사상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여덟번째 인물로 묘사했고, 뉴욕 타임스는 그를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라 불렀다. 1980년부터 92년 사이 인문․예술분야 인용지수(AHCI)에서 4천회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인용지수(SCI)에서도 74년부터 92년 사이 1천6백여회나 인용됐다. 이런 통계는 촘스키가 인문학뿐만 아니라 과학분야에서도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촘스키는 2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인 이민 2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뉴욕 타임스의 부음란에 소개될 만큼 내로라 하는 히브리어 학자였다. 언어학자로서 그의 삶의 원천은 아버지였다.

 

 

유년 시절 그는 미국의 교육사상가인 존 듀이의 교육방침을 따르는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오크 레인 컨트리 데이 초등학교에서 창조적인 사고를 키웠다. 이런 교육전통에 영향을 받아 “교육은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고양시키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촘스키는 50년대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의 키부츠에서 공동체 생활을 경험한다. 여기서 자유주의 정신을 체득한 그는 점차 현실문제에도 눈을 뜬다. 특히 사회주의자가 많았던 외가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게 분명한 그의 비판정신은 60년대 들어 본격 폭발한다.

 

  베트남 전쟁 등 사회적 이슈들이 분출하던 당시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반대운동의 전초에 섰다. 66년 뉴욕 타임스의 기고문은 촘스키를 비판적 지식인으로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지식인의 책무」란 제목의 글에서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이후 뉴욕 타임스 등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그를 기피인물로 외면했다. 그는 67년 국방부․법무부 앞의 반전 데모에 참가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도 그는 비판의 강도를 낮추지 않았다. 걸프전과 코소보, 동티모르 등에서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의 고삐도 늦추지 않고 있다. MIT의 제자그룹과 주도한 『Z-매거진』은 촘스키 사상의 진원지다.

 

이메일 주소는 <homsky@mit.edu>

 

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20세기에 대한 거역- 2. 캘리니코스와 IS그룹(국제사회주의)

 

 

▶ 게 재 일 : 2001년 01월 11일 12面(10版)
▶ 글 쓴 이 : 정운영

 

 

 적의 적은 동지라는 통념이 맞는다면, 자본주의 제도와 처절하게 싸우는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동지라야 옳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 체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김으로써 적의 적조차 적으로 돌렸다. 사회민주주의 역시 전술적 제휴 따위의 고려조차 없이 적의 편으로 몰아붙였다.

 

  트로츠키주의자가 바로 그들이다. 사부(師父) 트로츠키는 망명지에서 스탈린의 첩자한테 살해되고 그의 지지자들 역시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당했으니, 그들의 투쟁이 그만큼 고독하고 집요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확실히 트로츠키주의는 20세기를 횡행한 거대한 ‘이단’이다.

 

  무엇보다 치열한 이념의 깃발을 세우고 누구보다 강고하게 투쟁의 날을 벼렸음에도, 그들은 정치적으로 주변 집단의 신세를 면하지 못했으며, 지적으로도 요주의 위험 사상으로 대접받기 십상이었다.

 

 

*** 트로츠키주의 이론가

 

트로츠키주의자 가운데 교수가 드문 것은 강단보다 현장을 앞세우는 그들의 ‘명예로운’ 전통 때문일지 모른다. 알렉스 캘리니코스(51)는 요크대학의 정치학 교수로서 이 불문율을 어겼으나,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투사로서 국제사회주의(IS) 운동을 이끄는 ‘이론적 실천’의 명예를 지키고 있다.

 

  국제사회주의의 ‘살생부’에는 제거 대상 제1호로 스탈린과 스탈린주의가 올라 있었다. 이미 죽은 스탈린이야 어쩔 수 없지만, 스탈린주의가 망친 소련 역시 어서 무너져야 했다. 이들의 눈에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며, 하다못해 “타락하고 왜곡된 형태의 사회주의조차 아닌 사회주의의 부정이다.”

