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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서 물은 중요도를 따지자면 둘째가라하면 서럽다. 음식 맛은 첫째가 솜씨라지만 솥뿐만 아니라 공기, 주재료, 소금과 된장 따위 양념, 향신료 등 몇 가지 구성요소도 그렇지만 물이 음식 맛을 결정하는 첫째 요인이다. 약간만 증발하거나 넘칠 뿐 대부분은 졸아들거나 양이 줄어서 끓일수록 탁해지기도 하고 더 맑아져 육수를 시원하게도 한다. 수돗물로 끓이는 것과 약수나 시골 물을 받아다 끓이면 현격한 차이가 나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물이다. 삼촌인 나는 자연수를 쓰고 엄마는 수돗물을 쓰는 게 다를 뿐이다. 우리가 똑같은 재료로 정성을 기울여도 먹는 장소에 따라서 현격한 맛 차이가 나는 건 겪어봐서 잘 알지 않던가. 음식에 당장 물은 여러 재료와 어울려 있다. 먹을 때까지 남아서 음식물의 일부분이 되기도 하고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국물 양에 따라 훌렁훌렁한 ‘국’과 고기나 채소가 더 들어가 오래 끓인 ‘탕’, 물 양을 약간 줄여 몇 명이 한 끼에 한 솥에 끓여 비워내는 것이 ‘찌개’다. 여기에 약한 불로 지그시 끓여 달달 졸이면 ‘조림’이 된다. ‘볶음’은 물이나 기름 또는 고기 째 볶는다. ‘찜’은 물이 직접 닿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지만 솥 바닥 팔팔 끓는 물 수증기로 쪄진다.
수위조절이 중요하다 눈대중이나 느낌 차이를 감안하고서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등 문화 각 분야에서 체계적인 계량화가 되지 않아 사람마다, 집집마다, 지역마다, 때론 같은 사람일지라도 기분에 따라 표준화 또는 일반화되지 않은 구체성의 결여 때문에 새롭고 창의적인 재창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이 충실하게 잡혀있으면 뭐든지 다음 사람이 따라가기 편하다. 그에 따라 더 나은 창조물을 기대할 수 있겠는데 당대의 대가가 쓰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영구히 수대에 걸쳐 전수되어온 전통기법과 혼이 일시에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하곤 하니 평시를 몇 대에 걸쳐 지내도 퓨전기법만 난무할 뿐 정형화 내지 표준화는 늘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훌렁훌렁한 국 된장국, 김칫국, 콩나물국은 물이 80%에 이르러 훌렁훌렁하다. 억세지 않은 한 가지 국감이 기본이다. 단일한 채소와 멸치나 돼지고기 등이 1:1 결합을 한다. 잡탕이 아닌 바에야 한 가지만 쓴다. 간도 짜지 않다. 국그릇에 퍼서 말아 먹거나 국물로 떠먹을 뿐이니 농도가 진하지 않고 훌렁훌렁하다. 식구가 많고, 먹을 게 없던 시절 먹었던 국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잖은가. 김칫국도 열명 내외가 먹으려고 푸짐하게 한 솥에 가득 끓이지만 실상 돼지고기는 반근을 넘기지 않은 양을 잘게 도막내서 이게 고깃국인지 냄새나 맡아보자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미약하였다. 오죽하면 ‘태평양에 돼지 한마리’라는 비유가 유행했을까. 국은 싱겁다보니 한 그릇이 더해진다. 많이 먹어도 쉬 꺼지고 만다. 국물을 떠먹기도 하지만 대개 밥을 말아서 먹는다.
국물과 건더기는 소화를 돕고 술을 깨는데 이롭다. 진한 고기국물이나 라면국물을 기피할 것이지 된장, 김치로 끓인 국물은 오히려 배를 부르게 하므로 많은 양을 섭취하는 것 자체를 방지하므로 살을 빼는데 효과적이다. 짜지 않은데다 국감이 섬유소가 많다는 건 다 알고 있다. 한식에서 간단하면서도 즐겨먹는 국을 제대로 알지 않고서는 다음으로 넘어가는데 꽤나 고생을 해야 한다. 알고 보면 국이 건강으로 가는 식단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신혼 초 된장국과 김칫국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다른 걸 하려고 욕심 부리지 말라고 했다. 탕과 전골 육수가 진하다 탕(湯)은 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다. 국물이 걸쭉한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추어탕, 매운탕, 보신탕, 삼계탕, 설렁탕, 토란탕 등이다. 맑은 국과는 달리 3~40% 내외의 고기가 묵직하게 들어간다. 만약 탕에 고기가 없거나 국물이 희멀건 하다면 사람들은 “그 집 음식 별로네”라고 단도직입으로 결론을 내리고 만다. 그러니 요즘엔 고기를 큼지막하게 썰어 국물에 얹어주는 집이 흔치 않던가. 가열하는 정도에서도 높은 온도로 고깃덩어리가 부서질 지경으로 팔팔 끓이고 뼈를 고아서 칼슘 알맹이를 죄다 꺼낸다. 고기 안에 있는 육즙이 밖으로 빠져나와 고루 퍼지도록 조리하였으니 파와 각종 향신료를 곁들여야 본래 갖고 있던 누린내를 감소시키기도 한다.
