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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칼럼·나의 서재

[스크랩] 활터(射亭)의 예절(禮節). 그 전통이 흔들리며 가고 있다.

                                                                     경주 호림정 몰기잔치

                                                                             경주 호림정 몰기첩지

 

-활터(射亭)의 예절(禮節). 그 전통이 흔들리며 가고 있다.


“무술(武術)은 예(禮)에서 시작하여 예(禮)로 끝난다.” 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느 무술이 예를 중시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만,

활을 배우는 활터에서만큼 지켜야 할 예절이 많은 곳도 드물 것 같다.


국궁하면 누구나 민족의 전통무술이라고 말하는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물론 국궁 말고도 태권도와 같은 민족고유의 전통 무술이 있다.

그런데 한,중,일(韓, 中, 日 ) 동양 삼국의 대표적 병기를 비교하여 말 할 때

“중국은 창”, “일본은 칼”, “한국은 활” 이라고 하여

민족의 특성을 나타내는 무기가 각기 다르다.

활은 동양 삼국 중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술의 병기이다.

활터는 국난이 발생할 때마다 의병(義兵)이 일어나던 구국의 얼이 담긴 곳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숨쉬어 온 활터에는

나라를 지켜 온 얼과 혼이 담겨져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그런 활터를 지켜 온 정신의 가운데 활터의 예절이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활터의 예절은 가지 수도 많고 모습도 다양하다.


누구나 활터에 들어설 때면 먼저 “정간배례(正間拜禮)”를 한다.

활터의 중심자리에는 “정간(正間)”이란 글이 높이 걸려져 있고,

활터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장먼저 그 정간에 인사를 드린 후에

활터에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한 때 정간을 떼자는 의견이 분분했었지만 대부분의 활터에서는

정간배례를 하고 있고 특히 활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

예를 들면 활 시합 같은 경우 대회의 첫 머리에 “정간배례”부터 한다.

물론 활터에서의 수련이 끝나고 돌아 갈 때도 정간배례를 한 후에 돌아간다.

활터에서의 모든 일상은 정간배례가 시작이고 끝이다.


활터의 일상은 활은 내는 것이고 그 시작은 초시례(初矢禮)로 비롯된다.

구사이건 신사이건 명궁이건 초보자이건 간에 그날의 첫 살을 내는 자기차례가 돌아오면,

“활 배웁니다.”라고 과녁을 향해 인사를 드린다.

그러면 옆의 사우들은 “많이 맞추십시오.”라고 답해 준다.

이 때 사원들이 서는 순서는 “팔찌동”이라고 하여 엄격한 서열이 정해져 있다.

대개는 사두가 첫 머리에 서고 집궁 순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한 번 사대에 나갈 때마다 다섯 발의 살을 갖고 나간다.

한 번 사대에 나가서 치르는 경기를 일순(一巡)이라고 한다.

활대회는 보통 3순경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순이 더 많아지기도 하다.

한 순에 가져간 살 다섯 발 모두를 맞추면 몰기가 되고 이 때 몰기를 한 사원( 射員)은

과녁을 향해 정중히 머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하여야 한다.

그러면 옆의 사우들은 “축하합니다.” 라고 격려를 해 준다.


활터에 와서 처음 활을 배우면서 기본기 수련을 마치고 집궁을 하게 되면,

집궁례(執弓禮)를 올려야 하고 처음으로 자기가 쏜 화살이 과녁에 관중이 되면

관중례(貫中禮)를 올리게 된다.

첫 관중이 되면 “1중례(一中禮)”를 올리게 되고

차례로 2중례(二中禮), 3중례(三中禮), 4중례(四中禮),

그리고 다섯 발 모두를 맞추게 되면 몰기례(沒技禮)를 올린다.

집궁례에서부터 몰기례까지 당사자는 깍듯이 선배 사우들에게 술과 음식으로

간단한 정성을 준비하여 인사를 드리는 의식을 갖추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면 선배사우들은 축하와 함께 덕담으로 서로를 격려한다.


활을 배우고 첫 몰기를 하게 되면 접장(接長)이 된다.

그러면 활터에서는 정식으로 “접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 때 자기가 활을 내는 활터의 이름과 접장이 된 사우의 이름이

새겨진 궁대와 함께 현대식 접장패나 옛날식 첩지를 수여하는 식이 이루어진다.

활터에 따라서는 정간 앞에서 “접장례”의 의식을 올려준다.

여럿이서 함께 몰기를 하거나 일정기간 동안 여럿이서 몰기를 하게 되면

합동으로 "몰기잔치"를 치르기도 한다.(경주호림정 몰기잔치 사진 참조)


접장이 된 후에 점차 궁력이 늘고 활을 쏘는 기술이 향상되면,

대한궁도협회가 주관하는 입단시험에 응하게 되고,

처음 입단하고 나서 5년이 경과한 유단자 가운데서

5단 이상의 자격이 있는 사람 가운데 인품이 훌륭하고

지도자로서 덕망이 있다고 인정을 받게 되면 명궁(名弓)이 된다.

명궁은 모든 활 꾼의 꿈이고 활 세계의 꽃이다.