 

  법적으로는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고 계획경제가 시장을 대신하지만, 실질적인 노동자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 소련의 정체는 기껏해야 관료가 주도하는 자본주의이다. 지난해 별세한 국제사회주의의 대부 토니 클리프는 이를 ‘국가자본주의’라고 명명했다. 사회주의를 배반한 국가자본주의로의 타락, 그것은 캘리니코스와 그의 동료들이 ‘현실사회주의’를 대하는 기본 관점이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붕괴는 이런 혁명의 탈선에 대한 ‘역사의 복수’이며, 그것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위험과 희망의 기회를 동시에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스탈린주의의 악몽을 떨어내고 현실사회주의라는 오물을 치워버린 것은 명백히 희망이다. 반면에 이로써 모든 사회주의적 대안과 전망이 끝장났다고 생각한다면 이만저만 위험이 아니다. 그들이 갈고 닦은 진짜 사회주의, 즉 ‘혁명적 사회주의’가 펼쳐질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역사의 복수는 결코 ‘역사의 종언’이 아니다.

 

 

***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스탈린주의의 몰락으로 복수 하나는 끝이 났다. 그러나 자본주의 타도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트로츠키주의의 승리라는 또 다른 복수는 여전히 길이 멀다. 캘리니코스는 국제사회주의 그룹의 덩컨 핼러스, 크리스 하먼, 존 몰리뉴 등과 협력하여 이 승리의 필연성에 실천적 논리를 제공하려고 한다. 사실 그것은 고전의 답습이다. 예컨대 “시장은 착취를 낳고, 시장은 무정부적이며, 시장은 인간을 억압한다”는 이들의 자본주의 고발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생각한 세 개의 출구, 즉 현상 그대로의 방임이냐,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으로의 개량이냐, 민주적 통제로의 대체냐는 질문도 낯설지 않다. 착취를 근절하고, 무정부성을 극복하고, 환경을 규제할 새로운 사회의 혁명적 건설이라는 그들의 대답 또한 예정된 것이다.

 

 

*** ‘자본주의 만세’는 착각

 

이렇게 근본적인 혁명과는 별도로 당장 현실사회주의 붕괴에 뒤따른 ‘자본주의 만세’의 착각을 바로잡는 일이 급하다. 각종 종말론 시리즈에서 세계화 찬가까지 지구를 평정한 듯한 신자유주의의 오만과 횡포에 맞서 이들이 준비할 투쟁 메뉴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은 전형적인 사례가 될 만한데, 캘리니코스는 1968년 혁명의 실패에서 이 유행의 기원을 찾는다. 모든 저항에의 미련을 버린 채 1980년대 안정된 중년에 들어선 이들 68세대에게 과거 망각과 부정은 거의 유일한 선택이었다.

 

  정치에 대한 환멸과 소비적 삶으로의 도피라는 기묘한 이중주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묵시론적 음조’로 이어졌는데, 그 해독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실로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들려주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혁명의 전망을 깔아뭉개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포스트모더니즘과 一戰`

 

문제는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그것의 혁명적 실천일 터이다. 비교적 초기 저작인 『마르크시즘의 미래는 있는가』의 결론에서 캘리니코스는 “사회주의 지식인들과 전투적 노동자 계급이 마치 통신이 두절된 채 고립된 두 척의 배처럼 나란히 존재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개탄했다. 그렇다면 두 배의 통신을 이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작업은 이중의 숙제를 떠맡은 당의 몫이다. 즉 이론을 계급 투쟁에 직결시키는 과제와, 전면적 혁명 전략의 일환으로 일상적 투쟁에 참여하는 과제가 그것이다.

 

  전자에서는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레토릭이 강하게 느껴지고, 후자에서는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충고가 진하게 풍기는데, 양자는 각기 마르크스주의의 구조주의적 해석과 인본주의적(humanistic) 해석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최근의 저서 『사회 이론』에서 캘리니코스는 ‘니체의 복수’를 추가한다. 역사적 유물론의 구조와 계급 투쟁의 주체를 연결하는 고리가 바로 ‘자기 결정’이라면, 저자의 비판과는 별개로 니체의 복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상황 자체를 변경하여 혁명의 조건을 마련하는 구조와 주체의 변증법 말인데, 그거야말로 거역의 최고 문법 아닌가? 지난 세기는 트로츠키주의자에게 수난과 모멸의 시대였다. 새 세기의 희망을 설계할 적임자로 선뜻 캘리니코스를 추천해도 좋으리라.

