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에 기초한 사회주의적 문예이론
김윤식
1. 우리가 서 있는 자리
북한의 정식명칭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임은 그들 헌법(1948.9.9) 제 1조에 명시되어 있거니와 이 국가이념에 상응하는 문예이론을 뚜렷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의 문예이론이 당정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만큼 이를 이해하는 일은 실로 간단하지 않다. 문예이론이 직접적으로 당정책에 관련된 것이라 할 때 그들 문예이론의 이해는 곧 당정책의 변천사를 면밀히 검토함을 떠날 수 없는 일이며, 이러한 측면은 이른바 사회주의국가에 있어서의 문예이론 일반을 이해하는 일보다 일층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문예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막바로 당정책의 변천사와 함께 그들 문예이론으로 들어가 살펴보는 길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다음 두 가지 점이 연구자 앞에 가로 놓여지게 되는 바, 그 하나는 80년대 중반이래 크게 성장한 우리쪽의 이른바 민중문학이론이다. 민중문학론이 노동문학 또는 노동해방문학론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에 대한 갈등 양상조차 있을 만큼 변모한 마당이고 보면, 이러한 의식수준 때문에 어떤 연구자도 북한 문예이론에 막바로 들어가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법하다. 노동해방문학이론 자체가 우리사회의 자생적인 역량에서 이루어진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것은 남한에 대해 북한이 있다는 의미의 위상관계일 터이다. 기본모순이 민족이냐 계급이냐를 문제삼는 것 자체가 북한의 존재 때문인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지남철과 흡사한 것이어서 무엇으로 가려두어도 의식의 작용은 어김없이 작동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른바 자장(磁場)을 이루지 못하는 사상은 사상의 본래적 값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 문예이론이 선험적으로 갖고 있는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힘은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종의 구체성의 논거를 이룬다는 것이 현실적 감각이 아니겠는가. 이 감각이 북한 문예이론 이해에 더할 수 없는 플라스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동시에 방해요인으로도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감각을 문제삼는 일은 아마도 우리 독서계가 이기영(李箕永)의 <<두만강>>등 순문학을 읽은 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북한 문예이론의 연구자 앞에 가로놓이는 또하나의 시각은 이른바 사회주의, 공산주의국가에서 이미 모범으로 보인 문예이론이다. 여기서 문예이론들이라 하여 복수개념을 사용했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소련, 중국 두 나라를 가리킴에 지나지 못한다. 소련의 경우가 무엇보다도 일반적 보편적인 기주닝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레닌의 <<당조직과 당문학>>(1905)을 시발점으로 하여, 사회주의적 현실주의(1934)의 확립을 거쳐 혁명적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통일, 비판적 현실주의의 계승과 발전, 적극적인 주인공의 창조와 그 특질에 관한 과제에 이르기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의 공산당 정책과 문예이론의 관계는 반세게에 걸치는 미증유의 인류사의 실험이었던만큼 아주 명석한 레닌같은 지도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났으며, 이에 대한 논쟁들이 널리 알려져 있어, 어떤 대목을 들어보아도 이론적 설명이 가능한 형편이다. 그만큼 소련은 세계 속에 거의 공적인 존재로 노출되어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이에 비할 때 중국은 어떠했는가.
이 저술의 정식 명칭은 [연안의 문예좌담회에서의 강화]이거니와, 레닌의 <<당조직과 당문학>>이 소련문예이론의 기본이론이듯 이는 중국문예이론의 기본이론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택동의 <<실천론>><<모순론>>(1939)이 그러하듯 다분히 중국적이어서 중국의 문화적 전통을 잘 알지 않고는 일반적 이론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점을 안고 있다(한 연구자의 지적에 따르면 모택동의 저술에 인용된 책들은 주자학이 22, 도교가 12, 전설, 민화가 13, 마르크스, 엥겔스는 4, 레닌은 18, 스탈린이 24개라 한다.)그 위에, 60년대에 벌어졌던 홍위병의 문화대혁명이라는 당정책이 중국문화계를 휩쓸었는데, 이에 대한 논리적 이해수준도 우리에게는 쉽사리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이나 중국의 문예이론은 북한 문예이론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 곧, 어떤 역사적 사실로서, 인류사가 걸어가는 보편성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던 점이 많았다.
이렇게 보아올 때, 북한의 문예이론을 조금 알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순진성이랄까 순수성에서 출발함이 아님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겠다. 그것은 북한의 당정책으로서의 문예이론에 막바로 부딪쳐 들어가볼 수도 있고, 소련이나 중국의 그것을 잣대로 하거나 참고사항으로하여,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 두가지 방법이 상보적인 수준에까지 오르지 않는다면, 북한 문예이론의 이해의 깊이에 이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논자는 이 글에서 다만 접할 수 있는 약간의 자료를 따라서, 천박한 이해를 조금 말해보고자 할 따름이다.
2. 사회주의적 현실주의로서의 소련과 중국
북한 문예이론이 주체사상에 기초한 것임을 무엇보다도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그들이 보편성으로써 내세운 [사회주의적 문예이론]은 한갓 종속적 개념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제일 먼저 검토될 사항이 아닐까 싶다. 사회주의적 문예이론이란 곧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사실주의)를 가리킴이라 할 때, 그것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이 두 용어 사용은 잠정적이다)사회에서의 공통된 이론의 범주이다. 소련에서 제 2차 5개년 계획을 마친 뒤 1934년에 확정한 사회주의적 현실주의가 그동안 여러 가지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오늘날에도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터이다. 이 사회주의 현실주의(리얼리즘)의 규범적 성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공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무엇을 할 것인가>>,1902)고 말한 것은 레닌이었는데, 이것이 혁명에 있어서의 낭만주의적 성격에 관련된다. 일반적으로 자기의 공상의 실현을 향해 양심적으로 일한다면 공상과 현실의 괴리란 별로 장애가 되지 않으며, 공상과 생활 사이에 어떤 접촉이 있을 때 모든 일이 원만히 된다는 의미에서의 공상이 불행히도 [우리의 혁명운동에는 적다]고 지적한 레닌의 논지가 혁명운동에서의 낭만주의적 성격도입의 근거였으며, 문학에서 이것은 리얼리즘과 낭만주의의 역사적 피제약성으로 파악되었다. 공상이 생활 속에 작용할 때 필연적으로 그것은 리얼리즘에로 이르지만, 만일 리얼리즘 일변도로 나아간다면 작가들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림으로써 마침내 인간사회발전의 바른 역사적 전망의 이해에는 이르지 못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작가들은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생활에 반발함으로 말미암아 현실의 사실에서 너무 멀어지기 쉬워 역사적 기반을 잃어 그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그 반대현상도 나타나게 되어, 현실주의와 낭만주의는 현결같이 빈곤화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적대관계에로 이르게 된 것이다. 이를 창작상에서 통감하고 초극하고자 한 작가가 고리키라 한다. [사회주의적 현실주의가 방법의 창시자는 고리키다]라는 명제를 공공연히 내세우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낭만주의와 현실주의가 분리되어 각각 빈곤화되고 적대관계에 빠지지만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 인민해방운동의 선두에 섰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생활 속에 사회질서를 세울 수 있는 힘이 있는 만큼 두 가지 창작방법의 분열의 사회적 기반이 사라진 셈이어서, 이 역사적 조건이 곧 고리키로 하여금 현실주의와 낭만주의의 융합을 가능케 한 것이다. 고리키가 자기의 낭만주의를 집단주의적 낭만주의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 <<어머니>>(1907)가 현실주의적 원칙과 낭만주의적 원칙의 완전한 융합이라 평가되었는데, 이는 해방된 인간이 새로운 예술의 기초라는 명제를 전적으로 가능케 한 것이다. 계급을 없애고 사회적 모순을 근본에서 해결하며 생활의 완전한 개화를 위한 조건들을 만들어낸 역사적인 힘의 출현, 곧 사회주의혁명과 함께 예술의 새로운 방법으로써 나타난 것을 두고 스탈린은 사회주의적 현실주의라 불렀다. 그러므로 이방법은, 리얼리즘과 낭만주의 융합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며, 긍정적 주인공을 형상화함을 원칙으로 하게 된다. 사회주의적 이상을 실현하기위한 인물인 만큼 부정적인 측면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긍정적 인물에 관한 논의는 단순한 문예이론상의 과제에 관련되는 사항이 아니고, [공산주의적 인간형]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여 각별한 논의가 필요하다.
