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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1

[스크랩] 뇌는 블랙박스가 아니다

뇌는 블랙박스가 아니다

 

 

개성만점 기능 유닛의 집합체

 

| 글 | 이동수 서울대 핵의학과 교수ㆍdsl@snu.ac.kr |
20세기 초만 해도 뇌는 블랙박스라서 한 덩어리로 취급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었다. 심리학도, 교육학도, 뇌 발달도 이 가정을 바탕으로 입력과 출력을 연구했다. 이는 ‘본성과 양육’ 논쟁에서 양육을 강조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사람은 누구나 같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서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념까지 생산했다.

사람의 뇌는 3만개 유전자가 성장시기별로 발현해 부분을 이루고 전체를 만든 구성체로 10의 12제곱수의 신경세포가 10의 15제곱개 연접(서로 맞닿은 곳)을 통해 작동한다. 이를 보면 뇌는 한 덩어리의 블랙박스라고 취급하기에는 부분별로 개성이 뚜렷한 유기체 덩어리다. 지금은 뇌영상 기술이 발전해 뇌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뇌는 아직 살아있는 채로는 세포 하나하나의 영상을 만들 수 없다. 신경세포도 단독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작은 군집으로 작동한다는 증거가 있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크기의 유닛이 특정 뇌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래서 요즘은 영상에서 보이는 유닛에 뇌기능을 부여한다.

생김새를 바탕으로 만든 기능유닛

뇌가 한 덩어리라는 생각은 20세기를 마감하며 함께 사장됐다. 현재 뇌 생김새를 영상으로 만드는 가장 정교한 기술이 자기공명영상(MRI)인데, 이젠 MRI로 사람 뇌를 1mm 보다 더 잘게 자를 수 있다. 사람의 뇌는 이랑과 고랑으로 이뤄져 있어서 MRI 영상을 잘 들여다보면 이랑 모양에 따라 뇌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나눈 뇌의 부분조각을 상전두이랑, 중측두이랑, 띠이랑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상측두이랑이라고 하면 관련 학자들은 누구나 ‘청각피질이라 말, 소리, 음악을 우선 처리하는 부분이구나’하고 생각한다.

뇌에서 80개쯤 되는 이랑을 잘 골라내는데는 전문가가 하루 8시간 작업해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이 방법으로 수십 명의 뇌 이랑을 골라내려면 1년쯤 걸리는데, 이렇게 수고해 만든 이랑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 얼굴모습만큼이나 다양하다. 코 높이, 눈매, 귓불이 다양하게 생긴 것만큼이나 뇌의 이랑 모양이 다양하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우리는 생각, 느낌, 감각, 행동, 욕망, 판단이 뇌의 어떤 부위가 작동해 나타난 결과인지 알고 싶다. 그래서 뇌영상 기기를 동작시키고 그 속에 누워 뇌를 쓰면서 영상을 얻는다. 이런 저런 일을 수행하는데 뇌의 유닛들이 동작하는 방식은 서로 참 다르다. 그런데 이 실험을 하는데 30분, 영상데이터를 옮겨 분석하는데 2시간, 활성화된 기능유닛의 위치를 알려고 그 사람의 뇌를 이랑으로 조각내는데 1주일이 걸린다면? 우리의 궁금증은 해결하기 어려울 거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긴 이랑 구조를 뇌 표준판에 모았을 때 그곳이 차이가 많은 곳인지 누구나 같은 곳인지를 알려면, 영상의 화소(pixel)가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다른지를 확률로 표시하면 된다. 예를 들어 100명에게서 얻은 MRI 영상을 이랑으로 분할한 다음, 사람들 모두가 상측두이랑인 화소는 상측두이랑이 틀림없고(확률 1.00), 100명 중 33명에서만 상측두이랑인 화소는 셋에 하나만 상측두이랑(확률 0.33)이라는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이를 확률지도라고 한다. 이렇게 만든 이랑구조의 집단 표준 생김새를 바탕으로 뇌기능유닛의 위치를 정한다.

실제로는 100명의 MRI 영상에서 모두 손으로 이랑을 고르지는 않는다. 하나를 이랑으로 분할한 뒤 그 결과를 컴퓨터를 써서 나머지 99명의 MRI 영상으로 보내 분할해 뇌기능유닛의 확률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뇌기능유닛 확률지도는 최근 제작 완료돼 무료로 배포 중이며 연구자는 누구나 받아 쓸 수 있다.