 

정운영 <본지 논설위원, 경기대 교수.경제학>

 

 

<캘리니코스는 누구…>

 

▶1950년 짐바브웨에서 출생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자본론 연구로 박사 학위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SWP)중앙위원
▶계간 『국제사회주의』 편집위원
▶현재 영국 요크대 정치학 교수

 

<관련 저작들은…>

 

◇번역서
▶『마르크시즘의 미래는 있는가』(열음사, 1987)
▶『역사와 행위』(교보문고, 1991)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 1993)
▶『역사의 복수』(백의, 1993)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성림, 1994)
▶『현대철학의 두가지 전통과 마르크스주의』(갈무리, 1995)

 

◇미번역서
▶『사회이론』(폴리티, 1999)
▶『평등』(폴리티, 2000)

 

 

 

20세기에 대한 거역- 3. 사이드의 반오리엔탈리즘

 

 

▶ 게 재 일 : 2001년 01월 18일 13面(10版)
▶ 글 쓴 이 : 임지현

 

 에드워드 W. 사이드(66)가 1978년 출간한 『오리엔탈리즘』(이 말은 적당한 우리말 번역이 없이 원어 그대로 사용된다. 굳이 번역하자면 ‘동양주의’, ‘동양학’ 등이 될 것이다)은 서양이 행사해 온 지배구조를 전복하려는 한 지식인의 지적(知的)시도였다.

 

  팔레스타인 출신인 이 지식인에 의하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적 축적물인 오리엔탈리즘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착각’이었다. 그것은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서양이 가공해 낸 것이다. 사이드가 열거하는, 버젓이 진리로 행사해 온 ‘공인된 착각’의 목록은 지리 할 정도로 길다.

 

  “유럽인이 타고난 논리학자라면, 동양인은 정확성을 결여하고 있다. 둔감하고 의심이 많으며 상습적 거짓말쟁이인 동양인의 심성은 앵글로-색슨 인종의 명석함.솔직함.고귀함과 대조된다.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 유치한 동양인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숙한 정상적 유럽인에 비하면 비정상이다” 등등….

 

  그러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상투적 편견을 단순히 재생하는 데 그쳤다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그저 야트막한 구릉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것이 근대 학문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봉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식론적이며 실천적인 문제의식 덕분이다. 왜, 그리고 어떻게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과 착각이 공인된 진리로 자리 잡았으며 또 그것이 갖는 정치적․실천적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이 그것이다. 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이드가 꾀한 것은 일차적으로 근대 서양이 구축한 진리에 대한 반란이다. 학문적 진리라고 주장해 온 오리엔탈리즘이 실은 편견과 착각의 산물임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이 독점한 학문적 헤게모니를 거부하려는 몸짓이며, 서양이 주도한 근대 문명에 대한 거역이다.

 

  버나드 루이스(85․영국의 이슬람학자) 같은 서양의 동양학 연구자들이 사이드의 저서는 서양의 동양학 연구를 왜곡하고 오염시키는 선동적인 책이라고 반발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신들의 학문적 기반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논리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편견과 착각이 진리로 공인 받을 수 있었는가? 사이드에 의하면 이 마술을 가능케 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제국의 권력이다. 제국은 군대의 무력 사용이나 억압적인 행정기구와 조세제도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유지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제국은 식민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다. 식민지인들이 문화적 헤게모니에 종속될 때, 그것은 제국에 대한 자발적 복종으로 이어지며 통치비용을 절감한다. 식민지 동양에 대한 제국의 담론을 구성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성하는 주요한 축이다. 제국의 지배체제는 물리적 억압 장치뿐만 아니라 자신을 유연하게 재생산하는 문화적 기제(機制)를 갖는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의 헤게모니 시스템의 후자에 주목한다. 이것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 이탈리아의 좌파 사회학자)의 헤게모니론, 미셸 푸코(1926~84, 프랑스 철학자)의 지식권력, 레이먼드 윌리엄스(1921~88, ‘영국 문화연구’의 문을 열음)의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사이드가 이끌어 낸 통찰이다. 이렇게 볼 때,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은 제국주의자들만이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식권력의 메커니즘을 통해 식민지 피지배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침투하여, 제국의 지배를 매끄럽게 해준다.