공산주의적 인간형이란 무엇인가. 문예이론에서는 [고결한 성격]이라고 규정하기도 하고, 영웅성이라든가, [인간성격의 최량의 미질(美質)]이라 부르기도 하거니와, 이는 [사람은 가슴마다 라파엘을 갖고 있다]라는 <<도이치이데올로기>>에서 규정된 그것에 막바로 이어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기의 모든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공산주의 사회에서뿐이라고 본 것은 마르크스, 엥겔스였지만, 그것의 역사적 실현은 소련에서였다. 고결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순수한 자발성에 의한 자기희생적 창의적 정신이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이상이라 주장된 것이다.
여기까지 나아오면,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의 일층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기에 이르는데, 그 첫 번째가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이다. 스탈린이 [내용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적, 형식에 있어서 민족적인 문화, 이것이야말로 사회주의가 겨냥한 전인류적 문화이다]라고 말했을 때 이것이 소련문화 및 문예의 발전 전체에 기본항으로 확정되었던 것이다. 민족학 전문가인 스탈린이 소련문화가 다민족문화로 구성되었음을 민감히 알아차린 결과일뿐 아니라 레닌이 <<당조직과 당문학>>의 두 번째 항목으로 제시한 전통계승에도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볼셰비키적 당파성은 사회주의적 현실주의 발전의 기본원칙]이라는 점. 곧 세계 예술발전에 있어 새로운 장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사회주의적 현실주의 방법은 사회주의적 상황에 있어 주로 사회주의적 성격을 창조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희구에의해 특징지워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방법은, 분석의 깊이와 전망의 넓이의 처지에서 생활에 대한 리얼리즘적 및 낭만주의적 태도의 일치이자 사회주의적 인간의 교육을 그 임무로 한다. 그 때문에 그 성격적 특징이란 예술가가 인민 및 당의 임무를 잘 이해하고 있음에서 찾아진다. 사회주의적 현실주의 방법의 이러한 특징이 현실가능성을 얻는 것은 그것이 생활에 있어 자기의 조화적 발전의 길을 열고 있으며, 또 형식에 있어 민족적, 내용에 있어 사회주의적, 의의에 있어 전인류적인 문화창조에의 길이 눈 앞에 펼쳐진, 해방된 인간을 지지하고 있는 덕택이다. 창작상에서 이러한 모범이 고리키의 <<어머니>>임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소련의 이러한 설명방법이 1934년에 일단 정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만큼 고전적 성격으로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인류사의 새로운 단계를 거기서 엿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한편 모택동의 <<문예강화>>는 어떠한가. 1942년 5월에 연안지구에서 펼친 모택동의 문예좌담회에는 주덕을 포함한 공산당간부와 정평, 예청, 주입파, 구양파, 구양산 등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거니와, 이 <<문예강화>>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말해진다.
첫째, 모택동사상 및 중국공산당 운동과의 연관, 특히 정풍운동의 일환으로서의 의미. 둘재는 중국 근대문학 발전사상에서의 위치. 셋째, 마르크스주의 미학상의 의미. 만일 이러한 전문가의 의견이 틀림없다면 <<문예강화>>는 사회주의적 현실주의라는 인류사의 일반원칙과는 상당한 층위, 다시 말해 우선순위에 있어 큰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미학상의 측면이 최하 순위로 떨어지고, 이른바 [정풍운동]으로 표상되는 중국공산당운동의 결정적인 한 단계의 소산으로서의 의미가 <<문예강화>>의 첫 번째 의미로 되어있음이 그 실상이다. 정풍운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공산당의 자기교육 캠페인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연안으로 옮긴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지구와는 달리 문화수준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낮고 또 물질적 조건이 너무도 열악한 형편에 있었다(종이, 인쇄기는 말할 수 없이 부족했고, 노트 대신 모래를 사용할 정도였다 한다). 이러한 조건에 들어온 문학자들이 자기 개조없이 문예운동을 펼 수는 없었다. 중국공산당사에서는 1941년에서 43년까지를 정풍운동기로 잡고 있거니와, 연안으로 모여든 공산당 대부분이 국민당 아래서 도피생활을 한 지식인이었던 만큼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기변신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었다. 그러니까 <<문예강화>>는 당원예술가의 재교육장인 셈이며, [나는 믿는다. 동지 제군이 정풍과정에 있어.....]라고 모택동이 이 강연 끝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정풍과정의 한 단계의 산물인 것이다.
이 강연은 [문예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인민에게 봉사할 것인가]에로 나아가는데, 여기에서는 향상에 노력할 것인가 보급에 일층 힘쓸 것인가에로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모택동의 견해로는 향상도 노동자 농민 병사를 위한 것이고, 보급도 그들을 위한 것이지만 보급을 기초로 한 향상으로 이 과제를 해결한다. 그 다음 문제제기는 당과의 관계정립인데, 다음 인용에서 정풍운동과 더불어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성격이 드러나게 되며, <<문예강화>>는 이 역사적 한 단계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이 확실해진다.
