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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칼럼·나의 서재

[스크랩]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 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


엊그제는 신문을 보다가 언뜻 기사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무당들의 이야기인 다큐멘터리 <영매>라는 글이었다.

영매(靈媒)란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라고 한다.

무당이 망자와 생자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로써 죽은 사람의 한을 달래주고,

산 사람에게는 애통함을 위로해주는 '직업'의 일종인 무당들의 일상을

기록영화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랑하는 것도, 상처 주는 것도 가족에게 배운다.'

는 극중 해설처럼 무당들의 씻김굿을 통해 위로받는 의뢰인들의 정경에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코끝도 자연스레 찡하게 울려주는 영화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감독은 살아있을 때,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야겠다는

회환이 느껴져서 무당과 의뢰인의 절절한 사연들이 자신의 문제처럼

다가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기사를 보다보니, 지난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우리 집 앞집은 무당집이었다.

부모님이 집에서 가내공장을 하고 계셔서 바빴던 터라 나는 늘 굿판을

구경하는 일로 하루해를 보내곤 했다.


그래서일까? 머리가 커진 이후론, 어렴풋이 굿판에서 행해지던

영매-<산자와 죽은 자의 화해>를 연결하며 신명나게 굿판을 '쿵덕'거리던

무당집의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얼마 전, 시댁의 막내 작은 아버님(56세)의 뜻하지 않던

죽음을 접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댁의 고향은 경기도 화성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도 남편의 고향근처라서 지리적으로 잘 알고 있는

상식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몇 해 전 선산을 큰아버님 댁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땅을 팔고,

아무 연고도 없는 충청도 00 땅으로 옮겨버리는 일이 발생했었다.

물론, 당시에 둘째 고모님 댁이 잠깐 00 근처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계셔서 그쪽의 안내를 받은 모양이긴 했다.

(지금은 주유소도 다 정리하시고, 00 으로 올라오셨는데...)


다른 일가친척들은 알지도 못한 채,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져서 다들

의아해하면서 '쉬쉬'하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칫 집안싸움으로

번질까봐... 그런데, 올해부터는 이제껏 잠재적으로 갖고 있던 불만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막내 작은아버님의 장례문제로 심각함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왔다. 결국엔 작은댁과 큰댁과의 사이에서 큰 다툼이

일어나 옥신각신 싸움 끝에 옮겨진 선산으로 작은 아버님을 모시지 못하고

각자 앞으로의 행방이 결정된 듯했다.


선산이 남아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묘지 쓸 자리가 마땅치 않고,

그간의 경과가 어떻게 된 건지 앞으로는 선산에다 납골당을 지어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친척들끼리 돈을 모아 납골당을 짓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우리 시아버님께서는 둘째라서 먼 곳에다 어차피 납골당을

지을 계획이라면 우리는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하고,

납골당 짓는 계획에서 빠져있었다.


얼마 전, 남편과 나는 돌아가신 막내 작은 아버님을 두고, 큰댁과 마찰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마음이 찹찹해져서 산책길을 나섰다가

우리가 죽은 후를 얘기하는 기회를 가졌다.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 난, 죽은 후에 화장시켜서 바다에 뿌려줘라. 죽으면 그만인 거야.

영혼이니 뭐니 그런 게  어딨어? 죽으면 끝인데... 앞으로 우리시대에

묻힐 땅이 어딨겠냐구? 땅덩어리도 좁은 나라에서 화장해야지.

그 먼 곳까지 납골당에 묻힐 이유가 어딨으며 자식 고생 시킬 일이

뭐 있겠어." 라며 한탄조의 한숨을 뱉어냈다.


나 또한 남편의 말에 동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화장시켜서 납골당에다 해줘. 동생 보니까 흔적도 없이 뿌리고 나니까

너무 허무하고, 슬프더라. 그리고 시신은 기증해주고..."


뜻밖의 내 말에 남편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깜짝 놀라더니 이렇게 말했다.


" 너, 나 모르게 시신기증 계약서 썼냐?"

" 아니. 아직 그런 거 쓰진 않았지만, 뇌사상태가 오면 그때 가서 그렇게

처리해 줘. 죽어서 썩어질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서 새 생명을 살리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을 것 같아."


남편은 듣더니만,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렇게 농담을 건넨다.


" 네 몸뚱이가 어디 쓸데가 있겠어? 흐흐흐."


아마도, 남편은 이렇게 농담 식으로 말을 건네긴 했지만, 내가 먼저

죽은 후엔 아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는 그렇게 해주리라고 믿는다.


이전에는 내가 죽은 후를 그다지 심각하게 거론해 보지도 않았거니와

화장과 묘지에 묻히는 생각조차 꺼림칙해서 떠올리기 싫어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자꾸만 문득문득,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시신기증' 어렵게 생각하면 무척 골치 아픈 문제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산다는 것! 죽는 다는 것! 다 별것이 아닌 듯싶다.

죽음 앞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가 용서로 가능한 법 인 것 같다.


며칠 후엔 명절이 다가온다.

명절과 제사라는 행사를 통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화해해 나가는

시간을 마련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살았을 적에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채, 한스러움을 간직한 이들이 많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죽은 자를 앞에 놓고, 기억하는 산 자들은

또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죽은 후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살았을 적에 후회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실행에 옮겨

열심히 살며 사랑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삶이요. 산자가 지켜 나가야 할 몫 인 것 같다.

(2003. 10)



*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시댁의 큰어머님이 중환자실에서 계시다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장례식장에서조차 일가친척 중 몇 분은

문상도 하지 못하고  입구에서 거절당한 채, 그냥 집으로 돌아갔나 보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서로 화해가 가능한 법인데... 끝까지 자존심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참으로 안타깝고 밉살스러웠다.


 

몇 해 전부터 선산과 납골당 짓는 문제로 친척간의 불화가 끊이지 않는 터에

큰어머님의 죽음은 친척간의 의를 끊어놓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 듯 했다.

선산을 파는 아주 중대한 일을 형제들 간에 의논 한마디 없이

시행했다는 점에서 분명 커다란 잘못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의견에 순응하지 않고, 따라오지 않음을

탓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음을 느꼈다.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할 텐데...

그걸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몫을 챙기려 드는 이유는 뭘까?

 

큰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계기로 인해 친척 간에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졌다면

지금쯤은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했을 텐데...

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올해도 큰 댁으로 명절을 지내러 가는 일은

희박할 것 같아 안타깝다. 어른들이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데...

(2006. 1. 25)

 

(글쓴이: 인샬라- 신의 뜻대로, 정원- 필명, 실명- 김영순)

 

* 다가오는 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출처 : 칼럼
글쓴이 : 인샬라-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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