 

  알제리 식민지 민중의 심성에 대한 프란츠 파농(1925~61, 알제리의 정신병리학자․철학자)의 정교한 정신분석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의식의 식민화’ 과정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만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서양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서양을 따라야 할 모델로 간주하는 식민지인들의 이중성이 배태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서양을 철저하게 배격하면서도 인식론적으로는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지 민족주의의 이중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투쟁이 정치권력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권력과 지식권력의 차원에서 동시에 전개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만이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라고 간주한다면 오산이다. 서양의 근대문명에서 배제된 서양의 민중들 또한 숨겨진 피해자이다. ‘상상의 지리(地理)’로서의 동양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다발은 서양의 근대권력이 배제하고자 했던 요소들이었다. ‘동양적 정체성’은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여 근대 권력에 버림받은 서양의 주변인들이 갖고 있는 속성이기도 했다. 오리엔탈리즘은 요컨대 근대 서양의 권력담론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 학문적 진리체계가 아니라 권력담론임이 폭로되는 순간, 은폐된 서양의 우상은 설 땅을 잃는다. 다양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이드의 문제제기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나 서벌턴(subaltern: 인도에서 일어난 탈식민주의적 역사연구경향) 연구집단에게 계승되는 것도 이 점에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과대 포장된 서양문명에 제몫을 찾아주려는 주변부 지식인들의 학술운동인 것이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사이드는 누구

 

▶1935년 영국령이던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출생
▶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 빅토리아대에서 공부하다 50년대 말 미국으로 이주.
▶57년 프린스턴대 졸업(문학․음악․철학 전공)
▶60.64년 영문학.비교문학 전공으로 하버드대 석사 및 박사
▶77~91년 팔레스타인 국가평의회(망명국회)의원
▶97~99년 미국 어문학회 회장
▶현재 컬럼비아대 석좌 교수 및 미국학술원 회원

◇관련 저작들은

 

<번역서>
▶『문화와 제국주의』(창, 1995)
▶『권력과 지성인』(창, 1996)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2000)

 

<미번역서>
▶『팔레스타인의 문제』(1979)
▶『세계, 텍스트 그리고 비평가』(1988)
▶『음악적 서술』(1991)
▶『박탈의 정치학』(1994)

 

 

 

20세기에 대한 거역- 4. 전통적 과학관의 반역자들

 

 

▶ 게 재 일 : 2001년 02월 01일 12面(10版)
▶ 글 쓴 이 : 임경순

 

197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며 고체물리학계의 대부인 필립 앤더슨(78, 미 프린스턴대 교수)은 72년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많은 것은 다르다(More is different)」라는 짤막한 글을 발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글은 20세기가 원자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생명과학, 나노(nano)과학, 복잡계과학의 시대라는 것을 예고한 ‘반란’의 서곡이었다.

 

  그는 여기서 근본 물질과 힘을 연구하는 소립자물리학이 통일 이론을 완성하면 자연과학의 모든 부분이 통일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입장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소립자물리학 분야는 은연중 우주의 모든 물질을 지배하는 근본 법칙과 기본적인 구성 요소를 이해하면 우주 만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소립자물리학 이외에 고체물리학 같은 과학들도 각기 ‘근본적인’ 법칙과 존재론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생명과학, 나노과학, 복잡계 과학 등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런 실용적인 응용 가능성을 무기로 자신들도 나름대로 근본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20세기 내내 전통적 과학관은 끊임없는 도전을 받았다. 과학적 지식은 종교나 인문사회과학과 달리 객관적이고 실증적이라는, 과학혁명기 이후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테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가치 중립과 객관성이라는 난공불락의 성 안에 과학이 안주할 없게 된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20세기 전반기에 과학계를 지배했던 원자물리학과 소립자물리학이 주도적인 지위를 상실해 가는 반면, 복합적인 현상을 다루며 국소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생명현상, 나노세계, 복잡계 분야들이 점차 떠오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통일과학의 이념도 그 추진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생명과학이나 나노테크놀로지 등이 각광을 받으면서 원자물리학의 바탕을 이뤘던 전통적 과학관은 확고부동한 지위를 유지하기가 힘들게 된 것이다. 모든 지식을 경험이라는 기반 위에 세우려던 전통적 과학철학도 혁명적으로 변화한 과학 이론과 인식론적 다원성 등으로 무장한 새 세대 철학자들의 끊임없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여기에 과학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가세했고, 급기야 각 분야를 해체해서 탐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과학관이 등장하여 전통적 과학관의 학문적 질서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이 모든 거역을 이끈 핵심 주동자가 바로 토머스 쿤, 데이비드 블루어, 필립 앤더슨, 피터 갤리슨 등이었는데, 이 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전통적 과학관을 거역하는 동맹자의 역할을 했다.