[문예란 정치에 복종해야 한다. 오늘 중국 정치의 제일의 근본문제는 항일인만큼 당의 문예활동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항일이라는 점에 당의 모든 문학자, 예술가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나미판, p.42) <<문예강화>>가 이른바 혁명기의 문예이론이었음을 이로써 알아차릴수 있다. 중국이 통일되고, 건설기에 접어든 뒤에 문화혁명기의 문예이론은 그 다음의 과제일 것이다 (문화혁명이 얼마나 굉장한 실험이었는가를 설명하지 못해 유감이다).
지금껏 우리는 소련에 있어서의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의 실상을 조금 살폈고, 모택동의 <<문예강화>>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의 경우를 잠시 엿보았는데, 이러한 두 개의 사례랄까 모델의 열거는 다만 북한 문예이론의 이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함에 지나지 않는다. 소련의 경우는 혁명기를 거쳐 사회주의 사회건설에 걸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였음을 알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레닌의 <<당조직과 당문학>>을 기초로 하여, 사회주의건설기의 유연성이 크게 드러나 있음이 특징이라 할 것이다. 곧 인류적 보편성으로서의 미래상까지 제시되어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할 때 중국의 경우는, 혁명기의 문예이론에 국한되어 있었음이 판명된다. 연안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의, 항일이라는 중국전체의 특수성이 제일 중요한 측면으로 내세워져 있는 셈이다. 이른바 민족적모순을 기본모순으로 파악한 단계에서의 소산이었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에 의거한 김일성의 문예이론이란 어떤 범주에 들며 어떤 역사적 단계의 산물인가. 논리적으로는 이러한 비교의 방법이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이 방법이 그것의 정확성 여부와는 별도로 존중될 필요는 없을까.
3. 주체이론의 기본구도
북한의 문예이론을 조금 알아보고자 할 때,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측면을 다시 고려해 볼 수 있다. 북한의 작품을 면밀히 읽음으로써 문예이론의 핵심을 이끌어내는 방법도 있을 수 있으며, 그들이 쓴 각종 문학사를 분석해 봄으로써 가능하며, 또한 문학연구론들을 살펴보는 방법도 고려될 수 있다. 감성으로 드러난 문예이론의 모습도, 논리로 드러난 문예이론도 그나름의 상호보완적인 의미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지만, 그들이 직접적으로 해설해 놓은 문예이론에 접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물을 것도 없이 직접적으로 해설해 놓은 것에 접한다 해서 이해의 가장 빠른 길에 이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대현상도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러한 해설 방식이랄까 태도를 통해 우리 나름의 문제점을 이끌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에 기초한 문예이론>>(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1975)을 간행한 바 있다. 제목으로 미루어 보면, 주체사상에 기초하지 않은 문예이론도 가능할 듯하지만, 유일체제 속에 있는 북조선인만큼 그러한 일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 문예이론이란 주체사상을 절대로 떠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북한의 문예이론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창시하신 독창적인 문예이론은 영생불명의 주체사상을 구현하고 있는 가장 혁명적이며 과학적인 문예이론]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1975년 현재로 위의 책이 사회과학원에서 간행된 것은, 김일성이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한 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노동당 선전 선동일꾼 앞에서 한 연설로부터 따진다면 20년의 시간이 지남 시점인 셈이다. 이 사살은 주체문예이론의 정립이 많은 시간을 거쳐 서서히 형성되었음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어서 주목해 둘 필요가 있다. 다시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 나온 <<조선문학개관>>(1986.11.)에서 비로소 문학사적 시대구분이 상당한 유연성을 얻어낸 셈이다. 이 시기구분의 중요성은 어디있는 것일까. 먼저 시기구분을 보면 제 1기 항일혁명투쟁기(1926.10 ~ 1945.8), 제 2기 평화적 건설시기(1945.8 ~ 1950.6), 제 3기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1950.6 ~ 1953.7), 제 4기 복구건설과 사회주의기초건설을 위한 투쟁시기(1953.7 ~ 1960.), 제 5기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과 사회주의의 완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시기 (1961~ )등으로 되어 있고 이 시기구분이 오늘날에도 거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 시기구분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주체문예이해의 한 실마리라 될 수 있다. 곧, 제1기 항일혁명투쟁기란 그 이름이 말하듯 혁명기에 해당되며, 정면의 적으로 일제가 가로 놓여 있었다. 제2기는 해방과 더불어 건설기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6ㆍ25로 말미암아, 다시 혁명기로 접어들었으며, 속도전, 천리마, 종자론 등을 거쳐, [전면적]건설기로 설정되었다. 이를 정리한다면 제 1차 혁명기와 건설기, 제 2차 혁명기와 건설기라 할 수 있다.
주체이론은, 혁명기와 건설기, 혁명투쟁과 건설투쟁의 변증법 속에서 낳아진 것이며, 따라서 다음 대목은 특별한 음미를 필요로 한다.
「나는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문예작품과 혁명투쟁에 관한 문예작품의 창작비율을 5대 5로 할 것을 제기합니다.」(《김일성저작선집》(1967~1978),제 4권,p.157)
여기서 말하는 건설과 혁명이란 일차적으로는 항일혁명을 주체로 한 해방 이전의 상황을 다룬 것, 가령 고전으로 치고 있는 《피바다》《꽃파는 처녀》《한 자위단원의 운명》등을 가리킴일 것이며, 건설에 관한 문예작품이란 속도전 종자론 등에 관련된 작품을 가리킴일 것이다. 이 두 가지 경향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다. 혁명과 건설을 어쩌면 영원한 과제인지도 모르는데, 이 과제의 문제적 설정을 5대 5의 비율로 해야한다는 지적은 주체사상의 핵심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루 아는 바와 같이 소련이나 중국은 그들 나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화를 최종목표로 두고 있으며 혁명과 건설도 그 한계 속에 국한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상과 현실의 균형감각도 이 수준에서 트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주체사상에서는, 물론 북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화만을 달성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으로 상정하지 않는데, 그것은 수사학의 차원과 구별된다. 가령 소련이 사회주의적 현실주의 예술이론을 두고 「전인류」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할지라도 그것은 한갓 논리적 수사학적 수준이어서 현실감, 긴장감은 별로 없는 것임에 반해서 주체문예의 경우는, 전인류의 공산화까지를 최종목표를 삼았을 때 그 현실감은 소련과는 달리 뚜렷하다. 그 이유의 하나는 남조선해방이라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음으로써이다. 가령 김일성교시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을 들 수 있다.
