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세상의 가장 잔인한 겨울 김현호 논설실장
입력 : 2005.12.26
18:59 17' / 수정 : 2005.12.26 19:46 25'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10도에 이를 때면 평양은 영하 15~20도까지 내려간다. 1~2월이면 압록강 변의
혜산은 영하 30도를 넘나든다. 말 그대로 혹한(酷寒)이다. 그러나 북한의 겨울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계절인 것은 수은주의 깊이 때문만은
아니다. 거의 맨몸으로 이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북한 동포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온도계의 눈금으로는 도저히 측정해 낼 수가 없다.
임신부들이 겨울에 아기를 낳으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석탄 한 줌, 땔감 한 조각이 귀중품 중의 귀중품이니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 먹기가 쉽지 않다. 보통의 집에서는 제대로 산후 조리를 할 수가 없다. 산모와 아기는 방안으로 파고드는 냉기와 사투(死鬪)를 벌여야 하고, 혹한을 견뎌내더라도 평생 갈 골병을 얻게 마련이다.
기차역 대합실처럼 그나마 온기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그러나 이 온기조차 사라지는 새벽이면 여기저기 쓰러져 잠을 자던 아이들(꽃제비) 중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들도 생긴다.
평양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평양의 아파트는 대부분 중앙온수난방식으로 지어졌지만 온수가 공급되지 않아 겨울에는 거대한 냉장고로 변한다. 전기 부족으로 엘리베이터마저 움직이지 않아 힘 없는 노인들은 고층아파트에 갇힌 채 겨울 내내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집안에서 동사(凍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멘트 방바닥을 파내 아궁이를 만드는 집들도 있다. 방바닥에 비닐을 깔고 온몸을 감싼 뒤 불켜진 백열등을 껴안고 꼼짝없이 누워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겨울을 견뎌내는 최고의 생존 방법이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이 일제 때보다 살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전에는 이런 말을 하다간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기 십상이지만 요즘은 내놓고 말해도 큰 탈이 없다. 이런 사람들까지 다 수용소로 보내다간 수용소가 미어터질 판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신문을 보면 함경도 등지에서 기온이 영하 20~30도까지 내려가면 여기저기서 사람이 동사(凍死)했다는 기사가 흔하다. 북한 신문들이야 이런 기사를 전혀 싣지 않고 있지만, 일제시대보다 더 어렵다는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감옥과 수용소의 참상은 더하다. 탈북하다 붙잡혀 1997년 함북 온성 감옥에 들어갔던 김성민 자유북한방송대표는 “1~2월에도 감방 쇠창살에는 유리나 종이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한데나 마찬가지인 냉방에서 구멍이 숭숭 난 담요 한 장으로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요덕 정치범수용소 출신인 김태진씨는 “혹한에다 뜯어먹을 풀조차 없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모진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도 봄이 오면 몸이 풀려서 그런지 픽픽 쓰러진다”고 했다.
북한 수용소에는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와 납북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탈출해 나온 오길남씨는 북에 남은 부인과 두 딸이 수용소에 갇혔고 거기서 부인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을 10년 넘게 가슴에 담고 살고 있다.