 

  우선 쿤(1922~96, 미 버클리대․프린스턴대․MIT 교수를 역임한 과학사상가)은 과학적 지식이 단순히 객관적 지식의 축적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의 내용이나 방향에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측면 같은 비합리적 요소도 개입할 수 있고, 패러다임의 변환을 통해 혁명적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전통적인 누적적 과학 발전 모형에 일침을 가했다.

 

  쿤의 새로운 과학관에는 다양한 형태의 진리를 인정하는 상대주의적 측면이 잠재해 있는데, 이런 요소는 사회구성주의자들에 의해 더욱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사회구성주의란 과학적 사실들이 유연성을 지니며 자연이 제시한 증거들은 동시에 여러 개의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 이론을 둘러싼 논쟁은 관찰 혹은 실험 데이터에 의해 결정될 수 없고, 논쟁의 종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적 이해관계라고 보는 입장이다. 결국 이들은 객관성의 중추이자 마지막 보루인 과학 지식조차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전통적 과학관에 대한 엄청난 반역을 도모했던 것이다.

 

  사회구성주의는 영국 에든버러 대학의 데이비드 블루어, 배리 반스, 스티븐 셰이핀, 그리고 바스 대학의 해리 콜린스․트레버 핀치 등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추진된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발전했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나치게 사회적인 시각에서만 파악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과학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논의를 크게 확대함으로써 전통적 과학관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반(反)환원주의의 기수라면 45세의 나이로 현재 하버드 대학의 과학사학과를 이끌고 있는 피터 갤리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금까지 진행된 대부분의 과학 논의들이 경험․이론․사회적 이해관계 등 어느 한 가지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실험․이론․실험기구 등이 각기 부분적으로 자율적 구조를 지니며 꽈배기처럼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유연한 과학 모형을 제시했다.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탈경험주의 과학관의 공격, 사회구성주의 과학관의 도전, 국소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반환원주의 과학관의 부각, 객관성의 마지막 보루인 과학 분야까지 파고든 포스트모더니즘의 침공, 나노과학과 생명과학 등 복잡계 과학의 부상 등은 모두 20세기 전통 과학관에 반기(反旗)를 들며 거역의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임경순 <포항공대 교수.과학사> <gsim@postech.ac.kr>

 

 

 

20세기에 대한 거역- 5. 중남미 작가들

 

 

▶ 게 재 일 : 2001년 02월 08일 13面(10版)
▶ 글 쓴 이 : 송병선

 

 

중남미 현대소설은 흔히 ‘붐(Boom)’이라 불린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폭발하듯이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사회․문화의 후진국인 중남미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문학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기존의 문학 모델을 파괴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중남미의 현대문학을 이야기할 때면 ‘아버지 죽이기’란 개념을 만난다. ‘아버지 죽이기’란 중남미 문인들이 아버지로 여기고 있던 서구의 문화를 해체하고 자신들의 주체적인 문학을 만들려는 노력을 상징한다. 중남미의 작가들은 미국․유럽 중심의 정전(正典)을 파괴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숙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이런 점에서 그들의 반항은 미래 지향적인 계획이었다.

 

 

*** 마술적 사실주의 결실

 

중남미 현대 소설의 창시자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라고 일컬어지는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과거를 배척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면서 리얼리즘의 모델을 파괴한다. 한편 중남미 소설의 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84․콜롬비아), 카를로스 푸엔테스(83․멕시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65․페루), 환 룰포(1917~86, 멕시코), 훌리오 코르타사르(1914~84, 아르헨티나)등은 그들의 아버지 격인 보르헤스를 죽이는 대신 그의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발전시킨다.

 

  중남미 현대 소설의 특징은 현실 언어의 한계를 의식하고 현실을 모방하려는 모든 리얼리즘 표현 양식을 거부하면서 가변적이고 복잡한 상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문학 의식은 미국과 유럽의 모더니즘 문학과 흡사하다. 하지만 그들은 중심이 존재하는 서구의 모더니즘과는 달리 다양성을 통해 중심을 해체시킨다. 이것은 중남미가 ‘주변부’라는 의식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데, 이런 의식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탄생시키게 된다.