「난관에 굴하지 않고 승리에 자만하지 않으며 새로운 승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하여 계속 전진하고 계속 혁신하는 것은 혁명하는 사람들의 고상한 품성이며 영웅적 조선인민의 혁명적 기개입니다.」(《김일성저작선집》,제 4권,p.491).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은 「고상한 성품」에 있다. 혁명적인 영웅이란, 다름아닌 공산주의자이며,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가리킴인데, 이는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감행하는 품성을 가리킴이며, 이를 두고 고상한 성품이라 한다. 그런데, 당면한 적이 없으면 어떻게 그 고상한 품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무한혁명이란 혹시 무의미한 말이 아닐까. 건설의 경우도 사정은 같지 않겠는가. 사회주의의 제도적 우월성을 역설하는 것도 사정은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문예가 의미를 잃지 않고 일층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인간자신의 혁명과 함께 그들의 이른바 「남조선해방」이라는 구체적 과제가 그들 앞에 실체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당중앙이 다음과 같이 말해 놓은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공화국 북반부에서 혁명과 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앞당겨야 할 뿐 아니라 남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며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이룩하여야 한다. 우리는 또한 세계의 혁명적 인민들과 굳게 단결하여 반제반미투쟁을 힘있게 벌리며 전세계적 범위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을 성취하여야 한다.」(《주체사상에 기초한 문예이론》,인동판, p.277)
여기서 요점은 자체혁명과 남조선 해방이며, 이 때문에 계속적 혁명사업의 유효성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세계의 혁명」에까지 이르겠다는 주장은 남조선 혁명과 관련된 논리의 진전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주체문예이론의 기본틀인 혁명투쟁기와 사회주의건설기의 변증법적 관계를 살펴보았으며, 그 결과, 매개항으로 설정된 것이 남조선혁명임을 지적해본 셈이다. 말을 바꾸면, 주체문예이론의 발생적 근거는 소련의 보편주의와는 썩 다른 성격이며, 정풍운동의 일환으로 제기된 중국의 《문예강화》 및 문화혁명과 상통한 면이 있지만, 문화혁명에서 말하는 의식개조운동이 비록 구체적인 혁명투쟁과정에서 비롯한 것이긴 하나, 항일투쟁에 섰던 김일성빨치산투쟁에서 형성된 항일 혁명 투쟁과 비교해 볼 때 상당한 낙차가 인정된다. 문화혁명이라는 60년대 중국의 대실험을 북한은 건국 당초부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주체문예론은 소련의 보편주의, 중국의 정풍운동과는 다른, 독자적인 발생적 근거를 갖는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데, 이 사실이야말로 북한 문예이론을 이해하는 실마리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파성 대신에 「당성」이라 표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4.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의 관계
주체문예이론이 근본적으로는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의 범주에 들기는 하나 당성의 강조에 목표를 두는 한 당의 유일사상을 떠날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주제문제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지표의 하나는, 소련이 제시하고 또 전기해온 사회주의적 현실주의이다. 이것과 주체문예이론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곧, 사회주의적 현실주의가 소련의 사회주의혁명 이후 17년만에 이룩된 전설기의 것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에 비해 북조선의 그것은 당의 유일사상체제의 확립에서 비롯된다. 주체문예의 본성과 특질이란 무엇인가고 물을 때, 맨 먼저 문제되는 것이 당의 유일사상으로서, 그 정정에 김일성이 놓였다는 점인데, 이때 김일성이 놓였다는 것든, 혁명적 전통을 전면적으로 승인함이며, 이것이 모든 당의 정책적인 근원점이다. 항일 빨치산 투쟁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이 공산주의적 인간학의 규정 대목인데, 이 항목에서 김일성교시는 《도이치이데올로기》에서의 마르크스ㆍ엥겔스의 철학적 해석과는 거리가 있어, 막연하다는 평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이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기초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것도 사람을 위한 것이며 또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교시, 외국기자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물론 교시에는 또한 「사람에 있어 자주성은 생명입니다.」라든가, 미학적 원칙으로서는 주인공의 육체적 생명보다 정치적 생명의 우위성을 설명하는 일의 정당성은 인정될 수 있기는 하다. 곧 자주성이란 정치적 자주성을 의미하며(성격), 작가는 이를 올바로 그리며(과정) 심도있게 그려야 함(생활의 구체적 묘사)은 물론인데, 이와 같은 성격, 과정, 생활묘사를 유기적으로 통일할 때 전형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산주의적 인간형에 대한 설명들은, 「사람은 가슴마다 라파엘을 갖고 있다.」는 《도이치이데올로기》의 마르크스ㆍ엥겔스의 단일한 명제보다 뚜렷하지 못하다. 혹시 예술사적인 설명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주체문예이론의 가장 뚜렷하고 본질적인 부분은 다름아닌 제 3장에 규정도니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의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 개념이 아닐까 한다.
어째서 주체문예론에서는 당파성이라는 보편적 용어를 거부하고 굳이 「당성」이라 규정하는가. 이 물음은 본질적이다. 교시부분에서 이 점이 무엇보다 강경하게 그리고 주도적으로 강조되어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1)「당성이란 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입니다. 이것은 마르크스ㆍ레닌주의 세계관에 기초한 높은 계급적 각성이며 당과 혁명을 보위하며, 당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입니다.」(《김일성저작선집》, 제 3권, p.159)
(2)「사람들은 혁명정신으로 교양하는 데서 문학 영화 연극 음악 무용과 같은 문예부문 일군들의 역할은 매우 큽니다. 우리의 문학예술은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에 복무해야 할 뿐아니라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전체 조선인민의 투쟁에 복무하여야 합니다.」(《김일성저작선집》제 4권, p.144)
(1)에서 당성을 혁명정신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당파성을, 형상성의 다음 차례에 놓이는 예술성(형상성과 예술성의 동일성과 차이성을 논의하는 일은 소련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문예이론의 특징이다)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는 인민성과 동격의 위치에 두는, 소련의 「당파성」개념과는 썩 다른 차원에 속한다. 소련서 말하는, 보편성으로서의 당파성(Partinost')이란 레닌이 《당조직과 당문학》에서 첫 번째로 제시한 바와 같이 그것은 인민성의 최고의 형태인 볼셰비키적 당파성이며, 문학사업이란 프롤레타리아적 사업의 일부분, 모든 노동계급의 의식적 권위에 의해 가동되는 단일한, 위대한 사회민주주의적 기계의 「나사와 나사못」에 해당되는 것이다. 주체문에론에서 말하는 「당성」은 이보다도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일층 고차원적이라 주장된다.