북한의 겨울 참상은 식량과 생필품의 대북(對北) 지원 필요성을 더욱 절감케 한다. 동시에 지원품들이 정작 필요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에 분배의 투명성을 요구하면 남북관계가 다칠 수 있다며 소극적이다. 더구나 북한에 수용소 폐지 등 인권 개선을 요구하라고 하면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라고 언성을 높인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미국에서 “북한 인권보다 한반도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둘이 함께 가야 할 인권과 평화를 양자택일 관계라고 강변하는 정부의 태도가 북한 동포들에겐 삭풍(朔風)보다 더 모질게 느껴질 것이다. |
[류근일 칼럼] 사학법, 자유민주세력의
시험대 강행처리된 사학법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는 ‘이론’ 싸움은 실상 부질없는 입씨름일 뿐이다. 원래
‘이론’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말해도 말이 되는 것이고 저렇게 말해도 말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론’이라는 것은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화의 명분’에 불과한 ‘이론’이 아니라, 전교조 등 그쪽 진영이 한사코 사학법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것, 그래서 전교조 같은
것을 거부하는 진영으로서는 한사코 그것을 막으려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먹고 먹히는 거대한 정치투쟁이라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쟁탈전, 그
쟁탈전의 한 중요한 대목이 바로 사립학교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정권을 먹고, 국회를 먹고, 헌법재판소를 먹고,
내년 여름에는 대법원을 먹고, 그 전에 사립학교를 먹고, 서울을 엿먹이고, 한·미 동맹을 흔들어 놓고, 대한민국을 온통 친일파(親日派)의
나라로만 색칠해 놓고, 대기업들을 겁주고 때리면서 저들은 한국의 공공부문과 시민사회의 모든 진지(陣地)들을 하나하나 먹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혁명’이 착착 진행되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이 나라를 귀중한 자산으로 아껴온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앉아서 당한 꼴밖엔 안 되었다. 야당도 그렇고
민간부문도 그렇고, 상대방이 턱 앞에 다가오도록 도무지 싸움다운 싸움 한 번 안 해본 채 발가벗기고 만 꼴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제정신이
든다는 것인지, 이렇게 싸울 생각을 안 해 가지고서야 한낮에 길거리에서 맨몸으로 발가벗겨진다 해도 할 말이 있을 턱이 없다. 이래서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사람들, 특히 종교계와 사학인들은 이번 사학법 문제에 그들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과거 유신 시절에 독재에 항거하던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온몸을 던져서 싸웠다. 1980년대의 운동가들도 목숨을 걸고 싸운 끝에 오늘날 정권을
잡았다. 김영삼씨, 김대중씨도 야당인으로서 목숨을 걸고 싸웠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수호세력, 야당, 사학인, 종교계라고 해서 이런 이치에서 제외될 수 없다. 한국
정치에서는, 그리고 우리 시대 같은 난세(亂世)에서는 목숨을 던지는 자만이 이길 수 있다. 전교조가 속한 진영은 40년 동안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런 그들을 상대로 똑같이 목숨을 던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싸움이 된다는 것인가? 사람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죽기로 작정함으로써 오히려 영원히 살게 되는 수가 있다. 유신 권력에 저항한 지학순
주교, 함석헌 선생, 김재준 목사가 그랬다. 그런데 왜 지금은 얼치기 수구좌파 실권파를 상대로 그런 주교, 지사(志士), 목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이 점에서 사학법 문제는 대한민국 수호 진영에 주어진 결정적인 시험의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들이 과연 이 나라를 지키고 향유할
만한 자격과 능력과 정신을 갖춘 사람들인지, 그리하여 그들이 진정 그럴 수 있는 투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이것을 계기로 판가름날
것이다. 종교계와 사학인들은 이미 선언상으로는 최후의 마지노 선(線)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정말로 자신을 던지는 투사와 신념인의 행렬이 실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온몸을 던져 싸우려는 자세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역사의
승자가 될 수 없다. 종교계와 사학인들이 과연 ‘노무현시대의 정치범’이 될 각오로 맞설 수 있을지, 사학법 파동은 그래서 이 시대 자유민주 수호
진영의 시련이자 시험대이다. |

'테마 칼럼·나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아구가 주는 교훈 (0) | 2006.01.21 |
---|---|
[스크랩] 2006년 (0) | 2006.01.21 |
우리 가 마시는 수돗물이 불소화 된다는 이야기 /치과일부는 찬성 ㅎㅎㅎ (0) | 2005.09.25 |
[스크랩] 믿음의 기도 (0) | 2005.09.21 |
[스크랩] 낚시금지구역 (0) | 2005.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