 

 

*** 기존 모델 끝없는 파괴

 

이 때문에 중남미 문학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효시이며 동시에 백미(白眉)라고 여겨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신(新)보수주의적 성향을 비판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이론의 출발점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남미 문학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추구하는 ‘탈중심주의적’ 글쓰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럽과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성도 띠고 있음을 의미한다.

 

  1970년대에 들어 붐 소설은 절정에 이르고 세계 문학의 정전으로 자리잡지만, 날이 갈수록 실험적 언어 및 문학적 공간과 시간의 신화화(神話化)만을 추구한다. 그러자 새로운 작가들은 붐 소설의 모델을 파괴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포스트붐’ 즉, 붐 이후의 세대라고 불리는 작가들은 보르헤스 식의 ‘환상문학’이나 마르케스 식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반기를 든다. 그들의 작품에는 마르케스의 ‘마콘도(소설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상상의 도시)’ 처럼 수년 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지도 않으며, 룰포의 ‘코말라(소설 『페드로 파라모』에 나오는 상상의 도시)’처럼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과 공존하지도 않는다.

 

  마누엘 푸익(1932~1990, 아르헨티나), 이사벨 아옌데(59․칠레), 멤포 지아르디넬리(54․아르헨티나), 폴리 델라노(65․칠레)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붐은 붐 소설이 과도한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으며, 세계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중남미 현실을 도외시하고 과도한 실험에만 집착한다고 질타한다. 이런 비판을 통해 그들은 대중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통해 중남미의 현실을 작품 속에 투영하려고 노력하고 실험문학이 아닌 리얼리즘으로의 회귀를 통해 붐 소설과의 차별성을 시도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포스트붐 소설가들이 억압적인 현실을 피해 외국으로 망명을 해야만 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또한 그들은 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사회․경제․철학․문화가 변했음을 인식하면서 작가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재검토한다.

 

 

*** 대중적 리얼리즘 회귀

 

‘포스트붐 소설’은 ‘붐 소설’에 비해 대중적이며 대중문화의 매력을 이용한다. 이런 대중적 요소들은 문학을 통해 대중과 하나가 되기 위해 치밀하게 만든 전략이었다. 그들이 고급소설로 간주되던 붐 소설의 모델을 파괴한 것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런 거듭되는 파괴가 없었다면 중남미 소설은 붐 소설에서 그 생명을 다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붐 소설의 전형을 파괴함으로써 중남미 소설은 다시 젊어졌고 아직도 세계문학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중남미 소설이 추구하는 ‘아버지 죽이기’의 바탕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가들의 작품을 편견 없이 읽는 것이다.

 

  그들은 ‘선구자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독서와 상상력을 사회와 접목시키면서 역사 소설이나 ‘미니 픽션’ (원고지 4~5매 내외의 짧은 소설) 등의 여러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이런 끊임없는 ‘아버지 죽이기’로 중남미 현대 소설의 생명력은 시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문학적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는 어디가 약점인지 알아야 한다. 그 급소를 찾는 것이 바로 우리 문학으로서도 당면한 과제이며 중남미 소설에서 배워야 할 점이다.

 

송병선 외국어대 강사, 중남미문학 <avionsun@hanmail.net>

 

 

▶ 게 재 일 : 2001년 02월 08일 13面(10版)
▶ 글 쓴 이 : 송병선

 

멤포 지아르디넬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정받는 포스트붐의 대표작가이다. 그를 e-메일 인터뷰했다.

- 요즘 세계적으로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많다. 중남미의 실정은.

 

“‘문학의 위기’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문학 시장이 위축되었으며 출판 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의미이다. 창작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학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예전에는 문학이 특정인들의 산물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 최근 중남미 문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20세기 말에 중남미 국가들은 독재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중남미 문학은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닌다. 우선 여성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우리 문학이 과거의 위선적인 윤리와 엄숙함을 떨쳐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인들은 국민화합이라는 명분 아래 ‘과거의 망각’을 요구하지만, 문학은 과거의 기억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 당신이 포스트붐 세대의 대표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내가 대중소설 기법을 이용해 독자들을 사로잡고 독자들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며, 공식적인 역사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쉬우면서도 어렵다는 평을 듣는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쉽게 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없는 작품은 아무런 미학적 가치도 없다.”