(A)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예술의 당성은 가장 선진적인 계급인 노동계급의 혁명사상, 공산주의사상의 예술적 구현에 의하여 담보되고 노동계급의 혁명위업 수행에 목적의식적으로 복무하는 문학예술의 혁명적 본질을 규정하는 점에서 그 이전 시기 문학예술의 사상적 경향성, 당파성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인동판,p.93)
여기서 지적된 「그 이전의 시기」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물음을 떠나면 당파성과 당성의 차이를 알아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이전의 시기와 구별되는 「그 이후 시기」란 다름아닌 주석 김일성의 역사적인 혁명투쟁 이후를 가리킴이며, 따라서 적어도 남호두회의 (1936.2)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이 회의의 중요성은 모택동의《문예강화》에서의 당정풍운동과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요컨대, 가장 어려웠던 혁명운동의 한 단계의 산물이 당성인 셈이다. 당파성을 「그 이전의 시기」 가령 카프문학의 경우라든가 그 이후의 어떤 수준의 정치적 경향을 띤 것을 두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면 당성이란 오직 김일성 중심의 혁명투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우만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예술에서 당성을 훌륭히 구현하는 문제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통하여 당성은 가장 철저하게 구현된다」고 말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인민군대의 창설을 1932년 4월 25일로 규정하는 이치와 흡사한 것이어서 약간의 논란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당파성과 당성이 실질적 차이점도 분명히 드러난 셈이 아닌가. 곧 당파성이란, 일정한 계급적 관점에 섰거나, 당정책에 의거하더라도 작가자신이 당원으로 참여하지 않는 상태의 것이거나, 혹은 스스로 당원이면서 당정책에 비판적으로 참여하는 경우을 가리킴일 수도 있다면 당성은 철저히 당에 예속되고 당정책에 대한 충실성에 입각된 경우만을 가리킴이다.
그 당이 바로 김일성유일사상인 까닭에 당성이란 바로 김일성 항일 투쟁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피바다》,《꽃파는 처녀》,《한 자위단원의 운명》등 3대 고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당과 관련된 어려운 과제를 다룬 작품이 《한 자위단원의 운명》임을 특히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레닌이 말하는 볼세비키화된 당파성이란 것과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겠는데, 레닌은 문인들의 이데올로기적 위상을 통해 규정되는 당파성을 요구했지 전적으로 당조직원으로서의 역할을 말한 것은 아니다. 해방공간에서의 한효의 당파성 해석의 오류도 이 점을 분간하지 못했음에서 연유된 것이다.(이양숙, <해방 직후 문학이념과 정책논쟁>,《한국학보》,1989.봄호)
이러한 점은 당성의 규정이 혁명기의 산물이었음과 그 근원에 관련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설기에서의 당성의 이론적 정립은 어떠한가.
(B) 「주체사상의 혁명성은 무엇보다 이 사상이 사회적 인간의 생명인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는 것을 혁명의 근본목적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완전히 실현할 때까지 혁명을 계속할 것을 요구하는 사상이라는 데 있다. 선행한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은 근로민중의 계급적 해방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운 사상이다. 이 사상은 민중을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하는 것을 혁명의 주되는 목적으로 내세웠지 민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우지는 못했다.」(1986.7.15.조선노동당중앙위 책임간부들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김일성의 담화에 대한 해설)
건설기의 주체사상이란 당성의 또다른 의미부여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위의 인용에서 보듯 노동계급의 혁명성의 한계노출과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창작방법상에 있어 무갈등이론이어야 하느냐 그래도 갈등을 내세워야 하느냐에로 제기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혁명기의 당성과 건설기의 당성의 구별점이 없지는 않지만, 이 두 시기에 걸쳐 불변하는 핵심적 요소란 무엇인가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이때 제시되는 것이 이른바 「자주성」이라는 개념이다. 이 자주성, 자발성의 당적 표현이 주체성인 셈이다. 김일성유일사상으로서의 당성이란 한편으로는 혁명기의 투쟁정신에서, 다른 한편에서의 건설기의 자발성 발휘에서 형성된 것이고, 이 둘은 다시 변증법적으로 고양되어 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혁명기의 투쟁도 건설기의 과제도 함께 인간의 자주성을 근본정신으로 한 것이기에 일관성이 유지된 것임엔 틀림없다. 《피바다》를 비롯한 3대 고전에 한결같이 깔려 있는 것이 주인공들의 인간성의 「고귀성」이라는 것이며, 이 고귀성이 건설기에도 불변의 향수로 상정되어 있다.
당성 다음에 놓여 있는 것이 노동계급성(Klassnost' trudor)이다. 이에 대한 주체문예이론에서의 규정이나 해설은 썩 유연하여 강조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음 몇 가지 김일성 교시가 인용되어 있으며, 이 역시 기본적 지적이라 할 것이다.
(1) 「우리에게는 혁명에 어긋나고 인민의 전진운동을 가로막는 부르조아문학예술이 잠시도 발붙일 곳이 없으며 노동자 농민에게 복무하고 혁명적 문학을 위하여서만 끝없이 광활한 무대가 열려져 있읍니다.」(《김일성저작집》3권,p.129~130)
(2) 「작가예술인들은 미제의 침략적 본성과 야수적 만행을 낱낱이 폭로하는 작품을 많이 창작함으로써……우리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침략적 본성을 폭로하는 문학예술작품을 많이 창작하여……언제나 강경성을 높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교육과 문학예술은 사람들의 혁명적 세계관을 세우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 p.20)
이러한 교시부문에서 드러나듯 노동계급성은 어떤 각도에서는, 혁명기에 소용되는 것이어서 건설기에서는 큰 의의를 부여하기 어렵다. 일본침략자에 대한 증오심, 「미제국주의자에 대한 철천지 원쑤」라는 시각, 혁명기의 과제이며, 이 과제수행에는 혁명성이 어느 계급보다 강한 노동자계급의 역할이 필요하였으나, 건설기에 접어들면, 그 역할이 상대적으로 감소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 대신, 이 노동계급성이 지닌 새로운 유용성은 이른바 「남조선해방투쟁」용으로 전위된다. 당중앙이 이렇게 말해 놓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주 자본가 계급을 끊임없이 증오하며 놈들을 반대하여 끝까지 싸우는 높은 계급의식과 견결한 투쟁정신으로 근로자를 고양하는 것은 온갖 착취계급이 청산된 사회주의하에서도 의연히 중요한 관제로 제기된다./그것은 사회주의에 착취계급의 잔여분자들은 남아 있으며 놈들이 저들의 옛처지를 되찾아 보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 외래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하여 파괴 암해 책동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오늘 나라 남반부에는 착취제도가 그냥 남아 있으며……」(인동판, p.106)
이 대목에 나와 있는 대로라면, 1975년 현재 북한의 혁명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라 할 것이다. 착취제도만 없어졌을 뿐, 「착취계급의 잔여분자들」이 파괴 암해 책동을 계속하고 있는 형편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생긴다. 그런 형편에 남한의 것까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금 이해하기 어렵다. 남한에는 착취제도가 있는데, 그렇다면 북한의 문예이론은 자기 속의 잔여분자와의 싸움과 남한의 착취제도와의 싸움을 동시에 감행해야 되며, 그 근거를 노동계급성에다 두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인용한 바 있는 1986년도에까지 주체사상교양에서의 자주성 논의는 그동안의 정책변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노동계급성이 긴요한 과제로 문제되는 시기는 아마도 일제강점기일 터이며 그 다음은 해방공간(1945~1948)에서일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문학운동 중, 조선공산당(박헌영 중심의 재건파, 뒷날 남로당으로 불림)의 외각단체 조선문학가동맹의 혁명논리는 이른바 「인민성」이었다.