명궁이 되면 명궁례를 올리게 되는데 이쯤 되면 소속 활터의 범위를 넘어서

지역의 잔치가 된다.


집궁(執弓)이 활의 시작이라면 납궁(納弓)은 활의 마감이다.

평생 활을 내다가 더 이상 활을 낼 힘이 없어지면 활을 내는 일을 마감한다.

자기가 쓰던 활과 화살 등을 소속된 활터에 반납하고

“납궁례”를 올린 후에 활 세계를 떠나게 된다.

젊어서 일찍 활을 배운 이는 집궁회갑을 맞는 경우도 자주 만나게 된다.

장구한 세월을 활과 더불어 보낸 이들의 활사랑은 어떠하겠는가?

무엇이 있어 이들로 하여금 그토록 긴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특히 집궁례, 접장례와 명궁례 그리고 납궁례는 정관아래에서 정중하게 제를 올린다.

이때 제(祭)를 올리는 주최자는 소속 활터이거나 단체가 되고 제주는 당사자가 된다.

제를 올리는 대상은 천(天), 지(地), 가(家), 관(貫)의 사신(四神)으로,

일반적인 제(祭)의 경우와 비교할 때 그 대상이 조금 다름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올리는 제의 기본은 천(天), 지(地), 인(人)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집궁례부터 시작하여 납궁례까지 둘러보았다.

그러면 단체 즉 활터(射亭)의 입장에서는 어떠할까?


예(禮)는 풍습에서 비롯된다.

활터에서 행하는 단체적 풍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과녁제, 선생안 제사, 선성제 등이 있다.

거개의 활터에서는 처음으로 과녁을 만들 때나, 일정한 시기에 정기적으로

과녁에 지내는 과녁제(貫革祭)가 있다.


디지털 국궁신문에 게재된 청주 우암정의 과녁제를 다룬 기사를 옮겨 본다. 

“활터 풍속 중에 과녁제라는 것이 있다.

과녁제는 과녁에 대고 고사를 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원래 집을 짓고

터주대감이나 성주대감한테 제를 올려 새로운 집을 짓고 사니 도와달라는

뜻으로 지신한테 부탁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과녁을 새로 만들고서는 우리가 쏠 테니 잘 맞게 해달라는 주문이다.

이것이 과학에서 말하는 사실과 맞든 안 맞든, 우리 겨레에게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고마워하는 마음이 잘 살아있는 행위이다.

과녁제 또한 이와 같은 우리 겨레의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이다.

그래서 과녁을 새로 만들면 전 사원이 제수를 마련하고서 고사를 지낸다.

또 과녁을 만든 경우가 아니라도 과녁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

보통 대회가 막 시작되 는 봄에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추기 위해서

그런 고사를 지낸다. 이것은 한 정 의 사원들이 마음을 일치시키고

단결하는 의미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원들이 고사를 지내는 것이 관례이다.

우상숭배에 가장 민감한 기독교인들까지도 절하는 대신 기도로 하기도 한다.

마치 제사 지 내는 것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합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


또 같은 국궁신문에 게재되었던 “선생안 제사”나 “선성제”에 대한 기사를 본다.

“호남7정중 강경 덕유정의 선생안 제사와 황둥 건덕정의 선성제와 같은 맥락의 제사지만

덕유정의 선생안 치제는 사백과 접장의 신위께 올리는 것이고

건덕정의 선성제는 선성비에 등제된 13위의 신위께 올리는 치제이나

심고정의 치제는 작고하신 모든 사우의 신위께 봉행하는 치제로

성격이 조금 다른 치제로 호남7정 중에는 덕유정, 건덕정, 심고정의 세 개 사정에서만

봉행되고 있는 치제로 그 외의 사정에서는 이러한 치제를 봉행하지 않고 있다.

참고로 전주 천양정에서는 선생안을 모시고 있으나 그 곳에는

신임사두 취임 시에만 전 사원과 같이 치제를 봉행한다고 한다.“


과녁제나 선생안의 제사 또는 선성제를 모든 활터에서 다 치르는 것은 아니다.

활터의 역사가 오랜 곳일수록 이러한 행사를 치르는 곳이 많고

역사가 짧은 활터일수록 이런 행사를 치르지 않는 곳이 더 많다.


활터의 예절! 그 가장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핵심적 행사는 전국대회이다.

전국에는 대략 350여개의 활터가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한 활터에서 대개 한 개의 전국대회를 치르고 있다.

이른 봄부터 초겨울까지 전국대회가 꾸준히 이어져 가고 있어 아무대회나 가면

팔도에서 모여든 무사들끼리 서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활터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한량들을 활 꾼으로서 서로 끈끈하게 엮어주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를 엮어주는 어느 활터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공통의 예(禮)”가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아름다운 전통들이 흔들리면서 조금씩 사라져 감을 느낀다.

특히 전통문화가 종교적 이유로 부서지는 것을 볼 때면,

서로 공존해야 할 지혜를 왜 못 찾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궁금하다.

지혜로운 조화(調和)야 말로 문화를 지켜가는 아름다운 길이 아닐까? 2006. 1. 30. (和圓)



출처 : 칼럼
글쓴이 : 대자유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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