 

- 새로운 작가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패와 위선으로 위장한 사회와 달리 문학은 협동적이고 정직한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문학은 이런 윤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그것이 문학이 추구하는 최대의 저항이며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송병선 <외국어대 강사, 중남미문학>


 

 

[세계 지식인 지도] 중남미 대표 소설선

 

 

▶ 게 재 일 : 2001년 02월 08일 13面(10版)
▶ 글 쓴 이 : 정재왈

 

 

-『백년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민음사, 2000)〓스페인어권에서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이다. 우화체로 쓰여진 이 소설은 부엔디아 가족에 관한 1백년 동안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중남미의 기원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가 녹아 스며들어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서사시라는 평.

 

-『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민음사, 1996)〓중남미 현대소설을 비롯하여 1960년대 이후 세계 문학의 흐름을 바꿔놓은 단편집이다. 현대적 의미의 ‘환상문학’을 통해 현대인이 확실하다고 믿고 있던 수많은 개념을 붕괴시키면서 그런 것들이 모두 인위적인 체계에 의해 합리화한 것임을 잘 보여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거미여인의 키스』(마누엘 푸익, 송병선 옮김, 민음사, 2000)〓동성애자 몰리나와 게릴라 발렌틴이 한 감방에 수감되면서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와 사랑을 대화식으로 구성한 독특한 소설이다. 현대 사회의 성억압과 영화를 비롯한 대중 문화의 미학적 요소가 잘 구현된 작품. ‘붐’과 ‘포스트붐’의 경계에 있으며 영화와 뮤지컬, 연극으로 상연된 현대의 고전이다.

 

-『아르떼미오의 최후』(카를로스 푸엔테스, 김창환 옮김, 벽호, 1987)〓죽음에 임박한 주인공 아르떼미오 크루스가 혁명가에서 자본가로 변신한 자신의 삶을 회상하면서 멕시코 혁명의 허와 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현재는 1인칭, 미래는 2인칭, 과거는 3인칭으로 기술했다.

 

-『뜨거운 달』(멤포 지아르디넬리, 송병선 옮김, 대경출판, 1996)〓포스트붐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탐정소설 기법을 패러디하여 군부치하의 아르헨티나의 억압적 상황과 그로 인한 한 인간의 성적.살인적 충동을 그렸다. 절제된 언어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

 

-『영혼의 집』(이사벨 아옌데, 최승자 옮김, 둥지, 1991)〓4세대에 걸친 트루에바 가문 여성들의 역사를 통해 중남미 여성의 정치 의식 발전 과정을 담았다. 73년에 발생한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조명하면서 현대 칠레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빌 어거스트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에서도 상영됐다.

 

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20세기에 대한 거역- 6. 이리가레의 페미니즘

 

 

▶ 게 재 일 : 2001년 02월 15일 11面(10版)
▶ 글 쓴 이 : 윤소영

 

 

 “가부장제(家父長制)적 사회의 교환 행위는 남성들 사이에서만 발생한다. 하지만 만일 여성들이 `재화(財貨)` 로서 시장에 나가기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 사이에서 `또 다른 종류의 교환을 유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유로운 향유, 고통 없는 복지, 소유하지 않는 쾌락이 있을 것이다.”

 

  1974년 『거울』이라는 제목의 박사논문 때문에 자크 라캉 학파에서 ‘파문당한’ 직후 뤼스 이리가레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가 축출된 것은 서양철학의 로고스(理性)중심주의와 그런 전통 위에서 형성된 정신분석학의 팔루스(男根)중심주의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의 페미니즘은 ‘시장 밖의 교환’으로서의 사랑을 화두로 한다. 여성권 개념을 토대로 해 구성되는 그의 ‘성적(性的) 차이의 윤리’는 뒤에서 얘기할 ‘새로운 시민성’을 통해 공동체적 유대를 형성함으로써 혁명 후 러시아에서 여성해방을 꿈꿨던 콜론타이(1872~1952)의 ‘승화된 에로스’ 를 실현하려는 시도다.