임화(林和)에 의해 주장된 인민성이란, 오늘날의 용어로 바꾸면 노동계급성에 다름아니었다. 문학가동맹이 내세운 기본강령은 민족문학건설이었는데, 임화의 견해로는 시민성에 입각한 민족문학론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19세기적 산물이며 그들의 혁명이 일정하게 완수되자 즉각 그 혁명성을 중단하여 비민주적인 것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논외로 해야 하며, 새로운 민족문학은 오직 노동계급의 이념인 인민성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동계급은 혁명의 시기에만 아니라 승리 후에 있어서도 혁명성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며 그들은 농민보다도 소시민보다도 인민이며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 일관하여 인민의 영도자로 민족의 형성자로서 강고한 인민전선을 그대로 유지하여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민전선을 그대로 가지고 노동계급은 민족과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여 나가는 것이다. 」(《문학》, 제 3호, 1947.p.13)
이 노동계급의 계급적 이념을 인민성이라 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이 이념을 농민, 소시민, 지식인 등에로 확장시켜 나갈 때 그 자체는 벌써 특정 계급문학일 수 없고 바로 민족문학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김윤식, <분단문학의 기원>,《한국 현대 문학사론》수록, 한샘, 1988참조). 노동계급의 이념을 인민성이라 규정한 임화의 주장 속에는, 그것이 시민성에 기초를 둔 종래의 민족문학에 대결하고 승리할 수 있는 역사전망이 분명히 들어있지만, 그 인민성이 자발적이며, 중단없는 혁명성이라는 점에만 집착하고 있었다고 볼 것이다. 당파성에 관한 명확한 인식이 적어도 여기에는 아직 뚜렷하지 못했던 것이며, 「당성」에의 인식은 전무한 형편에 있었다. 노동자계급의 이념으로서의 인민성이 보편성으로서 당파성으로서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레닌의 명제까지 나아가야 했을 것인데, 임화의 논리수준에서는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노동계급성이 당파성에 연결되는 과정에까지 논리가 성숙되지 못한 것이 남로당 문학노선의 취약성이었다. 문학가동맹이 「당성」에 노동계급성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알지 못했음은 그들의 비극이라 할 것이다. 실상 노동계급성이란, 저절로 그 자체 힘으로 그 혁명성이 확보되기보다는(그것이 정도이고 보편성이겠지만), 이른바 구체적인 「당성」에 의해서만 그것이 보장, 증폭, 지속성을 띤다는 사실을 당시의 남로당 쪽은 상상하지도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대목에는 약간의 유보사항이 없을 수 없다. 비록 월북한 문학가동맹(남로당)이 1953년 8월을 계기로 숙청되고 말았지만, 또한 그것은「당성」에의 패배이겠지만, 역사의 어느 순간에는, 또 먼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당성」아닌 당파성이 정도로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인류사의 진전에 있어, 주체사상으로 매개된 「당성」이 오히려 역사의 한 단계로만 파악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당성, 노동계급성 다음 차례에 놓이는 것이 인민성이다. 주체문예에서 말하는 인민성은 임화가 말하는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차라리 소련에서 말하는 이른바 보편성으로서의 그것이라 할 만하다. 그러니까 가치중립적 용어이어서, 「당성」모양 북한만의 특유의 개념 첨가 용어가 아니다. 실상 당성이라든가 노동계급성이란 인민성을 위한 수단의 일종이라 할 수조차 있다. 인민대중의 행복을 위한 사회건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기본목표라고 주장하는 만큼 인민의 이념인 인민성은 당성, 노동계급성과 함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에술의 기본속성, 「그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라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의 경우 인민성(Narodnost')이란 예술성의 범주에서 논의될 땐 당파성보다 앞에 나와 있는 항목이다. 이 점 주체문예 쪽과는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라 할 수 있거니와, 그만큼 인민성 개념은 세가지 기본항 중에서도 으뜸항목이라 할 것이다. 소련의 경우 인민성 논의의 제일의 조건은 작품 속에 전인민적 의의를 제시함이다. 그렇다면 전인민적 의의란 무엇인가. 내용상에서 그것이 인민의 행복에 관련된 것이지만 예술성을 문제삼을 때 무엇보다 「형식의 민주성」이 문제된다. 레닌이 예술이란 인민대중이 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할 때, 바로 형식문제가 지적된 것이다. 인민이 사용하는 언어, 인민이 좋아하는 생활감정, 인민의 마음에 맞는 선율 등이 바로 형식의 민주성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인민성은 민족, 국민적 성격에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만일 이 점이 지나치게 강조된다면 러시아 말의 아름다움, 슬라브 민족의 위대성에로 알게 모르게 뻗어가 마침내 조국사상, 국가단위의 애국심의 함정에로 스스로 함몰될 위험성도 안고 있는 셈이다.
주체문예론에서 인민성의 논의방식은 대체로 소련에서 말해지는 보편성으로서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주체문예가 민족적 주체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만큼 민족적 형식으로서의 창작방법상의 문제를 유달리 강조한 점이 지적될 수 있겠다. 곧 90여 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소련과는 달리 단일 민족인 까닭이다. 이 사실은, 주체문예를 이해함에 중요한 열쇠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5. 인민성 - 창작방법론과 자발성의 교양적 차원의 의미
당성, 노동계급성과 함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예술의 기본속성이자 「그의 가장 본질적 특성」이 인민성이라면 주체문예론에서도 이 문제가 가장 구체적 특성을 이룰 것임에 틀림없다. 중요한 몇 개의 창작방법상의 교시부터 보이면 이러하다.
(가) 「음악도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여야 합니다.」(《김일성저작선집》, 4권, p.156)
(나) 「미술가들은 공장과 농촌에 직접 나가서 현실을 똑똑히 보아야 하며 노동자, 농민들과 일을 같이 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깊이 연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 혁명에 이바지할 수 있고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생동한 미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사회과학의 임무에 대하여>, p.397)
(다) (a)「노래는 반드시 인민들의 생활감정에 맞게 지어야 합니다.」(《김일성저작선집》, 2권, p.577)
(b)「우리의 음악을 민족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하여 발전시켜야 하겠다는 것도 결국 인민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창조하기 위한 것입니다.」(《김일성저작선집》, 4권, p.156)
(가)에서 말하는 것은 모든 예술이 인민대중을 위한 것이라 함인데, 이 경우 인민대중이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의 개념이라 이해된다. 이 개념은 실상 썩 애매모호한 것인데, 계급혁명이 완성된 마당에서라면, 당연히 민족 또는 국민개념에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고 볼 것이다.
