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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1

[스크랩] 돌아온 '밥도둑' 임진강 참게


▲ 참게 암컷이 집게발을 번쩍 치켜들었다. 반가워서 인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건 참게가 화났다는 신호. 참게는 위협을 느끼면 집게발을 치켜들고 꿈쩍하지 않는다. 수컷은 집게발에 털이 훨씬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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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 참게
나 참게. 20여년 만에 고향 임진강에 돌아왔다. 기억나지 않는다구?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왔는데, 섭섭하다.

예전엔 우리 참게를 논두렁이나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옛 그림에도 자주 등장했다. 갈대를 꼭 움켜쥔 모습으로. 갈대가 한자로 ‘로’(蘆)인데, 중국어 발음이 ‘려’와 비슷하다. 려는 임금이 과거급제자에게 주는 고기. 그래서 갈대는 과거합격을 상징한다. 게는 딱딱한 갑옷을 입고 있으니까, 갑(甲) 즉 ‘장원급제’를 의미했고, 그래서 참게가 갈대를 잡은 그림은 과거를 앞둔 선비들에게 인기였다고 한다.


우리가 20년 넘게 고향에 발길을 끊은 건 인간 탓이다. 1980년대 초반, 동두천에 피혁공장이 들어서면서 임진강이 급격히 오염됐다. 농약도 많이 뿌렸다. 참게 숫자가 급격히 줄었다. 얼마나 씨가 말랐으면 1990년대 초까지도 참게 한 마리가 2만5000원까지 나갔을까. 한때는 당신들을 원망했다. 이젠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간이 우리 참게 새끼를 방류하면서 개체수가 많이 늘었다. 요즘은 가을이면 임진강에서 하루 3000~4000마리씩 잡힌다. 가격도 1㎏(약 10마리)에 2만5000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많이 내리긴 했어도 마리당 2500원이면 꽤 높은 편이다. 참게로 담근 간장게장은 1㎏에 10만원이나 한다.

이처럼 몸값이 다락 같이 높은 건 우리 참게 맛이 참 기막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는 사촌인 꽃게나 대게보다 살이 적다. 하지만 우리 몸에서 풍기는, 입맛을 자극하는 그 독특한 향취란…. 인간들이 더 잘 알지 않나. 우리는 수랏상에는 빠지지 않고 올라가 임금의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맡았다.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몸 빛은 푸른 검은색이고 수컷은 다리에 털이 있다. 맛은 (게 중에서) 가장 좋다”고 공인해 주었다. 중국 진나라 시인 필탁은 “한 손에 게발 들고 한 손에 술잔 들고 술로 된 연못에서 헤엄치고 싶다”라고 칭송했고.


우리 참게 맛을 즐기려면 게장이 최고란다. 항아리에 참게를 넣고 물을 부어 하룻밤 지나면 몸 속 찌꺼기를 토해낸다. 팔팔 끓인 간장을 부으면 살이 온통 따갑고 아프다가 정신을 잃는다. 간장을 따라내 다시 끓인 뒤 식혀서 다시 참게에 붓는 과정을 서너 차례 되풀이하면 참게장이 완성된다.

참게장의 별미는 내장. 아이 손바닥 만한 몸통을 잘 만져보면 배 껍데기가 갈라지는 부분이 있다. 여기 손가락을 넣어 껍데기를 뒤집으시라. 주홍에 가까운 짙은 노란색 장은 나온다.

더 맛있는 건 장 밑에 있는 청장이다. 장이 농축되고 농축된 것이라는데, 서늘한 푸른빛이 감도는 짙은 갈색이다. 껍데기에 바짝 붙은 청장을 숟갈로 박박 긁어서 뜨거운 밥에 얹어 드셔보시라. 짭짤하면서도 고소하고, 참게 향이 살아있다. ‘원조 밥도둑’이라 할 만하다.

생선매운탕에도 참게 한 마리만 넣으면 국물의 깊이와 감칠맛이 확 달라진다. 참게잡이 어부들은 라면에 참게를 넣어 끓여 먹는 호사를 부리기도 한다. 옛날엔 소금으로만 장을 담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고춧가루에 고추장으로 칠갑을 한다. 그게 게 맛인가, 장 맛으로 먹는 거지. 안타깝다.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을 만나 반가웠다. 하지만 새끼를 낳으러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 바람이 조금 더 쌀쌀 맞아지는 10월 말이면 알이 들어찬다. 꽃게나 대게와 달리 우리 참게 알에는 독(毒)이 있으니 먹었다간 큰 일 난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 실컷 맛보시라. 멸종할 뻔한 우리 숫자를 늘려준 보답이다.

>> 참게·참게장 사려면

임진강 참게는 파주어촌계에서만 살 수 있다. 참게 물량이 아직은 모자라 서울 등 다른 지역에는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암·수 섞어서 1㎏(약 10마리) 2만5000원, 암게만은 3만원. 참게장은 500g 5만원. 전화 주문하면 택배로 부쳐준다. (031)958-8007


>> 참게 전문식당

파주 적성면과 파평면, 연천군 백학면 일대에 있다. 파주어촌계에 문의하면 안전하다. 두지리 나루터 부근에는 참게장과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10여곳 몰려있다. 게장=1인분 1만원~1만5000원. 매기나 잡고기에 참게를 넣어주는 참게매운탕=1인분 1만원에 참게 한마리당 5000원 추가.

두지리 가는길: 자유로 → 당동IC → 37번국도(적성·전곡 방향) → 대덕골 여우고개삼거리 → 두포교차로 → 파평삼거리에서 적성 방향 → 파주어촌계 담수어직판장(임진강레저타운미니골프코스 옆) → 적성읍 사거리 좌회전(두지리 방향) → 두지리 나루터



>> 주변 볼거리

율곡 이이가 제자들과 함께 시와 학문을 논했다는 화석정(花石亭)이 멀지 않다. 율곡이 8살 때 지었다는 시가 정자에 걸려있다.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 옆에는 500살을 훨씬 넘긴 느티나무가 서 있다. 나무그늘이 짙고 푸르다.

문산에서 통일로인 1번 국도를 따라 달리면 임진각에 닿는다. 북한의 산과 들판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조선 초기 명재상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갈매기를 벗삼아 만년을 보냈다는 반구정(伴鷗亭)은 임진강변 절벽에 바짝 붙어 섰다. 두지리 나루터에는 황포돛대 2대가 운항한다.

출처 : 돌아온 '밥도둑' 임진강 참게
글쓴이 : e-이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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