세포 배열에 따라 구분한 기능유닛

한국인 뇌와 기능유닛 우리나라 사람의 MRI를 바탕으로 얻은 뇌 표준지도 위에 독일 연구진이 만든 브로드만 영역 확률지도를 올려놓았다. BA는 브로드만 영역. BA1과 3 영역은 신체 각 부위에서 들어오는 감각을 지각한다. BA17은 일차시각, BA18과 19는 일차청각, BA44와 45는 브로카 언어영역이다.
생김새를 바탕으로 기능유닛을 가르면 뇌기능과 뇌구조가 일대일대응이 가능할 거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면 이랑이 80개쯤 되니 사람의 뇌기능은 80여 가지뿐인가? 그렇지 않다. 일례로 상측두이랑 중 청각신호처리에 관여하는 부분은 일차 청각피질(브로드만 영역 41번)인데, 이 부분은 상측두이랑의 일부에 불과하고, 청각고급처리를 담당하는 주변의 42번과 21번, 22번 영역이 상측두이랑의 나머지를 차지한다. 생김새로 나눈 기능유닛 하나가 청각을 지각하는데 모두 ‘다걸기’(올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접힌 생김새 말고 기능단위를 기본으로 영역을 나눠 번호를 붙이는 작업이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05년 독일의 서북지역 라인강변에서 이뤄졌다. 독일 뇌연구소 브로드만 박사는 죽은 사람 뇌에서 신경세포를 염색한 수만 장의 영상을 현미경으로 일일이 조사하고 신경세포가 배열된 특성에 따라 뇌를 40여개 기능유닛으로 나눴다. 이렇게 나눈 영역을 지금도 브로드만 번호로 표시한다. 즉 브로드만 영역 17, 44, 45처럼 말이다. 이렇게 했더니 어떤 부분은 기능유닛과 역할이 잘 맞아 브로드만 영역 17번은 일차시각영역, 1번은 일차체성감각영역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의사 브로카 박사가 알아낸 언어영역은 브로드만 영역 44, 45번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브로드만 영역 46번은 어떤 기능을 주로 하는 곳인지 분명하지 않다.

뇌기능자기공명검사(functional MRI)나 양전자단층촬영검사(PET)로 소리를 들려주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우와 비교하면 청각피질인 브로드만 41번 영역이 일단 활성화된다. 그런데 브로드만 영역도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서 부검한 여러 사람 뇌를 염색해보고 만든 확률적인 위치 지도가 공공용으로 발표돼 있다.

이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독일 연구소에서 집중적으로 수행해 표준 MRI 위에 옮겨 놓은 것을 누구나 내려받아 사용하고 있다. 고도로 특화된 연구실에서 전문가가 1년 걸려야 브로드만 영역을 하나 갈라낼 수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 10개 남짓한 영역이 조사됐고, 이 모두를 우리나라 사람의 뇌 표준판에 옮겨놓아 우리나라에서도 내려받기가 가능하다.

애초에 어린 뇌가 부분별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기능유닛으로 조직될 때 평면에서 좌우 각각 40여개의 유닛을 만들었다고 치면, 이 평면 뇌를 잘 구겨 접어서 두개골 속에 넣은 것이 뇌라 할 수 있다. MRI로는 구겨진 생김새에 따라 기능유닛을 나누며 브로드만 방법에서는 세포분포를 근거로 기능유닛을 나눈다.

두 방법 중 어떤 것이 적당한가가 문제다. 물론 뇌기능과 일대일대응이 가능한 쪽이 알맞은 기능유닛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20세기 초반에 뇌를 커다란 한 덩어리로 취급했던 어리석음을 얘기하지만, 우리도 후대에 같은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뇌 기능 중에 지각과 관련 있는 부위들, 즉 시각, 청각, 후각 부위는 브로드만의 세포구조 영역과 잘 맞는데, 고급기능은 일대일대응이 어렵다. 왜? 뇌가 고급기능으로 갈수록 구역설정이 모호해져서? 그럼 언어 같은 고위인지기능은 기능유닛 하나에서 일어날까? 판단은?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이를 요즘은 ‘마음의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한다. 사리에 맞지 않지만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은 하나의 기능유닛인가?