(나)에서 주장된 것은 막바로 창작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 주목된다. 실상 주체문예의 핵심이 인민성에 있는 만큼 작가로 하여금 창작방법론을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기본항 중의 기본항이라 할 것이다. 유일사상으로서의 당성이란 김일성만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이를 인민대중에 전달하는 일이야말로 예술의 존재이유라 할 수 있다. 당성이 노동계급성을 압도한 마당에 노동계급성이란, 혁명기를 지난 마당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얻어야 구실을 할 수 있다. 일정한 역사적 의무가 끝난 노동계급성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창출된 것이 주체사상(영원한 인간의 자주성, 자발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거니와, 이를 또 다르게 말하면, 주체사상은 레닌의 물질적 기술적 혁명을 넘어선 사상으로서, 이른바 인민정권에 「3대 혁명을 더한 것」 곧,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벌여나가는 것이다. 이는 바로 공ㅇ산주의 건설의 「종노선」이라는 것이다.(1986.7.15,<조선노동당중앙위 책임간부들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김일성의 담화>). 인민대중을 「종노선」에로 이끌기 위해서는 예술의 힘이 더없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주체문예의 기본입장인만큼 작가는 당정책으로서의 주체이론을 투철히 안 것만으로는 이 위업을 달성할 수 없고, 인민대중의 자발성에 관한 자질을 개발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데, 이 일을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예술이라 본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 속의 「자발성」이란 오묘하고 복잡하며 어려운 과제라 본 탓이 아니겠는가. 당정책(주체사상 곧 3대 혁명)을 투철히 이해한 작가는 이를 인민대중에 교양할 임무를 갖는데, 그러니까 북한의 예술가는 국가공무원급이거니와, 이 임무수행의 은밀성은 인간의 자발성의 은밀성과 정비례한다는 명제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민대중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민대중의 삶 속에 뛰어드는 이른바 현장체험이 불가피할 것이다. 무엇을 인민대중이 좋아하는가를 알지 못하면 당정책의 교양사업이 효율적으로 성취될 이치가 없기 때문이며, 이 경우 건설기의 높은 수준에 도달한 북한사회라면, 보다 높은 교양사업이 불가피해지며, 따라서 예술의 세련성이 요청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민성의 파악이 얼마나 힘들고 또 최종적인 사업인가는 이로써 조금 밝혀진 셈이다.
인민성을 가운데 두고 창작방법론이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만큼 (다)에서 지적된 사항이야말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현실주의)의 창작방법론이 사회주의적 내용에 민족적 형식을 높은 단계에서 결합하는 일에 있는 것이라면, 사회주의적 내용이 주체사상으로 확정되어 있는 마당이라면 민족적 형식의 발굴과 심화를 통한 주체사상의 결합이야말로 정도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소련의 경우 민족적 형식이란, 90여 민족으로 구성된 합중국인 만큼 민족조화의 의미가 더 큰 과제로 되어 있지만, 북한의 경우는 우선 이런 과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곧 북한에서의 민족적 형식이란 (다)에서 말해진 방향성 그대로일 터이다. 물론 이 방향성이 어느 수준에까지 나아갈 것인가는 사회발전 단계가 결정할 성질의 것이다. 다음 두 인용은 (다)를 일층 분명히 한 것이다.
「작곡가, 극작가, 음악가, 무용가 및 연기자들은…… 창작사업에서 인민들이 창조하고 인민들의 감정과 숙망을 정당하게 반영한 민족 고전과 인민가요들을 널리 이용하여야 하겠습니다.
모든 공연들에서 연기자들은 인민의 감정을 체현하여야 하며 인민성을 반영하여야 하며 인민적 선율을 선명하게 표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또한 고전음악과 민족악기들을 광범히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야만 우리의 예술이 우리 인민의 민족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우리 혁명에서의 문학예술의 임무>, p.12~13)
「우리의 음악은 반드시 조선적인 것이 바탕으로 되어야 하며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아야 합니다.」(《김일성저작선집》, 4권, p.152)
여기서는 민족적 특성으로서의 인민성이 의미있는 부분이거니와 민족적 특성이 「반드시」「조선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음미될 만한 과제이다. 민족예술 유산계승이라는 차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내용(당파성)과 민족적 형식(예술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서 부정적 인물설정이 기피된다는 것은 일반적 원칙이어서 유독 주체문에만의 특성이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당성으로 무장된 높은 수준으로 올라선 북한사회라고 해서 갈등이론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 것과 낡은 것」의 갈등으로 처리될 성질의 것이라 할 것이다. 인민성을 가운데 두고 민족적 형식을 문제삼을 때, 현대의 고전으로서의 《피바다》《꽃파는 처녀》《한 자위단원의 운명》이 엄연히 놓여 있으며, 이들의 고전적 성격이 거의 하나의 완벽한 표준으로 작용한다는 점이야말로 주체문예의 특성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들 3대 고전이 혁명기의 것이고 건설기의 것을 뚜렷이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양쪽의 비율을 「5대 5로 해야 할 것」을 제안한 것도 실상은 김일성 자신이었다. 이 비율문제는 다음 4가지 형태로도 암시되어 있다.
「작가, 에술인들은 우리당과 혁명의 깊은 뿌리인 영광스런 혁명전통을 주제로 한 작품과 항일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어받아 조국해방전쟁기시기 용감하게 싸운 인민군 용사들과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업적을 형상한 작품을 더 많이 창작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천리마의 기세로 질풍같이 내달리며 혁명적 정열로 들끓는 오늘의 위대한 현실과 우리 인민의 보람찬 생활을 생동하게 그리며,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영용하게 싸우고 있는 남조선 혁명가들과 애국적 인민들의 혁명투쟁을 잘 형상하여야 할 것입니다.」(《김일성저작선집》, 5권, p.462)
항일투쟁기, 조국해방기, 천리마운동기의 현재, 「남조선해방투쟁」등 4가지 분야의 비율도 응당 고려됨직하다.