 

  이리가레는 전통적인 서양철학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페미니즘에 대한 자기비판을 시도한다. 1980~90년대를 지나면서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휘말려 마비 상태에 빠져버린 기왕의 페미니즘을 변혁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성적 차이의 윤리’라는 구상이 갖는 독자성은 세기말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의 반격에 대한 대응 속에서 새삼 두드러진다.

 

  헤겔을 정점으로 하는 서양철학에서 인간을 남녀로 가르는 성적(性的)정체성(identity)은 가족 안에 국한된다. 가족의 바깥, 즉 시민사회 또는 국가에서 형성되는 시민성에는 성(性)이 없다. ‘성이 없는’ 시민이란 남성일 뿐이고, 따라서 시민의 권리도 성별화할 수 없다. 이렇게 가족 안으로 제한되는 성적 정체성은 고대 유목민족들의 가부장제적 신화에 나오는 여성의 ‘가족 유폐’를 이론화한 것이다. 가족 안에서 성적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헤겔은 ‘노동으로서의 사랑’ 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가족 안에서 사랑은 공동체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동체적 유대는 사랑이 아니라 형제애라 불린다. 말년의 푸코(1926~84)가 발견한 우정도 남성간의 동성애일 뿐이다.

 

  가부장제적 사랑에 대한 이리가레의 비판은 자본주의적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과 동일한 논리를 갖는다. ‘가족 안에 유폐된’ 여성에게 사랑이란 자신의 독자적 욕망을 배제하고, 남성에 의해 정의되는 보편적 욕망을 실현하는 ‘추상화된 노동’이다. 부인의 사랑은 출산과 양육을 통해 ‘가족의 자본’을 재생산하기 위한 노동인 반면, 남편의 사랑은 시민으로서 자신의 활동을 보충하는 휴식이다. 여기서 정신분석학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서양 문명 전체의 핵심 개념이라는 이리가레의 비판이 나온다.

 

  스승 프로이트를 거역했던 멜라니 클라인(1882~1960, 오스트리아)과 카렌 호르나이(1885~1952, 독일)의 ‘페미니즘적 정신분석학’ 전통을 잇는 그녀의 비판은 스승 라캉(1901~81, 프랑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팔루스․로고스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라캉은 가부장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토대가 되는 성적 갈등과, 나아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성적 억압의 최저 한도’를 인식하지 못한다.

 

  반면 이리가레는 노동 억압과 성 억압의 최저 한도라는 공통의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적 노동 착취와 가부장제적 여성 착취의 분석을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비교되는 ‘여성적 경제학 비판’인 셈이다. 그렇다면 ‘성적 차이의 윤리’의 토대가 되는 ‘성별화된 권리’로서 여성권이란 무엇인가. 여성에 대한 물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착취에 대한 반대로서 인간적 존엄성을 전제로 한다면,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권리가 핵심이다.

 

  여성권은 여성의 ‘성에 대한 권리’ , 즉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권리를 의미한다. 이 점에서 여성권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로서의 ‘노동에 대한 권리’와 동일하다. 결국 자기 존재를 보존할 권리와 다른 것이 아니다.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권리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로 환원할 수 없는 여성만의 독자적 권리다. 이는 법적 권리 이상으로 ‘특수하게 여성적인 위험’을 고려하면서 여성의 고유한 힘을 실현하는 권리다.

 

  여성권은 양도할 수도 없고 철회할 수도 없는 시효 없는 권리로서 시민권이다. 가부장제적 현실에서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존중은 여성의 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의무이다. ‘남편의 아들’을 낳은 어머니에 대한 존중은 가족의 자본을 재생산할 의무이고, 처녀의 순결에 대한 존중은 남성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으로서 자신의 사용가치를 보존할 의무다.

 

  반면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권리는 그런 의무가 없는 권리로서 시민권이다. 성별화된 권리로서 여성권은 전통적인 ‘자유와 평등’의 권리와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등 속에서의 차이가 바로 여성이 자유를 실현할 조건’이 되는 권리다. 예를 들어 여성권을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대한 권리로 환원할 수는 없다. 남녀 평등주의의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이렇게 볼 때 이리가레의 ‘성적 차이의 윤리’는 70년대 이후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시도했던 가부장제 비판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시도했던 가사노동.가족임금 비판의 철학적 근거가 되는 동시에 이들을 종합하며 뛰어넘고 있다.

 

윤소영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spinmax@chollian.net>

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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