기능유닛과 기능 사이의 일대다대응이 원래 뇌의 기능유닛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현재 신경과학자들의 입장이다. 따라서 이제 과학자들은 fMRI와 PET를 이용한 뇌기능 지도에서 기억과 판단, 주의, 언어, 사회인지 같이 서로 달라 보이는 인지기능을 수행할 때 모두 같은 뇌기능유닛이 나타나도 놀라지 않는다.

뇌 연구가 교육을 바꾼다

외국어를 5~7살 전에 배우면 뇌의 한 곳이 모국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능숙하게 처리한다. 12~15세에 배우면 한 곳에서 처리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인접한 서로 다른 곳이 작동한다. 어른이 된 뒤 배운 외국어는 능숙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모국어 언어영역을 벗어난 뇌의 여러 넓은 영역이 함께 작동한다.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이 외국어를 사용하는 회의를 마치고 탈진해 허기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신 에너지의 20%를 쓰는 뇌의 여러 부분이 움직이면 포도당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자재로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새로 배운 사람보다 적은 에너지, 작은 뇌 기능유닛을 사용한다.

뇌는 새로 배울 때, 재미있게 배울 때, 힘에 부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때, 어렵더라도 문제를 해결한 후 보람이 클 때 여러 기능유닛이 활성화된다. 이 사실이 교육은 뇌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왔다. 이 생각은 블랙박스 뇌에 뭐라도 좋은 것을 제공하면 어떻게든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지난세기 초의 교육론과 많이 다르다.

한 예로 시청각 교육에 대한 뇌기반 해석을 보자. 시청각 자극을 주고 뇌가 작동하는 것을 본 PET 실험에서 분명 청각자극이 들어올 때는 시각피질의 활성이 줄고 시각자극이 들어올 때는 청각피질의 활성이 줄었다. 흥미롭게도 이것이 한 가지 자극에 집중하는 뇌의 작동방식이라 알려졌다. 두 자극을 동시에 줄 때는? 시각피질과 청각피질 모두 활성이 늘고 서로 잘 반응한다. 같은 시청각자극이라도 입모양을 읽으려고 할 때 부적절한 잡음을 들려주면 일차청각피질인 브로드만 영역 41번뿐 아니라 주변 이차청각피질까지 작동한다. 이때는 입모양으로 말의 뜻도 잘 읽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금방 피로해진다.

중증난청 장애자는 난청기간이 길어지면 뇌가 시나브로 적응한다. 인공 속귀인 전자달팽이관을 이식하고 2년 이상 훈련하면 언어청각능력을 회복하기도 한다. 심지어 전화로 어려움 없이 대화가 가능해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라도 전화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고려하면 뇌가 가소성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뇌의 청각피질이 다시 일을 수행하는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이식수술 후 시각피질의 일부로 시각적 움직임을 지각하는 V5 영역의 활동이 향상될수록 언어청각능력 회복이 크다.

청각피질은 난청 초기에는 자극이 없어 잠들었다가 난청기간이 길어지면 무언가 다른 일에 동원되며 정상을 회복하는데, 이런 환자는 수술 후에 언어청각능력을 회복 못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도 수화로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아마 언어영역이 잘못된 것은 아닐 터다.

뇌의 어느 지역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면 뇌의 각 부분이 서로 얼마나 기능을 나눠가질 수 있는지, 또는 병이 생긴 뇌가 얼마나 가소성을 발휘해 회복하는지, 신경세포로 분화시킨 줄기세포를 병든 부위에 넣어주면 뇌기능이 얼마나 회복 가능한지 풀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뇌가 재미를 느끼며 배워 이 같은 뇌 관련 난제들을 풀어내고 싶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꼭 누군가는 직접 풀어낼 수 있길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또 생긴다. 여러분 뇌에서 뇌 관련 난제를 풀어내는데 가담하는 부분, 즉 기능유닛은 과연 어디일까?

이동수 교수는
서울대 의대 내과와 핵의학과에서 전문의 수련과 박사학위를 받은 후 뇌 연구에 입문했다. 우리나라 사람의 뇌 확률지도를 제작했고 이젠 뇌 연결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DTI, MEG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핵의학회지 편집자, 세계핵의학생물학회 네트워킹 그룹의 의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가 속한 서울대 의대 핵의학교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의학 및 분자영상 협력 센터로 지정됐다.
출처 : 뇌는 블랙박스가 아니다
글쓴이 : e-이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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