이러한 주체문예가 제기하는 과제들은, 앞에서 이미 조금 말한 바와 같이 인민대중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교양함에 최종목표를 둔 것인 만큼 이 점을 떠나면 일면적 이해에 멈추고 말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이 주장될 때 그 이해의 지표는 이 점을 아주 노골적으로 말해 준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 근로자들고 청년들을 교양하는 데서 여러 가지 예술이 다 필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는 소설과 영화에 힘을 넣어야 합니다.」(《김일성저작선집》, 4권, p.151)
소설의 특성이란 무엇인가. 영화의 특성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시를 중시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소설, 영화 다음에 「가극」이 문제될 것임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인민대중 교양수단을 지금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다. 「피바다」식의 가극창조라는 새시대가 열려졌다고 당중앙이 주장하는 것도 이런 문맥에서이다. 그렇다면 작가, 예술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분명해진다. 국가공무원급이며, 교육자여야 하며, 주인인 인민대중에 봉사하는 심부름꾼이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가. 곧 어떻게 하면 예술의 수준에서 봉사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물음에는 다음과 같은 해답들이 고안되어 있다.
전형성이란 정치성(당정책)과 예술성의 결합을 가리킴이라는 항목. 이 경우 만일 정치성이 빠지면 수정주의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형적 성격이란 역사적 단계에 상응하는 고귀한 인간성, 곧 영웅성에로 귀착되지 않을 수 없다. 종자론이란 무엇인가. 예술작품의 종자란 생활 속에서 탐구된 사상적 알맹이며, 이것을 올바로 쥘 때, 창작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실현시키는 높은 기량문제가 뒤따를 뿐이다. 당정책의 요구에 맞는 종자라야 함은 물론, 형상적으로도 구현할 수 있는 것이어라야 한다. 속도전이란 무엇인가. 이것 역시 종자론만큼 분명한 것이다. 열정, 적극성, 실천을 일거에 달성하기 위한 건설기에 고안된 원칙의 하나이다. 사회주의 건설목표를 앞당기기 위해 고안된 이 속도전은 「남조선해방」이라는 과제조차 머금고 있다. 「불타는 열정적 요구」란, 「종자」가 결정된 직후 맹렬하게 몰아붙이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가리킴이다. 그러나, 작가는 종자가 올바로 파악, 결정되었으면 열정적으로 그것에 매달려야 하며, 이는 「전투의 일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속도전이란 창작의 신비주의적 성향을 극복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논의된 일들은 작가란 일단 잠정적으로 인민대중의 교사이자 종복으로 상정했을 때 가능한 논리들이다.
6. 통일문학에의 전망
주체문예론에서 최종적으로 점검되어야 할 사항은 과연 무엇인가. 이 물음은 마지막 단계에 오는 것이며, 「문학예술의 향유자이자 창조자가 인민대중이다.」라는 명제 속에 그 해답이 잠겨 있다. 향유자이자 창조자가 인민대중이라는 명제가 창작을 이른바 「집체창작」에로 이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다. 4?15 창작단에 의해 창작된 <봄우뢰>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거니와, 인민대중이 예술에 직접 참가한다는 것은 전문가 본위 배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전문가로서의 예술가란 다만 「도움주는 사람」곧 잠정적인 교사의 몫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은 다음 장면에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확인된다.
「우리는 문예활동에서 전문일꾼 본위로 나가려는 경향을 철저히 경계하여야 하며 창작사업에서 신비주의를 마스고 문학예술을 군중적으로 널리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김일성저작선집》, 5권, p.462)
이 시각에 따르면 문예 소조활동(3인 소조)도 노동자들의 그것과 구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정적인 전문가로서의 작가는 어떻게 양성되는 것일까. 우리의 물음이 여기까지에 이르면 벌써 주체문예이론의 논리적 수준을 떠나 실제문제에로 이전된다. 곧 작가양성의 제도적 장치에 관한 논의에로 연결되는데, 이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다. 이념이 밝혀진 뒤에 제도적 측면을 문제삼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주체문예이론에 관한 논의를 개괄적으로 펼쳐왔지만, 논자에 있어 썩 인상적인 것은 다음 세가지 부분이다.
첫째, 당성과 당파성에 관한 구별점. 보편성으로서의 당파성에서 「당성」을 분리해 놓은 주체문예이론은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염두에 둘 때 뚜렷한 의미를 얻어 빛나게 된다. 조선민중들이 항일투쟁의 새로운 고조를 일으킴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 남호두회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만주국 조선인 민생단 사건(1932?)이 벌려놓은 기막한 민족내적 갈등의 아픈 역사적 과제를 몰각하게 되며, 잇따라 비록 중국 공산당의 명분 아래 이긴 하나 동북인민혁명군 제 2군의 사장으로서의 김일성의 항일투쟁도 올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되기 쉽다(이재화, 《한국근현대민족해방운동사》, 백산서당, 1988. 참조). 당성을 당파성에서 구분하는 명분은 이로써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겠다.
둘째, 노동계급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도입에 관한 점. 주체사상의 이론적 근거는 노동계급성의 한계, 곧 역사적 어느 단계에서의 노동계급성의 한계를 설정했을 때 파악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자주성개념이 아니었을까.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에서의 어느 수준의 성숙단계는 실상 노동계급의 선진적 계급성의 우월성을 상대적으로 감소시킬 것이다. 그들의 계급적 의미가 전 사회적으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 그 노동계급성은 의미를 조금씩 상실하는만큼, 보다 높은 단계의 목표설정이 불가피해진다. 주체문예이론의 도입은 바로 이 순간에 낳아진 것이 아니겠는가. 곧, 인간의 자발성의 영원한 가능성의 열어보임이야말로 그들 표현에 따르면 「종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주체사상은 노동계급성의 한계를 극복한 사상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큰 시각에서 볼 때, 레닌의 수준을 넘어서 3대 혁명이라 함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셋째, 작가를 전문가로 보지 않겠다는 것. 곧, 창작사업에서 신비주의를 「 마스겠다」는 것에 관한 것. 예술의 향유자이자 창조자를 인민대중이라 규정한 점은 바로 《도이치이데올로기》에서 주장된 사상, 곧 「가슴마다 누구나 라파엘을 갖고 있다」는 명제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곧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공산주의사회만이라는 전제인 것이다.
끝으로, 논자의 개인적 느낌을 말해볼 수도 있다면, 통일문학에 있어서의 기본항으로 「민족적 형식」에 관한 문제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까지를 포함해서라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민족적 형식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전개의 단계적인 과정에서 사회주의적 내용쪽과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는 점을 남북이 함께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다면, 통일문학론의 실마리도 조금은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체문예이론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실상은 다만 학구적 흥미차원 이상의 일임은 바로 이 때문이다. 논자는 역사에의 두려움도 이 글에서 조금 드러내고자 했거니와, 그것은 불행히도 논자의 역사에의 얕은 이해수준을 새삼 증명하는 것으로 되고 말았을 것이다. 보다 많은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면 이러한 무지도 조금 극복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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