전골은 탕과 찌개의 중간이다. 조리법이 탕과 같지만 즉석식이며 국물을 잘박하게 붓고 진하게 되끓인 측면이 강하다. 찌개는 국물 반 재료 반 우리가 언제부터 찌개를 먹기 시작했을까? 조침이 근원이겠지만 찌개는 국의 변형된 형태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섞어서 혼탕이 된 경우도 여기서 시작하였다. 국물 양 뿐만 아니라 모든 감이 대폭 줄어들어 ‘몇 인분’으로 계산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릇도 바뀌어 자그맣다. 국물을 바특하게 잡아 되직하게 끓이되 소금 간과 양념, 찌개 재료가 듬뿍 들어가 있다. 그러니 국물 반, 채소 절반 또는 물이 절반 이하로 현저히 줄어든다. 대개 1이분이나 2~3인분이니 먼저 끓인 육수에 준비된 재료를 넣고 파르르 끓여 떠먹는 인스턴트 국이다. 응당 맛을 찾다보니 간을 중요시한다. 집에서 먹는 밥보다 외식이 늘어나면서 국물을 찾는 사람들은 찌개를 꼭 찾다보니 당장 팔팔 끓을 때 간이 맞는 찌개를 선호한다.
왜냐면 국은 보통 다섯 명에서 열 명까지 적잖은 숫자가 두 번 퍼먹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양을 끓이다보니 자연스레 많지 않은 고기즙을 안간힘을 내서라도 죄다 빼내 골고루 섞어주고 푸성귀마다 뒤섞여 상호작용을 하는 2차 조리과정을 겪는다. 반면 적은 양, 소수를 위한 찌개는 이미 마련된 육수에 물을 붓고 설익었을 때 가져오는 동안 재료가 익고 물이 줄어들므로 완성품이 아니면 사람들 성화에 배기지 못한다. 찌개는 짜고 찐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 건강은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다. 조림은 10% 이내 조림이 완성됐을 때 국물이 10% 이내다. 주재료인 생선에 보조재료 무, 호박 따위를 깍두기보다 서너 배, 또는 손바닥만큼 납작하고 크게 썬다. 가마솥에 장작을 메우고 물을 원재료의 30% 정도 되게 자작자작 붓고 처음에 센 불로 강하게 끓인다. 한번 끓고 나면 불을 2단으로 줄여 끓이는 둥 마는 둥 하면 부재료에 있던 수분이 외부에서 침투한 간기를 먹고 슬쩍슬쩍 물기를 뱉어낸다. 밀어주고 당겨주는 기분 좋은 화학반응이라고나 할까. 국물이 꽤나 불어나 있지만 걱정할 게 없다. 이내 줄어든다. 자글자글 끓이다보면 바탕엔 물기가 5%나 남아있을까. 물러지면서 쪼글쪼글 타기 일보직전이다. 거무튀튀하지만 쫄깃하다. 생선보다 맛있는 즙을 빨아 먹은 무나 호박 잘라먹기 바쁜 게 조림이다. 조림은 젓갈과 함께 밥도둑이니 두어 조각으로 밥 한 그릇 비우기 쉽다.
여기에 쇠고기, 돼지고기, 달걀로 만든 장조림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양념 찜은 조림에 가깝고 그냥 익히면 0% 어떤 생선을 쓰느냐에 따라 멸치찜, 아구찜, 병어찜, 대구찜, 황태찜, 코다리찜, 전어찜, 고등어찜으로 나뉘고 채소 종류에 따라 호박찜, 무찜, 감자찜이 되고 둘을 합치면 병어감자찜, 무코다리찜 따위가 탄생한다. 주로 한번 푹 삶아 국물을 자작자작하게 하는 방법인데 조림과 대동소이하다.
첫 번째 조리법으로 하면 물이 5% 내외로 거의 없는 듯 하며 두 번째는 전혀 물기가 남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볶음도 기름보다 물을 쓰면 담백. 무침은 수분을 잘 빼는 게 비결 볶는데 물이 들어갈까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듯싶다. 현재 상식은 자리 잡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 전통 음식에서는 각종 식용 기름보다 물을 적절히 활용하여 볶았으니 생각을 바꾸면 음식 뒷맛이 깔끔하다. 뚜껑을 덮으면 쉬 음식감이 물러져 처음에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없으므로 물을 약간 치고 뚜껑을 연 채 센 불로 볶으면 겉에 열이 전달된다. 차차 불을 약간 줄이면서 저으면 재료 내부에 있던 수분이 빠져나와 통째 익는다. 물기가 부족하면 뚜껑을 잠시 덮어두면 자작자작 물이 고인다. 탈수 현상이다. 얼른 뚜껑을 열고 휘저어주면 그 자체로도 볶을 수 있다. 육안으로 보아 거의 물이 없듯 바싹 볶아야 맛이 난다. 생선을 프라이팬에 기름도 두르지 않고 굽는 방법과 유사하다. 일단 달궜다가 연기가 살짝 나면 갈치나 고등어를 올리고 불을 약하게 하면 자체 기름이 빠져나와 담백한 구이가 되는 이치다.
나물을 삶았을 경우엔 물기가 10% 정도 덜 빠지고 김이 모락모락 날 때 무치면 양념이 고루 섞이고 재료 속에까지 스며들어 짜지도 싱겁지도 않으면서 입맛을 자극한다. 들기름은 묵나물에, 참기름은 생나물 무칠 때로 구분하여 쓰면 더 값진 나물무침을 얻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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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 탕, 전골, 찌개, 조림, 찜, 볶음, 무침
글쓴이 : e-이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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